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재생과 지역기반 공동체복지의 거점, #공동체주택
더함플러스협동조합 김수동
피로사회, 잉여사회, 대리사회, 무연사회, 격차고정사회... 사회학자들이 이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다. 노후파산, 가족의 파산, 무연사회, 즉 돈도 없고 가족도 없어 혼자 살다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초고령사회 일본의 이야기로, 이미 우리에게도 시작된 불안한 미래이다.
칼 폴라니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악마의 맷돌’이 쉼 없이 돌아가는 위험사회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그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끝에서 마을공동체가 위험사회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한 마을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이 먹거리 문제, 교육 문제, 돌봄 문제 등 한 가족만 열심히 노력해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을 연대해서 풀어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수년간 여러 지자체에서 행정의 지원을 지렛대 삼아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을 비롯하여 수도권의 도시지역 마을공동체는 얼마나 형성되었을까?
아쉽지만 그 결과는 매우 미약하다. 마을공동체라는 것이 주민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난 6~7년간 행정이 주도하여 큰 규모의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것을 생각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많은 예산과 인력,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그 이유로 지목한다.
- 정착하지 못하는 도시인
- 주민주도를 이끌어 나갈 주체의 부재와 커뮤니티 공간의 부족
- 어설픈 공공의 개입과 자금의 투입이 오히려 공동체 형성을 저해
상황이 이러다 보니 우리는 마을공동체의 성공사례를 들라고 하면, 여전히 성미산마을 이야기를 고장 난 녹음기 마냥 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성미산마을이 성공적인 마을공동체로 성장하고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물론 지금의 성미산마을을 몇 가지 단편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요인을 들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의 등장을 그 이유라고 말할 것이다.
소행주의 등장으로 주민들은 더 이상 외부적인 요인으로 마을을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 정착한 소행주의 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을 거점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협력하며, 마을의 주체로 성장해 나간 것이다.
소행주의 사례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정주하는 주민과 거점 공간의 확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씨앗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이야기를 풀어보자.
먼저 사람이다. 우리는 이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 온 은퇴세대를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가진 게 ‘집’ 밖에 없는, 아파트에 담보 잡힌 인생 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곧 노인세대 진입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노후파산과 관계빈곤(노후의 사회적 고립)이다. 공동체주택은 바로 이들에게 노년의 안정적 주거와 새로운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훌륭한 주거대안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자산으로써의 집’, ‘내 집’이 아닌, 인생 후반의 삶을 터무니없이 떠돌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자리 잡고 사는 ‘우리의 집’으로 아파트에 담보 잡힌 인생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다.
공동체주택은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미니멀하우스(최소의 집)이다. 자산이 아닌 순수한 주거 목적의 ‘집값 걱정 없는 집’이다.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살아 있고, 함께 살아야 할 뚜렷한 목적이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이다. 우리는 공동체주택을 통해 최소의 집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공동체주택의 공간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주택이 다른 빌라나 다세대주택 등과 구별되는 유일한 물리적 특성은 바로 별도의 ‘커뮤니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커뮤니티공간은 공동체주택 입주자는 물론 마을 주민을 향해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커뮤니티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입주민과 마을주민들의 다양한 모임과 소소한 작당이 이어질 때, 공동체주택의 주민은 마을공동체를 이끄는 핵심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필자가 살고 있는 공동체주택 ‘여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백은 30대에서 60대, 1인가구와 부부가구, 3대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10세대가 모인 공동체주택이다. 여백은 늘 힘들고 불안한 도시의 주거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협력적으로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원했던 사람들이 모인 생활공동체이다.
전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는 2015년초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공동체주택 입주자모집을 통해 만났으며, 이후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공동체를 이루어 갔고, 집짓기를 병행한 끝에 2016년 8월 지금의 여백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의 집터를 잡으면서부터 적극적으로 마을과 소통을 하며 마을주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는 도시에서와 같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잘 아는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실제 공동체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주민으로서의 인식은 누가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에서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에서와 같이 늘 타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정감이 정서적인 변화라면, 공동구매나 일상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소한 나눔과 교환, 도움주고 받기 같은 활동은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생활비 절감 효과가 있다. 또한 에너지절감이나 쓰레기분리수거와 같은 생활문제에서 지역사회는 물론 좀 더 거시적인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해 가고 있다. 이것은 바로 구성원 각자가 “공동체로 살아 보니 좋구나!”하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동체주거는 매우 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주거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시민이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공동체주택을 짓고 잘 사는 것을 보았을 때,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주택은 더 이상 집값에 연연하는 사적 재산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지역에 열려있는 사회적 자산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주거공유로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친해지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집단지성으로 발휘하고 조직화 할 때,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일 들을 할 수 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택을 중심으로 노년기 삶에 필요한 재가요양서비스 등을 전개하며 시설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공동체복지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복지 정책은 지금처럼 가족의 부재와 빈곤의 증명을 요구하며 노인을 복지센터 등 시설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청장년이 가족의식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 데다 인간을 더욱 파편화하고 물화시켜 더 소외된 존재로 만들고 있다. 각종 시설 등 하드웨어에 쏟아 붓는 막대한 비용을 가정이나 가족의 회복, 공동체 육성을 위해 투입하여야 할 것이다.
보통의 서민 중산층이 생각하고 있는 노년의 삶은 공공복지의 최저 생활 보장도, 고급 실버타운의 비싼 서비스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에서 이웃들과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동체주택의 확산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 활성화 기여,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비용과 공공복지예산 절감과 같이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에서 시민들이 공동체주택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 험난하다.
공동체주택의 공간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공간을 입주자와 지역의 필요에 맞게 합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주택법에서는 공동체주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세대주택의 법적 틀 안에서 힘들게 커뮤니티 공간을 반영하기 위해 지자체 건축 담당자들과 매번 실갱이를 하여야 한다. 이렇게 억지로 만든 커뮤니티 공간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반쪽짜리 어설픈 공간이 되기 쉽다.
대부분이 서민들인 공동체주택 입주 희망자들에게 주택금융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파트나 다세대주택과 같은 기존 주택시장과 달리 공동체주택을 위한 공공의 지원 및 금융솔루션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더욱 힘들게 더욱 비싼 금리를 물어가며 자금을 조달하여야 한다. 다음은 역시 ‘땅’ 문제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 일대에서 공동체주택을 짓기 위한 땅은 귀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둘 중 하나, 아니 귀하고 비싸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도 더불어 살기 원하는 소수의 개척자들은 지금도 하나씩 하나씩 공동체주택을 늘려 나가고 있다. 그것은 분명 필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이 만큼 해왔으면, 이제는 공공에서 응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지금 내가 이야기 한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아니다. 정책 담당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그리고 공동체주택 확산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저비용으로도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알고 있다. 공동체주택이 기존의 아파트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로 살고자 애쓰는 시민들이 지금 보다 조금은 수월하게 집을 지을 수 있고, 공동체주택이 어렵게 찾아야 할 정도로 귀한 것이 아닌, 동네마다 2~3집쯤은 발견될 수 있을 정도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3%의 염도로 바닷물은 짠 맛을 낸다. 동네마다 있는 몇 집의 공동체주택이 바로 우리 사회 공동체를 재생시키는 짠 맛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한혜정 선생의 말씀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시대 분석은 끝났지만 구체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데 해법은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을이 없는 사람들, 신뢰하는 준거 집단이 없는 사람들은 파편화된 조각으로 불안하게 서성이다 거대한 고도 관리체제에 포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를 헤쳐 나갈 방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사실 해법은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보일 겁니다.”(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
우리가 지금 공동체주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조한혜정 선생의 말대로 시대를 헤쳐 나갈 해법을 알고 있는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한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전원주택이라는 카테고리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지만 '집'이라는 주제로 '시니어코하우징'을 실천하는 이야기여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