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석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녹색국토물관리연구소 소장
'식수관리 삼위일체'로 안전한 식수공급
물은 생명이다. 특히 우리 시민들이 먹는 식수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충분하고 안전한 수량과 깨끗하고 건강한 수질 그리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물 관리의 세 가지 조건, 즉 '식수관리 삼위일체'가 구현될 때 안심하고 식수를 공급받고 살 수 있다.
여기서 식수와 농업용수, 산업용수, 그리고 환경용수의 문제는 수량과 수질 및 관리 측면에서 철저하게 분리하여 고민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안전한 식수는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어떠한 것과도 양보될 수 없는 절대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근 낙동강 원수의 수량 확보와 식수문제를 연계하여 낙동강 하류의 수량이 충분하니 식수는 문제없다거나, 상류에서 식수를 확보하면 낙동강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식수관리와 하천환경관리를 구분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낙동강 하류유역, 즉 경남과 부산 그리고 울산의 식수 현황을 살펴보고, 상생 방안을 제시한다.
충분하고 안전한 물 공급·대가뭄 대비해야
수량은 변덕이 심한 계절적·지역적 강우량과 하천의 유량에 의존한다. 또 물을 필요로 하는 지역의 발전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발전하지 않는 곳 또는 쇠퇴하는 곳에는 물수요가 줄어 물이 남게 된다. 반대로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거나, 장래 기대되거나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수원확보는 필수적이다.
최근 영남지역에는 1994년 대가뭄에 이어 1998년 가뭄 그리고 2000년대 들어 2002년·2008년과 2012년·2015년으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가뭄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 같은 대가뭄의 도래에 따라 미래 식수 수량 및 수원 확보는 지역과 주민의 생존 문제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경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 지난해 국내에서 물 공급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충남지역에서 댐용수 고갈과 식수부족으로 금강의 깨끗하지 못한 물까지 끌어 사용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경·부·울의 상황을 살펴보면, 수량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직 많은 인구가 식수를 불안정한 하천에서 직접 취수한 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106만t을 이용하는 부산은 89%를 낙동강에서 취수한다. 하루 33만t을 이용하는 울산은 강우량의 차이로 인해 매년 약간씩 다르지만 최근에는 31%를 낙동강으로부터 공급받는다. 하루 122만t이 필요한 경남은 52%를 낙동강으로부터 직접 취수하여 공급받고 있다.
이는 서울 등 수도권, 대전 등 충청권 그리고 광주 등 호남권의 시민들은 95% 이상 깨끗한 댐용수를 직접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천에서 직접취수 비율이 높은 경·부·울 지역은 대가뭄 시 하천유량의 고갈, 수질의 악화 그리고 지역 간 갈등의 문제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깨끗한 수질 유지·수질사고 대비 체계 필요
아무리 많은 물이 하천에 있어도 궁극적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지 않으면 식수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또한 물을 정화하는 정수처리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천의 하구나 산업단지 하류와 같이 알 수 없는 상류로부터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수원을 가진 지역의 주민들은 식수의 안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선진국 도시에서도 상류의 도시·산업단지·축산농지로부터 들어오는 하수와 폐수를 하류단에서 정수하여 식수로 사용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물게 경남·부산·울산주민만이 이러한 불안전한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아무리 정수처리기술이 발전했다 하여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면 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을 유발하고, 식수의 가격을 높게 만들어 적합한 식수원이라 할 수 없다.
낙동강 하류 식수원의 현황을 보면. 낙동강 유역의 산업폐수와 미량오염물질 방류량은 2009년총 7686개소의 사업장에서 하루 52만2140t의 폐수가 방류되고 있다. 화학물질의 종류도 2000여가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낙동강은 상류에 대규모 산업도시가 입지하고 있어 화학물질 유출사고에 따른 수질오염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낙동강은 두 번의 페놀유출사고, 벤젠 검출 등 크고 작은 수질오염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1991년 페놀 유출사고로 낙동강수계 정수장의 취수 중단에 따라 한 달간 식수대란을 겪기도 했다. 1.4-다이옥산 검출로 인해 대구 일부 취수장의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는 식수의 안정성은 단지 유량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어디서 취수하느냐 그리고 미량유해물질이나 수질사고에 안전한가가 가장 중요하다. 하천 직접 취수 비율이 높은 경·부·울 지역의 식수시스템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대체수자원 확보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
선진적인 물 안보(Water Security) 체계 갖춰야
최근 국가나 지역의 안보를 이야기할 때 단지 국방이나 외교만을 말하지 않는다. 물 안보는 수인성질병과 같은 보건안보, 수력발전 등 에너지안보, 그리고 농업용수의 안전성을 통한 식량안보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때 물 안보를 평가하는 두 가지 요소는 안전한 물 관리를 위한 구조적 시스템, 즉 충분한 수원이 확보되고 댐이나 하천, 그리고 정수·하수 처리장과 같은 기반시설이 완비되었는가? 그리고 지역의 물 관리 체계가 합리적이며 예산투자가 적정한지, 미래 기후변화 대응능력이 있는지의 비구조적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물이 있는 곳과 물을 사용하는 곳의 거리적·지역적 차이를 극복하고 지역민들 사이의 상생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력과 집행력, 그리고 주민의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협치(governance)의 도구다.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필자는 지난 20년간 낙동강 하류 주민의 근원적인 숙원사업인 식수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정을 전문가 입장에서 끊임없이 주장하고, 참여하며 지켜보아 왔다. 지난 모든 정부와 지자체도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91년 페놀사태 이후 1999년 '부산·경남권 광역상수 타당성 조사', 2004년 '낙동강 남부권 급수체계 구축 기본계획', 2008년 '남강댐 용수공급 증대방안 및 경남권역 청정수자원확보 방안', 2009년 '부산·경남권 광역상수도 사업 예비 타당성 조사'등 꾸준하게 대선 공약으로나 정부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실패한 이유는 확보할 수원이 없어서도 아니고, 기술적 대안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라고 본다.
그 첫째가 중앙정부의 결정적 의지 부족이다. 중앙정부는 국민 환경권과 식수권 차원에서 책임을 갖고 지역의 화합을 유도하고 설득하며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했으나 단지 지방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면피하기에 바빴다.
다음은 지역주민의 상생의지의 부족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먼저 상류의 깨끗한 물을 가져오기 위해서 부산시나 울산시의 노력이 부족했다. 특히 경남 수원지역의 경제적 지원 사업, 물 이용부담금의 전액 지원, 그리고 경남 농산물 사용 촉진 등의 보다 적극적인 상생방안은 수혜지역인 부산과 울산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상남도는 물을 가두고 공급할 수 있는 수원의 주체로서 지역의 지속적인 상생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는 분명 지역의 미래 대가뭄을 대비하기 위한 안정적 식수원 확보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강물에서 댐으로'는 장기적인 깨끗한 물 공급체계
최근 낙동강 하류역의 큰 형님이면서도 수원을 가지고 있는 주체인 경상남도는 '강물에서 댐으로'라는 모토를 가지고 물 안보를 위한 안전한 식수원 확보와 경·부·울의 상생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한걸음이며 희망적 메시지다.
1단계로 합천댐 조정지댐을 활용하고 중소규모 댐을 건설하여 수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며, 2단계로 낙동강 하류의 가장 중요한 수원인 남강 상류에 신설댐을 단지 홍수조절용이 아닌 다목적의 식수공급용으로 건설하여 장기적인 깨끗한 물 공급체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이나 울산 인구의 50% 이상은 경남을 고향으로 하고 있으며, 필자가 근무하는 부산대학교 입학생의 40% 이상은 경남지역 학생들이다. 즉 경·부·울은 단지 행정적 구분만으로 서로 분쟁하고 견제할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지속 발전과 상생을 위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늦어도 시작이 반이다. 식수가 인간의 생명이라는 불가침의 공동 가치아래에서 과도한 지역이기, 무리한 환경논쟁, 그리고 무관심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지역의 물 안보 확보와 상생 방안을 지자체와 전문가, 시민이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