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 경인남침전쟁(6 26전쟁) 최대격전지 중의 한 곳
내가 1957년 11월부터 1959년 5월까지 6개월간 군대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 육군 제5사단(열쇠부대) 제27연대(3030부대).
철원은 유난히도 추운 지역, 그 해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
북한의 철원 노동당 당사 / 전쟁 전에는 북한의 끝발이 아주 센
장소였지만 대한민국으로 수복이 되고 폐허의 건물이 되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이곳이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안
에 위치했고 지금은 철원관광코스의 필수지점이 되어 있다.
이 건물 안에는 군대에서 운영하는 '주보 (酒保?)'로 불리는
매점이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초소에서 약 4km의 거리, 분
대회식이 있을 때는 분대원 한 사람을 파견해서 반합속에다
막걸리를 구입해서 오기도 했다.
인접부대에 전남광주출신의 학보병(대학재학중 입대) 한 사
람이 친구가 되어 '영내외출'을 허가받아 이곳에서 만나 막걸
리를 마셨던 기억은 56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
하다. 고달팠던 '쫄병생활' - 그런 가운데도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컷의 소중한 추억이다.
5OP(관측소). 우리 초소를 관장했던 지휘소였다. 업무상 이
OP에 올라가게 되는데 망원경 속에는 휴전선 너머 북한군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뚜렸하게 들어 왔다.
밤에는 휴전선 너머 평강땅을 달리는 불켜진 열차가 바로 눈앞
에서 지나간다.
늦게사 알게 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경제사정이 우리보다 북한이
앞서고 있었다.
5OP 정상에서 백마고지 정상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km 정도.
북한 탱크(탈북여성들이 우리 방송에 나와서 말하는 '탕크')
저지선. 유사시 양쪽 콘크리트 벽이 땅위로 떨어져 탱크의 진입
을 가로 막도록 한다.
1950년 6월 25일(일) 인민군은 쏘련제 탱크를 몰고 거침없이 3
일만에 서울까지 진격했다. 당시 국군은 이 탱크를 저지할 힘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전설같은 이야기가 된 세월이다.
현지 산꾼 친구분이 눈물겹도록 고맙게 하루의 일정을 내
어 안내해 주었다. 더 이상의 관광안내는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백마고지는 대한민국의 서북방에 위치한 고지로, 겨울깨에 눈내린 이 고지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하얀말과 닮았다 하여, 미군들이 WHITE HORSE
라 부른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이 정상까지 다녀 왔다.
백마고지 - 정상까지 다녀 왔다
이 고지는 경기도와 북한 함경도를 잇는 남북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백마고지를 잃은 북한 김일성은 이 고지를
잃은 것에 대하여 굉장히 슬퍼하며, 백마고지 오른쪽 뒤편 고암산에서 사흘
간 통곡 하였다 한다.
그래서 고암산을 김일성 고지라 일컫기도 한다) 9사단 명칭의 모태이기도
한 이 고지는, 현재 5사단이 관할 및 경계를 하고 있다.
첫댓글 저도 그곳에 가본적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