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안군 주요명소
입곡군립공원
입곡저수지는 일제시대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협곡을 가로막은 저수지로서 둘레가 약4Km나 되며 폭은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길이는 뱀처럼 생겨 끝과끝을 볼 수 없는 함안에서 제일 큰 저수지이다. 저수지 왼편을 따라 깍아지른 절벽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고, 송림사이 잔디나 암석이 자연 그대로의 노천 휴게소를 제공한다.
못 가에는 낚시를 소일 삼는 강태공들의 무리가 줄을 잇고, 휴일이면 가족 단위 인파가 줄을 이어 주위의 인근 도시민에게도 그 소문이 자자하다. 봄이면 동편 산등성이와 암벽 사이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찾는 이의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하는 유일한 함안의 유원지이다.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문의/안내 * 함안군청 농업산림과 055-580-2581 * 산인면사무소 055-580-3851

냉천관광농원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산 21번지에 위치한다. 인근관광지로는 와룡정, 마애불상과 백이산등이 자리잡고 있다.
초원관광농원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산 71번지에 위치한다. 인근관광지로는 장춘사, 구고사, 칠원향교등이 자리잡고 있다.
가나안관광농원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1221번지에 위치한다. 인근관광지로는 이방실장군 사당인 필풍정,
와룡정, 마애불상과 백이산등이 자리잡고 있다.
함안박물관
도항·말산리 고분군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함안유물 전시관은 가야읍 도항리 748번지 삼기마을 옆쪽 5,200여평의 부지위에 7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건평 577평, 지하1층, 지상 2층으로 2003년 10월 건립되었다.
내부시설에 전시된 유물은 92년 가야읍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시 출토된 4∼5세기때 수장층의 말갑옷, 환두 대도,옥재목걸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유 물과 수레바퀴모양토기, 화염형투창고배 등의 토기류를 비롯해 도항·말산리 고분군 일원에서 출토된 안라국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748번지
055-580-3621
장춘사 5층석탑
장춘사 대웅전은 1979년에 신축한 건물로 팔작와가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이른다.대웅전 뒷편에는 맛배지붕으로 정면1칸, 측면1칸의 조그마한 약사전이 있는데 이곳에 안치된 불상 이 지정문화재로 보관되고 있는 약사여래좌상이다.
총 높이 94㎝, 흉위 40㎝로 비교적 작은 불상으로서 광배와 함께 1매석으로 조성하였는데 1978년 왼쪽 어깨부분에 오른편으로 금이 나있어 개금을하여 불상과 광배의 조각수법을
전혀 알 길이 없다.
장춘사는 서기 832년 신라 42대 흥덕왕 7년에 무량국사가 초장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 한 문화적 가치와 계속적인 연구를위해 1983년 7월 20일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계속적인 연구와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14번지 장춘사 055-587-1400
무진정
경남도 유형문화재 158호로,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7 에 위치한 이 정자는 무진 조삼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 22년인1567년 후손들이 건립하고 그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하였다 한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인 148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인 1507년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창원, 대구, 성주, 상주의 목사를 역임하였으며 사헌부 집의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현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으로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각지붕의 건물이다.
고려동 유적지
경삼남도 기념물 56호로,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에 위치한 이곳은 고려말기 성균관 진사
모은 이오선생께서 고려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돈적복거한 곳으로 고려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 고려동학표비, 율간정, 자미정, 복정 등이 있는 장내 부락
일원이다.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 함안군청 문화관광과 055-580-2301
무산사
무산사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유학자인 주세붕(1495~1544) 선생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중종 38년(1543)에 백운동 서원을 세워 우리나라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으며,이를 기리기 위하여 숙종 24년(1698)에 선생의 후손이 세웠다.
고종(1863~1907)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탔다.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세운 것이다. 무산사 내에 있는 무산서당은 앞면 5칸 · 옆면 2칸의 1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 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풍각(光風閣)에는 주세붕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장판각(藏板閣)에는『무릉잡고(武陵雜稿)』·『수구집(守口集)』·『귀봉집(龜峰集)』책판 352매가 보관되어 있으며, 1976년 4월 15일 유형문화재 제14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544번지
아라가야 고분군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은 가야읍에서 함안면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가면, 오른쪽 야산 구릉지대에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 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함안은 본래 아시랑국, '아라가야'라 하기도 하였으며, 가야는 신라 때 멸망당했으므로 이 고분군들은 가야 국왕들의 묘로 보인다.
함안군 가야읍 도향리, 말산리
문의/안내 함안군 문화관광과 055-580-2301
함안 도항리·말산리고분군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있다.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읍 도항 · 말산리 일원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나 되는 중소형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34호분은 봉토(封土)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왕릉이었다.최근에는 고분군 북쪽끝 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人骨)이 확인된 제8호분의 조사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자모양의 굽다리접시(工字形 高杯)불꽃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 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둘째, 각종의 큰칼 · 갑옷 · 말갑옷 · 새가 달린 비늘쇠(有刺利器)같은 철제품과 금·은 ·유리·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 주었다. 셋째, 기원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성립 · 발전 · 멸망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이 고분군의 출토품과 같은 유물은 동래 · 경주 ·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라 가야의 산물이 다른 가야와 신라, 일본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고분군의 규모와 화려한 유물들은 6세기경의 아라가야가 남부가야의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교섭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의 말산(末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었다. 말이산(末伊山) 마리산은 머리산이었다.원래는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으며,1962년 1월 21일 사적 제84 · 85호로 지정되었고, 본고분군의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2001년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인근 문화유적과 함께 역사탐방 코스로 개발해 나갈 것이다.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산리 함안군청 문화관광과 055-580-2321
함안 무기연당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風浴樓)와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정원문화(庭園文化)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한 이곳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 966번지
함안향교
함안항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효종(1649~1659) 때 세워진 것으로 그 뒤 한국 전쟁 때 불탔으나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출입문인 외삼문(外三門),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 · 서재(東 ·西齎), 사당(祠堂)인 대성전과 동 ·서무가 일렬로 서 있으며,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대성전 좌우에 동 ·서무가 나란히 서 있는데, 이것은 급경사지라는 지형의 제약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현재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으로 한 중국성현 7位를 봉안하였고 동무에는 설총을 비롯한 9位,서무에는 최치원을 비롯한 9位 등 국내성현 18위를 봉안(奉安)고 춘추(春秋)로 제(祭)를 지내고 있으며 1983년 8월 6일 유형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1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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