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꿈
이해웅
사막을 가는 낙타의 눈에
강물 자락이 펄럭인다
어느새 강물은
솜사탕이 되고 그것은 다시
여섯이 한 조가 되면서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다
유년의 내가 처음 달리던 곳은
운동장이었고 사막이었다
사막 끝에서 등짐을 지고 오던 아버지
나는 애써 그를 외면하며
모래 물결에 몸을 맡기었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의 가시에 발을 질리는 나는
새벽 칼바람 속을 쉬임없이 달려왔다
낙타가 백 리 밖에서 맡는 건
물 내음만은 아니다
미진으로 일어나는 먼지와
앞서 가다 무릎 꿇은 낙타의 한숨과 눈물이다
밤마다 회오리 되어 승천하는 모래기둥
삶이 저토록 격렬할 수 있는 순간을
낙타는 오늘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간 곳
일순간 그의 온몸이
휘황한 광채를 발산하더니
터널 같은 긴 굴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
소실점 되어 사라졌다
푸른 파도 한 자락이 너울져 와
쓰나미처럼 한 시대를 쓸고 갔다
한동안 비린내가 입안에서 진동하더니
낙조처럼 고즈넉이 가라앉고
새의 울음이 여물어 깨알같이
입안에서 잘근거렸다
새벽녘 동녘 바닷가에 섰지만
바다는 일출을 차일피일 미루는데
밤마다 큰 바람이 일어
백두대간으로 줄달음쳤다
이윽고
그는 일몰처럼 종족을 감추었고
때 아닌 꽃이 불쑥불쑥 피어났다
그가 간 곳
소실점의 뒤에
광배(光背)가 기다렸던 것인가
이해웅
부산 출생. 1973년 시집 『壁』으로 등단. 시집 『길의 식성』, 『맛, 열반』, 『반성 없는 시』 등.
―『시에』(2010, 여름호)
첫댓글 "앞서 가다 무릎 꿇은 낙타의 한숨과 눈물" 이 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