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중요한 화두입니다.
어제 종일 한 살림생활협동조합에서 논의를 했습니다. 전국의 한살림은 조합원이 100만 가구입니다. 원주는 4만가구 정도입니다. 4만가구도 민주주의가 쉽지않게 큽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들이 서로를 알고, 공공선을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규모가 적합하다고 본거지요? 그런데 한국은 약5천만 명입니다. 루소의 기준으로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규모입니다. 4만도 힘든데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한살림은 전국이 30개 지여생협으로 나누어 소통합니다. 회의를 할 때 대표가 30명이 모여 회의를 하니 회의를 종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이틀 계속합니다. 그래서 설박사님에게 맨날 혼났습니다. 회의 가지 마세요. 뭔 회의를 그리 오래하나요? 그런데 민주주의로 숙의를 거듭하는 한 살림의 회의는 매우 길게 진행됩니다. 작은 공동체의 연합으로 만드는 길로 운영합니다. 그런데 아주 힘듭니다.
루소의 정신을 적용하여 실제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방분권이고, 생활권 민주주의이며,협동조합과 주민자치의 철학입니다. 한살림도 이 전통에 가깝습니다.
요즘 AI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숙의민주주의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바꿔보자. 그 대안은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하나는 광역한살림으로 뭉쳐서 만나는 사람 수를 줄이자. 또 하나는 에이아이를 사용해서 더 많은 조합원이 회의에 참여하도록 하자.
루소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광장에 모여 토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AI와 디지털 기술 덕분에 수백만 명의 의견을 분석하고, 다양한 대안을 시뮬레이션하며, 숙의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큰 사회에서도 작은 공동체처럼 토론하고 숙의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설박사님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과연 "이상주의가 이상주의를 낳는다면, 오천만의 한국은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루소를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한국은 거대한 사회입니다.
그 안의 생산, 소비, 유통, 돌봄, 교육, 기술, 금융, 문화의 작은 공동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하니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국가는 하나, 권력은 분산, 데이터는 연결, 공동체는 자율, AI는 연결을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한살림에서 종일 토론한 대안의 '연결의 생산력'입니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네이버 등의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합니다. 대규모로 비용을 줄이고, 네트워크 힘을 계속 키웁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인 한살림은 작은 생명공동체들을 니누고 연결하여 개념상 작동가능하고 민주주의가 가능한 적정 수준의 생산력을 만드는 모델을 지향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루소의 작은 공동체 정신과 AI 시대의 연결 기술을 결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호가 갈 길은 지역 분권을 유지하며 '작은 공동체의 자유'와 '큰 사회의 효율'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아닐까? 그저 아침에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제 종일 한 살림 협동조합 회의를 하느라 원주를 떠나 서울에서 몸이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귀 밑이 가려워 점을 뺏더니 구멍이 났습니다. 치통은 아직 계속되고 잇몸 곪은게 잘 낫지 않습니다. 숙의 민주주의는 이상주읭고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으니 협동조합을 돕게 됩니다. 그나만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조직이니 살려야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