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을 <애지가 선정한 이 한 편의 시>
바쁜 여름
박성우
상추 열댓 장 뜯고
열무 두어 포기 뽑아다 씻어
늦은 아침을 먹었다
사람이나 손수레만
건너다닐 수 있는
작은 다리에 걸터앉아
냇물과 먼 산을 바라보았다
발아래에서 올라오는
물소리는 세찼고
굽이 너머에 있는
먼 산은 멀리 있어 고요했다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는 하늘은 넓었고
산바람이 보들보들
불어오는 골짝은 좁았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밭고랑 풀은 수북해지고
산등성이 그늘은 짙어지겠지,
서둘러 해야 할 일과
어지간히 늦춰도 좋을 일을
하릴없이 구분해보다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왜가리를 올려다보았다
---2020년 애지 여름호에서
「바쁜 여름」의 당연지칙
임현준
아무리 그렇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안 보이는 것이 있다. 또 아무리 그렇게 안 보려 해도 마땅히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있다. 사람이 그렇고 시가 그렇다. 겉을 치레해도 속이 문드러진 인간이 있듯이, 비근한 단어를 꾸밈없이 써도 언어의 날줄과 씨줄이 정교히 얽힌 시도 있다. 가난을 풍기는 이야기를 해도 정서의 한 조각 날카로운 비늘이 살갗에 박혀 온 세상이 아픈 시가 있고, 산야의 적요를 묘사해도 세상사 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상상하게 하는 시도 있다.
일테면 온갖 수사를 씻어낸 「바쁜 여름」은 ‘상추 열댓 장 뜯고/열무 두어 포기 뽑아다 씻어/늦은 아침을 먹’는 목가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약간의 인식을 기울이면, 조촐한 밥상만큼이나 휑한 시의 여백 속에 삶의 이치나 현상을 한가득 담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러니까 시를 시어로 쓰는 게 아니라, ‘시어의 빈자리’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시가 이번 <애지가 선정한 이 한 편의 시>가 택한 박성우 시인의 「바쁜 여름」이다.
애써 꺼낼 말도 아니지만 무릇 서점에 즐비한 시작법들에서도 설파된바, 좋은 시란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시, 여백이 온통 행과 연을 비워내더라도 독자의 상상력이 괴어 시공을 열어주는 시를 말한다. 열린 시가 우리네 문학예술 차원의 어떤 경지를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서정주의 「동천」이나 김종삼의 「묵화」를 내내 우려먹는 시창작교실의 현황을 봐도 그렇다.
박성우 시인의 시들이 대개 담백을 넘어 담박한 청초함에 닿아 있듯이, 「바쁜 여름」도 앞서 말한 대로 어떤 경지에 혀를 대이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시골 생활사라고 애써 눈을 가늘게 뜨고 보려 해도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시, 가까운 것은 시끄럽고 먼 것은 고요하다는 당연한 말이 곧 자연의 이치가 되고 인간사의 순리가 되는 시, 사유들이 마음껏 노닐게 여백을 열어두는 시, 그런 시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 깊게 보자면, 발아래의 물은 세차고 먼 산은 고요하고 하늘은 넓고 골짝은 좁다는 간명한 묘사는 중용이 지향하는 ‘최상의 적합으로서의 중립’을 연상시킨다. 사실, 말이 어렵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있는 것’으로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내 지켜왔던 문화적 본질과 맞닿아 있는 말이다. 흔히들 ‘유교’라는 단어만 꺼내들면 ‘꼰대’라고 진저리부터 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아비를 알고 어미를 모시고 선생에게 인사하면 그게 유교의 이치다. 더 중요한 핵심은 아비를 아는 자식을 어여삐 여기고, 어미를 업은 새끼의 이마를 늙은 손등이 닦아주고, 고개 숙인 제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실상 이게 진짜 유교의 실천 강령이다. 중요한 건 ‘도리’이고 인(仁)한 ‘사랑’이다.
박성우의 「바쁜 여름」은 일언반구도 않지만, 하늘의 순리가 곧 사람의 도리이라는 것을 여백으로 꾹꾹 눌러 담아 보여준다. 아니, 보게 만든다. ‘냇물과 먼 산’을 맹하니 ‘바라보’는 ‘왜가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 깊다랗고 웅숭해서 어렵다는 성즉리의 실체를 가늠하게 만든다. ‘발아래에서 올라오는/물소리는 세찼고/굽이 너머에 있는/먼 산은 멀리 있어 고요했다//뭉게구름이 뭉게뭉게/흘러가는 하늘은 넓었고/산바람이 보들보들/불어오는 골짝은 좁았다//여름이 깊어질수록/밭고랑 풀은 수북해지고/산등성이 그늘은 짙어지겠지,’처럼 하나도 버릴 것 없는 푸성귀의 아침 밥상 같은 시, 가까운 것은 가깝고 먼 것은 멀다는 당연지칙의 시가 공자나 맹자나 주자가 설파한 관념어 하나 없이 우주의 섭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정돈해야 무얼 할지 정해지고, 정한 다음에 차분해지고, 차분해진 다음에 고요해지고, 고요해진 다음에 편안해지고, 편안해진 다음에 생각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유교식 논리가 ‘서둘러 해야 할 일과/어지간히 늦춰도 좋을 일을/하릴없이 구분해보’는 진술로 마무리 되는 시를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은 치우침이 없는 ‘중용’, 마음(中=心) 씀씀이(庸=用)에 대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격물치지를 넘어 ‘성의정심’의 바른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 조심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바쁜 여름」의 놀라운 지점은 마지막 연의 마지막 문장 ‘머리 위로 날아가는/왜가리를 올려다보았다’에 있다. 중용이니 성의정심이니 신독이니 하는 쓸데없는 고준담론 말고, 정수리와 목과 가슴과 배가 희고 다리와 부리가 긴 왜가리가 하나도 바쁠 것 없는 여름 한낮을 서늘하게 식혀주며 날아가고 있다는 이 명징하고 인(仁)한 일갈!
애지는 ‘비판만이 중요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무리 비꼬고 뒤집고 부정하려 해도 곧게 펴지고 다시 정해지는 시를 사랑한다. 박성우 시인의 「바쁜 여름」같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 담박한 행간 속에 청빈하게 드러난 여백을 우리는 더더욱 사랑한다. 그 여백에 아무래도 우리의 사상과 사유를 가득 채울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시가 당연지칙 아니겠는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시가 그러하니 시인도 그렇게 보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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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준 프로필
전라남도 벌교 출생.
단국대학교 출강 중.
2018 여름호 『애지』 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