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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15:11
어떨 때 인간은 인간애와 연민을 잃은 비정한 인간이 되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보다 자기주장을 앞세우게 되는가? 인간은 본질보다 '사상과 주의'에 사로잡혀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행할 때가 아닐까? 신앙의 본질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제자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공주야! 둘째 아들이 아버지 품을 떠나겠다고 요구하자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에게 유산을 상속하고 상속한 재산을 처분할 권한까지 부여한다. 이 아버지는 참으로 무력하게 보이기도 하고 아들을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배반할 자유를 주는 이 아버지의 의도는 무엇일까?
When do humans become heartless humans who have lost humanity and compassion? Are you putting your assertions ahead of God's heart? Isn't it the time for humans to be obsessed with and dominate rather than essence? What does it take to restore the nature and humanity of faith and live as disciples? Princess! When the second son demands to leave his father's arms, the father even grants both sons the authority to inherit the inheritance and dispose of the inherited property. This father appears to be very helpless and seems to have given up his son. What is the intention of this father to give him the freedom to betray him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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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은 유산 상속 재산의 처분 권한을 요구한다. 이는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말과 같을 만큼 큰 불경으로 간주되었다.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상속받은 재산을 헤프게 다 탕진하고 나서야 자기 죄를 보았고 아버지 집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갚아줄 맘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조건 없는 환대를 경험하고는 아버지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맡긴다. 아버지가 잔치를 베푼 것을 알면서도 큰아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장자의 도리대로 손님들을 접대하지 않는다.
The second son demands the right to dispose of the inherited property. This was regarded as a big blasphemy, like saying that he wanted his father to die soon. It wasn't until the son went to a distant country and wasted all his inherited property that he saw his sins and realized the importance of his father's house. At first, he returned to his heart to pay off his father's property, but after experiencing his unconditional hospitality, he left him to himself as he was. The eldest son does not enter the house and entertain the guests at his eldest son's discretion, even though he knows that his father gave him a f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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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다. 돌아온 동생을 위해 배설한 잔치라는 말을 듣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에 분노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문지방을 넘어서 설득하는 아버지마저 거절한다. 도리어 아버지를 자신에게 고된 일만 시키는 인색하고 고약한 고용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집 안에 있던 탕자였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베푼 사랑은 조건 없는 헤픈 사랑이었다. 초라하게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알아보고 먼저 측은하게 여겨주고 먼저 달려가 맞아준다.
Even while living in his father's house, he did not trust his father. When the eldest son hears that it is a feast excreted for his younger brother who has returned, he is angry at his father's excessive love and does not enter the house. Even the father, who persuades him beyond the threshold, refuses. Rather, he made his father a stingy and nasty employer who only gives him hard work. He was a prodigal son in the house. The father's love for the second son was unconditional and generous. He recognizes the son who returns shabby first, treats him first, and runs first to greet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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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통해 자격 없는 아들을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회복해준다. 방탕한 아들이 절대 갚을 수 없는 도에 넘치는 이 허비하는 사랑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며, 죄인의 사죄를 냉소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동생을 위해 베푼 잔치를 거절한 큰 아들을 맞이하려고 문지방을 넘는다.
Through a feast, he publicly restores his unqualified son in front of the local people. This wasted love, which is overflowing with excess that a prodigal son can never repay, is the love we received from God today, and it is the love that shame religious leaders who cynically criticized the sinner's apology. The father crosses the threshold to greet his eldest son, who refused to give him a feast for his younger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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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이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친히 손님을 맞이하지 않는 것만으로 아버지는 이미 큰 수치를 당했는데, 아들을 설득하러 문 밖으로 나가면서 다시 한 번 수치를 자청한다. 그는 아들을 크게 꾸짖고 벌하는 대신 간곡하게 설득한다. 이것이 우리를 살리려고 아들을 육신의 몸을 입혀 보내시고 십자가의 수치에 넘겨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다. 죄인을 살리는 제자로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The father has already been greatly humiliated for his eldest son's failure to attend his father's feast and greet guests in person, but he volunteers to be humiliated once again as he goes out the door to persuade his son. Instead of scolding and punishing his son loudly, he earnestly persuades him. This is the love of the heavenly father who sent his son in a flesh body suit to save us and handed him over to the shame of the cross. What is necessary to live as a disciple who saves si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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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정국을 어떻게 벗어나갈 것인가?
나는 내 공로를 내 세우며 항의하지 않았는가?
내 성품과 마음 씀씀이는 어떠한가?
How will you get out of the fog situation?
Didn't I protest by giving my services?
What about my personality and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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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등장하는 또 하나의 비유(11-12)
재산을 정리해 타국으로 떠나는 작은 아들(13)
작은 아들의 비참한 생활(14-16)
제정신을 차리는 작은 아들(17)
아들의 독백(18-19)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작은 아들(20-21)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라고 명하는 아버지(22-23)
아버지의 기쁨(24)
큰 아들의 등장(25-26)
상황을 설명하는 종(27)
화가 난 큰 아들(28-29)
큰 아들 눈에 비친 작은 아들(30)
큰 아들의 변하지 않는 지위(31)
새로운 관점의 변화(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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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라사대(11a)
어떤 사람이(11b)
두 아들이 있는데(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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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째가(12a)
아비에게 말하되(12b)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12c)
내게 돌아올 분깃을(12d)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12e)
아비가 그 살림을(12f)
각각 나눠 주었더니(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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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며칠이 못되어(13a)
둘째 아들이(13b)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13c)
먼 나라에 가(13d)
거기서 허랑방탕하여(13e)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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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없이한 후(14a)
그 나라에(14b)
크게 흉년이 들어(14c)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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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15a)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15b)
붙여 사니(15c)
그가 저를(15d)
들로 보내어(15e)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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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16a)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16b)
배를 채우고자 하되(16c)
주는 자가 없는지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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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스스로(17a)
돌이켜 가로되(17b)
내 아버지에게는(17c)
양식이 풍족한(17d)
품 군이 얼마나 많은 고(17e)
나는 여기서(17f)
주려 죽는 구나(1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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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나(18a)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18b)
아버지여 내가(18c)
하늘과 아버지께(18d)
죄를 얻었사오니(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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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19a)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19b)
감당치 못하겠나이다(19c)
나를 품 군의 하나로(19d)
보소서 하리라 하고(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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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어나서(20a)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20b)
아직도 상거가 먼데(20c)
아버지가 저를 보고(20d)
측은히 여겨(20e)
달려가 목을 안고(20f)
입을 맞추니(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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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가로되(21a)
아버지여 내가(21b)
하늘과 아버지께(21c)
죄를 얻었사오니(21d)
지금부터는(21e)
아버지의 아들이라(21f)
일컬음을(21g)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2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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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22a)
제일 좋은 옷을(22b)
내어다가 입히고(22c)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22d)
발에 신을 신기라(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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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진 송아지를(23a)
끌어다가 잡으라(23b)
우리가 먹고 즐기자(2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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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아들은(24a)
죽었다가(24b)
다시 살아났으며(24c)
내가 잃었다가(24d)
다시 얻었노라 하니(24e)
저희가 즐거워하더라(2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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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은(25a)
밭에 있다가 돌아와(25b)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25c)
풍류와(25d)
춤추는 소리를 듣고(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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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을 불러(26a)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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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되(27a)
당신의 동생이(27b)
돌아왔으매(27c)
당신의 아버지가(27d)
그의 건강한 몸을(27e)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27f)
살진 송아지를(27g)
잡았나이다. 하니(2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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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노하여(28a)
들어가기를(28b)
즐겨 아니하거늘(28c)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2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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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29a)
내가 여러 해(29b)
아버지를 섬겨(29c)
명을 어김이 없거늘(29d)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29e)
나와 내 벗으로(29f)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2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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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살림을(30a)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30b)
이 아들이 돌아오매(30c)
이를 위하여(30d)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3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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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르되(31a)
얘, 너는 항상 나와(31b)
함께 있으니(31c)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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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동생은(32a)
죽었다가 살았으며(32b)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32c)
우리가 즐거워하고(32d)
기뻐하는 것이(32e)
마땅하다 하니라(3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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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_A prodigal son who left home and came back
집 안에 있는 탕자 큰아들_The eldest son of the prodigal in the house.
아버지의 헤픈 사랑_Father's eas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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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회개란 내 자격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아버지 됨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아빠 된 지 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짝퉁 아빠가 여기 있사오니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강한 자는 약한 자가 곤궁에 처했을 때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충성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인애라고 배웠지만 인애는커녕 약육강식에 익숙한 제가 바로 큰아들 입니다. 죄인이 받은 은혜를 보며 화가 나는 탕자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제 안의 질투와 항의로 인한 분이 사그라지게 도와주옵소서.
Lord, repentance does not appeal to my qualifications, but to be the father of my father. Please be sorry for my fake father, who has been a father for 30 years but still can't understand his heart. The strong were taught that it is in love to voluntarily show loyalty and love even though the weak were not obliged when they were in trouble, but I am the eldest son who is familiar with the weak, not with love. Is there a prodigal here who is angry at the grace a sinner has received? Feel sorry for me and help the person who caused my jealousy and protest to fade away.
2025.3.26. Cl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