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식당 안에 매점이 있다. 벽을 기댄 사각형 가게를 담당하는 김홍건 상병은 동갑내기고 같은 경상도이다. 통통해서 귀엽게 생겼다. 선임이나 장교들이 좋아한다. 과자를 사 먹으러 자주 찾아간다. 옆에 탁구대와 당구대가 하나씩 있다. 식사하곤 편을 갈라 탁구 친다. 곱게 받아넘기는 정도다. 자주 치니 즐겁고 조금씩 는다. 시소게임으로 졌다. 내일은 우리가 이길 거라고 웃으며 본부 중대 내무반으로 갔다.
하다 보면 그물 위로 넘어 들어간다. 꺼낼 수가 없다. 홍건을 부르러 가기도 뭣해 어쩔까 주춤한다. 돈 주면 빵이나 음료수 내주는 구멍이 있다. 그리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몸집 작은 내가 들어가 공을 꺼냈다. 비비적거리고 머리 어깰 넣으니 들어가 진다. 얼마나 왜소했으면 그 좁은 곳에 들어가나. 몸집이 그리 작나 비쩍 말랐다.
다음날 다들 놀란다. 홍건도 여길 어찌 들어왔나 손 뼘으로 짚어본다. 얘깃거리가 됐다. 얼마 뒤 그 자리에 장교식당을 만들면서 탁구장은 없어졌다. 옆의 당구장만 다소곳이 남았다. 장교들이 치고 있어서 어찌하나 봤다. 그중 김 소령이 칠 땐 약하게 미는 것 같았는데, 여러 벽을 돌아 한참 가는 게 아닌가. 힘껏 쳐야 가는데 살살 쳐도 잘 간다. 그냥 툭 치는 게 아니라 돌려서 밀었다.
스핀을 넣으니 팽팽 도는 것이 춤을 춘다. 내 맘대로 갖고 논다. 주말이 되면 무주공산이다. 장교 없는 부대다. 당구대가 우리 것이다. 큐 끝에 가죽이 낡아 떨어져 나갔다. 비슷한 천을 오려 붙였다. 초크도 없어서 픽픽한다. 공도 때가 묻어 우중충하다. 바닥 천도 여러 곳 찢어졌다. 청소도 안 해서 가루와 먼지가 쌓였다. 쓸고 닦아서 깨끗이 했다. 공에 묻은 때도 문질러 뺐다. 꾀죄죄한 것을 일일이 손봤더니 말끔해졌다.
칠 줄 아는 민병기 병장이 있어서 그에게 배웠다. 공을 좌우 위아래로 쳐서 가는 곳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밀어치거나 당겨서 칠 땐 왼손 세 개가 안정되게 굳혀 있어야 좋다. 세게 치는 것보다 가는 곳으로 돌리기를 해서 가볍게 구르도록 함이 필요하다. 땅땅 맞히면 공이 튀어 벌어지므로 살 부딪혀서 가까이 있도록 해야 잘 친단 말을 듣는다. 한점 맞히기도 어려워서 치고 보자는 심산이다. 뒷공 생각일랑 아예 할 수 없다.
모인 공을 쳐서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다시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며 친다. 마지막은 세 벽을 지나오게 하려면 정확하게 각도를 재서 처야 쉽게 끝낸다. 저녁 먹고 좀 하다가 주말엔 꽤 오랜 게임이다. 재미가 쏠쏠하다. 민 병장은 서울 사람으로 잘하는 걸 보니 많이 친 것 같다. 능숙하다. 끌기와 밀기를 참 잘했다. 오래 한 솜씨다. 치는 걸 하나하나 살피면서 익히고 따라 해보려 노력했다.
3년은 후딱 지나갔다. 경기도 가평은 밤도 많고 잣도 있어 새벽 보초 서고 돌아올 땐 알밤을 주워 주머니마다 가득하다. 비상이 걸려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총을 들고 사령부 뒤 고개를 올랐다. 초병이 비상벨을 밟은 채 자고 있었다. 김치를 담그는데 트럭으로 몇 차 실어온 무 배추를 듬성듬성 썰어 소금치고 양념 버무려 넣었다. 교실만치나 드넓은 깊은 구덩이에 가득 채웠다. 장화 신고 삽과 쇠스랑으로 마치 거름 뒤지듯 치대고 갈무리했다.
저게 무슨 맛이 있게나 했는데 웬걸 먹어보지 못한 시원한 김장이다. 주는 대로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때 그 맛이 그립기만 하다.
고향에 잠시 머물렀다 부산으로 왔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났다. 공기 탁하고 껄렁한 사람들이 모이는 당구장에 드나들 수 있나.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같이 피워대며 치자니 껄끄럽다. 옆에 놓아 생담배 타는 냄새가 솔솔 났다.
심상해서 잊고 지난 지 십여 년이 됐다. 식사 모임 뒤에 그냥 갈 수 있나. 한 판하고 가자며 당구장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갔다가 잊었던 걸 또 하게 됐다. 좀 잘 치는 선생이 눈에 불을 켜고 이기려 애쓴다. 잘 될 때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상대를 약 올리면서 친다. 지고 나면 괜히 왔구나. 마음 쓰게 자극을 준다. 그렇게 뿌루퉁하면 잘 안 맞는다. 조금만 바르지 않으면 빗나가 맞지 않는다.
그를 이겨보지 못하고 늘 지는 게 일이다. 이러면 되겠나 해서 주인에게 가끔 지도를 받았다. 뚱뚱한 사람이 끌기와 밀기를 이렇게 하면 된다며 가르쳐줬다. 큼직한 덩치인데도 공 돌리는 가벼운 모습이 돋보인다. 아주 부드러워 맞으러 찾아가는 것 같다. 세게 쳐서 맞히면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져도 속이 풀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 안 된단다. 가볍게 살살 하는 게 쉽지 않다. 작게 부딪쳐도 멀리 갔다.
연습하며 따라 해보지만 안 된다. 픽 하고 밀려간다. 계속하니 조금씩 되면서 재미가 붙었다. 끌기 땐 공 아래를 찌르면서 큐 뒤를 낮춰야 픽 소리가 덜 난다. 정면 적구를 향해 수구 중하에 똑바로 길게 찔러야 쑥 끌려온다. 대부분 짧게 하므로 시원치 않다. 밀 땐 큐 끝을 중 상단에 올려서 오른손잡이를 높여야 픽하는 게 줄어든다. 큐가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아야 했다. 이렇게 끌기와 밀기를 잘하면 점수가 올라갈 수 있다.
하교 때면 저쪽에서 손으로 신호하며 어서 가잔다. 이석담과 정우봉, 신동길 선생이다. 학교 아래 보수동 청룡당구장으로 간다. 나가는 교회 바로 옆이다. 저녁도 주로 짜장면을 시켜 얼른 먹고 하기 바쁘다. 집에서 전화가 온다. 때 되었다고 어서 들어오란다. 아이들을 시켜 전화할 때도 있다. 엄마가 빨리 오라 한다며 걸려왔다. 우봉이 잘 쳐서 늘 앞장 설 때가 많다. 그를 당구교장이라 불렀다. 오늘은 꼬이지 말아야 한다며 다졌다. 쓸데없이 복작거리는 곳에 가서, 노상 지고 이것저것 덮어쓰는 게 싫었다.
전화 받고 나면 잘 안 된다. 다급함이 생기고 또 따르릉 하면 내 전화 같아 맘 쓰인다. 늦게 들어가면 한 말 듣는다. 당구에 미쳤단다. 그게 그렇게 좋으냐며 차근차근 뭐라 한다. 좀 줄여야겠다며 어떨 땐 가자 해도 거절한다. 일찍 들어와 가족과 함께 있으니 무료하다. 손이 근질거린다. 며칠 못 가 또 가게 된다. 처음은 안 간다 했다가 거듭 권하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모진 데가 없다. 강단이 있어야 하는데 물컹한가 보다. 안 치고 갈 땐 무얼 빠뜨린 것처럼 허전하고 궁금하다. 거기 가는 버릇이 단단히 들었다.
걸쳐 치기와 앞뒤, 옆, 제각 돌리기, 빈 쿠션을 자주 연습하니 진도가 조금씩 나갔다. 멀리 치기와 가까이 치기를 계속했다. 가까이 얇게 치기는 놀란다. 어찌 그리 어려운 걸 잘 치냐며 눈이 밝은가 부럽단다. 밀면 될 걸 그리 칠 수 있냐이다. 가는 쪽으로 큐를 대고 일직선을 보면서 선을 감지해서 살 밀어준다. 가깝게 치기는 선을 가냘프게 해서 살 밀어야 튕기지 않고 간다. 이때 역회전으로 선을 맞춰야 좋다.
맞지 않고 뚤뚤 구를 때도 있는데 스쳐 맞는 걸 보고 다들 신기하단다. 사르르 굴러 벗어나지 않고 직선으로 흘러가 맞는다. 그게 어렵단다. 눈이 침침해 일직선이 보이지 않고, 해봐도 가당치 않게 빗나가기 일쑤다. 마치 찍어 치기를 보고 감탄하듯이 말이다. 어린아이 달래듯 붉은 볼 두 개를 어르고 타이르듯 한다. 모이도록 치는 게 중요하다. 어쩌다 모인 공을 받아도 두세 개 치면 흩어져 버린다.
바로 치지 않고 벽을 이용하는 게 좋다. 멀리 흩어지지 않는다. 직선을 만들고 끌어서 한 레일 가고 오게 댕겨야 가까워진다. 걸어 치기도 흩어지는 걸 막는다. 밀기도 모아두는데 한몫이다. 죽여 치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세게 해서 갔다 오게 하고 남은 하나는 살며시 맞아 그 자리에 있어야 좋다. 아니면 벽에 부딪혀 가볍게 맞는다.
“죽여 치기가 묘수다.”
“들어도 그때뿐 계속 연습해야 한다.”
직선으로 놓이면 어렵다. 밀어서 빠져나오게 해서 맞춘다. 또 벽에 부딪혀 빈쿠션으로 맞히면 된다. 절반 값으로 그어 무회전으로 해야 맞는다. 힘들지만 세워 치기를 하면 휘어져 찾아간다. 가까이 치기를 겨냥한다. 가볍게 가는 쪽으로 모이 쪼듯 내리누르면 휙 돌아간다. 구멍 넣기는 가볍게 굴리면 선을 따라 곧게 가지만 아래를 찔러 두껍게 넣으면 꺾여 원하는 곳으로 퍼져간다.
“볼 땐 훤해도 해보면 안 된다.”
반대로 역회전으로 보내면 작게 꺾여 바로 올라온다. 처음 스리쿠션을 칠 때 우측 상단을 쳐서 투 쿠션을 지나 천천히 셋째 벽을 거쳐 오도록 하면 맞게 되고 모인다. 그렇게 연습하고 게임을 하면서 날로 늘어갔다. 겨우 백을 넘고 해가 바뀌어서 오십씩 늘어난다. 이삼백 사이를 오래 쳤다. 재미가 있어 붉고 흰 것이 눈앞을 막 굴러다닌다.
“더 늘지 않는 이백을 오래 쳤다.”
뜸하다가 몇 해 뒤 또 불이 붙었다. 그 사이는 난데없는 춤바람이 나서 휩쓸리더니 좀 시들해지면서 돌아왔다. 교내에 탁구장이 있어 쉬는 시간에 자주 올라갔다. 본 데 없이 쳐서 내 멋대로다. 스매싱으로 멋지게 하잖고 비비 꼬아 친다. 좌우로 빙글 돌려서 공이 똑바로 날아가잖고 휘어져 간다. 그러면 상대가 받기 어려워 힘들다.
“돼지 꼬리처럼 꼬였다.”
봄가을 소풍 뒤나 이런저런 모임 끝에 한 큐 했다. 수십 년 지나도 이백을 넘지 못하고 그 자리다. 여러 해 뒤 퇴직자 모임을 하면서 만나게 됐다. 마치고 집에 갈까 망설이다가 몇몇 사람이 의기투합 눈짓이 오고 간다. 또 하게 됐다. 잊을만하면 시작해서 붉은 것과 흰 공이 설설 굴러다니게 한다. 오래 안 쳐서 비뚤배뚤하다. 픽 하고 헛치면 웃음이 절로 난다. 못 치고 실수하는 게 재밌어 껄껄댔다.
서면에서 우봉과 만나 성좌라는 곳에서 싸게 쳤다. 게임비 내기로 이겼다 졌다 했다. 저녁 먹고 헤어진다. 재밌을 땐 내일 또 만나자 빤한 날이 없다. 또 바빠 여러 날 못 만나면 서로 바리바리 전화한다. 그러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해 살피니 정효당으로 김평산과 만나는 사이다. 건너편 시장 쪽에서 치다가 여기 오게 됐단다. 다 퇴직 후 놀며 심심해서 하는 짓이다. 처음 만난 평산은 온몸으로 친다. 얼마나 비트는지 따라 꼬이게 됐다.
같이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거기서 이양촌과 신우석, 박실곤 선생을 만났다. 구력이 비슷해서 자주 만난다. 그때부터 게임비 식사를 각자 부담했다. 아주 가볍다. 미적거림 없이 뒤가 깨끗하다. 영광도서 주위엔 식당이 많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서다. 칼국수를 좋아해서 즐겨 먹는데 값싸다. 우봉도 좋아해 자주 찾아간다. 한 달 잡비가 적어 싼 집을 찾아다녔다.
“맹물에 삶아낸 칼국수가 뭐 맛있냐?”
며 아내가 뭐라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안 보여 어디 있나 했더니 연산동이란다. 양촌이 그곳으로 옮겼다. 유명으로 더 싼 곳이다. 오후 내내 처도 성좌보다 저렴하다. 실버를 위하는 곳이다. 갈 곳 없어 헤매는 우릴 봐 주는 고마운 놀이터다. 서면에서 우봉과 만나다가 같이 유명으로 갔다. 석담과 동길, 설광 선생도 불렀다. 우리 당구 가족이 십여 명이다. 이래저래 자꾸 늘어난다. 매일 만나니 형제처럼 지냈다.
구본대 회장이 한 달에 한 번씩 대회를 열었다. 다 모이니 수십 명이다. 점수를 반으로 놓고 마지막 스리쿠션 없이 끝낸다. 토너먼트로 하니 빨리 지나간다. 오후엔 결승전이다. 시상 때 우승과 준우승자에게 상금을 전달한다. 저녁 먹고 헤어지는데 다음 경기가 기다려졌다. 더욱 우리 팀은 자주 만나 유대감이 두텁다. 오전은 텃밭 일하고 오훈 칠락팔락 해방되어 나간다. 매일 신명 나는 일이다.
해운대 경기에 몇 번 나갔다. 장애우와 한편이 돼 조 편성을 했다. 점심 먹고 헤어진다. 탈락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구 회장이 전국대회에 나가라 한다. 석담과 낯선 경기도 이천을 갔다. 노인들로 전국 시도에서 모였다. 잘 치는 사람만 모였을 것이다. 70대는 지고 60댄 금메달을 받았다. 우석은 목에 걸고 사진 찍는다 법석이다. 내려오면서 버스 안이 들썩들썩했다.
“만선의 귀항이다.”
너무 멀다. 두 시간 가까이 차 타고 간다. 친구 찾아 강남 간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데 멀어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당구 친구들이 모두 선생 아닌가. 효당은 대학 3년간 같이 다녔다.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본과로 편입했다. 정년하고 여기서 만났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좀 가까운데 찾다가 당리 지하철역 옆 유림에서도 했다. 명지에서 버스 타면 잠깐이다. 전에 살던 반도보라아파트 바로 아래 당리역 부근이다.
역시 괴정 사는 양촌이 경로로 주선했다. 여기서 박금산과 몇을 더 만났다. 그러다가 건너 오케이로 갔다. 큼직한 게 넓어 좋다. 또 구청암과 박청부, 최진도를 만나 비슷한 점수와 겨뤘다. 점점 타오르는 이글이글 모닥불이다. 칠순 전후 나이로 이리 칠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다. 또래를 여럿 찾아서 오후가 후딱 지나간다. 부를 땐 다 사장이라 일렀다.
“그러지 말고 회장이나 호를 부르자.”
“사장이 싼 집만 찾아다니나.”
이철석과 정용식을 만나 좀 아래 하단역 부근의 하이웰로도 갔다. 갈 곳이 여 저 있다. 요일을 정해 나간다. 저쪽 연산동 유명이 팔려 주인이 바뀌었다. 옆 킹으로 갔다가 건너 더킹으로 모인다. 그러다 지하 둘리에서도 만났다. 솔로몬에 들렀다가 그 아래 알마니로도 찾아들었다. 천지다. 잘 안 되는가. 간다면 다 오라 손짓했다. 시내 곳곳에 우리 놀이터가 생겼다. 다 지하철로 시내 어디든 쉬 가졌다.
장우회 회원 예닐곱이 매주 탁구를 하는데 장소가 강서구청 옆 체육공원이다. 탁구대 4개가 있어서 몇 시간 치고 목욕한 뒤 점심을 구포시장에서 먹고 숙등역 부근 지하 동아당구장으로 간다. 시합을 열기도 했다. 여긴 김신수와 안영호, 윤기범, 김원용, 김문경, 성우호, 송기영 등 여남은 선생이 모인다. 이들이 탁구 치고 당구도 한다. 벌로 치는 탁구여도 복식 땐 잘 쓰인다. 되게 깎으니 받을 때 쩔쩔맸다.
오전은 신수 탁구회장이 인도하고 오훈 내가 안내한다. 잘 되었는데 범어사 아래 남산역 쪽으로 가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좀 가까운 동래로 내려왔지만 그래도 멀다. 장우회 기관인 당구반을 잘 이끌어야겠다 맘먹고 하는데 부진하다. 영호와 원용, 기영 선생 넷이 둘리에서 매주 목요일을 택해 복식으로 쳤다. 정한 요일인데도 어디 모임이 많은가 전활 해야 나온다. 문자를 보내면 답이 있어야 좋다.
수영 요트 일로 할 일이 생긴 원용 선생이 뜸하다. 기영도 부곡 시골집 농사일이 있다며 가끔 빠진다. 마침 박종기 선생이 찾아와 같이 놀았다. 깨끗한 더킹으로 갔다가 시나브로 매주가 격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였다. 그래도 장우회는 주마다 하는 것으로 보고했다. 바쁜 사람들이 한풀 꺾이면 돌아오리라 해서 기다린다. 없애면 다시 만들기도 어렵다. 해마다 신입회원이 들어오는데 찾을 수도 있다.
유명에서 갈라져 나온 팀을 또 만들어야 한다. 월요일 알마니에서 만난다. 금산과 우석, 실곤이 하다가 금산이 빠지면서 박상철 선생이 들어왔다. 사백이므로 비슷해서 복식이 어울린다. 멀어 자주 갈 수 없어서 하나씩 줄여나갔다. 동래에 가던 탁구도 거의 안 가게 된다. 당구가 더 재밌다. 10시에 모이니 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서야 한다. 돈 버는 일도 아닌데 놀아나는 모임을 일찍 갈 수 있나.
가까운 곳 마을에도 나간다. 오전 텃밭 일을 하면 연산동과 동래 가는 일이 수월찮다. 집 근처 명지 매니아 당구장 젊은 사장에게 부탁해 시니어 허락을 받았다. 최진도, 조규범, 구청암, 안태용, 최병도, 임성준과 친다. 사백에서 칠백이다. 삽질로 땀 흘린 뒤 목욕하고 점심 들면서 천천히 나가면 된다. 그러니 저쪽은 허전해진다. 모이라 하지만 쉽게 가지지 않는다. 월요일 솔로몬과 알마니에 가다가 금요일에도 오라 연락이다. 한주에 두 번 갔다.
김재석과 김태호, 김진태 선생이 연산동에서 같이 하길 바란다. 그들과는 육이오 회원으로 청주 교원대학교에서 자격연수교육을 달포나 받았다. 매달 만나고 헤어질 때 당구장에 갔다. 킹에서 만나 복식으로 쳤다. 복잡해서 건너편 더킹으로 옮겼다. 재미에 푹 빠져 매주 꼬박꼬박 나오는데도 나는 멀어 자주 빠졌다. 셋이서 꾸준히 모인다. 셋 다 김씨로 고만고만하다.
내가 만들었는데 미안해서 나가 봐야 할 것 같다. 그사이 하단엘 나갔다. 오케이가 재건축을 위해 허물자 다른 곳으로 갔다. 옆 하이웰이다. 철석이 팔순 주인에게 말해서 이뤄졌다. 할머니도 울산 참배 맛같이 상냥해서 보리차 물과 빵, 과잘 자꾸 갖다 준다. 자고 나면 훤해서 눈만 뜨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 여기서 당구 친구를 많이 만났다.
북적댔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금산과 청부, 진도, 청암, 양촌, 용식, 문청산, 신대봉 여럿이다.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다. 매일 만나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잡비가 모자라 어쩌나 하다가 점심을 줄이기로 했다. 어떨 땐 길가 포장에서 어묵 몇 갤 먹고 때웠다. 같이 할 땐 정원 중국식당에서 가볍게 먹었다. 그러다가 좋은 데가 생겼다. 이리저리 찾아 헤맸는데 바로 앞 김밥집에서 온갖 걸 판다. 김밥 한 줄로 끼니가 된다. 다들 곰탕과 양푼이비빔밥을 시켰다.
“김치찌개 주세요.”
대봉이
“왜 그걸 시키나.”
“당뇨로 가볍게 먹어야 해.”
둘러댄다. 싼 것을 먹어도 좋았다. 며칠씩 걸러 재 보면 적게 먹었을 땐 정상이고 기름진 걸 배불리 먹으면 수치가 높다. 덜 차야 내려간다. 인슐린까지 맞으니 이래 갖곤 살기 어렵다. 이참에 주사 끊고 약으로 버터 보련다. 아침저녁 식전에 약 먹고 자기 전엔 주사 놓으며 사흘에 한 번씩 공복 혈당을 재는 일이 할 짓인가 번거롭고 사는 게 아니다. 허전하게 먹고 살아야 좋다. 당뇨와 시루면서 사는 게 시들하다. 똑 부러진 데 없으면서 사람을 달달 볶는다. 걸핏하면 약을 거르기 일쑤다. 식전이어서 먹었나 안 먹었나 헷갈렸다.
하이웰도 주인이 바뀌었다.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다. 시니어 요금이니 참으라 해도 계속 불평이다. 앞 주인이 너무 잘해줘서이다. 일천 넘게 치는 전두평을 필드에서 만났다. 졸업생 전호영이 사하구 신평 입구에 당구장을 차렸다는 소식을 알렸다. 가 본다면서 차일피일하다가 여러 달이 걸렸다. 일부러 맘먹고 찾아갔다. 꽤 큰 당구장이다. 손님이 없어 썰렁하다. 몸이 허약해 떠돌더니 참 잘 됐다.
옮겨 키스에서 쳤다. 두평도 가끔 와 코치를 했다. 그에게서 당구 기교를 많이 알게 됐다. 오후 늦게까지 쳐도 괜찮다. 여긴 절반 정도가 왔다. 하이웰에 남은 친구도 여럿이다. 함께 살다가 헤어졌다. 잘 만나지 못하니 서운하다. 양촌팀으로 넷이서 복식을 했는데 뜸하다. 이곳저곳 여러 곳을 차로 다니며 구경도 하고 맛난 걸 먹으며 허물없이 지냈다. 괴정팀 명지팀으로 복식을 했다. 비슷하게 승부가 나 다음엔 이기자. 별렀지만 자주 안 만나니 멀어져간다.
키스는 사하역에서 내려 시장 쪽으로 한참 걸어야 한다. 타박타박 걷는 게 힘들다. 더운 날은 더 그렇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골목길로 가지만 음식점이 어찌 이리 많은가 온통 먹자 거리다. 여긴 시장통이어서 그런가 싸다. 서면시장과 부전시장처럼 저렴해서 좋다. 이곳에서 저녁 먹고 간다. 분식 종류와 맛난 국밥 좋은 게 많다.
“키스가 뭔가.”
“앞에서 그리 불러 따랐습니다.”
여긴 여섯이어서 6형제라 부른다. 모두 사백으로 둘은 삼구를 하고 넷은 사구 복식이다. 요즘 누가 사굴 갖고 노느냐 하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은 네 개가 좋다. 삼구는 젊은 사람들이 잘 쳐서 따라가질 못한다. 금산과 대봉, 이영산, 문청산, 김해송이다. 각성바지다. 어찌 같은 성이 없는지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 더 정감이 간다.
“강 선생은 왜 두산이라 하는가.”
“내 사는 아파트가 두산이어서 정했네.”
고향 이름을 잘 넣는다. 부르기 쉽고 기억이 빠르며 두 글자를 많이 사용한다. 거듭되지 않도록 음양이나 양음으로 짓는 게 좋다. 막상 지으려면 고르다 못 짓는다. 이걸로 부르다 보면 맘에 안 든다. 또 저걸 만들어 불러보면 이상해 보인다. 결국엔 어정쩡하니 나처럼 택호를 부르는 게 낫다. 통용하다 보면 내 아호가 된다. 대부분 내가 지어주었다. 사는 곳을 빗댔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잖는가.
집에서도 두산이 뭐냐며 촌스럽다고 바꾸라 한다. 여러 해 불렀다. 이곳저곳에 이름도 남겼으니 이젠 같이 살아야지 버릴 수 없다. 모이면 강 사장, 박 사장하니 모두가 사장이다. 언제부터 그리 부르고 있다. 사장 천지다. 그래서 호를 만들어 부른다. 나이에 따라 연배나 아래는 호만 부르고 위는 님을 붙인다.
“음양이 뭔가.”
“금산과 영산, 청산, 두산이 음성 양성모음으로 되었네.”
그래야 부를 때 선명함이 나타난다. 음음이나 양양이면 모음조화여도 또렷함이 부족해 보인다. 음은 커 보이고 어둡다. 양은 작고 밝은 느낌이다. 음양이어야 조화가 이뤄진다. 허락은 안 받았어도 지어 불러주니 좋다 하는 친구도 있다. 싫다면 다시 지어주면 된다. 사장보단 낫지 않은가. 중도 소도 다 사장인걸.
대봉이 다시
“두산의 두는 동물 중 달리는 말이 아닌가.”
“학이나 거북, 용, 기린이 든 이름처럼 별 뜻이 없어.”
산자가 많은 건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였다. 변함없이 그대로이며 듬직하기 때문이다. 우남이나 일해, 거산이 있다. 대통령의 호다. 거산은 거제도가 고향이고 부산에서 자라 앞뒤 자를 땄다. 음양, 중양, 음양으로 이뤄졌다. 국장이나 선생, 실장, 회장, 교장 등은 벌써 오랜데 부르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정년이 된 지 다 십 년이 훨씬 넘었다.
“내일이면 산수이다.”
“흔해 빠진 사장 소릴 그만 뒀으면.”
주색잡기에 능한 게 아닌가. 살기 바쁜 세상에서 맨날 모여 탁구, 당구 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 말을 아내에게서 자주 듣는다. 텃밭이 백 평이나 돼 매일 오전은 일해 줘야 한다. 해도 끝이 없다. 괭이와 삽, 호미, 낫으로 짓는다. 그러고 오후엔 내 시간으로 나간다. 그렇게 허락받았다. 수틀리면 나간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헛돈을 버린다고 나무란다.
“그게 대순가 집에 있을 수 없나요.”
“실내운동이니 봐 주세요.”
아들과도 수가 비슷해서 당구장엘 간다. 어디서 얌전하게 배워 곧잘 친다. 부자가 당구장에 다니는 게 보기 좋다고 말한다. 명절 때 가족이 모이면 윷놀이하다 실 나간다. 마침 금산 부자를 만나 복식을 했다.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이기고 지고 이런 시간이 있을까. 다음에 또 하자 했지만 쉽게 그런 재미있는 시간은 나질 않았다.
“가족 당구대회에 나가자.”
“부부와 부자, 형제가 나온다.”
“나가기만 하면 우린 우승 후보다.”
몇 해 전 부산시 가족 당구대회가 수영 벡스코에서 열렸다. 그때 구본대 회장 부자가 출전해 이등을 했다. 참 보기 좋았다.
“우리도 나가자. 연락하면 내려오라.”
말해놓고 여러 해가 흘렀다. 등장 선수가 부진했던가 다시 전달이 없다. 대장염을 앓아 수술한 뒤로 힘 부쳐 몇 시간 하면 헉헉했다. 아들이 저리 약해 어쩌나. 허약한 아들이 늘 걱정이다. 측은하고 불쌍하다.
전엔 떠들썩하고 흡연이 심했다. 음식 냄새도 나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실내지만 걷고 구부리고 머리 쓰는 게 많아 나이 든 사람에겐 적당한 운동이 된다. 저녁엔 쓰러져 곤하게 잔다. 그게 운동이라고 되다. 겨울엔 따스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냉난방이 잘 됐다. 노인네 갈 데가 어디 있나. 들앉아 있기보다 바람 쐬고 오는 게 좋다. 너무 나대니 싫다 하는데 막상 집 안에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어디든 나가라 밀어낼 것이다.
“친구도 없나.”
“남정네가 버티고 있으니 숨 막혀라.”
하잖겠나.
가만있으면 생각으로 글 쓰는데 이리저리 다니면 보고 느껴서 도움이 된다. 살아있는 글이다. 이글 저 글을 읽고 기억으로 적으면 같거나 비슷한 구절이 생긴다. 시조를 시작으로 문인의 길에 들어섰다. 수십 년이 흘러 지금은 수필을 쓰고 소설도 짓는다. 두들기다가 막히면 멈추고 생각나면 새벽에 일어나 앉는다. 꽉 막혀도 풀어지고 뚫린다. 갑자기 생각나 술술 미끄러져 내려간다. 한꺼번에 쓰려면 안 된다. 두고두고 적으면 생각이 나 잘 짓게 된다. 막힌 부분이 당구 치다가도 갑자기 떠올라 기억해 둔다.
걷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로 다니다가도 떠오르면 메모해 둔다. 당구에 골몰하면서도 다음 얘길 어디로 끌고 갈까 생각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런 단어도 있었나 얼른 명암 뒤쪽에 적어둔다. 손전화 메모에도 올린다. 또 기록한 것을 되새김질하면서 이걸 고쳐야겠구나. 당굴 하면서 많이 떠올린다.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며 내 딴엔 차곡차곡 저장해 둔다. 걸으며 자연스레 살아가는 얘기들을 만들어나갔다.
고향 친구들은 탁구와 당구를 모른다. 동창회에 나가도 머쓱하다. 취미가 같아야 하는데 그냥 얘기하다 헤어지는 게 고작이다. 탁구나 당굴 칠 줄 알면 며칠 지나면서 고향에 머물렀을 것이다. 바둑 두고 등산, 낚시, 화투도 해 봤다. 다리 아프고 숨 찬다. 살려고 팔딱팔딱하는 생명체를 낚아도 적을 땐 돌려보낸다. 밤샘하니 아침에 눈이 게슴츠레하다. 얻고 잡으며 딴 것도 없으면서 고달프다. 다 좋은 취미지만 내겐 당구가 좋다.
텃밭은 아내가 즐거워해서 땀 흘리며 돕는다. 일하는 게 운동이 된다니 그게 노동이지 무슨 운동이냐 한다. 반나절은 일해주고 나가니 걸음이 가볍다. 비 오거나 추운 날은 매일 나가니 좀 미안하다. 경로당에 친구 만나러 간다기에 어서 가라 떠밀었다. 서로 재밌는 구석이 있어야 하잖나.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생길라. 나만 당구에 미쳐 다닐 수 있나.
당구는 낯선 사람과도 잘 어울린다. 한번 할까요 하면 웃으면서 선뜻 다가선다. 지고 나면 뿌루퉁하다. 나이 비슷해서 다시 만나면 정답다. 연락해서 또 만나다 보면 친구가 된다. 그래 저래 만난 사람들이다. 수십 명이다. 안 만나면 보고픈 친구들이다. 웃음이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하다. 지난날 뭣했는지는 모른다. 묻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짠돌이다. 이길 수 없다. 난 지는데 이골이 났다. 집에서 알면 그런 난장판에 다니냐 할 것이다.
괴질이 돈다며 걱정들이다. 또 무슨 병인가. 사스와 메르스가 휘젓고 간 적이 있다. 그런 병이겠지 했다. 더위가 오면 없어지겠구나.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총리가 현장에서 방역 지휘하는 걸 보니 위중한가 보다. 폐렴으로 호흡기병이다. 기침하다가 중증으로 가는 사람이 생긴다. 독감 앓듯 심한 열감기다. 중국 무한에서 발생했다. 다니면서 옮긴 전염병이다. 순식간에 세계로 번져 야단법석이다.
가랑잎에 불 붇듯이 확 번져 이글거리며 타들어 간다. 몇 번 방역해서 잘할 줄 알았는데 감당 안 되는가 겉잡을 수없이 전염돼 나갔다. 확진자가 매일 늘어 수만 명이다. 많을 땐 하루 천명 가까이다. 벌집 쑤신 듯 대구와 경북은 들썩인다. 우주복을 입은 의료진이 전염을 막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음압병실이 부족해 환자들이 부산으로도 내려온다. 청도 문상갔다 온 사람들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급속도로 이어졌다.
“코로나19라 이름 붙여졌다.”
부산은 동래구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와 매일 몇 명씩 발병했다. 급기야 서구와 사하구, 강서구에도 생겨났다. 바로 앞 고등학교 여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고 동선이 공개됐다. 아파트 편의점에 들렀고 시장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이용하는 3번 버스도 두 번이나 올랐다니 걱정이다. 걸리면 죽는 줄 알았다. 처음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
“당구 치러 못 간다.”
가지 말라는 말도 없었는데 알아서 들앉아 있었다. 내방에서 아내는 저 안방에서 숨도 낮춰 쉬고 쥐죽은 듯 틀어박혔다. 비는 부슬부슬 추적거리며 내린다. 좌우 몰운대와 가덕도가 시커멓게 맹수처럼 달려들 듯이 웅크리고 있다. 음산함이 짓누르고 대한해협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듯하다. 세상이 뒤죽박죽으로 엉켜가는 게 아닌가.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이러다 곧 사라지겠지. 오래 끈 전염병이 없다.
지레 겁부터 먹고 이러는가 했다. 정말 조금씩 수가 줄어들었다. 세계 곳곳에 퍼져 걷잡을 수 없다. 미국과 인도, 브라질, 러시아, 유럽 각국이 발칵 뒤집혔다. 일찍 홍역을 치른 중국과 일본, 우리나란 시들어가는 느낌이다. 하루 수백 명이던 게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럼 그렇지 여름날이 되면 숙지근해진다. 살살 당구 치러 나갔다. 갑갑해서 어떤가 나가봤다. 실내는 가지 말라 했는데 몇 단계 하다가 풀어져 갈 수 있게 됐다.
“거리를 띄우라 마스크를 하라.”
이름과 전화번호, 체온을 기록했다. 손 소독제를 바르고 나서 입실이 허락된다. 거리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쓴다. 입과 코를 다 덮어야 한다. 어쩌다 잊고 그냥 타려니 버스 운전사가 마스크를 지적한다. 얼른 주머니에서 꺼내 썼다. 어떨 땐 주머니에 없어서 낭패스러워하자 앞 사람이 실 하나 줬다. 지하철도 모두 착용하고 교회 예배 전에도 같이 했다. 자리도 떨어져 지그재그로 앉았다. 오래 하니 머리가 띵하다.
버스 기사와 지하철 승무원이
“코를 덮으세요.”
“턱 마스크를 위로 올리세요.”
아는 사람과 밑으로 내리고 얘기하는데 역무원이
“마스크 쓰고 말하세요.”
무안하게 했다.
자고 나면 코로나 뉴스요 다니면 온 사방이 방역으로 등살이다. 주춤하더니 또 일이 벌어졌다. 광복절 광화문 광장에서 대집회가 있었다. 교회와 보수단체들의 시국 모임이다. 드넓은 광장이 가득 메워졌다. 확성기가 소리소리 치고 구호를 따르는 군중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총선에 부정이 있다.”
“대통령은 어찌하라.”
현수막이 얼른얼른 보인다. 이 마당에 저리 다닥다닥 붙어서 시위를 하니 이리 밀리고 저리 끌리면서 종일 비를 맞으며 북적였다. 적을 땐 한 자릿수까지 내려갔었는데 그만 오르고 말았다. 방역 잘한다고 세계가 치켜세웠던 한국은 다시 수백 명 대로 올라섰다. 그 집회 참가자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전국으로 번졌단다.
“어찌 교회만 자꾸 생기나.”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한 확진자들이다. 부산도 예닐곱 명씩 나왔다. 특히 사하구 감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상에서 생겼다. 배 수리공과 선원 접촉한 사람들이 걸렸다. 2단계 발령이다. 모임은 어렵다. 서울은 2.5단계로 올리고 당구장도 꼭 찍어 출입이 금지됐다. 모든 종교 행사는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마스크 안 하면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강화 방역수칙이다. 답답해서 코는 내놓고 다니니 아내가
“마스크를 코까지 덮으세요.”
“손잡이나 버튼은 만지지 말고 손전화로 누르세요.”
“소독제를 꼭 바르세요.”
나가는 당구장이 사하이다. 감천항이 바로 고개 넘어서다. 나갈 수 있나 그 좋아하던 당구는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아내가 절대로 나가지 말라 말린다. 한 사람 걸리면 가족이 다 걸린다. 더욱 우린 나이 많고 기관지가 약해 살 수 있겠나. 조심하면서 살아야지 덜렁덜렁 나돌아다니지 말란다. 아들도 거든다. 나이 들면 가족 말을 듣고 기절 곱게 살라니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 낸데 하는 건 스르르 어디 가고 없다. 다 숨죽었다. 절대란 말을 쓴다. 꼼짝없이 갇힌 몸이다. 멀뚱멀뚱 바깥만 내다봤다.
뭘 해야 하나. 밭의 일도 이제 못 한다. 7, 8년 짓던 텃밭도 구청에서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공사로 마무리 단계다. 정성 들여 짓던 밭은 밀어서 어디쯤인지 구별도 안 되게 자갈을 깔아 바꿔놨다. 사람들이 심어놓은 과실나무도 모두 캐내어 다른 곳으로 가져갔다. 남은 건 우리 딸기나무 몇 그루다. 고맙게 그건 놔두고 키우란다. 가끔 가 풀을 베 준다. 산딸기가 키 넘겨 훌쩍 컸다. 고향 영주에서 캐온 머루는 구석에 옮겼더니 시들시들 말라 죽었다.
텃밭 일을 하다 손 놓으니 근질거려 견딜 수 없는가. 아내는 사흘이 멀다고 딸기 보러 가잔다. 식물도 너무 보면 말라 죽는다. 그래선가 몇 그루 죽었다. 사리 때 바닷물이 올라와 넘쳐서 짠물에 죽었는가 보다. 파랗게 잘 살더니 죽을 땐 서둘러 발갛게 마른다. 몇 그루 옮겨 심은 것도 다 죽었다. 때늦게 심었더니 그리된 것 같다. 봄에 심은 건 거의 살았다. 여름에 옮긴 건 살기 싫단다.
그나저나 키스에선 맨날 오라 문자가 온다. 계속 나가는가 보다. 거긴 집에서 놔 주는가. 나만 붙들려 지내는가. 해송도 못 나오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은 신세이다. 발광이 난다. 하모니카를 불다가 단소를 늘어지게 해도 당구만 못 하다. 아내와 바닷가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마늘 껍질을 까 다듬는다. 졸졸 붙어 다닌다. 어디 가나 감시가 심하다.
수십 년 즐기던 놀이를 하루아침에 두려니 쉽지 않다. 자꾸 생각이 난다. 영국 왕실에서 하다가 일본 황실로 전해지고 다시 우리나라에 당구대를 기증했다. 왕과 귀족, 측근이 드나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공은 상아로 만들었다니 귀한 것이다. 양귀문과 이상천, 김경률 등 당구 귀재들이 있었다. 최근엔 밀양 이기범이 4구를 잘 친다. 갖고 논다. 한 번에 500점을 올리니 놀랍다. 당구사관학교도 있다. 세리를 쳐서 한 번에 끝낸다. 찍어 치기와 끌기로 잘 모은다. 당구공은 무얼로 만들었는지 박살 나라 내동댕이쳐도 깨지지 않는다.
빌리어드 방송도 있어서 선수들의 모습을 한눈에 본다. 대개 3구를 친다. 4구는 우리만 하는 것 같다. 우리 6형제가 다시 만날 날이 생길까. 그런 날이 올까. 코로나가 오래 갈 거란 말이 있다. 다시 번지기 쉬운 서늘한 계절이 찾아온다. 보고 싶다. 치고는 몸을 비틀어 맞기 바라는 금산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단단 축의 길게 치기는 기막히게 잘한다. 원 쿠션이 아주 적확하다. 먼 것을 더 잘 쳤다.
잘 맞을 땐 눈이 있어 찾아가는 것 같다. 안 맞을 때는 가까이 다 가서 키스가 나 비껴간다. 안 맞는다고 구시렁대면 더 벗어난다. 맞아달라 조바심으로 치면 어깃장을 놓는다. 속을 버글버글 태우고 썩이며
“너 그래라 나는 내 멋대로 가련다.”
도와주질 않는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당구 신이 있어 맞게 하고 갈라지게 하는 것 같다. 묘하게 맞는가 하면 비뚤게 빠져나가길 잘했다.
오전 집일하고 오훈 나가는 출근이 허물어졌다. 글도 가끔 써야지 밤낮 쓰면 오그랑망태다. 했던 말 또 하게 된다. 한참 떨어졌다가 만나야 반갑고 귀하게 여긴다. 옆에 질펀히 붙어있으면 성가시고 켕긴다며 싫어한다. 우두커니 나갈 수 없어 주저앉았다. 빈둥거리는 밉상이다. 무얼 해야 하는가. 태풍이 잇달아 올라온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며칠 전엔 서해 장축으로 간다더니 대한해협으로 들어와 강원도로 틀었다. 오늘은 동해로 올라간다. 돌돌 흰 수구 공이 굴러가듯 장축을 따라 역회전한다.
|
첫댓글 당구 이야기 군대 생활부터 시작해서
오늘 날 이야기까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무도 흉내 따라할 수없는 글 존경합니다
태풍이 막 불어옵니다.
대추 떨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박회장님 카페 잘 건사해 고맙습니다.
강선생님의 가히 장편이라 할 수 있는 당구인생이군요. 툭툭 내뱉는 말처럼 미사여구 없이 진솔하게 쓴 글이라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70대 중반 나이에도 당구를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인 태풍의 눈조차 돌돌 굴러가는 당구공으로 보이는 당신은 ... 참으로 당신(당구의 신)입니다.
반갑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가는 얘긴데 지루하지 않으셨는지요.
역병 잘 지나시고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