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성당내부는 눈의 궁전을 연상시키고…
고도(古都) 로마 시내 곳곳에는 천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러나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넓은 평야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지며, 두메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도 그런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도원 앞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굳게 닫힌 육중한 철문이었다.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다가 살짝 철문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고 수도원임을.
미리 약속을 한 터,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한국인 박미애(데레지타) 수녀가 총총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것 같지 않던 그 철문이 박수녀의 등장으로 정말 요술처럼 열렸다.
언덕 숲길을 따라서
지도를 펼쳐들었을 때 한낮 점으로 표현되던 수도원은 그 곳에 발을 들여놓자 어느덧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 공간으로 바뀌었다. 고요하다. 여유와 아늑함이 있다. 발을 디디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란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언덕 숲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길가에 늘어선 나뭇가지들이 아담한 길을 만들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선 나무들이 여기는 수도원 가는 길이니 마음을 가다듬으라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언덕길이 끝날 무렵, 대나무 숲으로 꾸며진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한정된 공간에 자연을 담아낸 인공의 아름다움. 이국에서 만나는 대나무는 더욱 반갑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의 역사는 성 바오로 수도회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는 알베리오네(Giacomo Alberione, 1884∼1971) 신부가 사회 홍보 수단을 이용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1915년 6월 15일 테클라 메를로(T. Merlo, 1894∼1964) 수녀와 협력해 이탈리아 알바시에 설립한 활동 수녀회다.
이후 사도직에 매진하던 성 바오로딸 수도회는 1926년 1월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뜻을 따라 성 바오로 수도회와 함께 로마로 옮겨왔고, 그때부터 로마는 수도회의 총본부가 됐다. 지금의 수도원 자리는 30여 년 전 ‘천주의 섭리회’가 운영하던 대학생 기숙사 자리에 새롭게 마련한 것이다.
박미애 수녀와 이귀영 수녀, 25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사라 스케나 수녀의 안내로 수도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재 총본원에는 총장 M. 안토니에타 브루스카토 수녀를 비롯해 전세계 11개국에서 온 70명의 수도자가 상주하고 있다.
총본원 건물은 거대하고 웅장하기 보다는 여성적이며 섬세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심코 지나치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수도원 곳곳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단층 건물이지만 총본원 안에는 수도원 성당을 비롯해 강의실, 숙소, 식당, 시청각실, 박물관 등 있을 것은 다 들어서 있다.
특히 수도원 성당은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동경해 봤을 정도로 아름답다.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나보다. 흡사 새하얀 눈밭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성당 지붕 곳곳의 틈새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차갑고 흰 대리석을 화려하게 감싼다. 외관의 규모는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이곳은 세계 80여 개 관구를 통솔하는 수도회의 본부다. 총본원에서는 6년마다 전 세계 관구장 대표들이 모여 새 총장 선출이 이뤄지며, 2년에 한 번씩 원로 수도자들을 초청해 ‘카리스마 투어’도 진행한다. 해마다 국제적 차원의 ‘바오로 대피정’도 이곳에서 열리며, 종신서원을 앞둔 수도자들을 위한 ‘국제종신수련’도 총본원의 몫이다. 인터넷사도직을 담당하는 박수녀는 “지난해에는 전세계 인터넷 관련 커뮤니케이션 담당 수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갖고 발전상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바오로 사도 영성에 가까이
수도회는 2008년 ‘바오로 해’를 맞아 ‘바오로 가족 수도회’ 산하 10개 공동체와 함께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바오로 서간을 연구하고, 사도직에 매진함으로서 바오로 사도의 영성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한해가 될 것이란 것이 전언이다.
세 명의 수녀와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도원을 나선다. 곧이어 숲으로 우거진 언덕길과 다시 만났다. 청정하고 차가운 공기가 신체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것이 짜릿하다.
누군가 그랬다. 로마에 가면 바티칸 곳곳을 둘러본 뒤 꼭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콜로세움’을 가보라고. 기자는 로마에 가면 꼭 수도회 총본원을 방문하라 제안한고 싶다. 특별히 연인이나 부부들에게 더욱 권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 훗날 꼭 한번 다시 와 보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취재에 협조해 주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로마 총본원’ 이귀순 수녀님, ‘성 바오로 수도회 로마 총본원’ 김태훈·황인수 수사님,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 이귀영·박미애·사라 스케나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진설명 ▶사라 스케나 수녀와 한국인 두 수녀가 밝게 웃고 있다. ▶아담하고 소박한 총본원 건물 외관. ▶성 바오로딸 수도회 관구가 진출한 국가가 표시된 지도. ▶이국에서 만난 대나무 숲은 더욱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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