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6막34장 (1부)
1991년.
34세.
내나이가 30대 중반이 되였다.
무엇하나 완성한 것 없는 현실에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적인 생활.
안산으로 내려와 지방생활을 하다보니 친구한명 만나지 못한다.
"후"는 7세, "정"이는 4세이다.
벌써 "후"는 내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후"를 낙후된 지방 공업도시의
학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로 이사를 가면 회사는 어떻한단 말인가?
나는 고민에 쌓였다.
전세계 역사이래 전무후무한 5만원의 "신사임당"과 그자식인 "이이(이율곡)"이 5,000원권 지폐의 인물이 된것을 본다.
모자 지간 나란히 수천년 역사의 많은 위인들을 제치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지폐의 상징적인 초상의 인물이 된것을 고민하여 본다.
물론 "신사임당"은 강원도 강릉에서 "이이"를 키웠으나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후"를 지방의 시민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정"이도 마찬가지 였다.
올해 11월달이 아파트 전세 만기이니 그때가서 다시 고민해 보기로 한다.
"후"는 유치원에 다니며 생기발랄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1991년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 해였고,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할 화려한 성공과 비참한 수모를 모두 겼게 된다.
※ 나에게는
"1991년" 과
그리고 IMF의 "1997년"이
인생 최악의 해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