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교회개혁+사회개혁
오는 10월 30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대학교 신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당시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회의 면벌부(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마인츠 대주교와 브란덴부르크 주교에게 보냈는데, 이로부터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전 세계의 개신 교회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삼게 되었고, 10월 31일 당일 또는 그 직전의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킨다.
그런데 종교개혁 정신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개혁이라는 점은 쉽게 수긍이 되는데, 우리 사회의 개혁까지 포함한다는 점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까지 포함한다.
종교개혁으로 번역된 독일어는 ‘레포르마치온’(Reformation)이다. 직역하면 우리말로 ‘개혁’이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에만 국한된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을 넘어 사회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그럼 종교개혁이 사회개혁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성경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 원리에 의거하여 사회를 개혁했다. 예컨대 요한 칼빈은 성경의 핵심인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 입각하여, 하나님이 교회와 국가를 모두 다스리신다고 보았다. 그리고 교회의 통치와 국가의 통치는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국가의 통치 목적이라고 말했다(『기독교 강요』 4. 20. 1.).
그리고 칼빈의 영적 아버지로 불릴 만큼 칼빈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부처는 입헌주의 정치사상에 입각하여 당대의 절대왕정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사무엘 러더포드는 자신의 책 『법과 왕』(Lex Rex)에서 절대왕정을 입헌군주제로 변혁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게다가 종교개혁은 유럽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심지어 협동조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교회에서 정의를 외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오직 교회개혁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사회개혁에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종교개혁의 후예라고 여기면서, 오직 교회개혁만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통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의 소산에 불과하다.
내가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역사에 대한 무지보다 더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사랑의 부재이다. 사회개혁은 사회의 불의 때문에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건지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사회개혁에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예컨대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탐욕 때문에 집값과 전월세가 동반 폭등하고 그에 따라 반지하방에서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서민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다. 여름의 큰 비로 숨진 반지하방의 세 여성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 개혁가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품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회개혁과 사회개혁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 말고 이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