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4:1-3 밤에 여호와의 집에 : 칼빈
본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권면 하는 시로써 모든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백성 중에서도 특별히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에게 주는 찬송시로 된 말씀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본문 1-2절은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 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레위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봅니다.
그것은 마치 과부였던 안나가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2:37)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소한 밤에 성전에 남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열심을 기울였던 자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 마지막에서 영감을 받은 시인은 오직 제사장들에게만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빌어 준 복의 형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 교회에 이 일은 오직 제사장들에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 이라고 불려진 사람들은 레위인들로써 그들이 특별하게 위임을 맡아 성경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밤에 성전을 지키는 직분을 가진 이유에서 이렇게 불리운 것으로 보입니다(레8:35).
이 시편은 한글 성경 말씀에는 나타나지 않는 지시 부사인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하여 레위인들 눈앞에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보여주어 그들이 자극을 받고 꾸준히 성전을 지키는 일에 헌신토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해서 말씀하려는 의도가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던 찬송의 의무를 배가시키려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레위인들은 모든 사람 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의식(儀式)들을 남용하는 경향을 따라서 성전에서 빈들거리며 소일하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요 임무를 간과해 버렸습니다.
시편 134 편
만일 그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기지 않고 또 모든 외적 의식을 그들의 주된 제사,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돌리지 않는 한 단지 밤에 성전을 지키고 등불을 밝히며 제사를 드리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시편은 보여줍니다.
시인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서 있는 것이 너희에게는 심히 수고로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 이상의 것, 즉 너희가 모든 백성들 앞에서 감사 찬송을 부르는 것을 바라고 계신다’ 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2절은 시인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형식으로 말했던 사실을 더 기억나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왜 ‘손을 드는 것입니까?’
기도와 동시에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들어 올린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인은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아니면 헛된 잡담에 빠져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한 경우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2. 본문 3절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이 시편이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만을 가리켜 말씀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율법 시대에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준 것은 레위지파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고유한 직분이었기 때문입니다(민6:23)
성령의 감동으로 시인은 먼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권하였습니다.
다음에 시인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해 주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육체적으로 안일한 생활에 도취되라고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사상이 만연되어 있어서 수도승들이 성전에서 찬송을 드릴 때는 필히 모든 예배에 모든 백성들이 참석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려 들어가는 것을 본받아 백성들 각자가 자기 집에서도 성전에서 행해졌던 것을 배워 행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을 복주는 의무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표했던 제사장들에게 부과되었었습니다. 시온에서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또한 천지의 조물주가 되신다고 하신 말씀 속에는 서로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의도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 라는 이름으로 말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개하여 신자들로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134 편
따라서 모든 권세와 부귀를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은 실로 감각이 없는 자이라는 사실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은 자기에게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꺼려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가까이 계신 사실에 대한 증거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로 백성들은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품으로 부르심을 얻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함과 거리낌 없는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옛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인 시온을 바라봄으로써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시온을 향한 옛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사랑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