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生, “(雜誌評)『진달래』 三月號”, 『조선중앙일보』, 1949.3.15. (불수록)
귀여운 子女들의 旺盛한 知識慾을 滿足식혀 주기 爲하여 書店에 들어갓다가 정말로 좋은 冊을 사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란 子女들은 勿論 어버이들의 크다란 질거움이 아닐 수 없다. 少年文藝 科學 雜誌 『진달래』 三月號는 이러한 要求를 滿足식히기에 足한 敎養 높은 內容을 갖이고 있다.
朝鮮語學會 정인승, 서울大學 이병기 두 先生의 生々한 三一運動 經驗을 비롯하여 李王宮雅樂部 성경린 氏의 「朝鮮 音樂 이야기」는 器樂과 聲樂과 춤까지도 어울려서 그것이 아주 하나 되어 떠러지지 안는 높은 朝鮮의 古樂을 解說한 好個의 글이였고 백승국 氏의 鐵石式 라디오 맨드는 法은 十三張의 圖解까지 있는 親切이였다. 그 밖에 多彩하고도 華麗한 小說, 詩, 常識, 畵報만으로도 國民學校 上級生과 中學 下級生들이 百圓 紙幣 한 장과 交換하는데 吝색할 必要가 조곰도 없을 程度의 것이다.(尙文堂 發行, 값 百圓) =牛生=
『진달래』는 1948년 12월에 창간하였다. 주간 이석중, 편집 박인해, 편집위원 이원수, 이원호, 박인범 외 제씨가 잡지 발간을 위해 애를 썼다.[「아동지 『진달래』」(『조선일보』, 1948.12.7) 참조] 1950년 1월호부터 『아동구락부』로 개제하여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