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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 구름이 되어 찾아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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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푼 이내 마음을 어찌할까? 바람아! 내 마음을 그녀에게 실어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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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바람에 부탁을 하느니 내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낫겠다. 이 좋은 가을날에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즘 핫한 장소가 포천 운악산의 구름길과 잔도라고 한다. 잔도라고 하면 중국의 유리 잔도가 떠오르지만 가까이 잔도가 있다고 하니 찾아가 본다.
버스에 올라 사람마다 찾아다니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짝꿍이 나보다 젊은 남자인데 눈을 감고 있어서 인사를 못 하고 자리에 앉았다.
미사리를 지나며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말을 꺼냈다. 이곳은 미사리이고 저 팔당댐이 있는 곳은 옛날에 검단산과 예봉산이 붙어 있었는데 한강이 뚫고 내려오다 보니 협곡이고 물살이 빨라서 팔당댐을 막기 전에는 여울이었다.
그래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던 곳이다. 그 물살이 모래를 실어다가 쌓아놓은 곳이 미사리이다. 사실 미사리는 모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물소리에 중점을 둬서 미사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고구려말로 물은 “미”이고 소리는 “사리”이니 미사리는 물소리라는 고구려 말이라고 주장한다. 미더덕, 미역, 미르, 미리내, 미끄럽다.
이 말이 모두 “미”에서 온 말이라고 하고, 그러면 물에서 나온 나물은 뭐냐고 물으니 금방 맞춘다. “미나리”하고 말이다. 그렇게 양자역학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가평 운악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넓은 개천이 보인다. 먼저 가평 출렁다리가 신규개통되어서 왔을 때 여름이었고 장마철이어서 이 개천의 물이 넘칠 듯이 무섭게 흘러가던 기억이 난다.
단체 사진을 담고 출발했다. 올라가는 길가에는 두붓집이 여러 개 있고 한 집에서 막 두부를 만들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탐을 낸다.
우리는 정해준 코스로 가지 않고 출렁다리로 해서 눈썹바위로 해서 병풍바위로 해서 가기로 했다. 거부기에서 온 모델 옛날 아가씨 일행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먼저 산행에서 멋진 모델을 해 주었었는데 이번에는 안 해주겠단다. 모델을 어디서 찾지!
출렁다리를 막 나오는 차에 한 키가 크고 늘씬한 아가씨가 마주 오고 있다. 누구 일행을 기다리나? 했는데 다시 되돌아온다.
눈썹바위 앞에 도착했다. 먼저는 눈썹바위가 산뜻하게 잘 보여서 여렇이 단체 사진을 담았었는데 앞에 막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시야를 가린다. 몇 년 사이에 커버린 것이다.
함께 온 부부의 남성이 눈썹바위 앞에 사람을 놓고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 뒤에서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여인이 남성에게 뒤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비켜주라고 하니 남자가 돌아서서 버럭 화를 낸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찍어줘야 비키지 어떻게 비키냐고 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영원한 화성남과 금성녀라고 한다. 절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다만 마음이 일치되는 것은 십중팔구 누군가가 하나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한 가지 일에 꼬치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자는 모든 것이 다 보이고 동시에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보면 여자 말이 맞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해결하는 것은 남자가 잘 한다. 그러니 누구 말대로 평행선이다. 나만 그러나 우리만 그러나 그리 생각하지 말고 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된다.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고 여인의 치맛자락 같은 바위를 쇠줄을 잡고 에둘러 가다가 내려서는 길이 있다. 발길이 더디다 보니 긴 줄로 가는 앞에 마주 오는 여성 셋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기다리다가 오늘 안으로는 집에 못 갈 것 같아요.’ 하니 “거기 빨간 옷 아저씨 잠시 기다리세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긴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오르니 거부기 일행이 있다. 빨간 단풍이 나타나고 오르고 또 오르고 바위도 오르고 하다 보면 나무가 자라지 않는 바위 능선에서 저편으로 마주 선 산자락이 보인다.
그 산자락은 바위가 있고 단풍이 있다. 보는 이에 입에서 연실 터져 나오는 말은 “멋지다. 아름답다”이다. 그래서 ‘저 넘어가면 더 멋져요. “했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 계단을 내려서면 마주 선 바위 능선이 보이고 그 바위는 병풍바위이다. 아까 그 아가씨가 올라왔다. 저 아래에서 혼자 온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달라고 해서 계단에서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주었다. 전망대에서도 사진을 담아주었지마는 주변의 나무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모델로 삼으려고 했는데 아가씨는 멋진데 배경이 꽝이다.
이곳은 눈으로 보기는 참 좋지마는 사진을 담기에는 주변의 나무 때문에 좋지가 않다. 자연보호도 참 좋지마는 사계청소를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건너편 바위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참 멋지다고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바라보고 아쉬움을 남기고 길을 떠난다.
이곳부터는 단풍이 제법 많고 잘 들었고 예쁘고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봉우리를 돌아서 안부에 올라서고 바윗길에 올라서자마자 뒤로 우뚝 선 바위가 보인다. 미륵바위이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지체된다.
쭉 올라서면 사진을 찍기 좋고 미륵바위가 가장 멋지게 보이는 곳이 있으니 중간에 지체하지 말고 여기까지 올라오면 좋다.
잠시 쉬고 있는 차에 풍채가 좋은 한 분이 다가와서 악수를 청한다.
글을 잘 보고 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산악회에서 같이 오신 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산악회로 오신 분이라고 한다.
오르는 계단의 높이가 매우 높다. 장난이 아니다. 짧은 다리는 정말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올라서면 왕실의 발코니 같은 바위가 있고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이 왕이 국민의 머리를 내려다보듯 세상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
가슴이 뻥 뚫리고 체증이 확 가시는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다. 뒤에 미니 일행이 오기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발코니에서 다른 영인산악회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주었다. 그래도 오지 않아서 지나가는 젊은 아가씨들도 사진을 담아주었다.
하도 안 와서 전화를 걸어보니 아래에서 자리를 펴고 점을 먹는다고 나보고 내려오란다. 됐다고 하고는 발코니를 돌아서면 있는 안장바위에서 사람들을 말을 태워 사진에 담았다. 달려라! 저 하늘로!
다행히 옆에 낯익은 여인이 있어 물어보니 같은 산악회라고 한다. 자기 일행이 있으니 일행을 찾아 같이 가자고 한다. 이렇게 여인과 동행했다.
작은 봉우리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과거에는 말뚝 난간이어서 절벽 가까이 가면 건너편 병풍바위 능선의 멋진 풍경이 보였었는데 계단을 만들어 놔서 멀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에 올라섰다. 여기도 멋지다. 여기서 내려서는 짧은 구간의 계단은 일인용으로 폭이 매우 좁다. 마주 오는 사람과 엉덩이를 신나게 비벼야 지나갈 수 있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은 넓고 정상석이 두 개다. 포천 것 하나 가평 것 하나 이렇게 말이다. 여인의 동행인들이 올라왔다. 낯선 사람들이다.
서봉으로 가는 길에 길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컵라면이 주식이었다.
먼저 출발해서 서봉에서 구름길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불러서 바라보니 우리 팀이다. 계단을 한참 내려서니 윤심이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느냐고 묻는다. 저 아래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중간에 작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서 잠시 비켜섰다. 앞선 사람이 산행에서 올라가는 사람이 먼저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다.
산에서는 내려오는 사람이 먼저이고 올라가는 사람에게 양보해 주는 것이다.
이유는 내려오는 사람은 중력의 가속도를 받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몸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러면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니 천천히 내려오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다. 사고는 대부분 내려갈 때 난다.
중간에 귀두바위를 시선에 따라선 버섯바위를 만났다. 건너편 산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 나도 다가가서 보니 멋진 풍경이다.
이제 잔도로 가는 길이다. 길을 새로 내서 고운 흙이 비에 떠내려가지 않아서 마른 날씨에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한 무리의 사람이 지나가면 사막을 달리는 한 무리의 말발굽처럼 먼지가 노랗게 일어난다.
출렁다리에 다다랐다. 한 노인이 사진찍기 품앗이하자고 한다. 멋지게 찍어주었는데 내 사진을 앉아 찍기를 한다. 커다란 장승을 만들어 놓았다.
출렁다리를 건네고 잔도로 내려서는 길에 마주 오는 미니 일행을 만났다. 셋이서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일행의 회장과 같이 가지 않았냐고 물으니 어디 갔는지 모른단다.
층계는 한참을 내려가서 잔도에 들어섰다. 중국에서 걸었던 것처럼 앞이 쭉 보여야 하는데 모퉁이 바위가 앞을 가렸다.
그래서 그 모퉁이를 돌아서면 쭉 뻗어 있으려나 하고 돌아섰는데 돌아서 나오는 여인들이 ”여기가 끝이래요. “한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뭔가 하려다 만 것 같은 기분이다. 아쉬워 돌아보지만 길은 끊겼다. 그래도 더 내려가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잔도를 위로도 쳐다보곤 했다.
되돌아 나오는데 어떤 여인이 여기가 너무 멋져서 장가계를 안 가도 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래도 장가계 가야 해요.”했다. 한 여인은 여기가 더 멋지단다. 장가계에 가서 자기는 구름만 보고 왔단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바위가 “사라키바위”라고 한다. 그 뜻은 비단이 병풍같이 아름다운 바위란다. 이게 뭔 말이래! 꼭 일본말 같기도 한데 말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사라(沙羅)는 한문이고 키는 고유어이다. 한문과 한글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말은 우리만 쓰기 때문에 고유어로 본다.
ㅇ 사라(沙羅, 성긴 비단) + 키(크다. 넓다) = 크고 넓은 비단
ㅇ 큰(크다) => 크 => ᄏᆞ => 키(큰 키, 작은 키, 키다리 아저씨)
그렇게 되돌아 나오는데 서현이가 와서 다시 구름다리 건너까지 같이 갔다가 나는 먼저 되돌아 왔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언덕 같은 곳에 사람들이 있어서 가보니 아니~ 이게 뭐래! 구름다리와 잔도가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이는 것이다.
‘와~ 참 멋지다.’ 이것을 보지 않았다면 오늘 산행을 꽝이다. 멋진 풍경에 내 마음을 쏙 집어넣고 구름이 되고 하늘이 되어 본다. 신선에 어디 따로 있겠나?
되돌아 나오는 길에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그냥 길을 그냥 지나쳐 내려간다. 그래서 소리쳐 불러서 오늘 산행은 여기를 안 보면 ‘앙꼬 없는 찐빵이요. 한글 없는 국어요.’ 했다. 아가씨들이 양손을 접어 가슴까지 올리고는 가슴을 냅다 흔들며 “아유~ 너무 좋아.” 한다.
계단을 내려서는 길가에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여기부터 길은 굵은 모래(마사토)길이 던가 아니면 너덜길 돌길인데 다른 곳의 너덜길은 돌이 서로 딱 붙어 있다. 여기는 그 간격이 넓고 때론 좁은 구멍 같아서 걷기가 매우 불편하다.
앞에 가던 여인이 굵은 모래 비탈길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이 여인과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만날 때마다 “땅 산 분 여기 있네!” 하며 서로가 웃었다.
약수터가 있는 곳에 내려올 때 소방관 두 명이 올라와서 ‘사고가 났어요?’하고 물으니 저 위에서 어떤 여자분이 팔을 다쳤다고 한다.
약수터에 가서 시원한 물을 받아 마셨다. 병아리 오줌만큼 나오는데 물맛은 정말 좋다. 물을 마시고 계곡으로 벋은 길을 따라가 폭포를 내려다보니 빨래판에 겨우 물이 묻는 것 같다.
돌아 내려오다 소방관 두 명을 또 만나고 더 내려오다가 검은 옷을 입은 구조대원 일곱 명이 급히 오르는 것을 만났다.
폭포 앞에 출렁다리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버스가 없다. 이곳 주차장은 꽤 넓지마는 버스를 주차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참을 걸어서 새로 주차장을 만드는 곳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버스에 올라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버스로 자리를 옮기고 제육볶음과 우렁이비빕밥으로 하산식을 먹었다. 뒤늦게 내려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여자가 운동화를 신었고, 팔을 너무 많이 다쳐서 업고 내려올 수 없어서 헬기가 떴다고 한다.
우리 팀의 명숙이도 넘어져서 손목을 삐끗했다고 한다. 포천 운악산 길은 만만치 않다. 항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잔도를 이야기하다가 앞에 앉은 여인이 “너무 짧아!”한다. 그래서 “긴 게 좋아!”하니 긴 게 좋단다.
#산행 #좋은글 #자유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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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보고 싶은 분만 보세요.
천고마비 비밀을 찾아서
바야흐로 지금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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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푸르며 오곡은 풍성하니 말도 살찌는 이 풍요로운 계절에 몸도 마음도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성하니 특별히 천고마비 계절의 풍요로움이 별 의미 없겠지만 배고프고 슬플 땐,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참 멋진 계절이었다.
배를 곪는다는 것 그것은 참 슬픈 일인데 이 계절만큼은 그것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 수가 있었겠는가?
지금이야 살찌는 것을 병으로 인식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찌는 것은 부(富)의 상징이고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살찐 아기들을 모아놓고 경연을 벌여서 가장 살찐 아이를 우량아라고 뽑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만약에 지금이라면 유아 비만이라고 비난받을 일이다.
천고마비라는 말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환경과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말이다.
천고마비라는 말은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 말이다. 그 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태생을 알아보자
중국에서 천고마비란 말(言語)이 태어날 때 그 말의 의미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되면 흉노의 말이 살이 쪄서 그 살찐 말을 타고 곧 흉노가 쳐내려올 것이니 도망갈 준비를 하라는 경계의 말이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유목민은 이동이 어려우니 가을에 식량을 준비해 놓아야 겨울을 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초원엔 곡식이 없다. 사고팔고 식량을 준비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약탈하면 된다.
중국의 문화의 근본은 약탈이다.
적이 쳐들어와 약탈하고 정부가 국민을 약탈해 왔다. 약탈하려면 전쟁과 전란(戰亂)과 민란(民亂)이 필수적으로 따르고 그 전쟁이 발생하면 국토는 아수라장이 된다. 전쟁은 무질서이며 혼돈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질서를 찾는 것이다.
전쟁의 반대급부로 태어난 것이 노자(도교), 상앙(법가), 공자(유교) 등의 사상이다. 각기 방법은 다르나 나름의 사회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중국의 사상은 땅 위의 질서를 잡기에 급급해서 하늘의 사상을 갖지 못했다. 불교의 철학, 서양의 철학처럼 인간의 내면을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의 통치 이념의 근본은 법가(法家) 사상과 국강민약(國强民弱) 사상이다.
지금의 중국을 통치하는 대표적인 법가의 하나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금순공정(金盾工程)과 천망공정(天網工程)으로 인터넷을 통제 감시하고 CCTV로 전 국민을 꼼짝 못 하게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중국 공항에 들어갈 때 외국인 핸드폰도 불시 검문 수색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천망공정 때문에 탈북자가 중국에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요즘 탈북민이 급격히 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삼국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국지연의이다. 이것을 역사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로 작성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멋진 장면과 주인공과 영웅적인 서사는 사실은 가짜라는 것이다.
10%의 사실로 90%의 허구로 작성된 것이다. 즉 가짜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나라 대형언론에서 지금도 잘 하고 있다. 우리는 철석같이 믿는다.
믿음과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사실이라고 우기며 산다. 믿음을 수정해서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다. 믿음이 자아(自我) 즉 자기 정체성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믿음을 수정한다는 것은 때론 자아 정체성을 버리는 경우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사실 여부는 관계없고 많이 보고 많이 들어서 나의 가슴(머리)에 자리 잡은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같은 사실이라도 믿음은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가끔 사실일 경우도 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14번 이상 듣거나 하게 되면 사람은 믿게 되고 믿음이 된다. 가스라이팅, 플러팅이 이런 수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는 중국의 삼국지(삼국지연의)가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자 우리가 알고 있는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제갈량이 동풍을 일으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했다는 것이다. 조조의 군을 격파한 것은 10%의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허구, 즉 가짜라고 한다. 제갈량이 아니라 손권의 부하가 격파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관계를 따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제갈량의 멋진 승리에 쾌감을 느낀다. 내가 마치 제갈량이 되어 정의의 사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를 동일시(同一視)라고 한다. 연예인에 환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과연 이것이 그렇게 멋진 일인가? 우리가 만약에 이 전쟁에 참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제갈량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될 수 있는 것은 창 한 자루 쥔 병사밖에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에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화살에 맞아 죽거나, 매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했을 것이다. 만약에 살아남았다면 다음 전쟁에 또 참여해야 했을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여인은 적군에게 더 처참한 수모를 겪고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삼국지의 수장들을 영웅이라고 한다. 그러고 내가 그들이 된 기분이다. 과연 영웅일까? 아니면 1급 전범일까? 병사들의 처지에서 보면 최악질일 것이다.
우리도 툭 하면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켜서 상대를 깨부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대책도 없이 용감해 보인다. 적만 죽이고 우리는 아니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 보자
삼국지에 쓰인 삼국 전쟁은 약 70년간 했다고 한다. 전쟁하기 전에 당시 중국의 인구가 약 6,0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삼국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은 약 1,00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머지 5,000만 명은 죽어 나간 것이다.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왕망이란 사람이 서한(西漢)을 망가뜨리고 신(新)나라를 세웠다가 신나라가 망하고 동한(東漢)이 서기까지 21년간 전쟁을 했는데 이 전쟁 전에 국가 인구가 약 600만 명이었는데 전쟁 후에는 겨우 83만 명이 간신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나머지 인구의 86%인 517만 명이 죽어 나간 것이다. 어느 지역은 97%가 죽었다고 한다.
중국인 저자 보양이 쓴 “중국인사강(中國人史綱)”의 추악한 중국인에 나오는 통계라고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중국 고래로부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寧爲太平犬, 莫作亂離人(영위태평견, 막작난리인)”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차라리 태평 시절에 개로 살지언정, 난리판의 사람으로 살지 말라”
이런 말도 있다. “寧爲太平狗, 不作亂世人(녕위태평구, 불작난세인)”이다. “차라리 태평한 시절의 개로 살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은 비옥한 땅이 넓어서 이렇게 죽여도 시간이 지나면 인구가 금방 회복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중국인이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살아남기도 바쁜데 말이다. 중국인의 성격을 집단적(혈연적) 이기주의라고 한다.
중국은 강으로 동서가 이어지고 평평한 땅으로 남북으로 이어져서 이동이 쉽고 가운데 평원은 비옥해서 농사가 잘 된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이동이 쉬우니 이를 탐해서 동서남북에서 쉽게 쳐들어오다 보니 나라가 커진 것이다. 지역적 특성이다.
자 다시 천고마비란 말로 돌아가 보면 천고마비란 말이 그 뜻은 같은데 지역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천고마비란 말만 그러냐?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도 지역에 따라서, 계층에 따라서, 지식 정도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게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이것을 이용해서 많은 대형언론과 유튜브 들이 선동해서 먹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돈벌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국민 복지(福祉)를 위해서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한다고 하면 어떤 돈 많은 부자는 그래 내가 못 하니 정부에서라도 나서서 해야지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겨우 밥벌이해서 집 한 채 있는 사람은 국민 세금을 퍼준다고 노발대발할 것이고, 어떤 배고픈 이는 하루의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떤 유튜브는 세금을 퍼 줘서 나라가 망한다고 선동을 해서 돈벌이를 할 것이다.
복지의 예를 들어보면 얼마 전에 “그냥드림”이란 정책을 시작했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에게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 그냥 두면 도둑질하거나 굶어 죽거나 자살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일용노동자가 부상으로 일거리가 없어서 배가 고파서 구운 달걀 19개를 훔쳐먹고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람이 사회적 도움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굶어 죽거나 자살밖에 할 것이 없다.
사회복지는 이런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세금을 퍼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살아있어야 여러분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을 해 줘서 깨끗하게 사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낭비가 아니다.
올해 새로운 복지제도 때문에 그런지 다행히 자살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안 떨어지는 세대가 있으니 질풍노도의 시대 중고등학생 자살률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배고픔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나는 살만하다고 해서 없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나도 한순간에 그 처지에 빠질지 모르고 또 그렇지 않다고 쳐도 그들이 없어지면 이 사회의 한구석이 무너진다.
어떤 것을 “나”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국가는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꼭 맞는 것도 아닐 것이다.
천고마비는 하나의 예일 뿐이고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도 같은 말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할 수 있으니 좋은 말이라도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내 생각과 내가 새기는 의미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꼭 다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니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또한, 내가 아무리 좋은 의미로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갈등이 많이 해소될 듯싶다.
바야흐로 시절은 천고마비 계절의 절정이다. 중국처럼 누구를 때려죽여 전쟁하자는 말은 하지 말고, 우리가 새기는 천고마비의 의미처럼 풍성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바란다.
옛날에 쓰던 편지의 한 구절처럼 천고마비의 계절에 책을 한 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요즘은 커피도 한 잔 곁들인다.

첫댓글 풍요로운 가을 되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