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뚝솟은 봉수산 푸른 기슭에-금마초등학교 제52회
 
 
 
카페 게시글
카페 지식인 스크랩 칭기즈칸 : (13) 내 이름은 칸
미루나무 추천 0 조회 177 12.04.28 08: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테무진 to the 칸

 

(13) 내 이름은 칸

 

1

 

테무진은 승전 후 복귀행군중인 자신의 군사들에게 '릴레이'전쟁을 선언했다.

 

"또 한 번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 주르킨 놈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라. 술 따르던 시키우르를 폭행하고, 도둑질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벨구테이의 몸에 칼부림을 했다. 더 큰 문제는 전쟁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엿새나 기다렸지만 놈들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어야 했다. 집결을 거부한 것은 배신행위다. 그것도 모자라 주르킨 놈들은 아예 우리를 약탈하고 말았다... '적에게 기대어 적이 되었다.' 가축을 빼앗고 인명을 살상했을 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들을 백주 대낮에 발가벗겨 모욕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가?"

 

이 말을 듣고도 전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테무진 부대는 복귀중에 말머리를 돌려 주르킨족의 쿠리엔이 있는 야영지를 향했다. 초원에서 전쟁은 곧 속도전이다. 응징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준비할 틈을 줄 이유가 없다.

 

 

 

 

당시 주르킨족은 케를렌 강의 삼각지에 야영하고 있었다. 귀족가문답게 풍요로운 목초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게다. 삼각지에 테무진의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사차 베키와 타이초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전쟁의 목표는 어차피 약탈이다. 우리 수뇌부는 재빨리 도망가서 반격 기회를 노리자! 여차하면 자무카한테 의탁할 수도 있고...'

 

그러나 테무진의 목표는 복수와 약탈이 아니라 '정리'였다. 그는 재빨리 추격대를 보내 사차 베키와 타이초를 사로잡았다.

 

예상치 못한 싸움에 맞닥뜨린 주르킨족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아마 주르킨족은 굴욕을 직심스레 참아내는 테무진을 만만히 보고 있었을 터. 자신들이 추대한 평민출신 칸에게 정벌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테무진은 왜 아직까지 주르킨을 봐주고 있었던 걸까? 아마도 주르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했었던 것 같다. 주르킨과 싸우면 분열한다. 분열은 자무카와 벌이던 '주변세력 흡수통합' 경쟁에 역행한다. 주르킨을 복속시켜도 문제다. 노예집단이 생겨버리면 탈계급정책을 추진하던 테무진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테무진은 쿠리엔을 해체해 십진법 체계로 군사를 재조직하는 모습을 본 후 드디어 주르킨을 쳐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테무진의 행동을 따라가보자. 그는 사차 베키와 타이추를 바로 죽이지 않았다. 그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사차 베키, 그리고 타이추. 당신들이 나를 칸으로 추대했을 때 뭐라고 했던가? '그대를 위해 앞장서 싸우며, 약탈한 것들, 사냥한 것들을 제일 먼저 나에게 바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사람들이 싸움에 앞장서기는커녕 집합에 응하지 않다니... 당신들은 스스로 한 약속을 어겼다. 이제 나는 당신들을 처형하려 한다. 항변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

사차와 타이추는 할 말이 없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이럴땐 차라리 그 편이 덜 구질구질하다. 두 사람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맹한 귀족답게 모욕스런 삶 대신 죽음을 요구했다. 사차와 타이초는

 

"네 말이 맞다. 어서 베라!"

 

며 목을 내밀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던 테무진은 그들을 즉결처형했다. 테무진은 귀족들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을 거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사차와 타이초를 처형한 방식은 '참수'였다. 참수하면 목이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시신이 훼손되는데다가,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온다. 영혼이 피에 있다고 믿는 몽골인들에겐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야 영혼이 온전하게 보전되고, 후손들이 챙겨주는 제삿밥을 먹을 수 있고 남은 가족들을 돌봐주는 수호령이 될 수 있으니까.

 

귀족들은 사형선고를 받아도 '피를 흘리지 않게' 처형당하곤 했다. 담요에 둘둘 만 몸 위로 말떼가 지나가게 해서 압사시키거나(남자들이 밟아서 죽이기도 했다.), 척추를 부러뜨린 후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었다. 훨씬 고통스러운 방법이었지만, 오히려 귀족에 대한 예우였다.

 

테무진은 두 사람뿐 아니라 소수의 주르킨 지배층을 쓸어버렸다. 시키우르를 때린 귀부인들의 운명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 끝이 별로 좋지 못했을 것이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주르킨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보호자인 귀족이 없어졌으니 이제 평민층 이하로 떨어질(필시 테무진 무리의 노예 씨족이 될) 그들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테무진이 지켜준다.

 

 

 

 

2

 

"테무진 칸... 우릴 어떻게 할 거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신들은 이제부터 나한테 충성하면 되는 거요.

 

"그게 끝이오?"

 

"그렇소."

 

"정말루?"

 

"아, 그렇다니까!"

 

"헉 갑자기 눙무리... 테무진 만세!"

 

테무진은 주르킨 사람들을 부하로 포섭했다. '주르킨 씨족'으로 구분한 게 아니라 각 전사와 가정을 부하들에게 할당하듯이 나누어 놓았다. 십진법 체계로 군사를 나누듯, 주르킨의 쿠리엔을 해체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어엿한 백성으로 대우했다. 주르킨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주르킨이었던 사람들은 테무진이 주도하는 '키야트-보르지긴 울루스'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었다.

 

테무진은 이번에도 주르킨 야영지에서 고아를 발견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헐룬에게 양육을 맡겨 아이와 의붓형제가 되었다. 이는 테무진의 인간성도 보여주지만, 이제는 정치적인 의지를 표명하는 행위가 되었다. 테무진이 자신에게 패배한 집단의 고아를 대하는 방식 그대로, 그의 백성들은 주르킨 출신자들을 존중하라는 뜻이었다. 주르킨 출신자들에게 기죽지 말고 살라는 메시지도 있었다. 아 참, 이 아이의 이름은 '보로쿨'이었다. ('보로올', '보로골'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이름이다. 밑줄 쫙.

 

이러다보니 주르킨 쿠리엔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드릴루킨'들은 테무진의 평등정책에 잔뜩 흥분했다. 예전 기사에 설명했던 '잘라이르' 씨족이 그들이었다. 잘라이르 씨족의 가장들은 앞다퉈 테무진에게 자기 아들들을 소개했다.

 

"테무진 칸, 저는 잘라이르의 '구운 오아'라는 사람입니다. 칸께서는 계급과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출세시켜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제 아들놈들 좀 봐 주십시요. 이 놈이 '무칼리', 다른 아이가 '보카'입니다. 이 녀석들을 칸의 사유재산으로 바칠테니 혹여나 도망가려고 하면 발목의 힘줄을 잘라 버리십시오! 간을 파버리십시오!(이런 끔찍한 말을 정말로 했다.)"

 

"난 사유노비 같은 거 안 키우는데... 일단 내 호위병으로 쓰면서 눈여겨보기로 하겠소."

 

'무칼리'라는 이름에 역시 밑줄 쫙.

서구 학자들은 테무진의 잔인성과 관용성 - 이 이중성에 혼란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정복의 과정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정복하고 나면 산타클로스처럼 관대해진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테무진의 일생을 <초원통일기>과 <세계정벌기>로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아직 세계정벌이 시작되려면 멀었으므로, 초원통일에 국한해 생각해보자. 

테무진은 초원사람들을 혈통이 아닌 계층으로 구분했다.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 그는 초원 통일전쟁의 성격을 혈통대결(정주문명으로 따지면 '지역대결'에 해당될 것이다.)이 아니라 계층대결로 바꾸어놓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귀족층을 '신속하고 기계적으로' 죽였다. 그에게 대항한 조직이 어떤 조직이든, 귀족층에만 책임을 물었다. 매우 공정한 태도다. 귀족 지배층이 집단의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귀족들에게 이용당했을 뿐인 백성들은 면죄부를 받아 마땅하다. 아니 면죄부라는 말도 이상하다. 백성들은 애초에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정복을 당함으로써' 테무진의 백성이 된 이들은 책임을 묻지 않는 정복자의 관대함에 감동할 뿐만 아니라, 곧 공정한 분배정책과 기회의 평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초원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층은 테무진을 지지하는 게 유리해진다. 테무진은 초원의 일반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므로, 테무진을 위해 싸우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된다.

 

자무카는 혁명가였다. 그는 혈통집단과 쿠리엔들로 얼기설기 엮여 었던 초원의 질서를,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무진이 더 급진적이었다. 그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고 했다. 자무카는 구조의 중심을 바꾸려고 했다면, 테무진은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싸움의 승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였다. 자무카는 '이기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무카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전에, 테무진에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3

 

바로 주르킨 출신 씨름 챔피언 부리가 문제였다. 부리는 도둑의 편을 들어 정정당당히 시합을 요청한 벨구테이에게 칼부림을 했었다.

"벨구테이, 난 그놈을 용서할 수 없다. 놈은 범죄자야. 범죄는 처벌받아야지."

"나도 생각같아서는 걍 놔두고 싶지 않지만... 그러면 형의 원칙이 깨져버리는데. 주르킨 사람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우리 일원이라며?"

그랬다. 그 전에 발생했던 일에 책임을 물면 통합의 원칙이 깨져버린다. 이제 그들은 테무진과 새로 사회계약을 맺었다. 그 전의 과거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리를 꼴보기 싫다고 죽여버리면 복속된 주르킨 사람들의 지위가 격하된다. 그렇다고 분쟁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한 장본인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테무진과 벨구테이 형제는 묘안을 짠다.

"벨구테이, 그놈과 못한 씨름대결을 마무리지어라. 그녀석 처지가 처지인만큼,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없을 거다."

두 형제는 부리를 시합 중에 죽여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처벌 아닌 처벌, 공식적으로는 '시합 중 사고사(死)'가 된다. 테무진은 적당한 날을 골라 부리를 불렀다.

"이봐 부리, 벨구테이가 자네랑 끝내지 못한 시합이 있다는데, 한 판 붙어주지?"

 

"앗... 네에..."

부리가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지은 죄가 있는 부리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몽골비사>는 부리가 "한쪽 팔과 한쪽 다리만 써도" 벨구테이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벨구테이도 힘과 성격이 보통이 아닌 사내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초원의 챔피언답다. 하지만 부리는 시합 내내 자신을 쳐다보는 테무진의 눈빛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이러다 내가 그냥 이겨버리면... X되겠지?'

 

결국 부리는 승부를 포기하고 벨구테이에게 "쓰러져 주었다."

 

 

 

 

벨구테이는 쓰러진 부리의 몸에 올라탄 채 테무진을 쳐다보았다. 테무진은 말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계획대로 해치우라는 뜻이었다. 벨구테이는 두 손으로 부리의 어깨를 부여잡고, 무릎으로 부리의 척추를 부러뜨려버렸다.

 

고통스런 죽음을 맞게 된 부리는 억울함을 느꼈다. 죽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된 마당에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테무진이 보고 있어서 실력발휘를 할 수 없었다. 이기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다가 시합에 졌다. 하지만 제대로 붙었으면 난 벨구테이 따위에게 질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부리가 남긴 최후의 말이다. 챔피언의 자존심이란... 어찌 보면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이 챔피언에 대한 테무진 형제의 마지막 예우였는지도 모르겠다.

 

 

4

 

13세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한창 3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던 테무진과 자무카에게는 서양식의 '세기' 개념이 없었다. 다만 초원사람들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12간지'를 사용했다.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동물로 해를 구분했다. 그 해는 닭의 해, 1201년이었다.

 

초원의 실력자들은 옹 칸과 테무진 연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편 저편이 어지러이 이합집산하는 초원에서 두 세력이 강력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불편한 일인데, 그중 신진세력(테무진)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반 테무진' 세력이나 개인들은 테무진에게 본능적인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낀 경향이 있다. 테무진의 생명력과 끈기 때문이었다. 테무진은 숱한 불행을 견뎌내고 결국 칸으로 성장했다. 자무카에게 털려서 완전히 무너진 줄 알았는데 기어이 재기에 성공했다. 민중들은 호의적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세력가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만하다.

 

테무진과 옹 칸이 금나라의 지원을 받은 것도 문제였다. 이전까지 금 조정을 등에 업은 타타르는 초원에서 공공의 적이었다. 이제는 옹 칸-테무진 연합이 위험세력이었다. 더우기 중국 조정과 관계한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국제적인 인증'을 받는단 얘기다. 옹 칸은 그 이름 그대로 금나라 황제에게 제후의 지휘를 받았고, 자우트 코리라는 직함을 받은 테무진은 그보다 한참 못하지만 어쨌든 중국 조정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잘나가면 적이 생기는 법이다.

 

초원의 귀족들은 테무진 세력의 성장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테무진이 주르킨 귀족들을 절멸시키고 주르킨 백성을 흡수해버린 사건은 귀족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득권이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 목격했으니 말이다.

 

이러다보니 옹 칸과 테무진에 대항하는 일은 초원세계 전체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테무진과 자무카의 경쟁엔, 옹 칸과 커레이트족을 제외하면 두 인물의 출신부족인 몽골족과 초원 중앙 부근의 군소부족들이 관여해왔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동쪽의 주인 타타르와, 서쪽의 절대강자 나이만족도 옹 칸과 테무진을 저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판이 커진 것이다. 특히 타타르는 테무진과 옹 칸에게 크게 당했으니, 복수를 해야했다.

 

초원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양자 대결구도가 생겨났다.

 

 

테무진 파 몽골 쿠리엔                    자무카 파 몽골 쿠리엔

친 테무진 부족/씨족들         VS       친 자무카 부족/씨족들

옹 칸의 커레이트족                        나이만족 + 타타르족

 

여러 세력이 함께하는 일이 강력한 보스 없이 진행될 리 없었다. '연합 지도자'를 선출해 옹 칸-테무진 연합에 대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대표할 적임자는 역시 자무카밖에는 없었다.

 

 

5

 

때는 여름이었다. 자무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켄'강에 딸린 '알코이'라는 샘에 모여들었다. 원래 몽골과 타타르는 앙숙. 그러나 자무카 휘하의 '니르운'인 '두르벤' 족이 나서서 타타르와 화해했다. 타타르는 원래 부족 연맹체. 타타르 부족들 중 '알치 타타르'족이 대표가 되어 참석했다.

 

나이만에서는 '부이룩 칸'이 왔다. 잠시 나이만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타타르가 '국가'에 근접한 세력이었다면, 나이만은 정상적인 국가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었다. 정주문명식의 궁정도 갖고 있었다. 즉 '조정'이 있었다. 나이만 조정은 행정처리를 하는데 문자를 사용했다. 비록 외국인 위구르의 문자였지만, 초원의 다른 부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나이만은 몽골과는 달리 수준 높은 문명과 맞닿아 있었다. 티벳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인 탕구트, 한때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위구르, 중국식 행정체제를 갖춘 거란인의 카라 키타이(서요 제국) 등등... 실크로드 무역로의 요지는 아니어도, 요지의 언저리 정도는 차지하고 있던 만큼 가난한 몽골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부유했다. 한편,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나이만인들의 주된 종교였다.

 

나이만의 최고 군주는 '타양 칸'이었다. 타양은 한자 대왕(大王)을 자기들 식대로 발음한 것이다. 이런 칭호는 중국, 즉 금나라 조정에서 내려주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대왕'이니, 옹 칸의 '왕'보다 한 단계 높다. 금나라 조정은 아무래도 옹 칸보다는 나이만의 지배자들을 더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여긴 모양이다(그럴 만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이만의 입장에서는 최근에 제후의 지위를 획득한 '후발주자' 옹 칸을 경쟁자로 느꼈을 법도 하다.

 

나이만은 중세 유럽의 봉건국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공식적인 군주는 하나지만, 실제로는 여러 명의 영주가 분할 지배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가이되 원시적 국가라고 보면 된다. 중세 유럽을 보면 왕가와 영주 가문이 가까운 혈연관계인 경우가 많다. 나이만도 그랬다. 나이만을 분할통치하던 세 명의 인물은 모두 한가족이었다.

 

: 1) 궁정의 주인이자 제 1 군주인 타양 칸. 2) 타양 칸의 동생인 부이룩 칸. 3) 타양 칸의 아들인 '쿠출룩 칸'. 그리고 타양 칸의 어머니인 황후 '구르베수'가 두 아들과 손자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네 권력자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어쨌든 부이룩 칸이 나이만을 대표해 자무카에게 왔다.

 

테무진을 피해 자무카에게 귀순했던 타이치우트족이 빠질 수 없었다. 그외 이런저런 군소부족, 씨족들도 모여들었다. 그 중에 하필이면 옹기라트족도 있었다. 옹기라트족은 보르테의 친정, 즉 테무진의 처가였다. 더우기 보르테의 아버지는 옹기라트의 수장이었다. 사실 옹기라트족도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해서 내린 결정이었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테무진이 입은 정신적 데미지는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보르테를 납치했다가 멸망 직전까지 간 메르키트족은 예전의 세력을 거의 회복했다. 3개 부족 연맹체였던 메르키트족. '카아드 메르키트'는 수장인 카아타이 다르말라가 테무진에게 잡혀 죽으면서 와해되었지만, 톡토아 베키의 오도이드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의 오와스 메르키트는 살아남아 있었다. 하여간 이 부족 사람들도 그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메르키트족은 비옥한 목영지인 탈콘 삼각지와 주변 강변을 되찾고자 했다. 그러려면 테무진과 자무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칸들의 전쟁'에 끼어야 했다. 메르키트족 입장에선 자무카나 테무진이나, 옹 칸이나 모두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하지만 고향을 수복하려면 어느 한 쪽에 줄을 서야 했다.

 

그들은 자무카를 택했다. 테무진과는 원한이 너무나 누적돼 화해하기가 도무지 불가능했다. 자무카의 신묘한 전술에 비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무카의 능력을 신뢰할 만했다. 톡토아 베키의 아들 '코토 베키'가 메르키트를 대표해 참가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참가자는 당연히 자무카였다. 초원 각 세력의 대표자들은 자무카를 따라 강줄기를 끼고 이동했다.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집단이동은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행사였다. 누가 더 앞서서 움직이는지로 서열을 정하기도 하고, 사냥과 야영 등으로 유대감을 다지기도 한다. 친 자무카 연합은 켄 강과 에르구네 강이 만나는 비옥한 습원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렸다.

 

여름철의 에르구네 강

연합세력은 흰 종마와 암말을 하늘-텡그리-에 제물로 바쳤다. 기독교인이 많았고 불교신자도 있었지만, 무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몽골인인 자무카의 취향이 중요하기도 했으리라. 말은 초원에서 가장 귀하게 치는 동물이다. '싱콜라 모리'라고 부르는 백마는 그중에서도 특히 상서로운 동물이다. 최고 등급의 의식을 치렀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자무카는 칸으로 추대되었다.

 

 

 

 

자무카도 원래 칸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칸들이 추대한 칸, 즉 왕 이상의 군주이므로 황제급의 칭호가 필요했다. 새로운 칸의 이름은 '구르 칸'. 구르는 구르는 '이 세상 모든 것', 즉 '우주'라는 뜻이다. 또한 '칭기스'와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끝없이 넓게 퍼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굉장한 사이즈의 호칭이다.

 

구르 칸... 이 명칭은 키타이, 즉 거란의 군주들이 쓰던 호칭이다. 대요제국과 카라 키타이, 즉 서요제국의 황제들은 공식적으로는 태조니 태종이니 하는 중국식 명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왕경승상에게 타타르 정벌을 맡긴 장종이 '알탄 칸'인 것처럼, 자기네 식(혹은 유목민 식)으로는 '구르 칸'이었다.  

 

제국을 경영해본 정복민족 거란족은 '잘 나가는 유목민'의 이상적인 모델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유서깊은 호칭이란 얘기. 옛날, 옹 칸을 쫓아내고 커레이트족의 칸 자리를 먹었던 옹 칸의 동생도 자칭 '구르 칸'이었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도와준 덕분에, 옹 칸이 동생을 쫓아내고 칸이 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30대 후반, 어쩌면 40살이 갓 되었을 자무카는 위상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이 시점에서 초원통일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자무카였다. 

 

 

6

 

테무진이 옹 칸의 소(小)이이제이를 알게 되었는데 자무카라고 모를 리 없다. 테무진은 옹 칸을 최대한 신뢰하려고 노력했던 반면 자무카는 옹 칸을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려고 했다. 테무진과 함께 말이다. 자무카는 구르 칸으로 추대된 자리에서 테무진과 옹 칸에 전쟁을 선포했다. 연합군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초원세계 전체가 연루된 대전투의 막이 올랐다.

친 테무진 파 무리 하나가 전쟁 소식을 빠르게 알려왔다. 테무진은 가장 먼저 옹 칸에게 급보를 알렸다. 이 시점에서 공동의 적을 맞은 두 사람은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옹 칸은 곧바로 커레이트 군대를 소집해 테무진에게 달려왔다. 

두 사람은 잠깐 의논을 했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답은 전쟁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전쟁을 결의했다. 그러나 전쟁을 대하는 테무진의 태도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한 번의 회전에 운명을 걸었다가 13쿠리엔 전투에서 짓밟힌 테무진. 이번에는 승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초원의 전쟁이란 모 아니면 도의 제로섬 게임이지만, 이왕 제로섬에 운명을 맡길 거라면 도 보다는 모가 나올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게 상책이었다.

테무진이 십진법 체계를 이 전투에서부터 적용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테무진의 전매특허가 되는 1) 전초부대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전략과 2) 매복전술 - 이 두 가지는 쿠이텐 전투에서부터 확립되었다. "적보다 먼저 상대를 발견, 관찰한다." 이는 현대전에서는 기본 모토다. 하지만 한 번의 회전으로 피아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고대전투에서는 흔한 개념이 아니었다. 여기서 테무진의 신중한 성격이 드러난다.

테무진은 적이 오는 방향으로 전위를 보냈다. 전위는 전투의 선봉을 말한다. 해병대와 같은 돌격부대라고 보면 된다. 테무진은 전위부대에 '정보수집'의 요소를 더했다. 그래서 전위는 전위 of the 전위, 즉 전초대원을 운용하게 된다.

테무진이 전위부대 지휘를 맡긴 인물들은 1)알탄과 코차르, 2)배신의 명수인 막내숙부 다리타이, 3)옹 칸의 아들 셍굼 4)옹 칸의 동생 자카 감보 등이었다. 알탄과 코차르는 처형당한 사차, 타이초와 함께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한 자들이다. 한편 셍굼은 본명이 아니다. 이는 중국어 '장군'을 초원 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토그릴이 옹 칸이 되면서, 후계자인 아들도 소정의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보면 된다.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부대에 속한 전초대원들은 세 개의 산에 몸을 숨기고 자무카 연합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전초대원들은 적군을 발견하자마자 전위부대에 알렸다. 여기까진 좋은데,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부대는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생각해보니 그렇잖아? 뭐하러 숨어서 적을 관찰한단 말이야? 당당히 만나서 눈으로 직접 보면 되지, 안그래?"

 

이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회전의 성격 때문이다. 회전이란 적당한 장소에서 양측의 무력이 동시에 충돌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싸우는 시간과 장소를 양측이 합의하여 정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움직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니 말이다. 물론 테무진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그는 적을 최대한 관찰해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한 한 유리한 판을 만들려고 했다. 반면 적은 우리 편의 사정을 모를수록 좋다.

 

테무진의 원래 계획과는 상관없이, 테무진-옹 칸 연합군의 전위는 적군의 전위를 멀뚱히 서서 기다렸다. <적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령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동시에 우리의 동태도 파악된다는 게 문제인데...

 

이윽고 밤이 되자 저 멀리 자무카 연합군의 전위가 보였다. 양측은 어둠 속에서 소리치며 의사소통을 했다.

 

"이봐~! 거기 자네들이 자무카 연합군 부대의 전위가 맞는건가?"

 

"그렇네만... 거기 그쪽은 테무진과 옹 칸이 보낸 전위인가?"

 

"맞아! 거기 어두워서 그런데, 그쪽은 어떤 사람들이 전위를 맡고 있는거야?"

 

"응? 그걸 꼭 지금 알아야 하는 거야? 어차피 곧 붙으면 알게 될 거잖아?"

 

"아, 위에서 그걸 알아오라고 하길래 말야."

 

"뭐, 알았어... 거 왜 메르키트의 톡토아 베키 있잖아? 일전에 테무진씨한테 크게 당한 양반. 그 양반 아들인 코토 베키하고, 오이라트 족 군대하고, 나이만에서 온 부이룩 칸, 그리고 우리 구르 칸(자무카) 밑의 몽골 전사들. 이 사람들이 전위야. 뭐 더 궁금한 건 없어?"

 

"아, 충분히 알아들었어. 저기 우리가 일단 이렇게 만나긴 했는데... 지금은 어두워서 싸우기가 좀 그렇잖아? 오늘은 걍 자고 내일 날 밝고 나서 싸우자고. 어때?"

 

"그려~"

 

이렇게 양측 전위는 다음날을 기약(?)하고 사이좋게 헤어지는 엽기극을 선보인다. 전위부대는 본대로 복귀해 함께 잠을 잤다. 테무진의 심경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테무진은 애초 계획했던 대로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전초부대의 전략적 의미를 아군도 몰랐지만, 적군의 전위도 몰랐던 것이다. 테무진은 적 전위부대의 병력과 구성을 바탕으로 자무카군의 전위를 전멸시킬 매복작전을 구상한다.

 

다음날, 양측의 군대는 '쿠이텐(아래 사진에 사각형으로 표시된 지점이 쿠이텐. 매복에 용이한 산악지형이다.)'이라는 곳에서 드디어 조우하게 된다.

 

 

 

 

싸우러 만난 인간들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투가 시작되었다.

 

 

7

 

테무진의 매복작전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충의 얼개는 잡을 수 있다. 양측의 전위와 전위가 먼저 맞부딛히는 건 상식이다. 그 뒤로 본대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테무진 측의 전위는 적의 기세에 밀린 척했다. 그들은 코르치(궁수)들이 활시위를 잰 채 대기하고 있는 지점으로 적의 전위를 유인했다. 물론 코르치 부대는 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곧이어 목표지점에 화력을 집중하는 '일제사격',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집중포화'에 해당한다. 이 현대적인 전술은 목표물을 눈에 담고 활시위를 놓는 '조준사격'과는 다르다. 조준사격은 궁수 각자가 '지금 쏘면 맞추겠다' 싶은 순간에 화살을 따로 발사한다. 일제사격은 한순간에 무작위로 화살을 들이붓는 것이다. 화살은 좀 낭비되겠지만, 적에게 일거에 타격을 주는 획기적인 전술이었다.

 

사실 집중사격 전술은 원래부터 초원에 존재했다. 다만 완벽하게 시전된 것은 테무진 때부터다. 사방이 뚫린 초원에서는 적을 조준하느라 시간을 보내다간 외려 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사정거리에 들었다 싶을 때 일단 퍼붓는 편이 나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몽골초원에서 명사수의 제1 기준은 정확도가 아니라 사정거리다. 화살을 멀리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조준력은 그 다음이다. 테무진의 동생 카사르가 명사수로 불린 까닭도 어깨가 유난히 넓은 체형과 힘 때문이었다. 활시위가 많이 당겨질수록 화살이 멀리 나가니까. 어쨌든 테무진은 집중사격을, 한 사람의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투매뉴얼로 다듬었다. 

 

매복작전은 성공했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전위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음이 주었음이 분명하다. 영화 <몽골>이 어떻게 이 작전을 묘사하는지 함 구경해보자.

 

음... 영화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잘 찍은 장면이다. 무장과 복식의 고증은 훌륭한 편이지만(오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 초원 전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일단 병사와 병사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다. 화살의 타겟만 될 뿐이다. 초원 전사들은 넓게 산개해서 싸웠다.

싸우는 방식도 중세 유럽식이다. 초원 전사들은 저렇게 전속력으로 돌진해 양측이 부딪히지 않았다. 초원 전사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장시간 화살을 쏘아댔다. 본격적인 백병전은 결정적인 순간에나 시작된다. 물론 돌격대인 전위인 만큼,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백병전을 피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과 충돌하기 전까지는 달리는 말 위에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는 게 정석이다. 활은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데도 영화에서 전위 결사대는 활과 화살을 지참하지 않고 있다. 다만 몽골 환도(구부러진 칼)의 '말을 달리는 채로 베고 지나가는' 쓰임새는 잘 표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초원 전사들은 조잡한 칼을 썼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 당시의 환도다. 영화에서 보이는 고급 환도는 세계정복이 시작되고 나서야 (약탈한 물자와 인력 때문에)사용 가능해진다.

 

 

 

 

코르치(궁사)들이 말을 안 타고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초원의 군대는 100% 기마병이었고, 그것도 한 사람이 두세 마리 이상의 말을 끌고 다녔다. 매복이라고 해서 얌전히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다. 기동성이 없으면, 적이 매복에 걸려봐야 사정거리 바깥으로 피하면 그만이다.마지막으로 전투시간이 너무 짧다. 초원 전투는 땅을 '넓게 쓴다.' 전후좌우로 말머리를 돌려가며 싸운다. 이 상태에서 활을 쏘기 때문에 사상자가 천천히 발생한다. 즉 단번에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다. 사실 고대-중세의 전투시간은 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과 달리 매우 길었다(특히 영화상영시간보다는 훨씬 더). 대부분의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핸디캡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생각해보면 병사들 사이의 거리 문제도 한정된 시야에 영상을 담아야 하는 영화의 핸디캡이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다였다. 테무진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태에서 운명을 결정짓고자 했다. 그래서 자무카의 전위병력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나서 싸우려고 한 거다. 다시 말해 자무카의 본대는 그대로 남아있었고,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자무카는 전위부대를 잃고 나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진영을 이동하거나 뒤로 뺀 게 아니라, 계획대로 전투를 개시한 걸 보면 말이다.

 

 

 

 

 

8

 

테무진과 옹 칸의 상대는 자무카였다. 그리고 자무카가 벌인 전쟁이었다. 군사적 재능과 병력 면에서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자무카는 테무진과 옹 칸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치만 말이다.

 

운이라는 게 있다. 어디 인생과 역사가 그렇게 쉽게 예측가능하던가. 테무진에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자무카에겐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측 다 이동하면서 조우했기 때문에 전투는 평지에서 시작되었다. 자무카는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높은 지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전장에서 '높이'는 매우 중요하다. 내려다보면서 싸우는 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휘관 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적의 위치와 이동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올려다보는 쪽은 적의 후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가 힘들어진다. 중력의 법칙도 작용한다. 높은 곳에서 쏘면 화살의 사정거리가 길어진다. 전진방향이 오르막이냐 내리막이냐는 병사와 말의 체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자무카는 주변의 산악지형을 이용해 승부의 무게추를 자기 편에 달아놓았다. 전투의 아수라장 속에서 신속히 해낸 일이다. 역시 자무카였다. 다만 한가지 문제점은 그가 부대를 이동시킨 뒷편이 낭떠러지였다는 점. 전투에 패했을 경우에 퇴로가 없다. 거꾸로 말하면 자무카는 이 시점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안했다는 뜻이다.

 

한바탕의 충돌이 끝나자 양측은 군대를 물려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냥 줄맞추기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전투엔 남자-장수와 병사-만 등장한다. 그러나 초원에서는 전사의 가족과 가축들, 기타 부족민들이 군대와 함께 이동하면서 후방이나 전장 주변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전사 외에도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군대를 쫓아다니게 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직업은 바로 무당이었다.

 

 

무당 뒤에 보이는 돌무덤을 '어워', 혹은 '오보'라고 한다.

몽골초원에서 아직도 신성하게 여기는 토템이다.

어워는 끝없이 평지인 초원에서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당은 적에게 비바람과 벼락을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하기도 하고, 적에게 저주를 걸기도 했다. 하늘에 기도할 때 꺼내놓는 신성한 돌멩이가 있는데, 이를 자다(jada)라고 부른다. 물론 무생물인 하늘은 과학적 원리에 의해 변화할 뿐 무당의 기도소리 따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초원사람들은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군종 무당'은 아군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필요했다. 무당의 요란한 북소리와 방울소리는 전투의 훌륭한 BGM이었다.

 

전열 정비를 끝낸 자무카 연합군과 테무진-옹 칸 연합군. 양측이 재격돌하는 찰나, 기가 막힌 우연으로 하늘에서 정말 천둥이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벌건 대낮에 이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평균해발 1600미터의 초원은 한반도와는 다르게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바람이, 한 번 불면, 엄청나게 세다. 갑자리 요동치는 하늘... 하늘은 어느 편 무당의 편이었을까?

 

테무진의 편이었다. 매서운 비바람이 자무카 부대를 향해 몰아쳤다. 비바람은 자무카가 고지대를 차지하면서 얻은 어드밴티지를 단박에 뒤집어버렸다. 강풍을 마주보면 눈을 뜨기가 힘들다. 화살을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어진다. 조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정거리와 정확도에서 극도로 불리해진다.

 

화살 뒤에는 잘 날아가라고 깃털이 붙어 있다. 이 깃털이 바람의 방향과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평이 되지 않는 한, 화살은 날아가다가 엉뚱한 곳으로 튕기게 되어 있다. 게다가 몽골초원의 전통적인 화살은 살 뒷편에 부창하는 깃털이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

 

몽골사람들이 물건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다. 정교한 비대칭을 통해 화실이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게 만든 건데, 관성에 회전까지 실리면서 관통력과 살상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화살이다. 현대의 총을 보면 총구 내부에 꽈배기 모양의 '강선'이란 게 있다. 강선을 타고 총구를 빠져나온 총알을 빠르게 회전시키기 위해서다. 총알이 들어간 곳은 좁아도, 나온 곳은 텅 비어있다는 말 많이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회전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좋은 화살이지만, 맞바람에는 맥을 못 추는 물건이다.

 

이 외에 전사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 맞바람을 싫어하는 문제도 있다. 반면 바람을 등진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화살의 사정거리와 위력이 늘어났다. 자무카 연합군은 적과 충돌하기도 전에 힘 한번 못 써보고 화살세례를 받았다. 자무카의 군대의 전열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무엇보다 병사들의 심리적 충격이 컸다. 하늘이 테무진 편을 들고 있는 게 확실하다! 자무카 연합군의 병사들은 앞다퉈 도망가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하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뿔싸, 그런데 뒤는 낭떠러지가 아닌가... 앞은 '하늘의 사랑을 받은' 적, 뒤는 낭떠러지. 자무카 연합군의 병사들은 낭떠러지에 밀려 떨어지며 죽어갔다. 테무진은 텡그리-영원한 푸른 하늘-가 언제나 자신의 편임을 확신하며 인생을 살았다. 쿠이텐 전투는 그의 그런 믿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자무카 연합군에 속한 각 쿠리엔의 수뇌부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남긴 채 사지에서 속속 탈출했다. 자무카는 남은 병력을 수습한 후, 전장을 바꿔 반격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패배가 확실해지면 쿠리엔별로 각자 살 길을 찾아 도망가는 초원 전투의 패턴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반복되었다.

 

 

 

자무카는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도주하는 무리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자무카가 보기에 그들의 행동은 충성맹세를 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노한 자무카는 "자신을 칸으로 추대한 사람들"을 추격해 약탈했다. 쿠이텐 전투는 이렇게 끝났다. 테무진과 옹 칸의 승리였다.

 

 

outro

 

만약 그날 하늘이 테무진을 돕지 않았다면... 자무카의 재능에 박수를 쳐줄 용의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사는 어떤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알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고 전쟁은 결과가 말한다. 어찌 됐든 테무진은 13쿠리엔 전투의 패배를 설욕했다. 그러나 자무카와의 힘겨운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패배한 적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본 테무진과 옹 칸. 두 사람은 연합군을 나눠 적을 추격하기로 했다. 옹 칸의 커레이트족은 자무카의 뒤를 쫓았다. 테무진은 그 옛날 자신을 납치해 학대했던 타이치우드족을 추격했다. 쿠이텐 전투 제 2차전의 시작이었다.

 

(다음편 '패자의 역습'에서 계속)

 

 

http://www.ddanzi.com/news/62140.html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