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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핵 한국? 태양의 학교 첫 돌 모임에 참석한 한 초등학생. 그의 미래에 펼쳐질 '탈핵 한국'을 기대해 본다. | |
ⓒ 신경준 |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 횟수는?"
사회자의 질문에 사람들의 미간에 팔자주름이 잡혔다.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이내 "답을 들어 주세요"란 외침이 들려왔다. 이십여 명의 머리 위로 조심스레 알림판이 올라갔다.
'653번'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큰 숫자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숭문중학교 이호욱(16) 학생만은 달랐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를 향해 '씨익' 웃어보기까지 했다. '탈핵 골든벨'을 향한 고지가 머지않은 탓이다.
겨울 한파가 한풀 꺾인 지난 1일, 엄마 손 잡고 온 아기부터 머리 희끗한 노신사까지 50여명의 사람들이 서울 시청역 인근 카페에 모였다. 이들은 '태양의 학교'로 명명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교사, 학생, 학부모 연대의 1주년 기념 모임에 참석했다.
태양의 학교, 아이돌 기획사인가?
▲ 탈핵 골든벨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사고는? 654회 (지난 12월 3일 한빛 3호기 고장으로 1회 늘었다) | |
ⓒ 신경준 |
▲ 탈핵 경매 백미는 경매였다. 미리 준비한 물품에서 참가자들의 애정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 |
ⓒ 김종훈 |
'태양의 학교', 이름만 듣고 연예인 키우는 기획사가 아니냐는 반문도 제법 있다. 비슷한 이름(주군의 태양)의 인기드라마 때문인데, '키운다'는 측면만 놓고 보면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태양의 학교 창간사엔 '에너지를 아끼고 절약하는 삶의 철학과 태도를 배우고 가르친다'는 문장이 궁서체로 적혀 있다. 핵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키워내겠다는 의미다. 행사장 곳곳에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띈 이유기도 하다.
이날 모임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행사의 시작과 맺음이 참가자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학부모의 다과 준비, 교사의 1인 마당극, 학생들이 함께 부른 탈핵 동요와 댄스까지. 지난 1년 동안 태양의 학교를 운영해오며 익히고 배운 내용을 함께 확인하는 자리였다.
물론 백미는 따로 있었다. 회원들이 미리 준비한 물품으로 진행된 자선 경매 시간이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부터 고급스런 양복까지. 준비한 것들만 놓고 봐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덕분에 경매가 진행 될수록 긴장감까지 엿보였다. 집에서 손수 만든 가방은 5천 원부터 시작해 이내 1만 원을 지나 2만 원, 3만 원까지 높아졌다.
행사에 처음 참여했다는 김만중(30)씨 역시 "생각지도 못했는데 양복까지 한 벌 구할 수 있었다"며 "좋은 물건도 나누고, 탈핵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고 했다. 함께 온 임광용(30)씨도 태양의 학교 후원신청서에 서명을 하며 "동참해 기쁘다"고 했다.
출발은 후쿠시마, 목표는 탈핵
▲ 체르노빌의 아이들 핵 사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화로 풀어냈다. | |
ⓒ 김종훈 |
▲ 탈핵 퍼포먼스 이날 서울 숭문중학교 환경반 학생들은 직접 편곡한 노래 'save the energy'를 선보였다. (사진은 지난 여름 탈핵 퍼포먼스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 | |
ⓒ 신경준 |
태양의 학교는 역사가 길지 않다. 핵문제에 대한 고민이 길지 못했던 탓이다. 핵은 그저 원자력의 다른 이름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이 폭발한 날이다.
김은형 태양의 학교 대표는 그날을 복기하며 말을 이었다.
"'무섭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사람이 저지른 일인데,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게 허망했습니다. 가장 안전하다는 일본조차 무너지는 걸 보니, 세계원전밀집도 1위인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난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김 대표 혼자서는 도저히 바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중의 인식 속에 '핵은 고마운 원자력'으로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았다. 함께 모여 핵 발전의 진실을 알리고,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방사능 급식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그래서일까 지난 1년, 태양의 학교는 분주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을 돌며 탈핵실천운동을 이어갔다. 특히 지난 가을엔 두 차례 탈핵희망도보순례도 진행했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걸으며 탈핵 운동을 실천한 것이다.
그 중심에 서울 숭문중학교가 있었다. 신경준 교사와 4명의 환경반 학생들이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태양의 학교 1주년 행사에서도 이들의 모습은 단연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편곡한 'save the energy'라는 곡으로 칼군무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큰 환호로 화답했다.
즐겁게 공부하자, 그리고 제대로 알자
▲ 성악가 안세권 축하공연 그의 말을 통해 '태양의 학교'가 왜 계속돼야 하는 지를 엿볼 수 있다 | |
ⓒ 김종훈 |
▲ 아이들에게 생명을 태양의 학교는 직접 만든 동요을 함께 부른다 | |
ⓒ 김종훈 |
이날 행사는 2012년 <코리안 갓 탤런트> 결승 진출자 안세권씨의 공연으로 마무리 됐다. 그의 인사말에서 대중이 핵 발전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정말 몰랐습니다. 핵은 그저 안전하고 좋은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다. 태양의 학교가 우리 곁을 지키는 이유. 아직 원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제대로 알고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태양의 학교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따졌을 때, '핵 없는 대한민국'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여전히 23기의 핵발전소와 지금도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핵 시설만 20여 기나 된다. 무엇보다 정부가 앞장서 '전력난'을 이유로 핵발전소 건립을 정당화하고 있다. 국민 여론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크다.
생활 속의 실천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날도 모임 시작 전 단체 문자가 왔다. "행사 진행 간 1회용품 사용 자제를 위해 개인 컵과 수저를 준비해주세요"란 공지였다. 행사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손수 준비한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탈핵에 이르는 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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