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1,097m) - 충북 제천
☞ 산행일자 : 2018. 7. 14.(맑음)
☞ 산행경로 : 월악산통나무집~보덕암~하봉~중봉~영봉~송계삼거리~마애불~덕주사~덕주교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2.6km 실거리 15.2km
☞ 산행시간 : 약 6시간 55분
통나무집(10:07)~보덕굴(10:47)~보덕암(10:55)~하봉(13:08)~중봉(13:27)~영봉(14:13)
신륵사삼거리(14:43)~송계삼거리(15:10)~마애불(15:12)~덕주사(16:46)~덕주교(17:02)
오뉴월 염천에 그것도 하필이면 여름의 더위가 맹위를 떨칠때
산을 오르면 "악"소리가 난다는 월악산을 간다...
월악산은 8년전에 오늘 이 코스로 오른적이 있다.
그땐 하봉을 오르지는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중봉으로 갔었는데
오늘보니 하봉에도 계단을 설치하여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영봉 오름길도 예전과는 달리 가파른 암벽에 계단을 설치하여 곧바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다보니 안그래도 계단이 많은 월악산이 온통 계단만 오르내린 것 같다.
하산길에도 온통 돌투성이.. 제발 흙길도 좀 밟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산행들머리인 통나무집..
예전에 이 길은 2026년까지 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산행금지였었는데
이젠 통제가 풀렸나보다...
멀리 월악산을 바라보며 넓은 도로를 따라 들어서고..
충주호의 한자락에 산그림자가 비친다...
초반엔 넓은 임도가 이어지더니...
루드베키아와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곳을 지나니..
등로는 점점 좁아지고 경사도 점점 심해진다..
예전 산행때 기억에 남아있던 석문도 지난다...
보덕굴 갈림길...
초반부터 더운 날씨에 힘을빼서 그런지 대원들 대부분 그냥 지나가고...
보덕굴..
보덕굴앞에 작은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앞쪽이 탁 트여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수산리 방면...
보덕암 뒤 공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보덕암(寶德庵)
보덕암의 연원은 신라시대 왕리조사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여 왕리사(王利寺)라고도 한다.
현재의 보덕암은 주지가 1984년 입산한 이래 천일 기도하면서 1986년에 자연스럽게 지금의 가람을 증축하였다.
기암 층벽위에 있던 고탑 3기는 멸실되어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절터에 흩어져 있는 약150매의 정방형과 장방형 전탑 부재가 수습하여,
항아리에 사찰 연기를 넣은 다음 미완성 전탑을 축조하여 대웅전 뜰에 세웠다.
사찰에 있었던 신령각과 칠성각은 삼성각으로 대체하였다.
한편, 보덕암은 옛날에 부유한 사람이 고질병으로 병환이 위독하자
가마를 타고 지금의 경내에 와서 약수를 마시고 완쾌한 곳으로 전한다.
이처럼 중생의 병환을 쾌유시키는 암자로 정평이 나면서
약수터 위에 약사여래불입상을 안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덕암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하고 본격적인 월악산 오름길로...
도라지꽃....
드디어 침목계단부터 월악산의 유명한 계단이 시작되고..
보덕암에서 20분쯤후 보덕암 0.5km 지점을 지나고
계속해서 계단길이 이어진다..
아직 산행 초반이건만 온 몸은 물에 빠진 것처럼 땀으로 푹 젖어버렸다..
퇴적 편마암 책바위
떡시루를 연상케한다.
처음으로 수산리 방면으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후 하봉 직전의 전망대 데크에 도착한다...
송계1교와 월악교가 보이고 그 뒤로 청풍호가 넓게 펼쳐진다..
탄지리 방면
월악산 유스호스텔도 보이고 그 뒤로 등곡산과 황학산
솔나리...
솔나리는 잎이 솔잎과 닮았다고 하여 솔나리라고 한다.
하봉과 중봉을 바라보며....
예전엔 하봉은 우측으로 우회를 하였는데 이제는 다리가 놓여 곧바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멋진 소나무 뒤로 하봉이 보인다..
하봉 오름길...
하봉을 오르면서 돌아본 충주호
충주호의 모습이 언듯 한반도의 모양을 연상케한다..
멀리 주흘산이 보이고..
하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중봉과 영봉
경사가 심한 철계단을 따라 하봉을 내려서면서...
중봉과 영봉
중봉으로 오르는 길...
예전에도 와이어를 잡고 올랐던 기억이 난다.
통천문...
하봉과 충주호
바위 사이사이에 예전에 없던 계단을 설치하여 하봉을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는데
공단에서는 무조건 못가게 막는 줄만 알았더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쨋든 보덕암에서 영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가히 월악산 등반 코스 중 가장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오늘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중봉 오름길
중봉에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중봉에서 본 충주호
제천의 한수면 송계리...
중봉에서 본 영봉...
정상부근에 예전에 없던 계단이 보인다.
중봉을 내려서서 영봉으로 올라가는데 방향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예전엔 좌측으로 빙 돌아 보덕암삼거리에서 올라갔었는데
가만히 보니 곧바로 영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만수리지 능선따라 탄항, 주흘이 차례로 보인다.
거의 수직으로 놓인 계단...
사방으로 시원하게 조망이 트여 잠시 더위를 잊는다.....
돌아본 중봉...
새로 놓인 영봉 오름길의 계단......
월악산 영봉
충북 제천과 충주에 걸쳐있는 월악산은 삼국시대에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리웠고,
고려초기에는 "와락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려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중원의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되는 바람에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계8경중 하나인 영봉은 해발 1097m이며 월악산 주봉으로서
웅혼 장대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남성적인 산이라 표현되고 일명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영봉과 더불어 중봉, 하봉등의 거암으로 형성된 암벽은 높이 150m, 둘레 4km로서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신령스러운 봉우리라 하여 영봉(靈峰)
또는 나라의 큰 스님이 나온다고 하여 국사봉(國師峯)이라 불리었으며
옛날 나라의 중요한 제사인 소사(小祀)를 지내던 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산중에서 정상을 영봉이라 부르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둘뿐이다.
영봉에서 보여지는 전경은 충주호와 남산, 계명산 등이 어우러져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맑은 날에는 치악산과 소백산도 조망할 수 있다.
예전엔 이쪽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었는데 오늘은 반대쪽에서 올라왔다.
정상 아래에서 한동안 휴식후 하산하면서 보니
"은꿩의 다리"가 한 무더기 피어있다.
"자주꿩의 다리"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은꿩의 다리"인것 같다..
이쪽 방면도 계단이 새로 놓인 것 같고...
제천의 덕산면 방면
어래산..
영봉에서 15분쯤 후 신륵사 삼거리를 지난다..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고..
잠시의 오름길이지만 더운 탓인지 무척이나 힘이든다..
산행후 처음 만나는 흙길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송계삼거리...
헬기장...
헬기장에서 돌아 본 영봉....
마애봉(960.4m)
삼각점은 출입이 금지된 펜스 안쪽에 있다..
펜스너머로 만수리지가 시작되는 곳이다..
마애봉을 지나면서 등로는 가파르게 떨어지고..
울퉁불퉁한 돌 길이 쉽게 하산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덕주골과 만수리지의 끝자락에 일자를 그리는 만수봉과 포암산
우측에 주흘산 주봉과 영봉도 보인다....
월악산 영봉이 보이는 전망대....
영봉과 중봉이 보이고...
영봉에서 송계리로 떨어지는 능선...
암릉이 아주 아름답다...
월악산의 만수리지...
기파른 계단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다시피하는 계단길..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산객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만수리지..
우측에 만수봉과 포암산
주흘산과 멀리 백두대간길...
주흘산을 당겨보고...
좌측 주봉에서 영봉과 우측의 부봉들이 선명하다.
만수리지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
만수리지의 대슬랩...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한 소나무가 너무 멋지다...
덕주골...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보니 동굴이 하나 보인다..
내려가볼까 하다가 덥고 힘들어 그냥 통과...
마애불의 역사
월악산 중턱 "마애불"엔 덕주공주가 오빠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다.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하늘재)에 이르러,
마의태자의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조성하여 만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잊지말라"고 하였다.
일행은 그 장소를 찾아 석불 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 마애불이다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월악산 남쪽 기슭의
상덕주사 극락보전 동편의 큰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다.
불상은 곧선 모습의 입상으로 얼굴은 두드러지게 새겼지만 신체는 얕게 새기었다.
불상을 새긴 바위에는 목조전실을 만들기 위한 구멍이 남아있다.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머리가 크고 비만하게 표현된 양식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덕주산 성터...
덕주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영봉에서 2시간 20분쯤 후 덕주사에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덕주사 입구로 나오면서 산행을 마친다....
덕주사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구전으로 587년(진평왕 9)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월악산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569) 월형산 월악사로 불리었으나,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이곳에 들러 마애불을 조성하고
산 이름을 월악산, 절 이름을 덕주사, 그리고 절 있는 골짜기의 이름을 덕주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지고 있다.
본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마애불 주변의 상덕주사와
현재 절이 위치한 하덕주사가 있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중 소실되었다.
현재 덕주사는 1970년 중건을 시작으로 최근 대웅보전을 새로 건립하여 옛 덕주사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학소대
월악산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감도는 곳으로 절벽을 따라 긴 덕주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덕주산성 동문과 학소대 위 망월대가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 곳인데
덕주사 불경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지고 옛부터 학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애불로 가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아 쉬어가는 안식처로 여기에 앉으면 신라 천년사직의 비운을 회상케 한다.
제천 덕주산성(동문)
충북 기념물 제35호인 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 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 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수경대
"삼국사지" 권32제사지에서 "국가에서 제사하는 것에 대하여
대사(大祀)인 삼산(三山)과 중사(中祀)인 오악(五嶽)에 이어 소사(小祀)를 올리는 산으로
금강산, 설악산 등과 함께 월형산이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월악산이 신라 때의 월형산으로 수경대는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자연의 소(沼)를 만들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송계8경의 하나이다.
덕주산성 남문과 마주보고 있는 망폭대
월악산 자락 국도변에 우뚯 솟은 망폭대 송계8경의 하나이다.
바위와 어우러지는 소나무가 일품이다...
망폭대는 송계8경중 하나로 제2의 금강산이라 칭하는 기암과
고무서리 계곡을 굽이도는 맑은 물이 어우러진 절벽으로
신라시대에 축조한 덕주산성의 안쪽 맥이 이어져 있어 더욱 특이한 느낌을 준다.
절벽위에 있는 노송은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을 닮았다 해서 정삼품송이라 한다.
산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