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옛 민요를 보면 5음계로 구성된 곡들이 상당히 눈에 띕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도 상당수 보이고, 미국 민요와 흑인영가 등에는 더더욱 많습니다.
동아시아권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옛 노래는 예외없는데, 오히려 중국음악에는 7음계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음계의 생성 과정을 보면 상당히 재밌습니다.
피타고라스 선법이나 동양의 '3분 손익법' 은 그 원리가 거의 같은것으로서,
어떤 한 음을 (파이프의 길이) 기준으로 (즉 으뜸음으로) 하고 1/3 길이만큼 잘라내고 덧붙이고 하는 반복 과정에서 생성되는데,
각각 5도의 음정 관계를 가진 Array 가 됩니다. 흔히 얘기하는 5도권 (또는 Dominant Motion) 이 되는데,
으뜸음 '도' 를 기준으로 솔, 레, 라, 미, 시, ... 로 쭉 나열되다가 12번째 '파' 에서 다시 '도' 로 돌아오게 되죠.
조표 붙는 순서로서 "시미라레솔도파" 또는 "파도솔레라미시" 로 외우는데, 이것 역시 Dominant Motion 순서입니다.
재미있는 여담,
김밥 한줄을 말고 이걸 7 토막으로 자릅니다.
이 각각의 토막에 그동안 외운대로 '파,도,솔,레,라,미,시' 로 이름을 붙입니다.
양 끝의 토막은 모양이 없으므로 (그러나 맛은 좋습니다. 반찬이 길게 붙어 있으니까) 손님 상에 내놓기 뭐 합니다.
즉 가운데 5 토막만 접시에 담게 되는데, '도,솔,레,라,미' 의 5음계가 되었습니다.
즉 선율을 구성하는 중요한 음계 요소입니다. (이 가운데 토막만으로 구성된 옛 가요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노래는 7음라도 온음계 (Diatonic) 진행이 주가 되며 반음계는 아주 드물게 잠깐 보이는 정도입니다 (파#, 솔# 정도)
그런데 7음계 노래에도 이 5음계가 자주 쓰이고 나머지 양끝의 '파,시' 는 비교적 드물게 나타납니다 (통계를 내 보면 그렇습니다)
드물게 나타나는 이 음계가 김밥의 양끝 토막처럼 맛을 더하는 기능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스케일 연습할때 대부분 Diatonic 악보로 연습하지만, 좀 더 쉽게 Pentatonic 을 곁다리로 해두면 편리합니다.
'3음계' 라고 들어 보셨나요? 영어로 Tritonic 맞나?
위의 3분 손익법으로 생성되는 순서대로 3개만 추리면 '도,솔,레' 가 되는데,
우리 전래동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가 있지요. 사용 음계는 역시 도,솔,레 뿐입니다. (으뜸음, 딸림음, 윗 으뜸음)
생성 순서가 마라톤 골인 순서대로 금,은,동 메달리스트이고 출현 빈도가 아주 높은 음계입니다.
근데 이 전래동요는 장조일까요? 단조일까요? (전혀 구분이 안되죠)
우리의 국악기 중 '산조 아쟁' 은 이처럼 3음계로 되어 있습니다. (한 옥타브에 겨우 3줄임)
이걸로 웬만한 악곡 연주가 된다니 신기하죠? 더욱이 기타나 바이올린 처럼 줄의 길이를 조절해 짚는것도 아닌데...
그런데 3번째 생성된 '레' 음의 줄을 약간 눌러 반음을 높여봅니다. 즉 레# 또는 미b 음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새로운 음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악곡 전체를 단조의 슬픈 분위기로 일시에 싹 바꿔 버립니다.
어느 국악 자료에는 일명 '울음 보따리' 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재즈의 'Blue Note' 와 같은 의미가 됩니다.
이제 새로 추가된 음 포함하면 '도,솔,레,미b' 이 되는데, 순서를 바꿔 '솔,도,레,미b' 로 해 둡시다.
다만 단조 느낌의 곡이 되었으므로 으뜸음을 이동 도법의 '라' 로 바꾸고 음계를 표현하면 '미,라,시,도' 가 됩니다.
이 4개의 음만 가지고 '진도 아리랑' 등 대다수의 전라도 민요나 시나위 등의 표현 가능합니다. (남도 계면조)
전라도 민요에서는 상당히 강한 비브라토 (요성) 나 벤딩 (전성, 추성, 퇴성) 등의 표현을 하는데,
으뜸음 '라' 는 약간 적게 떨어주고, 딸림음 '미' 는 줄을 깊게 눌러 매우 굵게 떨어줍니다. (국악에선 '떠는청' 이라 합니다)
굵게 떨어주다보면 반음 이상 음정이 올라가 '미파미파미파..' 식으로 트릴 비슷하게 됩니다.
이때에 순간적이나마 새로운 음계인 '파' 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먼저 추가된 '도' 는 아주 짧게 나타나고 바로 '시' 로 이동하는데 이 '시' 음을 '꺽는청' 이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파' 를 포합하면 '미,파,라,시,도' 의 5음계가 되는데,
이게 바로 굉장히 쓰임새가 많은 '단조 5음계' 로서 'Pentatonic Minor' 가 됩니다.
3개의 줄 중 으뜸음 (본청) 만 제외하고 나머지 2개 줄에서 반음씩 올라간 새로운 음 두개를 포함하여 5음이 완성됩니다.
이 음계를 사용하여 노래를 만들면 꼭 일본노래 같은데 (왜색 가요) 우리의 옛 뽕짝에도 예외없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한 옥타브에 겨우 3줄만 가진 산조아쟁으로 뽕짝 가요를 손쉽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단조 5음계 (일본말로 '미야코부시' 음계) 는 어쩌면 우리의 남도계면조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의 동 시대에 발달된 것으로서 '엔카' 의 원조인 고카 마사오 (古駕政男) 는 일제 강점기때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고,
우리땅에서 지내면서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민속악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국내 작곡가와 교류했는지는 미확인)
마지막으로 이러한 5음계가 사용된 옛 가요 몇개를 예시하면,
장조 5음계 (솔,라,도,레,미) : 나그네설움, 희망가, 번지없는 주막, 섬마을 선생님, 기타부기, 비내리는 영동교, 봉선화 연정 등등.
단조 5음계 (미,파,라,시,도) : 눈물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동백아가씨, 사랑의 이름표, 미워 미워 미워 등등.
그냥 계면조 (미,솔,라,도,레) : 한오백년 외 강원도 민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