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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3 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배병만
팔공산은 인간이 살 수 있었던 역사 속의 산으로
신라시대 때는 중악(태백, 계룡, 지리, 토함)으로 자리했으며 하나의 산에 큰 본사(本寺)을 두개 두었으니 남쪽에는 동화사와 동쪽에는 은혜사를 두었다
그리고 팔공산은 지난해 2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산이다.
인자하신 부처가 앉아 계시는 갓바위에서 비로봉 그리고 가산까지 능선이 아름다운 팔공산은 노적봉에서 삿갓봉 인근 아래에 펼쳐지는 골프장이 조망을 다소 망치지만 암릉길 능선은 당일 코스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팔공산에서 지맥길인 자주고개를 중심으로 좌측 위천으로 흐르는 하천은 비로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군위군 부계면으로 흐르는 남천, 주능선 시루봉 인근에서 흘러 산성면으로 흐르는 구천이 대표적이고
자주고개 우측의 하천은 모두 금호강으로 흐르는데 팔공산 동봉에서 흘러 영천시 신령으로 흐르는 신령천,
신령봉에서 흘러 청통면을 지나는 청통천이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팔공산 종주로는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을 연결하는 가팔환초 그리고, 팔공산 환종주길이 있는데 대구에 사는 산꾼이라면 거의 가팔환초 정도는 했으리라 여겨지는 코스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고 기존의 종주길 보다 국립공원 테두리에서 산이주는 주제와 함께 어우러진 배경의 흐름을 생각해 봤는데, 팔공산이란 주제가 너무 세면 배경이 죽고, 배경이 세면 주제가 죽어 둘 다 적당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섞을 필요성이 있어 몇 가지 종주길을 생각해 둔게 있다
이른 아침에 일출이나 보며 하천길을 걸을 생각이었으나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진리에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팔공산 군부대 옆 하늘정원에 도착한다.
설사(원효) 대사께서 오래전 청운대 아래에 자리하는 원효굴에서 수도를 했다니 그곳부터 찾아보고 가야겠기에
나무 테크길로 내려간다.
설사대사께서 팔공산 청운대 아래 오도암을 창건하시고 6년간 머물며 수도를 하셨는데
오도암 위 절벽 중턱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비좁은 굴이건만 설사대사께서 중생들을 위해 뜻한 바가 많이 크셨는지
기어코 굴에 비비고 들어 가시어 수도를 하셨는데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다.
비 좁은 굴에 들어가기 전에 오도암에서 암벽을 올라가거나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나무 테크 위 절벽 모서리에 기대어 아래만 쳐다봐도 다리가 달달 떨리는데 어지간한 간댕이로는 올라오기도 힘든 곳이다
아무튼 설사대사께서 이런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수행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삼국중 신라가 통일한 건지도 모를 일인데
요석공주와 사이에서 똘똘한 설총을 낳았건만 전국을 똘방 거리며 돌아다니시느라 아들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그런 매정한 아비이기도 하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싶어 자식을 만나러 가지 않았는지 모를 일인데
정체성이란 한번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신 걸까...
스님께서 앉아 계셨던 굴은 반쯤 물에 잠겨있고 마시란 건지 퍼내란건지 용도를 알수 없는 파란 쪽박만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원효굴 내려오면 본 팔공산 주능선
기도터로 보이는데
직사각형 모양의 기도터의 돌담은 꽤 오래된듯한데 시멘트로 고정된 모습이다.
청운대에서 본 팔공산 정상 부분
다음주에 한번 더 와야 하는 팔공산을 뒤로하고
팔공산 청운대 정상
팔공산에 올랐으면 이곳 청운대 소나무는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전해지며
주능선에서 보는 조망과는 격이 다른 조망이 참 좋다.
팔공산 하늘 정원으로 올라와서
멀리 가산과 구름에 싸인 칠곡의 유학산이 지척이다.
정자 뒤편으로 군위군의 조림산이 까칠하게 보이고 그 옆에 삿갓 쓴 것 같은 작은 산은 옥녀봉(각시봉)
옥녀봉 뒤로는 의성군의 금성산과 비봉이 겨우 보인다.
우측으로는 신라시대 때 팔공산과 한 자락이 있던 편안한 능선의 화산이 길게 이어지고
화산 뒤로는 경북 의성 고향으로 지나는 산길 선암지맥길에 만나는 매봉과 보현지맥길에 만나는 문복산인 듯한데 뿌옇게 보인다.
조림산 아래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마을이 있고 마을 뒷산에는 의로운 충신 엄흥도 묘가 자리한다.
청운대와 원효굴이 보이고 그 뒤로 통수골이란 산이 겨우 보이는데
절벽 앞쪽으로 흐르는 물은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서 위천과 합수하는 29km의 하천이고
절벽 뒤쪽은 오늘 내려갈 구천으로 약 22km의 하천이다.
근 현대사에 들어와 6,25 전쟁을 겪으며 나라를 지켰던 팔공산과 보현을 중심으로 동부 산악지대 갑령 전투의 중심지인 조림산과 화산이 지척에 자리한다.
삼국유사 하면 일연 ,일연 하면 삼국유사가 생각나는 곳이 바로 군위땅이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은 강원도 양양 설악산 인근의 진전사를 내려와 비슬산에서 22년간(몽고의 침략으로 어려웠던 시기)
계시다가 남해 정림사, 강원도 선월사, 포항 오어사, 그리고 청도 운문사 주지로 5년 동안 계셨고
말년에 군위 인각사에 5년 동안 계시다가 입적하셨다
군위는 경북 의성을 지척에 두고 있으면 두 지역 모두 인구 소멸지역이었으나 군위군은 대구 비행장이 옮겨 가는 문제로
대구시로 편입되었고, 고향땅인 경북 의성은 마늘이나 자두로 유명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인구 소멸지역이다.
산에도 품격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가운데 군위의 조림산이고
저곳은 팔공지맥길의 화산에서 이어지며 위천을 사이에 두고 각시산(옥녀)과 매일 얼굴 마주 보는 산이다.
조림산 뒤로 보이는 산은 의성의 선암산과 뱀산 능선으로 선암지맥길에 만날 수 있는 산
사진에 보이는 곳은 모두 낙동강 1 지류인 1,400㎢의 위천이며 위천의 대표적인 지류로는 쌍계천이 있다.
지나간 경로 189번째 누적거리 1만 483km
팔공지맥길은 화산에서 자주고개를 지나 나름 까칠한 팔공산 시루봉을 힘들게 올라오면 군부대 임도길에 도착한다
임도길에서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북쪽으로 부계면 가호리로 이어지는 통수골산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곧바로 계곡으로 스며들면 오늘 걸음 할 구천 발원지가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이끼 가득한 군부대 참호를 지나서
언제나 그렇듯 머리부터 들이밀면 삐딱 계곡길이다
팔공산을 즐겨 찾는 산객이라면 팔공산 북쪽 계곡으로 한번 걸음해도 될 것 같은 좋은 곳인데
아직 산객이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를 곳으로 여겨진다.
방금 내려온 곳이고
내려갈 곳으로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수량이 꽤 많은 편이며
물 맛은 좋은 편이다 물맛이 가장 좋을 때가 17도 그 정도는 되어 보인다.
장마기간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이렇게 나오는지...
비가 많이 온 장마철이라 물소리가 아주 좋고
산객이 찾지 않은 곳이라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어 좋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나무는 연리지가 되어있고
혼자 놀기 적당한 곳인데 전체적으로는 물소리와 산새 소리가 많이 들린다
첫 번째 폭포가 나타나고
잠시 낙수를 맞으며 앉아 있다가
단단한 바위도 언젠가 세월이 지나 깎이고 떨어지고 아래로 굴러가다 보면 바다로 흘러들어 갯벌이 되겠지
그게 언제일지 몰라도 ...
물이 가는 길
먹물이 붓을 만나면 어떤 그림이나 글씨가 되겠지만
물은 세상을 살린다
삐딱 암반을 지나며
바위는 삐딱 하지만 흐르는 물은 언제나 바른 자세로 흐르는데
물이라 가능한 이야기다
물은 어디에 담기더라도 최고의 품격을 유지하며 담긴다.
물이 사람을 만나면 그저 구정물만 남는다.
암반이 길게 이어지는 곳으로 차박 차박 걸음하는 길에도 물이 흐려지니
그렇다고 아니 갈 수도 없고
물이 아래만 보고 가는 길에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물에 관해서 맞고 틀리다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물을 살리는 진리란 모두가 공감하는 하는 부분일 것이다.
계곡으로 검은 암반이 가끔 나타나는데 무슨 바위인지
알탕 한 번 하고 나와
팔공산의 아름다움은 이곳에서 시작하는 듯
암반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팔공산 자락의 계곡 산행을 한다면 꼭 추천해 보고 싶은 곳
대구분들이라면 꼭 한번 가보시라 권하고 싶다.
깊은 담(潭)은 없어 용이 살았다는 그런 전설은 없고
그러다 보니 위험한곳은 한곳도 없으니 편안하게 계곡을 오르거나 내릴 수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삐딱 암반의 물길
물은 흐르면서 바위를 파내고 그 길 따라 흘렀는데
파이고 페인 바위 부스러기는 어디에 있을까 멀리 흐르고 흘러 낙동강 하구 남해바다 모래사장에 담겨 있고
돌고 돌아 서해 바다에 흘러들어 수많은 생명들의 집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계곡의 암반은 대부분 삐딱하게 앉아있는데
가끔 조망이 나오는 곳도 있어 앉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6미터 정도의 삐띡 쌍폭을 만나고
잠시 나무꾼이 되어 물을 찾아들어간다.
여름산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두 번째 쌍폭을 지나며
혹시나 멸치를 닮은 피라미가 있나 살펴봤지만
물고기나 다슬기 종류는 보이지 않는다
구천 상류로는 온통 삐딱 암반길이며 팔공산 계곡 산행으로 아주 좋을 것 같다
사방댐이 만들어진 곳이 나오니 곧 사람 사는 곳이 보일지도 모르겠고
물길이 지나는 길은 지그 재그로 만들어져 있어 맑은 물의 여행은 아주 편안한 길이 될 것 같고
삐딱 암반의 계곡을 거의 다 빠져나오면 계곡을 지키는 수문장 바위와 만나는데
창이나 방패 혹은 거인의 얼굴은 닮지 않았어도 제법 그럴싸하게 계곡을 지키며 서있다.
내려온 곳이고
팔공산 시루봉에 있던 둥근 바위가 어느 장마철에 때굴때굴 굴러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믿을 건 못되니 잊어버리시고
팔공지맥길에 만나는 시루봉과 맨 위의 집을 내려오며
유일정사에서 본 시루봉
암반이 이어지는 곳에서 본 시루봉
유일정사
하천길 옆에 자리하는 팔공산 둘레길
군위군 산성면의 백학지
상류에는 물이 깨끗했으나 저수지의 물은 미숫가루 탄 물처럼 고여있고 누런 황톳물이다.
저수지 둑 넘어 상주 -영천 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조림산이 고개를 내민다.
오늘 지나는 길에 계속 만나게 될 조림산은 팔공지맥길인 화산에서 서북쪽으로 진행하면 만나는 산이다.
남쪽에는 팔공산, 북쪽으로는 선암과 비봉을 두었고,서쪽으로는 열려있는 지역으로 자기 보다 높은 산을 두지 않았으나
동쪽으로는 화산과 말년에 5년간 기거하면서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의 인각사를 지척에 모셔 두었다.
저수지 물가에는 한아름 크기의 미루나무가 서있고
흙탕물속 베스 잡는 낚시꾼도 보이고
비만 오지 않았어도 깨끗한 물을 봤을 텐데
지방하천 구천
마을이 지척이건만 쓰레기는 보이지 않고
조림산이 보이는데
보기에도 그렇겠지만 아주 당찬 산으로 안아주고 싶은 산이다.
조림산은 정상에 서면 주위 조망은 없다 하지만, 남쪽으로 화산과 팔공산 북쪽으로 의성의 비봉과 금성, 동쪽으로는 옥녀와 방가산 그리고 보현과 매봉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의성의 끝지점 비봉이 있다
인근의 영천시 신령면 고갯길인 갑령과 함께 전략적으로 매주 좋은 위치에 자리했으며 정상 아래까지 경사가 아주 심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다.
6,25 전쟁 때는 나라를 지킨 산으로 아군 약 8천 명 북한군 약 6천 8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투를 했으며
조림산과 갑령전투때 북한군 약 4천 명 사살하고 전차 21대 화포 14문 파괴한 전투로 조림산은 팔공산과 더불어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인 동부 산악지역인 곳이다
멀리 팔공산이 보이고
팔공산에서 흘러온 구천과 조림산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는 곳에서
조림과 화산 방향으로
조림은 경사가 심하고 조망이 없지만, 화산은 정상에서 서면 넓은 고랭지 밭이 인상적이며 조위조망도 아주 좋다.
산성면 운산리 마을 옆 하천을 지키는 절벽이 길게 자리하고
두 번째 마주하는 절벽
절벽 끝부분에서 뛰어내리기 딱 좋은데
이 동네에도 고등학교 친구들이 여러 명 사는데 85년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만나지 못했으니
어느 하늘아래 어느 땅에서 잘살고 있으리라
산성면 화본리 마을 입구에는 300년 된 늙은 노거수가 자리하고 그 아래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서있다
그 옆에 작은 구멍가게에는 할머니 한분이 가게를 보시는데 장사가 안되는지 파는 물건이 손에 곱을 정도로 몇 안되고
그 흔한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은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팔지 않아 켄맥주와 과자 한 봉지 사서 나온다.
멀리 조림산이 보이는데 나라를 지킨 산답게 조림에서 벗어산 산의 능선들은 동쪽과 북쪽으로 위천에 막히고 서쪽으로 구천에
막히지만, 크고 작은 능선 100여 개 정도로 어지럽게 펼쳐놓아 마치 물 위에 뜬 연꽃을 품은듯한 형상이다.
산 능선들은 마을과 마을로 향하는데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인양 그렇게 보이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陳)을 닮은 산이다.
지도로 보는 조림산
산이 자식을 낳는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정상에 서면 조망은 전혀 없고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기억이 된다
조림산 자락에 있는 충의공(忠毅公) 엄흥도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며, 그동안 비운의 왕 단종에 관해 많은 곳들을 찾아봤으나
지금 가는 길은 3대가 멸할 수 있다는 지엄하신 어명에도 불구하고 단종의 시신을 매장했던 엄흥도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분이다
도로가에서 나무 테크길을 잠시 오르면 만나는 엄흥도 묘소
내용은 읽어 보시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이지만 지난날 평창강을 걸으며 언젠가는 꼭 한번 이분의 묘소에 찾아 가리라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고 엄흥도 선생 묘소에 켄맥주 하나와 과자 올려놓고 2배 하고 잠시 둘러본다.,
묘비에는 "증 공조판서 충의엄공지묘"라 쓰여있고 대단한 분이라 비석이라도 한번 만져 본다
이분은 단종 임금의 시신을 옮며 지금은 영월 장릉에 밀장 하였고 그 이후의 삶은 영월을 떠나 은거해서 살았는데
고단했던 삶은 역사 속에 드러나는 게 없다
군위군 화본리에 숨어 살다가 71세 때 생을 마치다 보니 영월, 청주, 군위에 묘가 몇 개 있다는 소식이 전하는데
고향인 영월 태화산 자락에 있는 묘는 단종임금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두 번째 청주에 엄흥도 후손이 있어 그곳에 묘가 있다는 주장이 었었고
그다음 군위군 산성면인데 단종의 시신을 수습을 같이 하던 둘째 아들의 묘가 산능선 하나 사이에 있으며
두 분께서 힘든 삶이 같이했기 때문이다.
엄흥도 선생 묘 아래는 엄흥도의 또 다른 가묘(仮墓)가 자리하는데 사후에 신분이 탄로 나면 무덤에서 시신이 꺼내져 부관참시
될까 봐 또 다른 가묘를 썼다고 한다.
향기는 냄새와 다르다 했는데 이분의 삶은 그 향기가 다르다.
엄흥도 선생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분이다.
지엄하신 어명에 삼대를 멸한다니... 영월 사람이던 아니던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그 와중에 제정신을 차린 분이 바로 이분 영월 호장(고을 아전 중 최고 어른) 엄흥도 선생이다.
죽어서도 결코 외롭지 않을 단종대왕 그리고 그의 곁에는 조선 최고의 충신이라는 성삼문과 사칠신 그리고 생육신
엄흥도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월의 영월엄씨 선산인 동을지산의 장릉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 대왕의 능이다.
세조2년(1456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이 상왕(단종) 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였으며 다음 해 6월 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그다음 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간 기거하시던 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거쳐를 옮기셨다
세조 3년 여섯째 삼촌인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되면서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사(賜死)되었
는데 그때 춘추(春秋)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으로 흘렀을 때 영월호장 엄흥도가"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둘째 아들과 함께 단종의 옥체를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와 이곳에 밀장(密藏)하였다
장릉 아래 호장 엄흥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영조 2년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찾아보고 싶었던 분의 묘소에 2배 하고 나오니 마음은 무겁고 숙주나물 같은 인간 또 어디 없을까 생각해 본다.
화본역
화본리 조림산을 꽃에 비유해서일까!
꽃의 근본이라는 동네다
꽃잎이 여러 장인 장미나 연꽃을 비유해도 될 정도로 조림산은 여러 겹의 능선을 자랑하는데
지도를 보면 하나의 산에서 이렇게 많은 파뿌리 같은 능선을 내린 산은 없으리라 여겨지니
국내에 이보다 더 어지러운 산줄기가 또 있을까 싶은 곳이다.
어쨌거나 화본이란 조림에서 내려온 꽃의 근본이라는 동네다
많은 분들이 즐겨 찾는 화본역
가까운데 사시는 분들은 엄흥도 묘소와 화본역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와 함께 연계해서 찾으시면 아주 좋을 듯한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찍어준 사진
화본역의 급수탑
화본 중학교 앞을 지나
중앙선은 서울 청량리에서 영주 -영천 -경주까지 이어지는 철도로 1939년에 일제 강점기 무렵에 지하자원 수탈 목적으로 만든 철도이다
경부선은 1905년
호남선은 1914년 지하자원 수탈 목적으로 만들었으니...
철길 끝부분에 의성의 비봉산인 듯 고개를 내민다.
경상도 이쪽은 대부분 자두나 복숭아가 지천에 심어져 있고
주인장 계셨으면 한두 알 얻어먹겠는데
바람은 어디 가고 없으나 그저 땡볕이 반길 뿐이고
지척에 물이 흐르지만 물은 흙탕물일 뿐이고
배낭에 넣어둔 물은 이미 미지근한 물이 되었을 뿐이고
구멍가게는 찾아도 안보일 뿐이고
좌측에는 각시산이라는 옥녀봉이고 우측은 오늘 하루동안 보여주는 조림산이다.
지난날 담았던 옥녀봉은 한 성질하는 산으로 많은 풍수가들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조림산 역시 지난날 담은 사진인데
실핏줄 같은 능선만 1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어지러운 산이다.
가운데 들녘은 군위군 의흥면 소재지 모습이고 그 뒤로 의성군 금성면의 금성산과 춘산면의 비봉산
이제 지나올 만큼 지나왔건만 물은 장마철이라 흙탕물인데 그래도 마을 앞으로 쓰레기가 전혀 보이지 않고
앞으로 10년 후 물은 많이 깨끗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늘에 올라가려는 마늘
마늘 가격이 시원찮으니 시골분들의 한숨 소리에 땅이 얼마나 꺼졌는지
능소화(凌霄花) 하늘을 우러려 보면서도 하늘을 업신여긴다는 꽃이다.
여름 장마와 태풍 그리고 뜨거운 햇살을 이기며 꿋꿋하게 피는 모습 때문에 하늘을 업신여긴다는 애칭이 붙은 능소화
한낮의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 홀로 하늘에 보며 피었다
지나길에 조림과 화산이 보이고
예전에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결혼하시기 전 6,25 전쟁 때 피난 간 곳이 저곳이라 하셨다
오늘 한 마리만 걸려라고 낚싯대를 던져두긴 했는데
어찌 반응이 없으셨는지 강태공 아제는 어디 가고 없고
낚싯대만 세월을 이기며 물고기를 기다린다.
장마철이 아니라면 물이 깨끗한 구천이다.
저 아래 리틀 포리스트 촬영지인곳인데
김태리가 버선발로 뛰어 나와 반겨 주실지
땀이 물흐르듯 흐르는날
관광객들이 더위와 상관없이 찾아와 주셨고
박 덩굴 넘어 보이는 곳은 군위군 의흥면이고
좌측에 규봉처럼 보이는 산은 의성군 동쪽 끝인 춘산면 비봉산이고
우측으로는 의성 가음면의 선암산이다
찜통속 감자를 삶는 날씨
뜨거워진 몸은 스스로 열을 식히느라 약 300만- 500만 개의 땀샘에서 땀구멍을 모두 개방했고
오늘 하룻동안 4리터 이상의 물을 내보낸듯하다
물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모두 해결될듯한데 지금 물을 보니...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하루를 즐기기에는 다소 부족한 거리의 하천이었지만 국립공원 팔공산 북쪽으로 흘러온 구천은 우측으로 향기가 남다른
조림이라는 걸출한 산을 만들었으니 단종의 옥체를 수습하였던 엄흥도 선생께서 말년을 보낸 화본을 찾아본 것으로 만족한다.
산에도 표정이 있듯 삶과 죽음은 무한 반복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해본 길
이놈의 하천 걸을수록 좋아져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니
다음에 갈 하천으로는 날씨가 덥고 장마기간이라 멀리갈 형편이 안되니 팔공산 동쪽으로 흐르는 청통천 되겠다.
첫댓글 제삼리카페 배방장의 팔공산 구천발원지의 글을 빌려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