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24.05.10)
도서관은 일종의 성전(聖殿)
-‘앨리 모건’의 《사서 일기》를 읽으며
1
집 근처에 있는 지역도서관에 들어갔던 어느 날 오후, 이용자가 드물어 한적했던 2층 성인용 도서 열람실의 서가(그때는 지금과 같이 현대적인 카페 분위기로 리모델링하기 전이다) 사이를 지나며 해 본 상상이다.
‘내가 들어서자 모든 만조백관이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머리와 허리를 숙인 채 저마다 상소할 이야기가 있는 듯 자못 엄숙하고 숨소리를 죽인 모습이 고요하기까지 하다.’
이건 도서관 열람실 서가에 질서정연하게 꽂힌 책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눈앞에 어지럽게 펼쳐지는 세상과 그런 세상에 대해 지혜롭고 원만하게 대처하기 위해 열심히 온 몸의 이러저러한 감각과 날카로운 이성으로 채우는 세계관의 균형 있는 생성을 위해 저마다 고유한 생각과 지혜를 담은 대신들(책들)이 자신이 선택되기를 몸을 구부린 자세로 겸허하게 기다린다는 상상을 하면 뿌듯하고 즐거웠던 것이다.
-대여섯 살 때쯤 아버지와 함께 글래스고의 미첼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중략)...책을 탑처럼 쌓아두고 공부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 모습에 나는 매료되었다. 특히 한 남자에 대한 기억이 유독 뚜렷한데, 지금 생각하니 이십대였을 것이다. ...(중략)...그와 대조적으로 미첼은 성당이었다. 고색창연했고 고용한 경배가 가만가만 테이블을 토닥였다. 여기, 이 훌륭한 긴 테이블 중 하나에, 성직자가 앉아 있다. 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책 더미의 미래를 항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편안해 보였다. ...(중략)...미첼도서관은 성당이고, 그 종교는 지식이다. 지금도 나는 그곳에 발을 들이면 사방의 석조 벽면 내부에서 마법이 느껴진다.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한 후에도, 그곳의 공기는 압축된 지식으로 농밀하다. (본문 중에서)
2
일단 도서관에서 살아남기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 ‘앨리(저자)’는 자신과 같은 사서들이 장시간 기획한 도서관 내에서 열리는 ‘제빵 행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민들의 도서관 이용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 더 많은 방문자를 확보하려는 차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작업에 대해 지원을 하기는커녕 온갖 규정을 들이밀며 무산시키려는 방해 공작이 난무하는 중에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이로서 ‘앨리’는 취업 계약이 연장되는 동시에 시의회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다.
3
이 책은 우울증과 PTSD, 자살충동으로 치료를 받는 저자의 건강회복을 위한 고군분투기이기도 하다. ‘사서’라는 처음 해보는 직업에 도전하여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나가면서 ‘그레이엄’이라는 심리치료사와 정기상담을 병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여건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살충동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무처 주변에는 그녀의 그런 병을 알거나(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녀의 상태를 알아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건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몇 번씩 위기를 맞아 ‘실직’의 고비에 이르며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심리치료사 ‘그레이엄’으로부터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앨리’는 받게 된다. 그건 순전히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맞이한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이 ‘사랑’의 이름으로 영혼의 정화를 거치며 더욱 강인한 정신으로 거듭난 때문이다.
해서 재계약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지만 ‘앨리’는 이 직업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며 열정을 불사른다. 그녀는 ‘사서’라는 직업을 통해 새로 태어났음이 분명한 것 같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