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박지영??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한 지 올해 4월이 되면 만 18년이 됩니다.
긴 세월 동안 사회복지기관에 몸 담고 있지만,
정식으로 사회복지사로 불리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
‘사회복지사 박지영’이라는 닉네임이 아직 제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처음 복지관에 입사할 때는 사회복지사로 입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무업무로 시작해서 운영지원팀에서 5년, 기획운영팀 5년, 정보화교육 강사로 7년,
그리고 다시 경영지원팀에서 신입 아닌 신입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사회복지, 사회복지사라는 단어는 굉장히 익숙합니다만,
막상 제 이름 앞에 붙이려니 남의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과 긴장감,
그리고 약간의 설렘이 느껴집니다.
장애인 당사자
안산시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하기 전에는 사회복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아 복지관에 지원하고 입사했습니다.
제가 장애인 당사자이기는 하지만, 비장애인과 함께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장애인복지관 또는 사회복지기관을 이용한 경험이 전혀 없이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사회복지기관을 제대로 경험한 곳이 제 직장이 된 셈입니다.
제가 장애인 당사자임에도 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 보는 신기하고 새로운 모습들로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마다 깊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증 장애아동들과 함께 낮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을 그렇게나 사랑스러워하는 주간보호 선생님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보며 저희 부모님은 저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오셨을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이 장애인 당사자들을 위해 어떻게 운영하는지 여러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런 서비스들이 있었구나,
이렇게 요구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이 있고,
그것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아! 이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제 어린 시절에는 활동 지원 서비스도, 장애인 콜택시도 없었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롯이 저희 가족이 희생하며 감당해야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제게는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교육과 프로그램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제 스스로도 장애인식개선이 많이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나를 향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경험들이었습니다.
차츰 변화하며 자존감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인식이 개선된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변화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와
끊임없이 듣고 접하고 공부해야 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사람이 성숙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 당사자 중에도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하고 있는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과정)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제게는 복지관에서의 근무가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복지관에서 정보화교육 강사를 하던 어느 날,
할머니 한 분께서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의 손을 잡고 정보화교육실을 찾아오셨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의 이름은 김지숙.
할머니의 손녀였으며, 교실로 들어올 때 한쪽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어려서부터 아파서 집에만 있게 되었고,
이제 성인이 되었는데도 계속 집에만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할머니께서 반 강제로 데려왔다고 하셨습니다.
매일 어르신 교육생들만 보다가 20대 초반의 교육생이라니 엄청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저와의 컴퓨터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확실히 젊은 친구라서 수업 진도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서 저도 신나게 수업을 했습니다.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격증 취득을 권했습니다.
차츰 각종 컴퓨터 대회에도 출전해보자고 권유했습니다.
역시나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고, 선뜻 도전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권유하고 설득해서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한 번의 성취감을 알게 된 지숙 씨는 컴퓨터 대회에 나가는 것도 용기를 냈습니다.
2년 정도는 수상을 못하고 조금 낙심하는 듯 보였으나
다시 도전해서 출전 3년 만에 대상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도 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숙 씨가 처음 정보화교육실에 들어와 컴퓨터 수업을 시작했을 때,
이후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
컴퓨터 대회에 나가보자고 권유했을 때,
대학공부를 시작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했을 때,
지숙 씨는 매번 두려워했습니다. 도전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지 시작이 막연했고,
편의시설 등의 제약도 많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모든 인생이 그렇겠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처음 한 발을 내딛는 것조차 무서운 세상입니다.
과거의 저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좌절감과 공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구슬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거창하게 내 모습을 앞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럴만한 재능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상황과 두려움에 있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작해도 됩니다.
나도 하고 싶다고 말해도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해도 됩니다.
그래도 됩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첫댓글 함께하는 동료의 글이 몇 달이 지나도록 가슴에 남아 계속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지영 선생님의 글을 알아봐주시고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윤란 선생님 덕에 좋은 글 만났습니다.
모임 주선해주어 고맙습니다.
동료들과 뜻을 나누며 함께 일하는 모습, 부러워요.
값진 경험 나누어주셔서,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지영선생님의 사회사업 길을 응원합니다^^
조희라 선생님, 응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