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장석용 춤비평가] 무용단 메타댄스 프로젝트(회장 곽영은)가 대전 서구문화원과 공동주최로 그동안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레퍼토리 중 모든 작품의 주제가 철학의 상위와 연결되어 있는 황지영 안무의 『BLACK』, 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이야기』, 최성옥 안무의 『모래의 집』 세 편을 공연하였다.
이 무용단은 대전지역을 현대 무용의 중심축으로 우뚝 세우려는 최성옥(충남대 무용과 교수)의 의욕적 지도와 참여로 성장해오고 있다. 2001년 창단 이래 역동적 활동을 펼쳐 온 결과, 작년 전국무용제 금상, 최우수 연기상, 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대전지역 대표 무용단으로 성장, 금년 대전지역 무용단체 최초로 공연장(서구문화원) 상주단체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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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영 안무의 『BLACK』 | 주제의 통일성에 걸쳐있는 공연된 작품들은 도시와 변방을 공간으로 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 노동의 가치, 집, 또는 가족의 문제들을 그 작품에 따라 서정적인 춤과 이미지, 대사와 영상을 가미한 입체적 장면 연출로써 그 해답을 선명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현대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 모습들을 비추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황지영 안무의 『BLACK』은 소통부재의 시대. 남과 녀, 개인과 개인의 소통과 만남의 문제를 은유적 표현의 남녀 듀엣으로 풀어낸다. 사유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 빛인가? 어둠인가?’라는 통과 의례적 젊은이들의 낭만적 고민을 들추어낸다. 이 과정은 성숙으로 향하는 기본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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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영 안무의 『BLACK』 | 현대회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상은 진행중인 도회의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차단된 음악, 숱한 사연을 안은 도시는 흐느적거리며 상처를 안은 젊은 사내와 여인에게 접근한다. 폐쇄된 시공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하고자하는 몸짓, 회화적 조형을 형성한다.낭만으로 가는 피아노 사운드, 허무를 들추어낸다. 일렁이는 마음위로 배경영상은 느린 움직임을 지속한다. 세밀한 심리를 표출해내기 위한 조명기기의 부족이 드러난다.
마틴 부버의 『나와 당신의 관계』에서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에서 가능하다’는 말처럼 우리 는 늘 나와 타인의 경계, 내부와 외부의 경계,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서성인다. 누군가를 만나고 타자에게 귀 기울일 줄 알게 되기까지의 소통과정을 시간과 공간의 메타퍼, 밀도 높 은 춤과 제스쳐로 풀어낸다. 김기형, 황지영 듀엣은 풋풋한 고민들로 싱그러움을 안긴다.
유약을 깨고자 하는 거친 터치, 느리고 여린 빛이 색조를 띄면 피아노 건반을 튀어나온 사운드가 강조된다. ‘마음의 행로’를 읽어 내고자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 부단한 노력으로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존재한다. 심리적, 주관적으로 압도하려는 의지가 영속으로 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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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영 안무의 『BLACK』 | 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이야기』, 이소연의 시 ‘소금꽃 이야기’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염전에 말없이 피는 꽃을 보거든/삶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햇볕과 바람으로만 피는 꽃// 끝까지 바다이기를 고집하지 않고/때를 알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물의 환희를 보라". 염전 노동이 배태해낸 섬뜩한 현장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바다, 바람, 소금의 의미를 일깨운다.
안무가는 '우리 삶의 원초성, 노동의 가치, 자연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삶의 지혜 등을 바다라는 모태적 공간을 배경으로 시적, 서정적 이미지와 춤으로 형상화한 작품'임을 밝힌다. 광산과 염전은 공인된 노예작업장이다. 더 이상 비울 것 없는 마음으로 펼쳐지는 공간은 오히려 자유롭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풍경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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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이야기』 | 이건청의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의 서정과 연결되는 모든 오염된 것을 다 버리고 순리의 결정으로 남는 ‘소금’의 장엄한 묵시(黙示)를 흐름으로 엮어 뿌림으로 개화시키면서 이 시대의 기회적, 언어적, 착란적 기교와 착취에 대한 준엄한 고발을 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조망, 사회에 대한 희화(戱化)가 끼어들고, 고통과 신음을 파도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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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이야기』 | 소금성으로 불러도 좋을 염전, '완벽한 영상, 바케츠가 매달려 있고, 사운드는 철석거리는 파도소리이다. ‘염전에서는 뼈가 녹는다'. 짜면서도 달짝지근한 삶이라는 바다에서, 우리는 모두 내려 쬐는 햇볕 아래 물레질하고 허리 한 번 펴보지도 못한 채 고무래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염부의 모습과 닮았다. 무게감 있는 연기로 써내는 소금밭 잔혹동화는 ’자루‘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연결 동작을 만들면서 추상을 탑을 만들고 부풀린다. 그 틈새에 달은 다시 떠오른다. (출연/ 김선주, 방지선, 이소라, 홍정아, 강윤찬, 유승호, 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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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옥 안무의 『모래의 집』 | 사회를 보는 면에 있어서 소설가 카프카는 늘 재판관 역을 해왔다. 검은 고니의 눈으로 살펴본 세상은 늘 어둡고 침울하고 병리학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디지털의 틀에서 방황하거나 벌레처럼 호신(護身)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변신’이 동인(動因)이 된 무극(舞劇) 최성옥 안무의『모래의 집』은 가족의 해체와 붕괴 문제, 가족 간의 갈등을 우화적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현대무용 『모래의 집』은 이기주의로 가득찬 현대를 풍자한다. 사상누각, 나만의 집의 위기를 말하면서 안무가는 관객과의 통섭, 독창적 현대무용 형식의 창안을 주창한다. 최성옥이 포착한 ‘변신’은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주제 및 소재에 적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최성옥은 사람 냄새가 그리운 시대의 시든 꽃, 낡은 가구, 바람 부는 대로 흩어지는 모래알로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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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옥 안무의 『모래의 집』 | 상실과 소멸의 사회인 오늘날을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 벌레가 되어버린 카프카의 작품 ‘변신’의 세계와 흡사하다고 설정하고 『모래의 집』은 ‘인간, 가족, 집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물음한다. 안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허물고, 서로가 이름을 불러주어 만개하는 사회를 꿈꾼다. 해설과 대사가 있는 춤, 상황들은 거울 이미지에 담긴다.
‘우리는 한 개인을, 가족을 벌레로 만들만큼 서로를 위협하고 소외시키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물음 속에 담긴 가족이란 일곱 무사들의 결투같은 다양한 양상과 실직은 불안감을 도출하는 스크래치음(音)과 어울린다. 개인의 개성은 미장센으로 분할되어 나타나며, 배경은 현대적 특질을 소지한다. 바이올린의 변주, 펍 무드에도 질문은 계속되고 아이는 늘 희망이다.
찌든 세상에 대한 구체적 항변은 구토로 나타난다. 춤의 힘, 관심유발, 무극, 분위기 창출, 현대 춤의 향기는 편견으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벌레’를 부지런히 묘사한다. ‘미녀와 야수’에서의 공격성과 연민, 춤 이면의 춤, 춤의 외경(外境)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온통 붉은 빛, 영상으로 원형만 움직이고, 강한 바람이 분다. 미학의 상층부를 건드리는 시적 대사가 날리고, 오감에 결부되는 동작과 배경의 영상은 자유로의 탈출을 바라는 ‘날개달린’ 영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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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옥 안무의 『모래의 집』 | 안무가의 절박한 소원은 ‘비록 엉켜있더라도 서로에게 매달려 있던 연줄이 더 이상 엉켜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해소시키듯 소나기가 따르고, 결론은 회색빛 희망으로 와 닿는다. 최성옥의 냉혹한 필연에 대한 정묘한 상상은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을 잠재우고, 안무작에 대한 믿음과 미적거리를 유지하게끔 만든다.
핏빛 유월의 땀방울을 자산으로 삼고, 현대무용을 카타르시스의 도구로 삼은 무용단 ‘메타댄스 프로젝트’의 혜안이 선정한 작품들에 존중을 표한다. 우리는 이 무용단의 투사적 기질을 원하지 않고, 그들의 지속적 열정을 원한다. 이 무용단은 구심적 시선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사다리를 탈 줄 알아야한다. 좋은 출발에 걸맞는 작품들이 양산되기를 기원한다.(출연/ 곽영은, 허은찬, 황지영, 김용흠, 하유진, 유승호, 김지은, 김태간)
/장석용(춤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