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부부의 날-
이태호
누구라도 그렇겠지? 아내와 나의 삶에도 서사가 있다. 처음부터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거나 길들여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 서로에게 길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은 ‘부부의 날’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특별한 식탁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다. 나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아래’ 문구를 육필로 쓰거나 타이핑하여 아내와 함께 읽는다. 어린 왕자 세 권 중 1982년 新譯版인 불문학자 金盛子 교수의 ‘어린왕자’를 즐겨 읽는다. 발췌 또한 김 교수의 신역 판에서 한다. 문장이 초판에 비하여 부드럽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의 성격은 정 반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다툴 것 이라고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모든 사안에 대하여 아내는 지고, 나는 이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바보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좋게 말하면 무던히도 참을성이 많은 여자다. 어떤 때는 대들거나 반응이 없으니 내가 문제일까? 도둑이 제 발이 저린 격이 된다. 지금은 어떤가. 지고 이기는 것이 상수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안다. 아내가 “그렇죠?” 라고 말하면, 나는 이내 “그럼요”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나를 보아도 신기하다. 어쩌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세월 탓이라고 말하기에는 물증이 모호하고 빈약하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역설적이다. ‘훌륭한 결혼생활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야한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이어 오늘 ‘부부의 날’에도 내가 읽었다. 목소리가 멋지다고 부추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내보다 조금 더 감성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목청을 가다듬고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잘 기억하기 위하여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내가 나의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하여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 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하여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하여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하여 어린왕자는 되뇌었다.
바람의 추임새에 바다가 술렁댄다. 하늘이 잔뜩 내려앉은 것이 비구름의 음모일 수 있다. 후텁지근하다. 또 한 차례 오월의 장밋 잎을 떨어트릴 모양이다.
첫댓글 이선생님 부부의 모습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같은 예술인으로 서로 보살펴 주시는 사랑이 멋져요.
파도소리 철석거리는 만리포 바닷가가 그립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챙겨줘야지요. 자식들은 말뿐이지 진심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서로에게 줄 덕담을 준비한답니다.
어린왕자를 중학교 때 읽었습니다. 안동의 옛집 뒷뜰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그 까칠한 장미꽃을 사랑하는 어린왕자가 의아하고 안쓰러웠어요. 장미꽃과 어린왕자보다 멋진 두 분이십니다. 부부의 날 어린왕자를 읽으시다니..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하며 두 분이 계실 만리포를 그려봅니다.^^
읽을수록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어린왕자' 새겨 들을 말들이 참 많죠? 장미와 가시, 길들임의 정의, 어른들이 볼 수 없거나 느낄 수 없는 진실 등 초판과 중판을 번갈아 보면 어린왕자는 성장에 앞서 감췄던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122쪽이니 부담 없이 자주 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한 시간 동안 서로 물들어 가나 봅니다. 나이 들수록 감탄은 줄어들고 연민이 늘어나는 부부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로맨틱한 두 분 덕에 부부의 날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직 부군은 뵙지 못했지만 강표성 회장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정다감한 응원자일 것입니다. 물론 연민이 없을 수 있나요? 하지만 그 안을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면 아무나 느낄 수 없는 사랑도 있습니다. 강표성 회장님도 '사하라 사막'에서 어린왕자와 동행했었지요? 별빛 쏟아지는 밤에...
건강하게 마주 보고 살 때는 싸우기도 하는 게 부부입니다. 저도 자주 싸웁니다.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둘다 고집도 셉니다. 져주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병원에 일주일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고단하고 시간이 부족한 경찰관 남편이 설겆이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빨래하고 방걸레를 쳐보니까 힘들었습니다. 없으면 불편한 게 아내였습니다. 이태호 작가님은 훌륭한 인격을 갖춘 남편입니다.
저도 절대로 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나의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슨 묘수를 써서라고 기어히 이기고 마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퇴직을하고 시나브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윤승원 작가님의 수필에서도 읽었지만 경찰관의 아내나 자식들은 국민보다 뒷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서로 안쓰러운 일상의 연속이리라 짐작합니다. 아내의 입원과 내조의 부재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기에 아내에게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손주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아침부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