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카를교 얀 넵포묵 마로니에
신화가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유럽의 게르만족은 북유럽 발트해가 기원이고 동유럽의 슬라브족은 선사시대 아시아가 기원이다. 이 슬라브계 민족의 건국신화이다. ‘레흐’, ‘체흐’, ‘루스’ 삼 형제가 사냥을 나가 헤어졌는데, 레흐는 서쪽 폴란드, 체흐는 남쪽 체코, 루스는 동쪽 러시아에 정착하여 종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데 폴란드는 레흐가 첫째, 체흐가 둘째, 루스가 셋째이며, 체코는 체흐가 첫째 레흐가 둘째, 루스가 셋째이다. 또 러시아는 루스가 첫째, 레흐가 둘째, 체흐가 셋째이니, 다 자기 조상이 첫째이다.
체코의 역사가, 작가, 성직자인 코스마서(1045~1125)는 ‘보헤미아인의 연대기’에서 8세기에 ‘크록’ 공작의 셋째 공주 ‘리부세’가 농부 ‘프르제미슬’과 결혼하여 블타바 강변에 성을 세워 프르제미슬왕조를 열었고 12세기 보헤미아왕국, 20세기 독립국가 체코가 되었다고 했다.
중국은 진나라 영정이 소국을 통일 ‘황제’가 되었다. 또 동이배달족은 인류의 시조 ‘나반과 아만’ 후손이 바이칼호수에서 톈산, 아무르강으로 이동했다는 ‘환단고기’ 기록이다. 환국 환인천황 3,301년, 배달국 환웅천황 1,565년, 단군의 47세 천황 2,096년이 그것이다.
체코는 부족 이름 ‘체히’이다. 체히는 첫 조상 ‘체흐’에서 나왔으니 민족이 곧 나라인 셈이다. EU 회원국이지만 유로화가 아닌 체코 화폐 코루나(Kourna)를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체코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리고 프라하 구시가지의 ‘카를다리’를 건너 프라하성과 마주 보는 곳의 ‘스트라호프 수도원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1143년에 세워져 3천여 권의 초판, 30만여 권의 책이 있다.
1층 신학의 방에는 책을 손에 든 ‘사도 요한’의 목상이 있다. 천장에는 ‘시아르드 노세츠키(1693~1753)’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2층은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중세의 법학, 역사서가 있는 철학의 방이다. 이곳 천장에도 환상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성 얀 넵포묵’은 1340년 무렵 보헤미아 서부 ‘넵포묵’ 고을의 촌장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름이자 가문 이름 ‘얀 벨플린’ 대신 ‘넵포묵에서 온 얀’이라 했다. 프라하의 ‘카렐 대학교’와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1383~1387)에서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393년에 프라하 대교구 ‘얀 젠슈타인’ 대주교의 총대리에 임명되었다.
당시 독일 및 보헤미아 국왕 ‘바츨라프 4세’는 그리스도교도였으나 포악했다. 얀 넵포묵은 바츨라프 4세의 두 번째 왕비 ‘소피’의 고해신부였다. 왕은 얀 넵포묵에게 왕비의 정부 이름을 대라 했으나 거절하고 마지못해 옆의 개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 일에다 ‘클라드루비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선거에서 왕의 뜻을 거역한 죄로 1393년 3월 20일 얀 넵포묵은 혀가 잘리는 고문 뒤, 머리와 발이 구부려져 묶여 산 채로 블타바강에 던져졌다. 얼마 뒤 다섯 개의 별빛과 함께 강 위로 시신이 올라왔고 어부들이 프라하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모셨다.
프라하 블타바강의 카를교는 1402년 카를 4세가 세운 석조 다리로 1841년까지 프라하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여기 여러 성인의 석상이 있는데, 그중 얀 넵포묵의 석상 아래 동판의 강아지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충성하길 바라는 소원’, 소피 왕비는‘프라하로 돌아오겠다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나그네들의 기원 대상이다.
이 카를교에서 프라하성으로 가는 다리 끝 가까이 아름드리 마로니에가 아직 푸른 열매를 달고 있다. 만 리 먼 길 낯선 나그네가 마로니에 나무를 보다가 문득 여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에 카를교 얀 넵포묵 석상 아래 동판으로 소원을 빌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