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부양’에서 ‘먹거리 부양’ 나선 미생물농법 전도사 강기갑 전 의원
글 : 이창희 기자 | 사진(제공) :
어수선한 머리, 콧수염과 긴 턱수염의 덥수룩한 용모에 두루마기 옷차림, 2009년 국회에서 농성 중에 벌인 ‘공중부양’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강기갑(65) 전 국회의원. 그는 2013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고향인 경남 사천시로 내려갔다. 정치인에서 농민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요즘 미생물에 의한 ‘먹거리 부양’에 꽂혀 산다.
지난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난 강기갑 전 의원은 온통 ‘미생물’ 얘기뿐이었다. 한때 “정치 농사가 제대로 안 돼서 농민이 못 산다”며 넓은(매크로) 세상을 누비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튿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한다기에 시간을 갖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으나 당장 사천 농장으로 내려갔다 다음 날 다시 올라와야 한다며 자리를 서둘러 끝냈다. 이유인즉 농장 가축들에게 사료를 주러 가야 한다는 것. 해서 미생물로 악취를 없앴다며 대화 내내 자랑한 농장을 확인하고자 사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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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인 12월 12일 기자는 강 전 의원의 사천 농장을 찾았다. 경남 사천시 사천읍 끄트머리 두메산골에 이르자 그의 문패나 다름없는 간판의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강달프 매실마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에 비유해 누리꾼들은 그에게 ‘강달프’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농장으로 들어가자 묶여 있는 개 두 마리가 먼저 맞이하더니 염소를 가둬둔 축사에서 강 전 의원이 손짓을 했다. 농장 규모는 돼지 40여 마리, 염소 120여 마리, 오리, 닭, 칠면조 등을 키우는 축사와 매실 과수원 등 11만2400㎡(3만4000여 평). 이렇게 큰 농장을 강 전 의원과 부인 박영옥(51) 씨 둘이서 운영하고 있다. 그날은 마침 부인이 다른 일을 보느라 강 전 의원이 혼자 농장 일을 보고 있었다. 앞서 “가축들에 사료 줄 사람이 없어 농장으로 가야 한다”고 한 그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변함없는 용모에 농장 작업복 차림의 강 전 의원은 돼지, 오리, 칠면조 등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기자가 염소들에 둘러싸인 강 전 의원 사진 몇 컷을 찍자, “이제 됐지요” 하며 우리 문을 열어 염소들을 야산에서 풀을 뜯게 했다. 기자가 도착하기 한두 시간 전에 염소들을 풀어줬어야 하는데, 썰렁한 농장 사진촬영을 우려한 그의 배려였던 것. 국회 입성하기 전에는 젖소 120여 마리를 키웠는데 국회 있는 동안 관리가 안 돼 처분했다고 한다.
“(국회에 들어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아내가 며칠을 울면서 말렸습니다. 빚내서 꾸린 농장 일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거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장인이 아내를 설득해 정치를 하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장인이 농장에 내려와서 저 대신 2년 넘게 매실을 관리해줬어요. 그럼에도 이래저래 빚을 많이 지었습니다.”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에서 아내 만나
3남 1녀 모두 정규교육 대신 대안학교 보내
강 전 의원은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하다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서른아홉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시절 강 전 의원에게 “전국 농촌총각 결혼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자기만 장가갔다”고 농으로 말한 게 진담이 돼버려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는 위원회 결성 후 스물한 번째로 결혼했다고 한다. 당시 위원회 회칙에 결혼 시 부부는 무조건 농촌으로 농사지으러 간다는 서약이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요즘 마을이장 일을 보며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등 강 전 의원보다 더 지역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창조마을 가꾸기 사례 발표에서 장관상을,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사례 발표에서 도지사상을 수상했다고 귀띔했다.
강 전 의원 부부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막내는 농장에서 같이 지내고 있고, 첫째 아들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농장 후계자로 키워보려 애썼지만 “아버지처럼 농사지으면 망한다”며 도시로 나가 무역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최근까지 서울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당에서 10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딸은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다며 일을 접었다고.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안 받게 했어요. 공부벌레처럼 지내는 게 보기 싫어 초등학교만 보내고 임동창 선생이 운영하는 풍류학교에 보냈어요. 일종의 대안학교죠. 집사람도 동의했습니다. 아이들도 후회하지 않고요.”
강 전 의원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계활동 중 벌인 ‘공중부양’ 사건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부끄럽다. 내 눈에 들보를 넣어놓고 남의 눈의 작은 티를 빼주겠다고 난리 친 꼴이다. 다시는 남 앞에 나서서 정치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일절 정치 얘기는 안 했다.”
K3 미생물 발효 사료 먹인 가축
분뇨악취 ‘No’, 면역력 및 육질개선 ‘Yes’
강 전 의원은 2018년 9월 출범한 한국마이크로바이옴협회 상임대표를 맡았다. 미생물 유전체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자연계 모든 미생물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는 “농업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식탁을 살려야 건강이 살아난다”며 “이를 위해 미생물농법이 중요하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었다”고 했다. ‘미생물농법’ 전도사가 된 것이다. 미생물농법은 흙과 동식물에 서식하는 각종 미생물을 활용해 자연과 인간의 상생과 균형을 추구하는 친환경 농법이다.
기자가 방문한 농장은 여느 농장처럼 가축들 분뇨가 널렸음에도 심한 악취가 나지 않았다. 강 전 의원은 미생물 발효사료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에 가기 전에 사료 배합기에 숯가루와 선교사의 소개로 일본에서 수입한 EM(유용한 미생물, effective micro organism) 발효 원액을 풀과 사료에 섞어 소에게 먹였어요. 그랬더니 축사에서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가축들의 병에 대한 면역성과 저항력도 크게 높아졌고, 육질도 좋아졌습니다.”
그가 미생물농법에 꽂힌 계기는 2013년 고향으로 돌아와 집 안 곳곳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독 하나를 발견하면서다. 국회 입성하기 전에 담근 매실 발효액이었는데, 초막을 걷어내니 식초가 돼 있었다는 것. 맛과 향이 뛰어났고, 먹고 난 후 몸이 개운해져 주변에 선물로 돌렸더니 호평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해 11월 그는 사천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났다. 서범구 EM생명과학연구원장이다.
“당시 세미나 주최 측으로부터 미생물 발표 사료에 대해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이때 그 사료를 먹인 쇠똥을 갖고 갔습니다. 내 순서가 왔을 때 마침 저녁 배식을 하고 있었는데, 식당 창가 앞에 둔 쇠똥을 갖고 와서 맡아보라고 했어요. 다들 아연실색했는데, 실제 맡아보니까 생각과 달리 냄새가 안 나는 거예요. 거기에 다들 한 번 더 놀랐지요. 그때 서 원장을 만났는데 미생물농법을 연구하는 분이라 매실식초를 드렸습니다.”
그 후 강 전 의원은 서 원장으로부터 미생물이 우리 건강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미생물농법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특히 서 원장은 강 전 의원이 준 식초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유산균을 발견하고 이를 ‘K3’란 이름으로 특허등록까지 해주었다. 강 전 의원은 K3 발효액을 이용한 가축사료와 퇴비, 식용 제품도 만들어 시판하고 있다. K3는 강기갑(Kang Ki-Kab)의 영문이름에 들어간 자음 3개의 K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강 전 의원은 “사천시에서 2만 두의 양돈사업을 하고 있는 조카에게 K3 미생물 발효사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호평이 좋아 다른 곳에서도 미생물 발효사료로 키우는 대형 양돈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2019년 미생물농법 예산확보 실패했지만
고향 사천시 ‘미생물농법발효 표본도시’에 전력
강 전 의원은 대학 미생물 최고위과정(16주 코스)을 이수한 미생물 전문가다. 그는 미생물농법을 전파하기 위해 올 들어 5차례에 걸쳐 ‘마이크로바이옴 산업화 포럼’을 개최했다.
“우리 몸에는 10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인간 세포의 10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미생물은 세 종류입니다. 유익한 미생물(유익균) 25%, 해로운 미생물(유해균) 15%, 중간 미생물 60%입니다. 유익균과 유해균은 늘 갈등하며 싸우는데, 중간 미생물은 이기는 쪽에 붙어요.”
인간뿐 아니라 흙과 동식물의 미생물 구성비는 25(유익균) 대 15(유해균) 대 60(중간 미생물)으로 똑같다고 한다. 미생물은 자연계 생태 순환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강 전 의원의 얘기다. 예컨대 유기질이 풍부한 흙에서 성장한 식물을 먹은 동물은 건강한 분뇨를 배설하고, 그 분뇨는 흙과 섞여 다시 식물의 건강한 먹거리가 되는 순환을 돕는다는 것이다. 특히 화학비료, 농약, GMO 식품이 범람하면서 고장난 생태 과정의 악순환을 끊는 것도 미생물이라고 한다.
강 전 의원은 포럼에 참석한 여당 및 야당 의원들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019년 마이크로바이옴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야가 선거제 개혁과 채용비리 국정조사, 유치원법 등 쟁점 등으로 난항을 거듭하는 사이 기획재정부 실무진이 250억원의 증액예산을 거절하면서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한다면 한다’는 식의 그가 걸어온 길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의 고향인 사천시가 미생물농법발효 표본도시가 되기 위해 미생물농법발효재단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천시는 축사의 악취 민원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 양돈농가에 대해 강 전 의원의 미생물발효사료 구매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있는데,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는 본격적인 정부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 안에 비인가 마이크로바이옴 포럼을 만들어 후원세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