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굿이 / 산문 / 박상주
모처럼 비가 온다.
농부들 쉬는날 비요일,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분다.
고개넘어 친구가 닭을 많이 가져왔다. 집 뒤 하우스에서 옻나무를 넣고 옻닭을 해 먹기로 했다.
귀촌해 살고 있는 신용대와 대추나무 농장을 하는 김창복이도 불렀다.
도로 옆에 있는 우리 집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쉼터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나무 난로에 불을 피워 놓고 고스톱을 치다 보니 한나절이 다 되어 간다.
아내는 옻나무를 듬뿍 넣고 옻닭을 끓였다. 양파와 갖가지 양념을 넣어 만든 옻닭에 김치와 반찬 몇 가지가 더해지니 점심상이 푸짐하다.
밖에는 비가 흩날리고 바람도 불어 서늘하다. 그러나 하우스 안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후루룩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고 부드러운 닭고기를 씹으며 소주 한 잔을 나눈다. 허름한 시골 사람들 사이로 정이 오간다.
딱 부러지게 똑똑한 사람이 최고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조금은 부족해 보이고 허점도 있는 사람들, 남이 뭐라고 해도 은근한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아무 조건 없이 닭 몇 마리를 가져오는 친구가 있고, 내가 먼저 소주 살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귀찮지만 우리 집에서 삶아 줄게요, 하는 아내가 있어서 더욱 좋다.
닭다리를 한입 물고 우물거리면서 코미디 같은 말 한마디를 날리면 또 누군가 받아친다.
티끌이 많은 사람들처럼 보여도 해맑고 친근한 웃음이 정든 시골 풍경을 만든다.
"어제 저기 살구마을 김 뭐더라, 거식이 말이야. 그 사람 기계톱으로 나무 자르다 넘어지면서 다쳤대."
"뭐? 아이고, 많이 다쳤나?"
"글쎄, 무릎을 다쳤다는데."
"큰일이구먼. 농사는 크게 벌여 놓고 어찌하나? 농사도 4만 평이나 된다고 하던데."
"그건 그렇고, 저기 장터 건너 마을 옥선이라는 여자는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면서?"
"바람은 무슨 바람. 그냥 집에서 야단을 크게 맞고 집을 나간 거여."
"동네에 자주 오던 옷 장사 그 젊은놈하고 눈이 맞았다는데?"
"정말 그런가 보네. 허허허. 바람나면 좋지 뭐.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 가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동네 뒷산을 넘어 개울 건너 산골로 들어갔다 나오는 이야기들이 온 세상을 날아다니며 곳곳을 들락거린다.
서울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뉴스에 오르내리며 보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시골의 말 없는 뉴스는 또 다른 웃음과 이야기를 낳는다.
봄이 되면 퇴비를 내느라 쇠똥 냄새와 구수한 거름 냄새가 동네를 덮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지나간다.
어쩌다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푸념을 해도 시골 사람들은 말한다.
"그게 시골 아니여?"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식하고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살이란 원래 그런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농사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오가는 정보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알다가도 잊어버리고, 잊었다가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농사일이다.
지난해에는 무엇을 심었더라. 올해는 얼마나 심어야 할까.
대충 알고 있는 일인데도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모처럼 비가 내리는 비요일.
친구가 가져온 닭 몇 마리에서 시작된 하루가 웃음과 이야기로 채워진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