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우연히 검도라는 운동을 보았다.
나한테는 너무 생소하고 전혀 접할수 없을것만 같은 운동 검도.
난 20살 때 일을 하다 왼손 손목까지 잘리는 사고를 당한 장애인이다.
나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산다.
왜? 왼손만 없지 모든걸 같이 하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게 싫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돼는 것이다.
남들이 못하면 노력을 않한것이고 내가 못하면 장애인이기 때문이란 소리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처음 검도와 나와의 인연이 만난 날이다.
처음 검도장 이란 곳을 방문하였다.
송우리검도교실 (그당시에는 선무관 이였다.다른곳에도 선무관이란 도장이 있어서 1999년도에 송우리검도교실 로 이름을 바꿔다.) 나를 검도중독자로 만든 곳이다.
지금은 내 인생에 검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검도 인생에 많은 스승님을 만났지만, 두명의 은사님을 이곳에서 만났다.
첫 번째 장문영 관장님 (지금 남양주시청 검도서수로 계신다. 그래도 나한테는 관장님 이시다.) 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상단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분이다.
언제나 첫 만남은 소중하고 많이 생각나는가 보다.
도장에 첫발을 딛고 인사를 하고 검도를 배우고 싶다고 문의를 하였다. (그때까지 검도는 두손으로만 알아다. 왼손의 비중이 큰 운동인줄은 몰라서다.)
내가 왼손이 다쳐는데 검도라는 운동을 배우고 싶은데 할수 있습니까? 하고 말이다.
장문영 관장님은 너무도 싶게 할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난 오른손으로 후리기라는 것을 배워다.
2~3일 후리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손바닥의 피부는 다 벗겨지구 진물이 물흐르듯 흐르며 너무 쓰라리고 아파 포기할까두 생각을 했었다.(이때는 하루에 2~3시간씩 운동을 했었다.)
후리기, 3동작, 2동작,1동작, 빠른동작, 타격대치기 이렇게 시간은 지나 1달이 조금 넘자 호구를 쓰게 돼엇다.
호구를 처음 쓴 느낌이 시야는 좁아지구 숨이 너무 가빠지는게 또 무게가 만만치가 않은 것이 아닌가................
남들은 처음에 중단세를 배우는데 난 상단세를 배워다.
지금도 중단세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남들 하는거 보고 자세만 잡을 정도다.
호구 입구 머리치기를 하는데 타격대는 타겨부위가 평평한데 호면은 둥글둥글하여 머리를 칠때 흘러 많이 고생했었다.
스승이 제가한테 맞자주는 운동이 또 있을까?
장문영관장님께선 나중에 시합을 하게돼면 상단은 찌름을 많이 당하니까 그거에 맞는 훈련을 많이 해주셔다.
난 관장님의 머리를치고 관장님은 찌름을하시고..............
그 훈련이 지금 시합에 나가서도 많은 도움이 돼고 있다.
그때는 검도의 매력을 잘 모르고 중독도 덜돼 운동을 많이 빼먹었어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도 돼고 장문영 관장님께 너무 죄송하다.
그러다 장문영 관장님께선 남양주시청 선수로 들어가시구 난 일 때문에 운동을 쉬게 돼었다.
1999년 6월 지금의 송우리검도교실 이 경훈 관장님을 만났다.
그 당시 검도를 고만할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운동을 안할 때 관장님이 바뀌신 거였다.
주말이었울까 친구들과 밤늦은 시간까지 놀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같이 운동하는 형한테 전화가 왔다.
급히 어디로 오라는 것이다.
난 너무 늦어 그냥 집에 간다구 하는데 빨리 오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만날장소로 이동을 했다.
거기에 그형과 전에 운동하시는분 그리고 낯선 한분이 계신거였다.
나이는 많이 들어보이시지 않아서 관장님 이실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같이 운동하시는 형이 소개를 시켜주는데 새로오신 관장님 이시란다.
그형이 내 이야기를 했는데 관장님이 한번 가르치고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해서 전화로 급히 오라 했고 그게 인연이 돼어 검도의 매력뿐만 아니라 중독까지 돼버렸다.
이경훈 관장님을 만나것이 나의 검도 인생에 많은 변화를 준 계기가 됐다.
전에는 내가 할수 없는 운동을 한다는 그 자체로 자기 만족에 살고 있는 나를 한번더 일께워 주신 분이다.
시합을 나간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봐었다.
급,단은 말하것두 없이 나의 실력에 딴다는 것을 생각두 않해봐었다.
이경훈 관장님이 오시고 2달후 8월 남양주시장기 시합이 있다는 것이다.
난 시합애기 듯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 였다구 생각 했기 때문이다.
운동시간이 끝나구 관장님이 제 옆에 오시던이 요번시합에 출전하란 것이 아닌가.
믿어지기 않는 소리였다.
우리 도장에 성인부원도 많은데 나보구 출전하라니 그것두 개인전 단체전을.......
난 할수 없다구 말씀드렸다.
이경훈 관장님은 괜찬다구 할수 있다구 말씀하시면서 한번 출전해보란 것이다.
하루를 생각했다.
개인전은 나혼자 하는 시합이라 부담이 적은데 단체전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관장님은 날 단체전 중견에 넣으신거다.
다른 자리도 중요하지만 중견이라는 자리는 그팀에 허리인데 내가 과연 잘할수 있을까?
난 팀원들에게 짐이 돼지 않을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
그렇게 시합날이 다가 왔다.
나에게는 첫 시합경험의 날이다.
개인전 먼저 시합을 하게 돼었다.
개인전 첫 시합.
체육관 천장이 노랗게 보이고 상대선수 몸집은 왜이리 커보이던지..............
난 아무생각없이 코트에 들어선 순간 저 멀리 관장님 보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긴장해서 들리지가 않아다.
첫 시합을 이겨다. 두 번째 시합도 세 번째 시합도 관장님께서 가르쳐주신데로..........
점점 자신감이 생겨다.
8강 첫 시합에서 8강까지 올라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실력이 좋아서 이긴게 아니라 상단이란 많이 시합을 해보지 않아서 내가 유리했고 운도 좋아던 것 같다.
8강 시합 상대선수는 과록이 보이고 상단이랑 많은 시합을 해본 것 같다.
여지 없이 2 대 0 으로 나의 완패였다.
단체전 첫 시합 개인전서 8강에서 나에게 패배를 맞보게 한사람이랑 맞붙게 돼었다.
첫 포인트는 선취했다. 상대는 장외 반칙까지 있었다.
이길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역전패.
시합이 끝나고 서로 상견례 그 사람과 악수를 하는데 다음에 한번 다시 좋은 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때 당시 그말이 너무 분햇다.
가슴속에 승부욕이 넘 강했던것인가?
아니면 장애인 이라서..........................
시합이 다 끝나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다.
왠지 모를 분한 마음만이 자리 잡아다.
다음번에는 꼭 이기리라 생각하면서...........
그 분 성함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시합에 계속 출전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분이다.
그후부터 관장님과 나와의 특훈이 시작 돼었다.
중단에서의 기술을 상단에 맞게 변형시키시는게 관장님의 몫이구 나는 그 기술들을 내걸루 만드거 였다.
내가 잘치는 반대쪽허리 또한 관장님의 생각이었다.
반대쪽 허리를 협회에 상의해보시고 저 때문에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다.
또한 시합에서 시작할 때 중단세로 시작하는데 난 왼손이 장애인 관계로 다른 사람과 반대로 잡는다.
모르는 상대쪽 관계자가 이의 제기를 많이하는데 그때마다 관장님이 해명 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신다.
그런 관장님께 보답하는 길은 고맙습니다 란 말보다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뿐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2달후 10월 나의 2번째 시합이다.
개인전 긴장감은 첫 시합때보다 덜했지만 마음은 첫시합의 연장이였다.
첫판은 부전을 타지만 두 번째판부터 너무 강적들었다
8강 우리 도장 후배를 만난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나를 너무 잘알기에 다른 시합보다 힘들었다.
연장전 비김 다시 연장..............
나의 손목한판 승이었다.
4강도 연장..................
결승 연장에서 너무 힘들고 아무 생각두 않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장애인이 결승까지 올라온것만두 휼룡한거라 메아리 친다.
져두 나한테 머라 그럴사람 없을거야 자꾸 내 자신이 약해지는 것이다.
너무 힘들다.
마직막 젖먹던 힘까지 짜내 한칼을 던저다.
상대의 손목에 적중했다.
심판들의 기가 전부 올라갔다.
손~~~~~~~~~~~목.
나의 승리 였다.
눈물이 날것 같고 다리 힘이 풀렸다.
오른팔의 떨림은 멈추질 않고 물을 먹고 싶은데 오른팔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장님은 아무말 없이 나의 오른팔을 만저주시면서 수고했다는 그말 목이 메어 아무 말두 할수 없어다.
이시합이 끝나고 나는 검도 인생에 한분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스승님 이경훈 관장님의 스승님인 김 석순 (8 단) 선생님 이다.
관장님이 말씀을 하셔서 유심히 지켜보셔다는 것이다.
김석순 선생님은 항상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시합에서 있어선 공평한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못거두거 몸이이래서 여기까지인가보다 생각들때 따끔하게 노력을 안해서 그런거라고 혼내주신다.
그런 말씀이 나의 검도인생에 힘들다고 생각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그후로 많은 경기에 나가 입상을 많이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장애를 극복하면서 까지 검도의 열정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몸이 아파서 검도를 못하시는 분이 있으면..이글을 보고 힘을 얻길 바랍니다..
정말 인간 승리이군요. 감동적입니다.
아..
김종수씨 참..좋은사람이죠......^^......
시합때는 만나기 싫은 상대죠..ㅋㅋㅋ 코세키님..? ㅋㅋ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