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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 드라마, 127분, 2006년
홍상수 감독 영화의 포스터들은 참 상큼하다. 영화와 달리 낭만적이고 밝다. 그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겠지만, 이 정도는 봐불만하다. ^^ 이 지독한 스타일리스트! 어디를 가나 뭉기적 대고, 이기적이고, 엇갈리고, 멋적고 어색한... 연애담. 더구나 그의 주인공은 지식인이나 자신의 그림자인 영화감독들인데, 언제나 필름 안에서 뭉기적 대고 있다. (사실 그것이 그의 영화를 보는 매력이긴 하겠지만.) 구제불능인 한국사회에 대해 한번 저항해본 적도 없고, 저항할 길도 없는 소시민도 되지 못하고, 생존근성과 허위의식 속에 틈만 나면 어떻게 숫컷으로서의 일을 치를까 -정말 배출이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는- 소시민적 지식인들의 풍경화가 재미나다? 뭘까? 한국 영화를 보며 느끼는 불편함이란. 권위적 허위가 너무나 고착되어 도무지 합리적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단절된 답답한 공기! 김기덕이나 홍상수나 임상수나 누구나 그런 공기가 먼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좀 창피한 느낌도 있다. 이런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바로 그래서 한국영화 특유의 엽기적 폭력성이 탄생하여 한국의 사도마조히즘적 마초주의를 만들었겠지만. 감독은 역시 사회적 공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를 억압하는 악몽은 뭘까? 아무래도 6.25 전쟁일 것이다. 극우와 극좌로 대립할 수밖에 없으면서 개인은 사라지고 입장만 남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전쟁 발발이 환갑이 되도록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합리화하면서 비롯된 억지 논리와 당착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뒤틀린 의식은 물론, 역사, 경제, 정치 구조를 생각하면 지불하고 있는 댓가는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다. 당신들껜 죄송한 말이지만,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하루 빨리 은퇴하셔야 극좌와 극우의 논리에서 우리 사회가 좀 자유로워지고 다양성과 통일의 길이 좀 열릴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군사문화가 확고하고, 전쟁도 경험하지 않은 뒷세대들이 경직된 사고를 물려받아 우려먹기를 하겠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피해의식과 반동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너무나 극우편향적이다. 무사고의 경제동물들이 버팔로떼처럼 뛰어간다. 상식밖의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홍상수식의 유희를 보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뻔한 자조같기도 하고, 솔직한 고백같기도 한 영화들...
그래도 영화에 나오는 중래가 문숙에게 자신의 약점을 피하기 위해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 불행에서 벗어나는 법는 기억할 만한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진실의 범위는 완전히 알 수 없지만, 단편적 기억 몇을 선택해 반복적으로 생각함으러써 생각에 갇히고 불행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의식의 구조를 알고 다른 단편들을 첨가함으로서 완전한 진실은 아닐지라도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이야기를 홍상수 감독이 생각한 것인지, 또는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심리학적으로 옳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도형학적 설명을 바로 홍상수 영화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패턴이 있다. 습관이라는 것이며, 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습관을 깨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전의 자신을 버리고 대책없이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내놓아 진실을 맞이할 용기. 홍상수 영화가 그런 자유의 방법과 길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에 빠진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다. 길은 각자가 찾을 뿐이다.
= 시놉시스 = (무비스트에서 옮겨옴)
하룻밤 로맨스, 일단 저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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