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스님의 ‘가시를 거두세요’ <14> 노후에 남은 말년을 보내는 법
돈, 연애, 술 말고...노후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불교는 ‘이번 생이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 다음 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우리의 말년이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선업을 짓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도 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인생 말년 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
자신이 지은 업의 인연따라 나타나
세상일 다 겪어보고 비로소 쉴 때가
불자로서 오직 수행에만 집중할 때
명나라 시대 4대 고승 중에 한 분으로 손꼽히는 운서주굉(雲棲株宏)이란 고승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쓰신 ‘죽창수필’이란 책에 아주 좋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즐기는 것이 있다. 그 즐기는 것을 따라 세월을 보내면서 늙어가다 죽는다.
사람이 즐기는 것들 중에 가장 탁한 것으로는 재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다음은 색욕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다.
조금 고상한 것으로는 골동품을 감상하는 것, 음악이나 바둑을 즐기는 것, 경치 좋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시를 외우는 것이 있다.
나아가 책 읽기를 즐기는 것이니, 모든 취미 중에서 독서가 가장 훌륭하다.
독서 중에서 부처님의 경전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다면 마음을 깨끗이 닦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취미이다.”
우리 불자님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연애, 술’을 엄청 좋아하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돈도 필요하고, 연애도 필요하고, 술도 필요하고, 유흥도 필요하지요.
아마 사람들에게 ‘돈, 연애, 술’을 금지시키면 폭동이 일어나거나, 아예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다 젊었을 적에 씨 뿌리고 밭갈고 수확하던 세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편이었을 뿐입니다.
이제 젊음은 황혼의 석양 마냥 기울어지고 앞으로는 살아갈 날보다 가야할 날을 기다리는 시기가 왔습니다. 노후를 맞이한 사람에게 하루하루의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해야 아름답고 의미 있게 보낼까요?
어떤 사람은 그 동안 못해 두었던, 혹은 마음에 가득 담아두었던 계획을 실천할 겁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가족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거나,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취미 활동을 배우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푹 쉬거나, 또는 노후 자금이 충분치 않아서 계속 일을 구하러 다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저마다 다 다릅니다. 일이 술술 풀리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사는데도 자꾸 장애가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년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노후를 맞이하여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말년이 되어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한 분들이 많습니다. 중생의 살아가는 모습이 저마다 다 다릅니다.
왜 중생마다 살아가는 모습에 차별이 생길까요?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가리켜 ‘업보차별(業報差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지은 업의 인연대로 업보의 차별이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 ‘원인(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복’ 혹은 ‘선업’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큰스님들께서도 수없이 늘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은 다 자기 복대로 살아간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 ‘복, 선업’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노후와 말년을 보낼까요. 결론은 ‘수행’입니다.
우리 불제자는 늘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스승은 부처님이시고, 우리 삶의 교과서는 부처님의 말씀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 불제자는 이번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소중한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젊을 때는 부처님 법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과 가정에 신경을 쏟느라고 수행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말년의 노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일도 다 겪어보고 몸도 마음도 조금은 쉬어지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수행할 때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선배 스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어느 여성 불자님이 계셨습니다. 평생 교직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불교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신행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말년에는 오로지 반야심경 사경에 몰입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거의 밖에도 나가지 않고 이런 저런 일들은 다 끊어버리고 최대한 단순한 삶을 살면서 하루 종일 반야심경을 사경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걱정되어 안부를 여쭈면 늘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나는 부처님 말씀 사경하는 게 가장 재미있고 좋단다. 그러니 내 신경은 쓰지 말거라.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이었습니다. 불자님은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해서 가족모임을 가졌습니다.
온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둥그렇게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불자님은 가족들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덕담을 해주고는 가만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가족들이 한참 대화를 하다가 어머니가 아무 말도 없이 눈감고 가만히 앉아계셔서 피곤하신가보다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방안에 들어가려는데 가족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아서 차를 드시다가 그 자리에서 평온한 얼굴로 세상을 떠나신 거였습니다.
말년에 오로지 반야심경만을 사경하며 수행에 전념하셨으니 그 공덕의 힘이 빛을 발한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전 송광사의 방장 큰스님이셨던 보성스님께 아주 친분이 깊은 노보살님이 있었습니다. 노보살님은 98세까지 아주 건강하게 장수를 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세상을 떠난 인연이 더욱 신기하고 오묘합니다.
노보살님이 말년에 오직 ‘나무아미타불’ 염불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보성스님께서 그 노보살님을 만날 때마다 ‘염불 잘 하세요’ 하면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항상 대답하더랍니다.
하루는 큰스님께서 그 집 며느리를 만났는데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네 시어머니 어떻게 지내시는가?”
“스님. 저의 어머니 하루 종일 염불만 하고 계십니다.”
하루는 큰스님께서 그 보살에게 직접 물어보셨다고 합니다.
“할머니, 친구 좀 있소?”
“저 친구 아주 많습니다.”
“무슨 친구가 그리 많소?”
“아미타 친구입니다.”
대답을 듣고 큰스님도 감탄하셨다고 합니다.
노보살님은 평소에 입버릇하기를 ‘나 죽을 때 더러운 것 보이지 않고 가겠다’라고 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노보살님이 방에 보이지 않아서 아들이 어디 계시나 찾아봤는데 화장실 변기에 가만히 앉아 계시더랍니다. 그런데 불러도 대답도 없으시고 느낌이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뱃속의 오물을 모두 변기에 쏟아내고 아주 편안한 얼굴로 숨을 거두신 후였다고 합니다.
늘 평소에 말씀처럼 ‘죽을 때 더러운 것 안보이게’ 변기에 다 쏟아놓고 편안히 떠나신 겁니다.
불교는 ‘이번 생이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가르칩니다. 다음 생, 다음 생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인연따라 펼쳐지고 인연따라 흩어집니다. 그 업의 인연 또한 내가 만든 것입니다.
노후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할까요. 진정한 불자라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씀을 사무치게 되새겨야 합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오직 수행할 뿐입니다. 수행과 정진의 등불이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수행하고 정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