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대학 이침간 교수의 글
(2018년 3월 26일 번역)
* 중국이 발전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는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 안에서도 서양의 민주주의와 과학정신을 배워야한다는 주장도 있고, 오히려 서양 민주주의는 중국 현실에 맞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좋은 점을 계승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은 많은 대가를 치루면서 민주주의를 일구어왔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일부 국가들도 민주주의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은 국내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가고 또한 주변국가들의 민주주의 도전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까요? 중국의 정치체제가 우리와 다르고 중국사람은 중국의 현실이 있는데, 앞으로 서로 어떻게 지내야할까요?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 국가들도 중국에게 민주주의를 도입하라고 충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고하면 내정간섭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 문제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 2018년 3월 11일, 중국인민대회(한국, 국회에 해당함)는 “국가 주석은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을 삭제하였습니다. 북경 당국은 이와 관련된 글들을 엄격하게 통제하였습니다. 그런데 북경대학 이침간(李沉簡) 교수가 3월 22일에 「허리를 바로 펼 것이며, 그릇된 세상을 비웃고 마는 지식인이 되지 말자.」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고급 지식인들 가운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직구를 날렸고 곧바로 트위터에서 널리 퍼졌지만 그 날 저녁에 모두 내려졌습니다. 24일에는 이침간 교수를 비롯하여 해당 대학의 원장 악유남(鄂維南)과 부원장 장욱동(張旭東) 3명은 사직을 권고 받고 정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해야합니다
원문:
1898년 무술변법이 일어났고 북경대학이 세워졌다. 북경대학 건립 120주년을 맞아 옛날 총장 채원배(蔡元培)를 기념하려고 한다. 중국근대사에서 채원배 선생은 현대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마땅하다. 그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생각(사상)을 자유롭게 하라.(兼容並包,思想自由)”고 우리들에게 남긴 말은 북경대학의 정신적 횃불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채원배 총장은 겸손한 군자 인상을 남겨준 정신적 지도자였다. 사실상 채원배 총장의 다른 모습은 만세토록 스승의 모범인데, 바로 “그릇된 세상을 비웃는 견유(犬儒, cynic)가 되지 말고 허리를 바로 펴는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다.
채원배 선생은 젊었을 때 청나라에 저항하기 위하여 지식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암살단을 조직하여 훈련시켜서 청나라 관원들을 암살하려고 하였다. 나중에 몇 십년 동안에는 진리를 믿고 강제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북경대학 총장 임기 중에는 8번이나 사표를 내면서 불의에 저항하였다. 1917년 장훈(張勳)이 청나라 황실을 회복시키자는 것에 반대하여 사표를 냈고, 1919년 5월에는 5.4운동 때문에 잡혀간 학생들을 구출하려고 사표를 냈고, 1919년 연말과 1920년 1월에는 북경시 교직원의 월급 개선을 지지하면서 정부에 사표를 냈고, 1922년 8월 정부가 총장을 모욕하였기 때문에, 9월 교육경비 지급 유예 때문에 사표를 냈고, 1923년 교육총장이 인권을 짓밟았기 때문에 사법권 독립을 위하여 사표를 냈고, 1926년 정부가 학생운동을 진압하였기 때문에 사표를 냈다. 이런 뜻을 보면, 채원배 선생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하라.”는 말은 커다란 개인의 희생을 치루고 얻은 북경대학의 활약을 말한다. 당시 북경대학에는 전반적인 서양화를 주장한 호적(胡適) 선생도 있었고, 공산주의를 추구하던 진독수(陳獨秀), 이대소(李大釗), 모택동(毛澤東)도 있었고, 심지어 청나라를 회복시키자면서 변발을 늘어뜨린 고홍명(辜鴻銘)도 있었다. 그래서 북경대학에서는 각종 사상이 발표되고 또 서로 충돌하였다.
“자유는 희생을 치룬 대가이다.(Freedom is never free.)”라고 말한다. 자유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공짜가 아니다. 바로 줏대 있는 사람들이 막중한 대가를 치루고 얻은 것이다. 북경대학에는 모범적인 선구자들이 있었다. 호적(胡適)은 한 평생 동안 장개석과 국민당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마인초(馬寅初)는 자신의 학술적 견해를 끝까지 지켰고 아무리 비판을 받더라도 굽히지 않았다. 임소(林昭)은 미쳐서 날뛰던 문화혁명시기에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총살당할 때까지 혼자서 반인류적인 죄악과 맞서서 싸웠다. 북경대학이 중국에서 가장 신성한 대학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사상과 이념을 위하여 모든 대가로 치룬 교수와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5천년 중국역사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줏대 있던 사람들은 아주 적은 소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줏대가 없거나 아니면 권력자들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항일전쟁시기(1931-1945)에 중국에서는 “일본군에 영합한 중국군인 숫자가 정작 일본군 숫자보다 더 많았다.”는 이상한 기록을 세웠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시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양심을 덮고 따랐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양심을 숨기면서 자기 혼자 살기 위하여 친구와 동료를 모함하였고, 출세하기 위하여 애꿎은 사람들에게 돌을 던졌던가?
일반사람들 사이에는 “남의 밑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 한다.” “어영부영 살기보다는 차라리 떳떳하게 죽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세상을 비웃는 생각들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고급 지식인들 가운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일반대중보다 적지 않다. 진(秦)나라시기에 승상 조고(趙高)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해보려고 2세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하였다. 이때 줏대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온갖 아첨을 떨던 신하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박식하였지만 양다리를 걸쳤던 곽말약(郭沫若)도 있었다. 무서울 만큼 심각한 것은 캘리포니아 이공대학원에서 과학 교육을 받고 중국에 돌아와서 원자탄과 수소폭탄을 비롯하여 미사일을 개발하였던 전학삼(錢學森, 1911-2009) 같은 사람이다. 그는 대약진운동시기에 신문에 “200평 논에서 벼를 몇천 kg을 수확하였다.”는 황당한 말을 찬양하는 글을 많이 썼다. 2005년에는 “요즘처럼 교육체계가 잘 되어있는데 어찌하여 1920-40대처럼 훌륭한 학자를 길러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평론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보면, 훌륭한 연구자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교육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현행 교육체계는 진리 수호자보다는 똑똑한 거짓말쟁이를 길러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지식과는 상관없고 연구자 인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상을 비웃는 학자들이나 부끄러움을 모르고 아첨하는 학자들이 많아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간 본성에 겁약하고 천박한 성격도 있겠지만, 중국사회는 수천 년 동안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 왔다는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필화를 입어나 삼족 멸망을 감수하면서도 올바른 말을 하던 지식인 하나가 죽어갈 때, 살아남은 수많은 지식인들은 오히려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사람들은 침묵할 권리조차 빼앗겼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커다란 합창단에 참여하여 아첨 떨도록 강요받아왔다.
그러나 길고 긴 역사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도 있었다. 북경대학에는 채원배, 마인초, 호적, 임소 등이 북경대학 사람들의 기개와 국민의 존엄을 지켜왔다. 우리들은 어깨를 펴고 올바른 말을 못할 망정 글을 써서 천박한 겁쟁이들에게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할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최소한 존엄과 사상적 독립을 팔아먹지 않으련다. 북경대학 사람들아! 채원배를 지지하는 사람들아! 우리 함께 노력해야합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는 우리가 불을 밝힐 것이다.
Where there is darkness,may we bring light
절망이 있는 곳에는 우리가 희망을 줄 것이다.
Where there is despair, may we bring hope
의심이 있는 곳에는 우리가 믿음을 줄 것이다.
Where there is doubt, may we bring faith
미움이 있는 곳에는 우리가 사랑을 줄 것이다.
Where there is hatred, may we bring love
1898년의 두 갑자(120주년)를 맞아
여러분은 그릇된 세상을 비웃는 것에 그치는 지식인이 되지 마세요!
북경대학 이침간(李沉簡) 올림.
첫댓글 중국에서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요.... 알며서 그냥 지나가지니 자기를 속이는 것 같을거구요
그럼요, 중국사람들도 잘 알고 있지요.
중국이 지난 몇 십년 동안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중국 현실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고민이 있구요.
또 외국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도 고민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 밖에서 살다가 돌아와서 중국의 겉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고민이지요.
1840년 아편전쟁, 1898년 청일전쟁 일어났던 시기에는
중국이 서양보다 못하니까 어떻게 할까 판단하기 쉽고 오히려 행동하기 어려웠지요.
그런데 현재는 앞날을 생각하면 중국과 서양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중국사람들이 더 좋은 제도를 만들어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 고민이 더 많아질 거예요.
중국의 양명학 연구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 서양철학의 개인자유 입장에서 양명학을 연구하였던 학자들이 있었구요.
둘째, 서양 민주주의가 중국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고
중국의 전통학술 관점에서 양명학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최근에 더러 있습니다.
셋째, 개혁개방 이후 어느 정도 잘사는 현재 관점에서 양명학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셋 모두 중국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려고 양명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학계는 양명학을 왜 연구해야하는지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상 우리도 스스로 왜 남의 것을 열심히 연구해야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귀한 글 번역해 주셔서 잘 보았읍니다 원장님!
벙어리가 되라 하는데
사람을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맘을 토해놓는 ,, 진리를 실천하는 학자의
가슴시린 심정이 전해져오는 초저녁 ~ 북경대학을 사랑하는 이침간교수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비록 글은 내려졌다하나 학자의 맘마저 내려지진 않을터 ㅡ 우리나라도 오래도록 그리고 근자에도 이웃나라
중국으로부터 사드 빌미 내세워 힘겨움 많은데 여전히 공자를 배우고 양명을 배움은 진리는 태고이래로 국경이
없기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숨 쉬고저 배우고 익히는것은 아닐까 생각킵니다. 글구보니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참으로 고맙고 고맙기만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