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는 딸에게. (그러나 보내지 못한 편지)
사랑하는 딸 정아야! 요즈음의 나는 너를 생각할 때가 많단다. 여행을 할 때도, 등산을 할 때도, 일터에서 혼자 조용히 있을 때도 너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단다. 너는 얼마 있으면 결혼을 해야 하고 어리광 부리면서 익숙하게 살아왔든 집을 떠나게 되고 전연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되니 얼마큼은 두렵기도 할게다. 또한 달라진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희망과 즐거운 기대도 하고 있을게다. 그 옛날 너의 어릴 때의 추억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 첫째딸은 살림밑천이란 속담도 있듯이 네가 참으로 든든했고 자랑스러웠다. 너는 엄마 아빠의 한없는 사랑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그 어려운 대학을 큰 말썽 없이 무사히 졸업했고 생소하고 거칠고 벅찬 사회생활을 하면서 취직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볼 때면 애비의 마음은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단다. 특히 아나운서가 되려고 하는 너를 태우고 새벽 일찍 여의도 까지 데려다 준적도 있고, kbs 이차에서 낙방한 너를 mbc 충주방송국까지 밤새워 달려간 기억이 새롭구나.
어릴 때의 너는 귀엽고 예쁘게 자랐고 너의 재롱은 엄마 아빠를 즐거움과 행복감에 세월 어려운줄 모르게 했다. 맑고 밝은 성격과 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정감어린 너의 분위기는 동생들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고 든든한 보호자도 되었을 게다.
그러고 보니 네가 갓 태어났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아빠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방긋방긋 웃는 예쁜 딸이 빨리 보고 싶어 남들이 안 볼 땐 겅중겅중 반은 뛰면서 귀가하든 생각이 나는구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커다란 기쁨은 사람들이 보는 부끄러움도 몰랐단다. 그러나 그렇게도 좋은 너와의 밀월관계가 요즈음은 어쩐지 서먹서먹해 진 것 같아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단다. 물론 결혼을 앞둔 처녀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이겠지만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나면 너 보다도 아버지 어머니가 더 걱정이 많단다. 처음 닥친 큰일에 대과(大過)없이 대사(大事)를 잘 치를 수 있을지, 또 혼수비용은 너무 각박해서도 안 되겠기에 돈 마련할 걱정에, 그리고 네가 시부모님 눈 밖에 나지 않고 시집살이는 잘 할 수 있을지……. 딸을 가진 부모는 모든 게 마음이 쓰인단다. 낭군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귀엽고 복스러운 색시가 될 수 있을지, 시집 친족들 하고의 인간관계는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끝없는 상념(想念)이 안개처럼 앞서게 된단다.
이제 며칠 있으면 너는 시집을 가게 되고 아버지의 가정교육도 끝나게 된다. 아버지 밑에 있을 때엔 엄한 훈육도, 모진 꾸중도 할 수 있었지만 시집을 가게 되면 애비의 보살핌은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 시부모와 신랑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게 여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시집가는 딸에게 몇 마디만 일러두마. 낭군과 시부모님의 말씀을 우선 존중해 주고 잘 따르도록 해라. 혹자 잘못 교육받은 요즈음 젊은 애들은 남녀평등이니, 여성 상위시대니 하고 잘못 사상을 받아들여 자기주장을 앞세우다 보면 그 집안은 언제나 시끄러워지고 자기의 위치도 불안해 진단다. 똑똑하고 현명한 너는 물론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아버지가 노파심에서 말 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항상 최선을 다 하되 언제나 공손하고 친절하여라. 이때까지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만사에 적극적이고 밝고 활기차게 낭군을 보필하고 가정에 웃음이 항상 따르도록 하여라. 자기 의사는 개진하고 의논은 하되 최종 결정은 언제나 남편이나 시부모님이 하시도록 양보하고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여라.
여자란 잘 났다고 떠들면 떠들수록 더욱 못나 보이고 가련해 보이니라. 이건 절대로 보수적이고 케케묵은 한물간 세대가 하는 말만은 아니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처녀 때의 이상과 자존심은 접어두고 새로운 적성과 인격을 보태야 한다.
애비가 특히나 너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범사(凡事)에 감사하고 만사(萬事)에 겸손 하는 마음가짐이다. 이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참으로 소중히 지켜야 할 아낙네의 덕목(德目)이니라. 이것을 잘 이행 한다면 그런대로 행복한 일생을 가질 수 있고 훌륭한 인품으로 주위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주부로서 생활을 하다보면 재정적으로 궁핍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비관 하거나 짜증을 부리지 말도록 하여라. 실패가 없는 인생이 없듯이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하게 되고 어려울 때도 있단다. 특히 ‘젊을 때의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속담도 있듯이 젊었을 때의 시련은 그 사람을 성숙 시키고 진보시키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헤쳐갈수 있을게다. 인생은 대체로 공평해서 젊었을 때의 고생을 잘 참는 사람은 늙어서 편하고 만족스러운 성취감을 맛보게 된단다. 젊을 때 만사가 잘 풀리고 어려움을 모르고 산 사람은 어느새 교만해 지고 나태해져서 나이 들어선 참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아버지는 많이 보아 왔다. 어려움을 잘 참고 꾸준히 자기 일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은 인생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된단다.
사랑하는 딸 정아야! 이제 아이 부르듯 너의 이름도 앞으로는 그렇게 마음대로 부르지 못할 것 같구나.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 ‘xx어멈’이라고 부르거나 "어미야."하고 조심스런 언어로 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딸아! 아버지의 노파심은 끝이 없을 것 같지만 한 가지만 더 당부하마. 언제나 공부를 하여라. 사람은 일생을 공부 하면서 살아야 세상에 뒤 떨어지지 않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물을 바르게 이해하는 힘이 생긴단다. 밤낮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보고 책 한권 읽지 않는 주부가 된다면 매우 딱한 인생이 될 것이니…….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앞둔 친정 애비의 노파심에서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구나. 내 사랑하는 딸아! 이만 줄인다.
memo: 이렇게 써 놓기만 하고. 그러나 정작 본인에게는 주지 못했다. 다만 서울 삼성동 모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끝내고 가족 친족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사돈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부터 나오든 눈물이 복잡한 시내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올 때까지 눈시울을 연방 닦았든 기억이 난다. 그때만큼 펑펑 눈물을 흘린 적이 또 있을까. 왜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지 지금도 모른다.
지금은 아이 둘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애비로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을 마치 낙서하듯이 일기노트에 적어 놓은걸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여기 옮겨둔다.
첨언: 실버넷뉴스에서 공모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좋하는 분들에게 알리는 것이니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자상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아! 눈물이 납니다.
살아간다는것이 다 들 '보내지 못한 편지'를 가지고 있을테지요 .
석계님 금상을 축하 드립니다!
로지님, 감사합니다.
요즘도 공부하시느라 힘 드시겠습니다. 그러나 향학열은 로지님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10월29일 토요일 코엑스로 유니실버 회원님들이 많이 오시면 좋겠습니다.
모처럼 만나 번개모임도 하시고 오래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부모 품을 떠나는 딸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바해는 딸래미를 얻지 못해서(까닭은 기술부족 ^^)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프레스기계를 딸래미로 여기며 시집갈 딸아이의 아버지 마음이 되어 보곤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외 곳곳에 사돈들이 많답니다... 하하.. [답글참조]
제 결혼식날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서
가슴 속 깊이 진한 눈물 흐릅니다.
저는 딸 삼아 며느리 삼아 이쁜 손녀랑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