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수스 여행5 - 타르수스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문을 보고 옛일을 회상하다!

5월 22일 가지엔텝에서 버스로 아다나를 거쳐 타르수스 Tarsus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사도 바울 의(St. Paul) 의 집터 Antik Sehir 와 우물 St Paul Kuyusu. 을
보고는.... 성 바울 광장 St. Pauls Meydani 을 지나 동상들이 늘어선 거리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나무가 우거진 거리를 한참 걸어서 드디어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기마상 을 지나 저 너머에 허물어지다만 오래된 돌로 된
성문 클레오파트라의문 Kleopatra Kapısı (Cleopatra’s Gate) 을 봅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가 2천년전에 배로 지중해를 건너 키드누스 강을 거슬러 올라와
타르수스 에서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지배했던 안토니우스 를 만나 사랑하게된 것을
기념해 세웠다는데, 한때 킬리키아문, 사도 바울의문, 매춘부의 문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휘황찬란한 장식을 한 거대하고 화려한 배 가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는 구름같이 모여든
군중 앞에서 보석과 진귀한 음식 에, 몸으로 안토니우스 를 사로잡았으니 시민들은
아시아의 행복을 위해 아프로디테 가 디오니소스와 축제 하러 왔다고 수군그렸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 에 의하면 BC 41년 클레오파트라는 보라색 돛에 은으로 된 노를 젓는 배에 황금
을 싣고 금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큐피드 화살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누운 아프로디테 가
입항해 내릴때는 달콤한 향수냄새 가 진동하니 타르수스는 구경꾼으로 텅 비었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 는 이집트의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으로 카이사르 와
인연을 맺고 왕위에 복위 하였으며 안토니우스 와도 타르수스에서 인연 을 맺어
결혼 하였으니 두 로마의 영웅을 조종 하여 격동기의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갑니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 로 BC 51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공동 통치 하다가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BC 48년 이집트에 와 있던 카이사르 를 농락하여 인연을 맺고 남편이 카이사르와 전투중에
전사 하자 BC 47년에는 막내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재혼하여 공동 통치 합니다.

카이사르 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낳아 카이사리온 이라 했는데 빈객으로 로마 에 가서
로마제국의 황후 가 되려고 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이집트로 돌아왔으며
BC 37년 옥타비아누스와의 협조가 결렬된 안토니우스는 재차 그녀 앞에 나타나 결혼합니다.

BC 34년 안토니우스는 그녀에게 로마의 전체 속주를 주었으니 격노한 옥타비아누스 와
BC 31년의 악티움 해전 이 벌어지는데 그전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에페소스 에서 전쟁 준비를 마치자 사모스 섬과 아테네를 돌면서 축제 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서부 코린트 만에 있는 해군기지 파트라에 야영지 를 마련한후 북상해
또 다른 해군 기지인 악티움 으로 이동했는데 대규모의 이집트 함대 가
정박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니 옥타비아누스의 도전 을 기다리며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배가 3단 노선 위주인데 비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함선은 5단 노선
이 대부분이라 크기에서 비교도 안되고 규모도 컸을 뿐만 아니라.... 잘 훈련된 데서
자신만만했으나 아그리파 가 지휘하는 옥타비아누스 함대 전투선들이 빠른 기동력 을
갖춘데다 뱃머리에 충각 을 장착하였으며 화약 무기 까지 갖춘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지요?

BC 31년 9월 2일 빠른 속도 를 자랑하는 옥타비아누스의 전투선단과 육중한 안토니우스의
선단이 악티움에서 결전 을 벌이니 안토니우스 함대는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공격해오는
옥타비아누스 선단을 당해내지 못하는데 주변의 섬마저 옥타비아누스 함대가 점령 합니다.

포위되면서 군수품 보급을 받을수 없게 된 안토니우스 함대는 힘을 잃기 시작하자 정면으로
옥타비아누스 함대를 돌파하여 포위망을 뚫으려고 했으나 아그리파의 기만전술 에
빠진 안토니우스의 전투 선단은 옥타비아누스의 전투 선단에게 격파 당하기 시작합니다.

전장에서 불길이 솟고 배가 부숴지자 공포에 질려 일개 아녀자로 변해버린 클레오파트라
는 선단을 이끌고 빠져나와 이집트로 향하자 안토니우스도 전투를 포기하고
그녀를 쫓아가니 지휘관이 도망친 함대는 적에게 투항 하기 시작했으며... 육군도
닷새나 안토니우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언덕에서 버티다가 결국에는 항복합니다.

옥타비아누스군이 알렉산드리아 까지 추격해 오자 안토니우스 는 기원전 30년 8월 1일
새벽에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떠나 옥타비아누스 함대를 향해 용감하게 나아갔으나....


이집트 함대 는 노를 위로 들어올려 항복했고 안토니우스의 기병대 도 그를 버리고
도주했으며....... 얼마 남지 않은 보병대는 한번 패하자 금세 흩어져 버립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벌린 거짓 연극 에 속아 혼자 목숨을 끊자 이제 38세의
여인은 옥타비아누스를 유혹 하려고 했으나 이미 중년이 다된 그녀의 몸은
옥타비아누스를 녹일 수 없었으니 로마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자살의 길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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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는 단 한번의 공격으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코브라 로 하여금 자신의 유방을
물게 만들어 자살했다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의사와 의논하며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해
코브라의 독 으로 고통 없이 가장 깨끗하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클레오파트라 를 물어 죽인 코브라는 하이집트 신 의 상징이었으며 태양신 아몬-라 의
대리자의 표상이었으니 코브라로 하여금 자신을 물어 죽게 한 것은 그녀가
신성과 불멸의 지위 를 획득하여 신의 대열 에 끼여들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집니다.


그녀는 용모와 자태에 있어서 여성적 매력 과 수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두 사람 로마의 영웅을 자유자재로 조종 하여 격동기
이집트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간 능력이 출중한 여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는 문학 작품의 좋은 소재로서 예전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안토니우스전”과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있으며.....
근세에 와서 쇼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등이 유명하며 여러차례 영화화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열대 나무 가 늘어선 거리 구경을 하는데 비둘기 가 밀집한 전각이며
여러 종류의 곡물이며 잘 말린 과일 을 보다가 말린 대추야자 를 조금 삽니다.



거리에 독일제 고급 승용차 에 붉은 리본 을 묶은 것을 보면 이 나라도
결혼한 신랑신부 는 이런 세단을 타고 거리 행진 을 하나 봅니다.



그러고는 축구 중계 를 하는지 남자들이 많이 몰려있는 어떤 가게로 들어
가는데 살펴 보자니 축구는 아니고....... 사설 경마장 인가 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마권을 사서는 경마 를 하는데 저마다 손에 마권을 쥐고는
자기가 산 말이 달리는 모습을 응원 하는 모습이 자못 처절(?) 합니다!


다시 길을 걸어 여러 종류의 사탕이며 과자 그리고 순대(?) 등을 파는
가게를 지나 광장 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골목에 밖으로 내어놓은 탁자 에서는 무슨 서양장기 체스 인지 아님 윷놀이 비슷한
주사위 놀이 를 하는 사람을 거쳐 우리 호텔을 지나 오래된 비잔틴 교회 를 구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