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수행의 바른 길(2)
지환 스님
(동화사 선원장)
이제 반야행에 대해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반야안목과 반야삼매 그리고 반야행은 셋이면서 하나고 하나면서 셋입니다.
‘나’라는 것을 굳이 둘로 나누어 보면 몸과 마음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 오온은 모두 공한 것이라 했습니다.
오온을 나로 삼고 있는데 오온이 공한 것이라 하니 결국 나는 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나는 공한 것’이라며 외워도 생각뿐이지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든 화두든 직접 수행을 해서 자신이 텅 빈 것임을 체험해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느끼는 것과 계합은 이보다 더 큰 차이입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목숨을 걸고 정진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무아’(無我)라는 말 속의 ‘무’는 빈병을 예로 들었을 때 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병 속에 아무런 잡동사니가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야행의 첫걸음은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면 반드시 대립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순수하게 사랑할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때는 나를 안 내 세우죠?
나를 안내세우니까 대조화가 일어나 매일 행복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는 당신은 ‘내 것’ 하는 소유심을 내며 나를 드러냅니다.
나라는 것이 있으면 당신이 있게 되고 당신이 있게 되면 내가 있으니까 대립이 생겨 그 조화가 깨집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나를 비워야 합니다.
나 중심으로 살면서 내가 있다, 내가 잘났다, 나다 하면서 수행을 따로 하려 하면 참선 공부는 안 됩니다.
화두가 안 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딱 잡아 놓고 탐심과 진심이 막 출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워야 화두가 잡힙니다.
이 마음 청정하여 한물건도 없거늘
탐진치로 말미암아 경계의 막힘을 보는 도다.
눈동자가 돌출해서 전체가 드러나면
삼라만상이 허공의 꽃이로다.
나를 비워보려는 반야행의 작은 실천만으로도 우리는 대립을 떠난 자비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길이 멀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이미 이룬 것입니다.
정진의 원력을 놓지 말기 바랍니다.
출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