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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온 몸을 휩싸는 강추위가 몰아치던 날, 대형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들어온 경기도 안양시 평촌 신도시, 선매청약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미리 목돈을 넣어서 분양 우선권을 얻어서 친신만고 끝에 아파트 청약에 성공을 하던 날, 천하를 다 얻은 듯 너무 좋아서 안식구와 부등켜 안고 눈시울 붉히던 일이 생각난다. 평생 내 집다운 집을 처음 갖게 되니 그럴 수밖에, 1976년에 결혼을 하고 면소재지의 시골, 작은 사글세방에서 시작하여 전세로 전전하며 얼마나 많은 내 집 없는 서러움을 겪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내 집을 장만하고 입주를 앞둔 1993년 가을 청소를 하러 가는 날, 처음 가는 길이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가는데 엄청난 시멘트 기둥이 바치고 있는 고가 도로를 지나니 작은 동산이 보이고 그 동산 나무 위로 언 듯 보이는 아파트 박공지붕이 마치 유럽 고성(古城을)의 이국적 풍경을 보는 듯 가슴이 설레였고, 아파트 14층에 들어서니 평촌 신도시의 제일 남쪽이라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이 바로 앞에 우뚝 솟은 모락산 단풍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즐겁게 청소를 하였던 기억과 12월 어느 날 마지막 청소와 손질을 하고 개봉동으로 가는 날은 함박눈이 쏟아지는 한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곧 새 집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추위도 아랑곳없고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렵게 내 집을 장만하고 12월 30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이사를 하였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내 집에 들어온 지도 어언 만30년. 재주도 없거니와 능력도 안 되고 이사 한 번 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이 드는지를 잘 알기에 기회가 있어도 모르는 척 편하게 눌러앉아서 살아온 지 벌써 30년이 다 되었다. 늙은이들의 특징이 과감하게 도전도 못하고 매사에 망설이게 되고 물건 하나라도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구석구석 쟁여두며 쌓다보니 30년 동안 쌓인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집을 옮겨야 할 상황이 되어서 짐을 미리 하나하나 정리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책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50년 전 젊은 시절부터 사 모은 세계 대백과 사전과 현대 한국문학전집, 고대 한국문학전집에 왕비열전 같은 전집으로 된 책을 먼저 버렸다. 그 외에도 단편집이나 각종 서적에 참고 자료와 전공과 관련된 책에다 국어 대사전을 비롯하여 즐겨 쓰던 작은 사전과 옥편 등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작은 손수레에 몇 번을 실어다 날랐는지 모를 정도로 양도 많고 무게도 보통이 아니다. 하루에 다할 수가 없거니와 몸 생각하여 쉬엄쉬엄 하자는 마음으로 하루에 두세 번씩 손수레를 끌었는데도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다. 책 정리하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몇 년 전에 인문학 여행을 같이 하던 충북대학교 교수로 퇴직을 한 김*경 교수가 전공서적을 비롯하여 가지고 있던 책을 정리하여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하니 받아 주지 않아서 아깝지만 그만 폐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침 일전에 조선일보에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해도 너무 많이 쌓였다면서 받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폐기하게 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요즘은 전자책이 대세요, 종이책은 옛 유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였다.
전집으로 된 책은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누가 필요한 사람 있으면 가져가라는 마음으로 쓰레기 무더기 옆에 따로 놓았더니 금방 없어진 것이 누가 가져갔구나 하는 생각에 그나마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이 갔다가 활용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 외에도 단행본 책들도 절반을 버렸는데 아마 가치로 따지면 수백만 원은 되지 않을까 하고 짐작을 해보았다.
살 때는 필요해서, 좋아서 월부로 수십만 원씩 힘을 다하여 샀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괜히 짐만 되고 이제는 호화 양장판 책을 거실에 진열해 두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던 시대는 빛바랜 유물이 되고 말았지만 지나간 그때를 생각하니 그냥 웃음이 나고 생활에 필요한 것만 간단하고 깔끔하게 하는 것이 훨씬 실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 다음은 사진을 정리하기로 하고 우선 50년 전 사진첩을 꺼내서 보니 이미 오래되고 낡았기도 하지만 지금 보니 별 것도 아닌 것을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하나 뜯어서 거의 다 버리고 사진첩은 저절로 부서져서 아무재도 쓸모없는 폐지가 되었고 앨범이 아닌 그냥 쌓아둔 사진도 정리를 하려고 보니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삶의 연륜과 비례하여 저절로 쌓이고 여기저기 들어 있는 것이 역시 하루에 정리하기는 벅차고 사나흘은 걸린 것 같다. 사진은 그냥 마구 버릴 수가 없어서 하나씩 찢다 보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여간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것이 아니다. 몇 시간을 하고 나니 갑자기 왼손 엄지와 장지에 쥐가 나서 그날은 그만 멈추고 말았다.
신발도 장난이 아니다. 넣을 곳이 부족하여 포개 놓은 것도 상당하고 아들딸이 신던 신발까지 수십 년 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신발을 정리하려고 손을 대는 순간 뒤 굽이 산산이 부서면서 바닥으로 쏟아져서 뒷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접착성이 있어서 바닥에 붙는 바람에 닦아 내느라고 한참을 애를 먹었다. 한두 번 신은 새 신발부터 몇 년을 신어서 굽이 닳은 것까지 정리를 하고 그 중에 아직 새 신발은 수거함에 넣고 또 지인에게 주기도 하면서 대충 정리를 하고 나니 신발장도 숨을 쉴 수 있을 같았다.
옷은 진짜 어려운 작업이다. 장속이나 진열장, 여지저기 구석구석에 들어 있거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과 장바닥에 고이 접어서 쌓아둔 옷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런 옷도 있었던가? 몇 년 가도 한 번도 안 입는 옷들이 대부분인데 비싼 돈 들여서 어렵게 장만한 옷, 안 입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버린다는 것이 너무 아깝기도 하고 정이 들기도 하여 참으로 선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작업이었다. 내 옷은 그렇다 치고 아내의 옷은 숫자나 양으로 볼 때 내 옷과는 비교가 안 된다. 시집간 딸의 옷도 한몫을 하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평소에 헌옷 수집함에 종종 갔다 넣기도 하고 경남 진영에 사는 큰 조카에게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속된 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남은 것은 몇 배가 되니 역시 하루 이틀에 정리하기가 어려운 작업이다. 수거함에 넣다가 너무 많아서 헌옷을 매입한다는 명함을 보고 전화를 하니 1kg에 400원이란다. 그래도 그냥 버리기가 아까운 옷들은 자루에 모아보니 두 자루가 되었다. 선별하는 데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버리기 아까운 옷을 모아보니 1차로 23kg으로 9,200원을 받았고, 이사를 한 다음 날 다시 정리를 하면서 모은 옷이 24,5kg에 10,000원 받아 버려질 쓰레기를 모아서 19,200원이라는 작지만 의미 있는 수입을 잡았다.
옷이 끝나고 주방에 쌓인 그릇들을 정리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데 내가 손을 댈 수가 없고 순전히 안식구의 선택에 맡겨야 하니 시간도 그렇지만 과감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는데 여자들의 섬세한 감성으로는 쉽지 않은 일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찬장 위아래의 수납장에 들어 있는 크고 작은 그릇과 칠기 세트와 플라스틱 통에 각종 컵들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크라스탈 컵과 유리그릇과 사기그릇은 자루에 넣어서 분리수거를 잘 해야 하고 무겁기도 하지만 깨질까 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각종 전리품을 정리할 차례다. 진열장 속에 펼쳐진 것도 많지만 보이지 않은 곳 상자나 장속이나 군데군데 들어있는 장식품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작은 그릇들이며 딸이 모아둔 인형이며 레고에, 그리고 주얼리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이 양도 양이지만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생각만 해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딸의 것은 딸이 정리해야 하니 보고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어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각종 패들도 받을 때는 의미가 있었고 감사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아무 곳에도 쓰일 데가 없는 그저 무게만 많이 나가는 거추장스러운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주방용품은 어떤가? 옛날에는 거실에서도 볼 수 있게 찬장에 그릇을 보기 좋게 진열해 놓고 호화양장으로 장식한 고가의 책장과 함께 자랑스럽게 꾸미던 시절이 그리워질 뿐이다. 시대가 변하기도 하지만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살아가는 패턴이 달라지니 우리의 인식도 큰 변화를 겪게 되고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대세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을 초대하여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던 풍습이 사라지니 큰 상도 무용지물이 되고 크고 작은 옻칠을 하거나 자개를 입힌 팔각 소반과 접시들도 이제는 기억 속의 옛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액자도 만만치 않은 것은 매 한가지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여행을 하면서 찍은 기념사진과 각종 행사 때 찍은 사진을 틀에 넣어서 벽에 걸거나 책장 위에 올려놓고 보던 사진틀과 그림 액자에 서예 족자는 유리가 들어서 무게가 있어서 힘들기도 하였지만 버리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이중 부담이 되는 것들을 정리하면서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것들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산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대형냉장고는 지인에게 헐값에 팔기로 했고, 식기 세척기는 3년 전 딸이 엄마 칠순 기념으로 100만원을 주고 사준 것인데 14만원에 팔았으며 세탁기는 그래도 오래 사요하여 많이 낡은 탓에 그냥 밖에 내놓았으니 폐가전 수거하는 사람이 가져가면 다행이고 카세트 기기와 라디오는 유행을 타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고 보니 지금은 테프를 듣거나 사용할 기회도 없고 중요행사나 여행하면서 찍은 동영상 테프도 볼 수 있는 기기도 없어지고 세월이 지나고 나니 관심 밖에 버려진 처지가 되어 그냥 버리자니 아깝지만 용기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구를 정리하였다. 집안에서 제일 큰 덩치를 자랑하며 안방을 차지하고 버티던 여섯 자가 되는 옷장, 30년 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새 집에 들어가니 옛날 가구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새 옷장을 280만원이나 주고 드린 것을 30년 썼지만 멀쩡한 것을 딱지를 붙혀 내놓으며 일 년에 일 만원씩 치었다며 안식구와 지난 일들을 회고하며 웃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북박이장과 설합장, 진열장에 문갑과 크고 작은 가구도 버릴 것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수십만 원을 주고 맞춘 책상도 두 개나 버려야 하고 가구는 버리는데 처리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몇 개는 비용을 드려서 미리 버렸지만 큰 것들은 비용이 얼마나 들는지 모르는데다 운반하기도 힘들어서 이사하는 날 사다리차로 내려 버리면서 그동안 짬짬이 버리면서 든 비용을 제하고 170,000원이라는 큰 비용을 부담하였다.
버린 것도 많지만 넓은 집에 와서 펼쳐놓으니 무엇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괜히 여지 저기 기웃거리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제대로 정리를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사의 힘든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하게 된 이사 정말로 자주 할 건 못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으로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온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어떻게 다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한 번씩 과감하게 정리를 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내 나이를 생각해도 미련 없이 훌훌 벗어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모든 것이 쓸데없고 결국에는 버려질 것들인데 지금까지 무엇이든지 움켜쥐고 쌓기만 하고 버리거나 베풀지를 못했던 지나온 한 평생의 삶이 새삼 그려지는 것 같아서 가만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30년 만의 큰 변화를 겪으며 지나간 일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이사의 힘든 현실을 체감하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이 가득찬 병에는 물을 담을 수 없고 빈병이라야 물을 담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득하면서 가지려고만 하지 말고 마음도, 물질도 조금씩 비우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되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