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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누구의 편인가?를 조용히 물어보곤 합니다.
가차없는 시간의 공격 앞에 푸른 자기를 갉아먹히는 생활이라면 나이만큼 시간은 무서운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잘 나누어 미래를 키워가는 생활이라면 시간은 곧 희망입니다.
긴 호흡으로,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내 '희망의 뿌리 여섯'을 날마다 돌아봅니다.
뿌리 하나 : 건강한 몸 생활
몸이 가버리면 투혼도 가버립니다.
몸이 굳고 무거워지면 생각도 뜻도 따라서 시들어갑니다.
건강은 그냥 좋은 것이거나 나중 일이 아니라 밥을 먹듯 우선해야 할 필수 생활입니다.
아니 미래를 사는 사람의 첫 번째 일입니다.
맛있게 먹는 것보다 싸는 것이 건강의 첩경입니다.
과식과 기름진 육식, 술과 독한 기호품들은 만병의 원인입니다.
무얼 먹어야 몸에 좋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덜 먹고 잘 쌀까?를 생각하십시오.
창자가 가난해야 몸이 가뿐하고 얼굴이 맑아집니다.
몸이 푸르러야 숨이 깊어지고 고도의 긴장과 정신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을 쥐어짜는 창조성은 반짝 한때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운동입니다.
매일 아침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운동을 생활화해 몸을 탄력 있게 유연하고 푸르게 살려가야 합니다.
운동은 취미나 선택이 아닙니다.
차라리 밥을 거를지라도 운동을 걸러서는 안 됩니다.
정신과 의지가 몸을 질질 끌고 다니게 하지 마십시오.
무거운 몸 때문에 빛나는 정신과 고귀한 뜻이 주저앉게 하지 마십시오.
투혼이 몸을 밀어가고 몸 생활이 투혼을 살려가게 하십시오.
몸을 잃은 이상은 다 무너집니다.
몸통하지 않는 진리는 다 공허합니다.
몸 생활의 진보가 없는 진보는 참이 아닙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몸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몸 생활을 보면 그의 잠재력과 미래가 보입니다.
뿌리 둘 : 학습하고 메모하는 생활
본격적인 지구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공부하지 않으면 혼돈 속에서 방향을 잃고 휘둘리거나 좁고 닫힌 과거 속에서 영영 퇴보하고 맙니다.
지금과 같은 정보 홍수 속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쇄신되는 기초 지식과 기본 원리는 말할 것도 없고 폭넓고 다양하게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훑어 가치 있는 정보를 선택하는 능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켜 시대변화의 대맥을 짚어가며 문제를 찾아내는 것, 나아가 창조적 대안을 이끌어내는 집중 능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넓어지면 얇아지고 얇아지면 찢어지는 게 이치이지만 넓어진 만큼 깊어지고 커진 만큼 멀리 보는 눈이어야 합니다.
지구 시대의 빠른 변화는 '열린 깊이'만이 그 머리채를 쥐고 바른 방향을 잡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틈나는 대로 메모하십시오.
짧은 메모와 단상들을 그때 그때 해당 주제별로 분류 정리하여 문제의식과 견해들을 가다듬어가십시오.
빠른 시대변화와 감당할 수 없는 정보 홍수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거나 자기를 닫아걸어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메모하고 정리하는 게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틈나는 대로 자기 생각과 느낌과 주장들을 메모하고 정리할 때 그 축적된 성과와 닦인 역량들이 자기 삶을 바로 세우고 시대정신을 찾아나가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큰 것만 생각한 채 작은 생각들을 메모하고 정리하는 노력을 마냥 유보할 때 일상의 무서운 속성들이 우리의 사유 능력과 이야기하는 능력을 퇴화시켜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날이 배우고 익히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속에서 눈 밝아지고 속이 차오르는 평생공부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학습하고 쓰고 정리할 때 현실에서 차츰 지혜의 힘이 생기고 삶은 진보하기 시작합니다.
뿌리 셋 : 감성을 새롭게 촉촉하게
새로운 미래는 늘 가벼운 몸짓으로 옵니다.
그것들은 얼핏 경박하고 파괴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항상 새로운 것은 물처럼 바람처럼 스며와 어느 순간 당당한 현실로 피어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동하는 삶과 사람과 현실은 워낙 크고 섬세하고 복잡미묘하고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서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논리와 이성과 언어의 그물망으로는 채 담아낼 수도 그려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오직 촉촉하고 민감한 '열린 감성'으로만, '몸의 떨림'으로만 감지될 수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미래는 신세대의 가벼운 몸짓으로 걸어오고, 그것은 늘 인간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나이 들수록 퇴화하는 감성을 예민하게 닦으십시오.
신세대 노래를 배우십시오.
새로운 영상 언어와 몸짓 언어와 패션 감각을 받아들이십시오.
신세대의 솔직한 본능 표출과 자연스런 성적 표현과 자유분방한 활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 가벼움과 위태로움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진보의 감성을 소중히 감싸고 젖 물려주십시오.
감성이 무디어지면 오직 논리와 이성과 언어로만 현실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자기를 고집하게 되어 결국 미래를 억압하고 자신을 보수화시키고 맙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심각한 세대 단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시간 차이는 3~5년에 지나지 않지만 감성 연령은 무려 30년의 차이가 나는 '감성의 대단절' '문화의 블랙 홀'이 존재합니다.
돌아보면 유교 봉건문화와 일제 식민통치, 분단, 군사독재 주도의 단축 근대화, 1940년대의 전시 스탈린주의인 사회주의 이론, 다시 이것과 봉건성이 결합된 주체사상, 미국과 일본의 자본주의 저급 상업문화, 이것들이 서로 손잡고 우리를 억압하고 뒤틀고 눈 멀게 해오다가 냉전 해소 이후 92년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한꺼번에 세계 시각의 문화 충격이 밀어닥친 것입니다.
그야말로 문화의 빅뱅입니다.
이 거대한 대단절을 이어내기 위해 우리가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지만 감성과 의식과 생활 문화는 보수와 다름없는 우리들, 아니 거기다가 도덕적 근엄성가 배타적 민족주의, 이분적 선악주의, 지사적 명분주의까지 결합되어 나이는 젊고 정치의식은 진보인데 속은 보수 봉건성인 우리들...
그 이중성에 끼어서 자신들의 생기와 진보성과 활력이 날로 소진되고, 90년대 시대와의 불화로 홧병 들고 냉소와 체념에 사로잡혀가는 우리들..
우리가 먼저 새로운 감성을 받아들이고 대안 생활과 문화를 닦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 의식과 사적 영역 곳곳에 도사린 보수 봉건적 이중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회 진보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문화혁명>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진정한 진보문화는 생산적 민중문화와 민족 전통문화를 뿌리 삼아 그것을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기품 있고 매력적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젊고 생기차고 실용적으로, 솔직하고 섹시한 멋을 내용으로 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감성이 무디어지면서 문화 생활로, 도덕 윤리로 파고들어 진보의 활력과 생기를 다 갉아먹어 버립니다.
그런 보수 봉건적 감성과 생활 문화 위에서 주장하는 정치 진보가 대안 삶의 체제로서 살아숨쉬는 내용과 매력과 설득력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신세대 감성을 배우고 받아들여 바로 그 문을 통해 신세대와 대화하고 손잡고 21세기 미래를 가꾸어나가야 합니다.
뿌리 넷 : 새로운 인연
새로운 만남을 가지십시오.
가족과 친지, 밥벌이 직장 동료, 학연, 지연의 좁고 닫힌 끼리끼리 만남에 머물지 말고 인연망을 넓혀가십시오.
오래된 편안함과 친숙한 관계는 소중하지만, 점점 동질화되고 이익집단화하고 일상화되고 맙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지구 시대에는 개인이 직접 온 인류와 이어지고 소통해야 온전한 사회성이 실현됩니다.
인간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고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오고 인연 따라 사라지고 인연 따라 이루어집니다.
생명체는 인브리딩 시스템(Inbreeding System, 동종교배)이 반복될수록 열등해지고 아웃브리딩 시스템(Outbreeding System, 이종교배)에서만 강인한 우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좁아지고 닫히고 동질화되고 사회성과 세계성이 약해질 때 그 삶은 인브리딩 시스템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불꽃이 일어나고 시너지 효과(상승 효과)가 일어나는 낯설고 새로운 만남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삶의 다차원적인 영역을 눈뜨게 하는 새로운 만남은 그가 살아온 일생을, 그가 담아온 세상을, 그가 닦아온 전문성을, 그가 참구해온 삶의 비의(秘意)를 한꺼번에 나누게 합니다.
서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그런 만남입니다.
그것은 경이로움이고 은총이며 삶의 신비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받을 수 있게 늘 신부처럼 등불을 켜고 계십시오.
새로운 인연으로 자기를 더 크게 더 깊게 성장시키기 위해 삶과 미래 진보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폭을 넓혀가십시오.
새로운 만남의 감동과 자기 변화가 없는 삶, 좋은 스트레스가 없는 삶, 자기 성장이 사라진 삶은 이미 진보를 멈추어버린 삶입니다.
뿌리 다섯 : 영성의 진보
우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낮과 밤이 한 쌍을 이루듯 삶은 죽음을 등에 업고 달리고 있습니다.
삶이 지치고 늙어가면 죽음이 삶을 업고 달려갑니다.
한겨울 속에 입춘이 들어 있듯이 죽음은 삶이 다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삶 속에 들어앉아 숨쉬며 자라고 있는 생명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체입니다.
내가 바쁘고 성장한 만큼 그것도 빠르게 성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지켜보고 죽음을 완성할 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내 삶 속의 죽음을 마주볼수록 모든 것은 덧없어지고 그만큼 유한한 삶은 소중해집니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진보입니다.
아무리 나무가 크게 성장하고 꽃이 화려해도 잘 익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쓰러지면 그 한 생이 허망하듯 우리 역시 영적 진보를 이루지 못하면 살아온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합니다.
언제든 죽음이 오면 "고맙습니다 저 잘 놀다 갑니다" 웃으며 떠날 수 있게, 영혼이 아주 잘 익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강하고 돈 많고 지식 있는 사람도 삶과 죽음의 진상을 확연히 깨쳐 영적 진보를 이룬 사람 앞에서는 참으로 작고 덧없는 자기 진상을 비춰보게 됩니다.
영성이 깊어가는 사람만이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의연히 주체를 이루어 흔들림 없이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장군은 전쟁의 승리까지를 목숨 바쳐 생각하고 정치가는 전쟁 이후 선거까지를 목숨 바쳐 생각하지만 영성가는 자기가 죽은 이후까지를 목숨 바쳐 생각합니다.
삶 너머까지를 내다보는 크나큰 허무를 품은 사람만이 늘 죽음을 예비하고 자기 삶의 안쪽에서도 싸워가며 자기를 더욱 가치 있게 바치고 나누고 보살펴나갑니다.
꼭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핵심만을 기쁘게 살아나가기에 자기를 위함이 곧 모두를 위함이 됩니다.
영성이 진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크고 사회적으로 성장해도 그것은 속이 텅 빈 거품이고 덧없는 욕심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 안의 죽음과 인사하며 소중한 삶을 끔찍스러이 여기십시오.
참선이건, 기도이건, 숨 공부건, 종교행사건, 또는 일기를 쓰면서, 서예를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무엇이든 자신을 성찰하고 조용히 지켜보는 시간을 생활화하십시오.
뿌리 여섯 : 나눔 그리고 참여와 연대
생명은 참 신비한 것이어서 자신을 나누어 쓸수록 자기 존재가 커집니다.
자기를 잘 갈고 닦고 가꾸어 나눌수록 자기는 더 생기차고 더 실속있고 커지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서만 자기 이웃과 공동체와 이어지며 그 경영 주체로 참여하게 됩니다.
자기를 나누어 참여하는 데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능적인 것으로 자기 짝과 후손과 가족에게 자기 생명을 나눔으로 자기를 번성시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회적인 것으로 노동과 생산을 통해서, 세금과 국방과 선거 교육 등의 제도화한 의무 이행을 통해서 공동체 속의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발적 나눔과 참여의 형태를 가진 패거리짓기로, 명문대학, 특정지역의 지연, 가진 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와 함께 나누지 않는 나눔과 참여는 실상 숨은 구별짓기이며 공동체의 미래와 진보를 가로막는 해악입니다.
넷째는 자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나눔과 참여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와 함께 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러한 나눔과 참여야말로 인간성의 성숙과 인류의 진보를 가져옵니다.
나누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어서 쓰지 않으면 퇴화하고 맙니다
초라한 애호박부침 하나 쑥버무리 한 그릇을 울타리 너머로 나누며 살았듯이 아주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늘 나누십시오.
가난하고 힘이 없어 나눌 게 없다고, 내가 성공하고 돈을 번 다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면 실천하겠다고 미루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여유가 아니라 자기를 나누어 쓰는 능력이 가난한 것입니다.
가난을 그대로 나누십시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지금 바로 서로 나누고 의지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희망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서 수다라도 떠십시오.
만나서 얘기하고 함께 밥 먹고 머리를 맞대다보면 좋은 생각과 좋은 일거리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나눔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여유 없는 지금 그대로 서로 만나고 가난을 나누고 모이십시오.
우리 공동체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운동 단체들에게, 좋은 일을 위해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당신의 월급봉투를 나누고 쪼개 회비를 내고 관심과 시간을 나누어 참여하는 구체적 실천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며 자기 삶의 핵심을 성장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좋은 날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큰 강물은 작은 실개천이 모여들어 이루어집니다.
큰 뜻만 품고서 바탕 뿌리를 다져가지 않으면 자기 몸을 망치고 과거나 팔게 됩니다.
근거 없는 희망만을 말하는 것은 냉소적 체념만큼이나 나쁩니다.
하루하루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희망의 뿌리를 착실하게 키워가는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입니다.
다시 한 번 조용히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를 물어봅니다.
내 '희망의 뿌리 여섯'을 날마다 돌아보며 21세기를 바라봅니다.
아. 시간이 곧 희망입니다.
박노해의 『희망의 뿌리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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