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라는 말은 사실 부정적으로 통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생명다양성을 생각하면 다르다.
인간이 직접 생명다양성을 위해 생태공원을 만들어도 야생동물들은 공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손 대지 않은 ‘방치’해 놓은 곳에 동물들은 돌아오고 생명이 다양해진다.
길고양이를 방치 해 둘 수 없어서 집으로 데려온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과연 이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진짜 행복할까, 내가 다니면서 보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뒤로 한 채 내가 택한 한 고양이에게만 이렇게 차별적인 애정을 보이는 게 과연 맞을까, 아이를 데려온 이 행위가 생명이 생명답게 사는 걸 방해하는 건 아닐까.
생명다양성이란 어떤 한 개체가 우위도 열위도 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떤 한 개체에만 쏟는 애정이 반드시 그 개체에게 득이되는 것 만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피라미드 구조는 틀렸다고 하셨다. 사실 그렇지 않고 먹고 먹히며 오히려 악어와 악어새같은 공생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셨다. (맞나?)
예를 들어 사자가 없으면 사슴들이 긴장을 하지 않아서 개체수가 불면서 오히려 개체 내에서의 싸움이 일어나, 어찌됐든 죽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고 죽음을 슬퍼하고있구나 직면해본다. (이제 곧 이사 갈 집 근처를 영역으로 두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보며 이 고양이들이 까미를 만난다면 까미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미는 내 손에 의해 전발치 당했고, 그래서 이가 하나도 없다.) 내 삶도,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러면서 얼른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구는 슬픔없는 하나님나라가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도시 속에서 굶주리며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다면 꼭 행복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살 환경을 빼앗는 인간의 죄악됨을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