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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원장 소개
웹마스터 2005-12-24 10:21:12
세계신유복음선교회 원장 : 강 은 숙
세계신유복음선교회에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 막16: :18 ) 는 말씀대로 치료의 손, 불의 손, 그 손이 닿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 손은 주님의 손에 있는 그 능력이 강은숙원장 손에 임하여 손만 대면
암 덩어리가 타버리고 눈먼 소경이 눈을 뜨며
(이금순집사 063-842-9642 어릴 때부터 한쪽눈이 실명되어
50년간 눈알이 썩어서 애꾸눈으로 살아왔는데 안수기도 받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눈알이 살아났고 깨끗하게 보입니다.)
벙어리가 말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성령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역사 하는 세계신유복음선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세계에서 제일 큰 하나님의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오빠와 언니 네 명의 육 남매를 둔 가정에서 다섯째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불신 가정이었지만,
막내라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저는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익산시 오산면에 있는 남전교회로 다니게 되었는데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며,
교회행사 때마다 뽑혀 찬송과 율동을 독차지하면서 기쁘게 교회에 잘 다녔습니다.
그리고
언니들이 결혼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나는 커서 시집도 안가고 날마다 다니면서 예수님 찬송을 부르며 전도하고 찬송하며 살겠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아들 하나만 잘 되기를 바라며 불교를 섬겼지만,
외할머니는 철저한 기독 신앙인으로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14 세 때에는 부산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좌천동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 했습니다.
성령체험과 각양 은사와 능력을 17 세 때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선천적으로 고운 목소리를 주셔서 7살 때부터 결혼식 축가를 요청받고 많이 부르러 다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듣지 못한 독특한 음이 나온다고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칭찬 하는 말에
‘가수가 되겠다!’고 세상출세욕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저를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장질부사 질병으로 치셔서 세 번씩이나 죽음의 지경까지 몰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일만 하겠습니다!”
고 약속하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결혼 후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가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민요 명창이 되겠다고 국악원에서 창을 배웠습니다.
이번엔 명창이 될 생각을 하고 연습을 하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 포기하고 “ 하나님! 다시 한 번 목을 터 주시면 평생 찬양과 하나님 일만 하겠습니다!”고 기도하며 매달리며 하룻밤 자고 나니 목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회개하고 모든 세상 출세욕을 다 버리고 여덟 살 때 약속한 하나님 일만 하기로 작정하고 말씀과 기도로 생활을 했습니다.
첫 아이 정희를 낳고 교회가 멀다는 핑계로 주일을 빠지기 시작하며 믿음생활이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977년 7월 7일 밤 꿈에 하늘에서 별이 수없이 떨어져 땅까지 쌓이더니
별을 따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때 내 옆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저는 부끄러워 나는 옛날에 신앙생활 잘했었는데 지금은 잘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나무 그늘에 숨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는 체도 아니 하시고 싹 지나가시면서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데 음성만 들렸고 예수님은 지나가셨습니다.
언뜻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때 저희 가정에서는 어린 아이들과 남편, 친정어머님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제가 막내딸이라고 살림을 도와주시며 자녀들을 길러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방안에 언제나 아들을 위해 공 드리는 곳을 만들어 놓고 좋은 날이면 물을 떠다놓고 촛불을 켜놓고 불공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꿈에 예수님 오신 날부터 이상하게 어머니께서 열병이 나셨습니다.
병원에 가셔서 15일간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아도 열병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이상하다고 병명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아파하시고 열이 계속 오르니까
의학으로는 못 고치는 병이라고 어머님이 평소에 잘 가시는 절로 며느리와 딸 네 명, 이렇게 다섯 명이 찾아갔습니다.
무당 방에 들어갔을 때,
큰언니가 하는 말이 “왜 어머니께서 이렇게 많이 아프시냐?”고 물으니
(무당이 하는 말이) “어머니 사시는 집에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하늘의 신과 어머니가 모시는 신 사이에 칼싸움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보더니 쌀을 주먹으로 쥐고 저에게 막 뿌렸습니다.
제가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당신 눈에 불이 들어있다고
그 불이 너무 밝아서
내 눈이 안 보이니 당장 나가라!”고 소리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령의 불이 왔습니다.
우상이 다 무너지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점쟁이나 무당들을 바라만 봐도 그들에게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마귀가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8살 때 교회에 나가면서 은혜 받고 기도하며 골목을 다니며 찬송가 82장 ‘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찬양을 부르며 다녔습니다.
저희 가정은 그날부터 새벽기도에 아이들까지 다 다니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서 7년간 산기도, 교회에서 밤 기도,
새벽 기도, 철야 기도와 전도에 열심을 다하니 성령님께서
“신학공부를 해서 내 일을 하라!”고 하시며,(꿈에) 일곱 촛대를 주시며 “일곱 교회를 세워 생명들을 살리고 세계로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때 그 즉시 “아멘!”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감리교인 이었기 때문에 감리교 측에 속한 신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학교가 멀어서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장로교 합동 측에 속한 전북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소재한 목회대학원과 부흥사 연수원, 선교대학원 미국에 있는 아이오아주 킹스웨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에게 일곱 교회를 세우게 하시려면 6개월마다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면서 익산과 서울과 대구와 부산과 순천과 제주에 여섯 개 지부를 세웠고
이제 한지부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향해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세계선교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이 투철한 젊은이들이 암병이나 불치병으로 왔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시고 신학공부를 하게 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되었고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시절의 어느 날 저는 한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성령 님께서 저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내리시면서 어느 농촌 마을로 가셨습니다.
한참을 동네로 들어가시더니 22가구가 살고 있는 동네인 대 광 부락이라는 곳으로 들어가십니다.
저는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였습니다.
거기서 저에게 성령 님은 “너는 이 동네에서부터 시작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계에서 제일 큰 하나님 성전, 하나님 병원을 주셔야지요?
어떻게 이런 농촌에 예배당을 세웁니까?” 하니 성령 님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하니, 내가 한다. 너는 순종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동네에 사시는 집사님이 찾아오셔서 “소문을 들으니 여기만 오면 병이 낫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에게 기도해 주었는데 다섯 가지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많은 환자와 각색 질병 들린 이들과 자궁암과 유방암과 마귀 병을 가진 이들이 꿈을 꾸고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안에 항상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니 영생교회 옆 2층집에서 안수 받으니 나았다!”고 말하면서 전혀 모르는 성도들이 꿈을 꾸고 찾아왔고 오는 사람마다 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떤 병이 낫고 감사예물을 드려도 성전을 마련하기까지 10원 한 장 받지 않았고, “아직 나에겐 쓸 일이 없으니 다니시는 교회에 드리라!”고 말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박성훈 063-841-3594)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오니 어떤 집사님 두 분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물으니 여덟 살 된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시체실에 들어가기 직전이라고 한 번 안수 받고 죽어도 좋으니 한번만 가셔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를 따라 원광대학부속 병원 중 환자실에 가서 보니
그 아이는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쳐 뇌가 심하게 깨져서 살아날 수 없고 눈은 신경이 끊어져 한쪽 눈은 실명이고,
한 다리는 중간의 뼈가 부러져있었습니다. 간호사가 맥박만 뛰고 있는 아이의 맥박이 끊어지면 바로 시체실로 옮기려고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1번 안수에 성령의 불이 뇌에 들어가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뇌가 작동이 멈춘 지 40일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원대병원에 안수 기도하러갔습니다.
원불교에 속한 원대병원 중 환자실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이 아이는 하나님이 살렸다!”고 말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그때 여름방학이어서 기간은 40일 있기에 40일만에 다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름은 박 성훈이고 나이는 8세인 이 아이는 안수기도 2주만에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봅니다.
눈을 뜨고 보니 한쪽 뇌가 쏠리면서 신경이 끊어져 한 쪽 눈은 실명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다른 인공 눈을 바꿔 끼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부모에게 “살리시는 하나님은 눈도 고쳐주신다! 믿어라!”고 말하고
“눈을 고치기 위해 3일 금식하고 기도하자!”고
아이 엄마와 같이 3일 동안 금식 기도한 뒤,
그 날 병원에 가서 눈을 만지며 기도 한 뒤 제가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보라”고 하니 아이가 “글씨가 보인다!”고 말했고,
의사들도 시력이 회복된 것을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서 확인했으며,
하나님께서 정상적인 눈으로 고치셨습니다.
이 아이는 40일간 식물인간으로 있을 때 의사와 가족은 생명을 포기했고 죽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종의 손을 통해 40일 만에 완전히 살려주셨습니다.
아이가 살아나니 너무 말라서 뼈와 가죽밖에 없었습니다.
외과 의사 선생님이 “개고기를 고와 먹이라!”고 하셨는데,
그 때 그 아이 부모님은 농촌에서 너무 바쁘다고 병원에 제대로 와 보지도 않았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제가 이틀에 한 번씩 개고기를 사서 압력솥에 삶아서 20일간 먹였더니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는 날 시장에 가서 옷 한 벌과 신발까지 사서 주고,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머리도 깎아 주고 목욕시키고 압력 솥 까지 함께 그 아이 집에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순종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같은 병원에 있는 뇌졸중환자가 고침 받고 성도가 되어 온 가족 다 구원받았습니다. 원대 병원만 가면 중 환자실에서는 면회 시간이 정해져있는데 강 은숙이가 들어가면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다 들어오라는 자유가 있었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의술이 못 고칠 때 하나님은 고치신다는 체험을 의사들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환자를 신학 공부하면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손을 얹어 고쳐주시더니 어느 날,
5가지 병을 고침 받은 군산 옥 구면 대 광리에 사시는 양 집사님이 집에 한번 꼭 오시라고 초대를 했습니다.
생일이라고 너무 많이 졸라대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서 보니 신학교 1학년 때 꿈에 보여주신 그 동네였답니다.
그래서 “아니, 집사님! 제가 몇 년 전 이 집을 성령님과 같이 와서 너는 여기서부터 예배를 시작하라고 하셨는데요!”
그랬더니 그 양집사님이 “그러시냐?”며 “우리 큰딸이 서울에서 순 복음교회 집사인데 올 초에 꿈을 꾸니
어느 여자 분이 십자가를 높이 들고 오더니
그 뒤에 많은 사람이 따라와서 성전을 세우고 예배를 드렸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에 교회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교회 자리는 마당 옆에 소 마구간을 헐고 20평 건축하자고 약속을 하고 동네 이장 님을 만나서 음료수를 대접하면서 “이 동네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장 님 협조해 주세요!” 하니 “그렇게 하세요! 우리 어머니도 교회 집사입니다.”
하면서 승낙을 하시기에 건축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을 짓는다 하니 동네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동네는 남묘호랭갱교 동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건축을 시작 할 때 동네사람들이 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마이크를 대고 다 모이라고 광고를 합니다.
그러면 논에 일하는 사람이든 집에 있는 사람이든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방해를 했습니다.
심지어 동네에서 건축 중인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 선을 끊어 놓고 결사 반대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미신에 사로잡힌 까닭에‘남묘호랭갱교를 섬기는 우리 동네에 교회가 맨 앞에 들어서면 가정마다 사람이 죽고 망한다.’고 말하면서 결사 반대한 것입니다.
마을에 총 22가구가 있는데 그중 두 가정은 하나님 은혜로 불치병이 나은 가정이고 20가정은 남묘호랭갱교를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20가정에 아이들 빼고 40명이 목숨을 걸고 계속 데모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양집사님이 아침 7시에 오셔서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 말자!”고 합니다. “22가구에 부부 40명에서 남자만 20명이 11시 예배드리려고 오면 똥을 퍼서 퍼붓겠다고 사람 키만 한 자루에 바가지 달린 똥바가지와 똥통을 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에게 하는 말이 “똥을 뒤집어쓰면 옷 벗고 샤워하고 예배드리면 되지요.
그게 뭐 걱정이 됩니까?”하고 “예배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 집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꿈에 제가 높은 대나무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대나무 끝에 매달린 채 이쪽에서 바람이 불면 이쪽으로 떨어질 듯 놀라고 저쪽으로 바람이 바꿔지면 또 저쪽으로 떨어질 듯 무섭고 바람 부는 대로 무서워 떨고 있는 나에게 하늘에서 천둥 같은 음성이 들리는데,“너는 위만 바라봐라!”라는 소리였습니다.
그 음성이 듣고서 제가 “주여! 믿습니다!” 하고 외치고 위를 쳐다보니 어느새 나는 큰 대나무 밑을 붙잡고 서 있었고, 그 때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했습니다.
그 꿈이 생각이 나서 하나님만 바라보자고 택시를 타고 나섰습니다.
예배당에 도착해서 택시에서 내려 4m만 가면 성전 입구인데 벌써 남자 20명이 똥바가지를 들고 한 줄로 서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종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저들의 손과 발이 붙어버리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며 걸어가니 똥을 바가지에 퍼든 20명의 장정들이 손 한번 올려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을 지나 예배당에 와서 7명 성도들과 1시간 예배드리고 헌금시간에 헌금함을 강단에 들고 온 집사님에게 “지금까지 손과 발이 붙어 있는지 가 보십시오!” 하니 7월 달 그 뜨거운 날씨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르고 반대하는 저들을 용서하시고 붙어있는 팔과 다리를 풀어서 걷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니 풀어져 힘없이 맥없이 남자 20명이 각자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장정 남자 20명이 여자 1명을 못 이기느냐?”고 부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양 집사님이 오셔서 이제는 부인들이 나를 죽일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 남자들은 결단력이 없어서 여자하나 못 이겼다.”고
화를 내면서 이번엔 여자들이 “한 사람이 내 머리채를 잡고 나오면 40명이 똑같이 때려서 죽이자!”고 의논을 했답니다.
주일날 남자들이 실패하자 “수요일 밤 예배 시간에 때려죽인다!”고 약속했다고,
“원장님 이번 수요일 밤 예배를 드리지 맙시다.
수요일 밤 예배 때는 때려죽인다고 합니다.” 하고 벌벌 떠셨습니다.
그때 제가 “집사님! 사도 바울은 매 맞고 감옥에도 갔는데 나는 때리는 사람은 있어도 감옥에 넣을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갑시다!” 하고 택시를 타고 수요예배 드리기 위해 나올 때,
그날 새벽에 꿈을 꾸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꿈에 밖에서 누가 왔다고 나가보니 군복 입은 군인 두 사람이 완전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복은 옷에서 빛이 났고 어깨와 가슴에 이 세상에서 본 기억이 없는 것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손에는 방패와 칼을 들고 있었고 너무 씩씩한 군인 같았습니다.
일하는 집사님이 “저분들이 누구냐?”고 물을 때 제가 그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냐?”고 하니 “강은숙이를 도와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천군 천사가 나를 지키려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기뻐했습니다.
그 꿈이 생각이 나서 힘있게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방에서 6명이 찬송을 부르는데 어느 남자가 방에 들어오더니 성경을 빼앗아 다 찢어버렸습니다.
몹시 화가 났지만 참고 저는 거기 앉아있으면 안되겠기에 벌떡 일어나 뒷마루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들이 머리채를 잡으러 올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물러갈 줄 믿고 서 있는데
조금 있으니까 키 큰 여자가 마루를 지나 방에 들어왔습니다.
마귀형상을 띠고 “내가 저것 하나 못 이기겠냐?” 하며 달려오는데 두 발자국 앞에 놓고 제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거기 서 있어!” 하고 방언으로 한마디 기도하니 그 여자는 자리에서 뒤로 뻥 떨어졌습니다.
한참 있어도 머리채 끌고 나오질 않으니 남자들이 와서 보고 떨어져 있는 여자를 남자 네 사람이 팔다리를 잡고밖에 나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방언기도 한 마디에 저렇게 기절시켜 떨어뜨리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저들이 몰라서 그러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새벽 4시에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다시는 이런 데모 없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가니 핍박하고 반대했던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 능력이 나타나니 강 은숙이가 그 동네 사람들에겐 이상한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그렇게 데모가 끝나고 1988년 1월 5일 대 광 부락에서 성전을 마무리하고 입당예배를 드렸고 그날 밤 저는 하나님께 3일 단식기도 들어갔습니다.
“성령님께서 종을 통해 사역을 시작 하셨사오니 끝까지 지켜주시고 하나님 종으로써 깨끗하고 신실하게 오직 말씀과 능력으로만 사용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국내에 여섯 지부를 세웠지만 건축하지 못한 지부가 있고 한 지부도 하나님 이 주실 줄 믿습니다.
각 지부에서 예배드릴 때 존경하는 각 교회 목사님들께서 영 육 간에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 님들을 보내 주시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성령 충만 받아서 각 교회에 큰 일꾼이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저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두서없이 간증을 드렸습니다.
대구 재단에서 1년만에 하나님을 모르는 수 천 명의 불신자들이 찾아와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각 교회에 등록하며 전도합니다.
각 지부마다 손을 꼽는다면 얼마나 많을까요? 송 은순 집 사님 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허리디스크를 고쳤고,
그 딸이 결혼해서 아기가 있을때, 병원에서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
안수기도 받고 기적으로 정상아이가 되었습니다..
(송 은순 집사 053-982-4905)
주의 종님 대전교회 양 규만 목사님은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3번 산소통에 들어가 사경을 헤매 던 중 친구 목사님의 소개로 오셔서 4번 안수기도에 고쳐주셨습니다.
또한 수덕사 주지스님은 하나님 앞에 와 40년 된 천식을 고침 받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신유복음선교회 원장으로 맡겨 주신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1년이면 수 천 명씩 안수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종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들은 한 결같이 모두 다 전도에 열심을 다 하며, 각자 섬기는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 봉사하고 있습니다.
세계신유복음선교회는 하나님병원인 동시에 전도하는 하나님 교회입니다.
이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 도구로 사용할 뿐입니다.
예전에 철저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지금 권사님이 되셨고 시댁도 다 믿고 남편은 장로님이시고
온 가족이 구원받았으며 자녀들도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일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 또한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의 기도 덕 인줄 압니다.
앞으로도 하나님 능력으로 복음 들고 세계로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 전파하는 종이 되겠습니다.
필리핀 바기오에는 현재 4층 건물로 건축되어 2003년 4월 20일 봉헌예배를 드린 선교 센터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오시든지 주의 종 님들과 성도 님들을 무료로 모시는 방과 예배 실이 있습니다.
바기오는 휴양지이기 때문에 오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과 전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2005년도에는 인도에 신학교를 건축하고 많은 교회도 건축할 예정이며 현재 신학생 90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오고 갈 데 없는 연로하신 어르신들 잘 모시는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복지관을 주시어서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간증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세계신유복음선교회 원장 : 강 은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