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심양에서 북녘 학자들 만나고 온 이야기
새해인 남북이 쉽게 만나고 오갈 수 있게 되길 빈다.
지난 12월 19일 8시에 중국 심양에 가려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심양에서 북쪽 학자들과 만나 컴퓨터처리 학술대회를 하려고 남쪽 학자 35명이 함께 가기로 해서 모두 10시에 모였는데 심양에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뜨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12시 45분에 뜨는 비행기였는데 2시 비행기로 시간을 바꾸고 기다렸으나 2시가 되어도 못 간다고 한다. 북쪽 사람들은 심양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오랜만에 북쪽 사람들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비행기가 못 간다니 실망이 컸다. 대련으로 가는 비행기는 뜰 수 있다고 하니 거기서 기차로 가자는 분도 있었으나 대련에서 교통편이 어떻게 될 지 몰라 기다려보기로 했다.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밤 10시 30분에 비행기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인천 공항 식당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지 의논을 하고 있다.
공항 의자에서 1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2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린 끝에 심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북쪽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든가, 꼭 교통이 불편한 중국까지 가야 만나야만 하는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60이 넘은 나이 든 교수님들도 짜증내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남북이 만나는 게 얼마나 절실하고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지 느낄 수 있었다. 학술대회도 중요하지만 남북 학자와 우리 동포가 우리말을 통해 하나가 되고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소망이 12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리는 데도 잠깐으로 느낄 정도로 만들어 주었다. 이런 고통과 노력이 통일을 앞당기게 만들고 다음에 통일이 되면 아름다운 옛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비행기를 타니 기분이 좋았다.
'발안마', '미발' 한글 광고문이 담긴 심양 공항 대합실의 전광판
공항엔 엘지 광고 전광판이 있고 엘지 텔레비전에 한국 가수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올 때 찍은 눈 덮인 심양 공항, 활주로만 눈을 치워 비행기만 뜨고 내렸다.
심양 공항에 내리니 날씨가 매우 추웠다. 그러나 공항 대합실에 한글이 있는 광고판과 엘지 광고문이 있고 엘지전자 텔레비죤에서 한국 가수들이 노래하는 영상이 나오는 걸 보니 반갑고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데 버스가 난방도 되지 않고 유리창엔 성애가 끼어 밖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완전히 녹지 않은 고속도로라 차도 느리게 달리니 더욱 추웠다. 캄캄한 버스에 짐처럼 타고 보니 수원대 김 교수가 "6.25 전쟁 때 추운 겨울날 군인트럭을 타고 누님 댁에 가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도 그 즈음 겨울 방학 때 천막을 친 스리쿼터란 트럭을 버스로 운행하던 짐차를 타고 사촌 누님 댁에 가던 추억이 떠올랐다. 조수가 차장이 되어 어디를 가는 차라고 큰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모습, 밖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천막 차를 타고 가던 50년 전 추억이 떠올랐다. 금화원이란 군인호텔에 도착하니 밤 02시가 넘었다. 그런데 방이 춥고 변기도 고장이 나서 물이 내려가지 안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막히게 할 정도였다. 함께 자게 된 반 선생이 마침 가지고 온 소주가 있어 마시고 잠을 들었다.
다음 날 날씨도 추우니 일찍 잠에서 깨었다. 밖에 창문을 열어보니 날씨가 춥지만 매캐한 연탄 타는 냄새가 나서 바로 문을 닫았다. 공장지대거나 연탄을 때기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은 거 같다. 아침밥도 보통 호텔에서 먹는 음식치고는 수준이 낮았다. 그러나 북쪽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마음에 누구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아침 아홉시부터 바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북쪽 학자들도 오고 중국 정부 간부도 나오고 중국 동포학자들도 많이 왔다. 만나니 이렇게 반갑고 좋은 걸 왜 만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런데 어제 밤 어둠 속에서 우리를 안내하느라 애쓴 분이 밝은 날 보니 발해대학 천문갑 학장이었다. 중국 동포들이 고생이 많고 고마웠다.
행사 준비에 애를 많이 쓴 오른쪽 전 발해대 김호범 학장과 연변 현용운 박사
이번 학술대회는 따뜻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잘 진행되었다. 셈틀통신에서 어떻게 하면 남북이 하나가 되어 온 겨레가 자유롭고 편리하게 누리그물통신을 이용할 수 있을까 가슴을 열고 말하고 듣고 고민했다. 그런데 조그만 흠이 하나 있었다. 대회 시작하기 전에 남북 나라이름과 우리글자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그 호칭문제로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쪽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이고 우리 글자 이름은 '한글'이다. 북쪽은 나라 이름은 '조선'이고 글자 이름은 '조선글'이다. 그래서 먼저 회의에서 이게 문제가 되어 나라 이름은 '남쪽, 북쪽'이라고 부르고 글자 명칭은 '정음'이라고 하기로 합의했는데 남쪽의 논문에 '한국'과 '한글'이란 이름을 그대로 쓴 게 있어 북쪽이 따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쪽에서 30여 편의 논문을 서둘러 인쇄하다보니 잘 챙기지 못한 게 잘못이었지만 슬픈 분단현상이었다. 논문 발표 때는 서로 호칭에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북쪽도 그렇게 따지진 않았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우리 쪽 사람들이 일부러 조선이라고 불러주면 억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북쪽 사람들도 매우 부드럽고 거리감을 두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10년 전에 처음 북쪽 학자들을 만나기 시작해 여러 번 만나서 친한 분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북쪽 사람들이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 연변과 심양에 있는 동포 학자들이 제 몸 생각하지 않고 잘 진행하고 분위기를 잘 조절해주어서 더욱 고맙고 좋았다. 그런데 북쪽 참가자들은 대회 시작 5분전에 모두 함께 대회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 데 남쪽 참가자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제각기 행동해서 미안했다. 남쪽이 자유와 여유가 많은 건 좋으나 스스로 통제하고 참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남쪽의 자유로움과 북쪽의 철저함을 서로 배우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논문을 발표할 때 마지막 말로 "남북이 서로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것은 스스로 버리고 양보할 때 빨리 하나가 될 것이고 통일된 나라는 더 살기 좋게 될 것이다."란 말을 강조했다. 먼 뒷날 통일이 되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에 매달려 말다툼을 하고 싸운 게 부끄럽게 보일 것이란 걸 서로 알기 바라는 뜻이었다.
경희대 진용옥교수와 중국 현용운박사가 지난 날 어려운 일을 회상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첫날 심양에 가면서 "왜 남북이 이 고생을 하면서 중국까지 가서 만나야 하는가"라고 짜증도 났으나 어쩌면 먼 앞날에 이 고생이 우리 민족이 대륙으로 뻗어 가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고 투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는 데 만주 동포들이 큰 재산이고 또 남북통일을 하는데도 중국 동포가 큰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우리 모임도 연변 동포들이 애써서 만날 수 있었고 남북이 서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번 만났을 때 진용옥 전 한국어정보학회 회장이 연변 현용운 박사에게 노트북을 선물하면서 서로 얼싸 앉고 눈물을 흘렸는데 고마움과 어려운 만남에 대한 표시였으며 피는 눈물보다 진한 정한 때문이었다. 진용옥 교수는 그 때 인사말에서 내가 죽으면 내 묘비에 "나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길을 만들려고 애썼노라"고 쓰고 싶다고 말하며 연변 현용운 박사가 남북이 만나게 하려고 고생을 많이 했다며 고마운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다. 정보통신과 우리말을 발전시키려는 학술행사도 중요하지만 민족화합과 남북 통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간절한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남북 정치인들은 이런 간절한 민중의 바람을 넓은 가슴으로 감싸고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여 남북 동포가 마음대로 만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서탑거리 길 위에 걸린 알림판
서탑거리 상가 안의 한글 간판, 한국 상품이 쌓여있고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 상가
심양은 인구가 700만이 되는 중국 만주대륙의 중심도시로서 우리와 여러 가지 인연도 깊은 곳이다. 아주 옛날 단군이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도읍지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중국 대륙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통일이 되면 우리 활동 무대가 될 곳이기도 하다. 심양 서탑거리엔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어 한글 간판이 많고 우리 동포가 많이 산다고 했다. 북쪽이 운영하는 평양옥이 여러 군데 눈에 뜨이고 고 백화점 같은 상가에 들어가니 한글 간판이 많고 한국 상품이 많이 쌓여있고 한국 가수가 부르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북쪽이 운영한다는 북쪽이 평양각에서 저녁 만찬자리를 만들었는데 한복을 입은 북쪽 아가씨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김치맛이 일품이었다. '설운도 노래방'이란 한글 간판을 단 노래방에 가니 직원도 한국말을 하고 '금영'노래방기계가 있고 이방 저방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어 외국에 온 기분이 들지 않았다.
북쪽이 마련한 저녁만찬 때 노래하는 박찬모총장, 남쪽 진용옥교수, 북쪽 박영신 단장
그런데 저녁에 혼자 거리를 다닐 때 조심할 일이 있었다. 한 교수가 평양각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근처에 피시방이 있다고 하니 잠깐 들러서 국내에 편지를 한다고 혼자 피시방을 찾아 나섰다가 거지 떼를 만나 혼났다고 한다. 어린 거지애가 갑자기 한 교수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며 구걸하는 게 불쌍해 돈을 주니 갑자기 십 여명의 거지 떼가 에워싸고 돈을 요구하는 데 겁이 나서 잔돈을 모두 주고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외국 여행을 할 때 그런 걸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한국 분위기에 외국이란 걸 깜박하고 혼자 움직였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고 그런 식으로 돈을 많이 뜯어 본 애들이 많은 거 같으니 조심해야겠다.
청태종 고궁 대성전 앞 마당의 양쪽에 기마병, 백의군 들 10여 개 군영 방이 있다.
쇠사슬로 된 갑옷
우리는 3일 째는 오전 토론으로 학술대회는 마치고 오후엔 자유시간을 갖게 되어 청태종이 살았다는 고궁에 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영하 15도여서 몹시 추웠으나 효종이 볼모로 잡혀와 고생하던 곳을 한번 가보는 게 뜻 있겠다고 생각해서 몇 사람이 고궁에 갔다. 궁궐은 우리나라 경복궁보다도 초라해 보였으나 본전 앞 양쪽에 기마병, 보병 등 각 군의 무기와 갑옷이 진열된 집이 10여 개 나열된 게 인상에 남았다. 병자호란 때 저 병사와 총칼에 우리 땅이 짓밟히고 우리 임금이 무릎을 꿇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짜릿했다. 효종이 왕자였던 봉림대군으로 이 추운 곳에서 8년 동안 잡혀있으며 얼마나 수모를 당했기에 임금이 되어 북벌을 꿈꾸었을까 안타깝고 아쉬웠다. 눈 덮인 고궁을 둘러본 시간이 한시간도 안 되었는데 추워서 마음도 몸도 동태가 되는 거 같았다.
고궁 삼층 탑 앞에서 찍은 사진, 추워서 털모자를 썼다.
정 교수는 발이 얼어서 두루마리 화장지로 거지발싸개를 하고 있다.
너무 추워서 서둘러 나와 근처 식당에 들러 간단한 술과 국물로 몸을 데웠다. 정 교수는 발이 얼었다면 두루마리 휴지를 얻어 거지발싸개까지 했다. 저녁 만찬 시간까진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백화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백화점은 시장과 비슷한 큰 상가여서 철길이 깔린 궤도 차가 다닐 정도였으나 상품 질은 떨어졌다. 그런데 그곳에도 한국문화가 들어간 게 보였다. 점원들이 남대문 시장처럼 손뼉을 치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 때 부른 서울찬가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구경을 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니 차를 잡을 수가 없었다. 퇴근시간인 데다가 교대시간이라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태워주지 않았다. 40분 정도 그러고 있으니 얼어죽을 거 같아 요금을 더 줄 테니 태워달라고 합승을 했더니 요금을 두 배로 요구했다. 그리고 목적지까지 오면서 두 번이나 합승을 했다. 한국의 못된 걸 다 배운 거 같다는 불평을 하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서탑거리 시작되는 곳 한 상가에 가니 피부, 영양제, 위장약 등 분야별로 수십 개 약방이 모인 약품 종합상가가 인상에 남았다. 큰 슈퍼 같은 수백 평 상가에 진찰을 하고 처방까지 써주는 사람도 있고 양약을 마음대로 골라서 싸게 살 수 있는 거 같았다. 서울에도 약품 종합상가가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화점 궤도 차와 손뼉치는 점원 모습이 남대문 시장을 떠올렸다.
백화점 안이 넓어 철길이 깔린 궤도 차가 다시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와 매캐한 공기와 불편한 잠자리에 고생이 많았지만 남북이 만났다는 데 보람이 있었고 재미있고 뜨거웠던 나들이었다. 북쪽 사람들과 개인으로 만나 술도 한잔하며 더 정다운 이야기도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서울 국어운동 동지들과 함께 마실까 하고 샀던 마오타이주라도 그들에게 준 게 참 잘했다는 마음이고 다행스럽다. 서울에 오는 비행기를 타고 눈 덮인 만주 산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남북이 마음놓고 만나 함께 살날이 올 거고 온 겨레가 그 날을 앞당기기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푸른 우리 서해 바다와 섬이 보였다. 그리고 내 나라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란 생각이 들고 이 땅에 만족하고 서로 사랑하며 정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썰렁한 눈 덮인 만주 산
따뜻한 인천 앞 바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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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애국자.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열정을 다시금 엿보게 되어 기쁩니다. 남북한이 서로 얼싸안는 날 우리말과 글이 더한층 빛날 겁니다. 말과 글로써 통일을 앞당기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새해에도 선생님의 좋은 글, 좋은 내용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최 선생님! 자주 오셔서 글도 읽고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새해 좋은 일이 많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