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월 癸卯날
정인 死지, 겁재 祿지, 戊癸合, 卯卯 自形, 卯戌合, 申卯 원진,
겁살. 12운성으론 절지, 앞 인연과의 단절로 인생을 바꿔 탄다. 일하고도 돌아오는 게 없다.
새벽,
환각에 보고 뒤척뒤척. 베갯머리를 바꾸고 다시 잠들었다가 늦게 눈 떴다.
이유도 없이 띵띵 부어서 흐른 아침 내 눈 뜬채로 장판의 껌딱지처럼 붙어있는데
나의 겁재가 전화를 하는 바람에 화들짝 이승으로 돌아왔다.
저녁,
종일 시커먼 구름장에 갇혀있던 사람의 마을에 마침내 비가 온다.
빗소리를 들으려고 열어둔 창으로 빗물이 들친다. 제법 장마 같다.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고 배도 고프지 않는데 고구마를 먹는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고구마.
저녁에 운동 삼아 마실을 나가면 식사 끝이지만 이렇게 집안에서 저녁시간을 맞을 때는
꼭 뭔가를 입에 넣는다. 이른바 다이어터들의 적, 가짜 허기.
비오는 날 파전 김치전 지글대는 소리, 야심한 시각에 후후 불어먹는 라면이나 치킨 꼬순내가
마치 빙의처럼 들씌워지는 것. 모두 위장이 아닌 뇌의 장난질, 가짜허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구실삼아 9시를 넘긴 시각에 고구마를 씹고 있다.
잘 먹는 언니들의 롤모델인 최화정님은 야식이 댕길 때
허기만 가린다고 대충 집어먹었다가 마중물이 되기 십상이니 먹으려면 제대로 먹으라하셨다.
고구마를 먹자니 당기는 건 매콤한 비빔국수. 냉장고 고장으로 시어 꼬부라진 열무김치도 있다.
이럴 때 감사한 건 나의 주체못할 게으름.
불 붙이고 물 끓이고 소면만 삶으면 되는데 그게 하기 싫다.
주변을 둘러봤자 해줄 사람없는데... 이 늑장부리는 게으름이 오늘은 쫌 감사하다.
여기 시야가 안개로 채워진 사진 한 장이 있다. 2018년 5월6일 한계령.
5월5일 그날도 비가 왔다. 벗의 옥탑방에서 밤늦게까지 누에고치 실 풀어내듯
의식의 흐름대로 쉴 새 없이 두런대다 새벽 2시가 넘었을 시각.
느닷없이 발동이 걸려 밤 도깨비 마냥 차에 올랐다.
새벽 비는 잦아들 줄 모르고 서울의 도로는 인적 하나 없는데 둘이서 히히덕대며 무작정 달려간 곳, 속초.
양양을 거쳐 속초에서 순댓국으로 점심을 먹고 한계령을 넘어가는데 구비구비 가도 가도 안개의 터널.
한계령 꼭대기에 당도하니 휴게소는 이미 안개 군단이 점령해 게임 오버.
사람과 차량이 모두 솜사탕 같은 안개 속에 포옥 싸여 정지화면이 되었다.
그 익명처럼 편안한 안개 속에서 우리는 거의 24시간 만에 처음 달게 잤다.
누구나 인생에 그런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뭔가 아프고 심각한 얘길 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생각나지 않고 그 시각, 그 순간의 정서만 저장된 페이지.
사람은 가고 또 오고 감정의 색깔도 바래고 사라지지만
기억의 한 조각은 사금파리처럼 선명하게 당시를 소환한다.
사실 팩트로 말하자면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은 진실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노랫말처럼
기억이란 뇌의 조작 장치를 거쳐 재생된 가상의 환영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사라졌을 뿐이다. 집착할 것도 의미를 두어 붙잡을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2018년 5월 6일 한 조각의 기억 때문에
긴 비오는 이 밤이 아주 조금 덜 쓸쓸하다. 그럼 그걸로 되었지 않은가...
첫댓글 다이어터들의 적인 줄 만 알았던 게으름의 이중성!
좋고 나쁨이 없음을 또 다시 알아 차립니다~^^
부지런해야 다이어트도 하는 것이 아닌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