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티비에 비친 김홍일님의 모습내귀와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홍일 의원이라고 전해 들었는데낯설은 남자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볼살이 통통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그런데 이 분이 김홍일 의원이라니 ?????나뿐 아닌 많은분들께서김홍일의원의 변하신 모습을 보시고안타까운 마음의 글이 올라와 써 보았다.아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아버지 마음은 어떠하셨을지???황태자의 자리도 잠시잠깐 남겨진 것들은 무엇일까?마음에 상처, 육체적인 아픔, 평생 따라다니는 응어리들이다.돌아가신 친정 아버지가 생각나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김대통령님 모습과 친정 아버지 모습이 많이 닮으셔서 티비에 김대통령님이 보이시면 아버지를 뵈온 듯 너무 좋았었다.그런데 이제는환하게 웃으시는 모습도 멋진 목소리로 전해주시는 연설도 불편한 몸으로 민주화의 발전을 위해 뛰어다니시는 모습도 다시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무거운짐 내려 놓으시고 고충없고 아픔없는 평안한곳에서 영면하시길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다행히 국장으로 치뤄지시는 김대중 대통령님에 마지막 가시는 길먼 소풍길 배웅해 드리고 싶어 국화꽃 한 송이 올려드리러 구도청으로 가야겠다.삼가 고인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파킨슨씨 병' 김홍일 모습에 네티즌 충격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야윈 모습에네티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쏙 빼닮은 통통한 모습은 오간 데 없고병세로 수척해진 모습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채 조문객을 맞고 있다.김 전 의원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3년형을 받은 바 있다. 이후 1995년 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남 목포·신안갑에서 출마해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김 전 의원은 1972년 공군 중위로만기 전역할 만큼 구속되기 전에는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네티즌들은 김 전 의원이 군사독재시절 고문을 받아그 후유증으로 병약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김 전 의원은 아버지의 혐의를 허위로 자백하지 않기위해 고문을 받던 중 자살 시도까지 한 적이 있다.김 전 의원은 90년대 들어 파킨슨씨 병이 발병해 행동뿐 아니라 언어에도 상당한 장애를 겪고 있다.네티즌들은 "TV화면을 보고 김 전 의원이 아닌 줄 알았다","김 전 대통령도 이런 아들의 모습에많이 힘들어했을 것" 등의 글을 올리며 안타까워했다.평생의 우상이자 굴레였던 아버지의 영정에 노년의 자식은 가눌 수 없는 손으로도 끝까지 꽃을 바치려 했다. 파킨스씨병에 시달리면서 몰라볼 정도로 초췌하게 변한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와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대면 장면이 소개되면서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최경환 비서관은 19일 브리핑을 통해홍일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했다전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혈압이 떨어지고 사실상 임종 직전 상황에 까지 이르자당시 병실을 지키던 홍일 씨는 느리지만 또렷하게'아버지'라고 외쳤다고 함께 있던 가족들이 전했다.홍일씨는 파킨슨씨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 지금까지 말한마디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최 비서관은 "김 씨가 지난 1980년 5.17 내란 음모사건으로중앙정보부 조사기관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 끝에신경계통을 다쳐 파킨스씨병이 발발했다"고 설명했다홍일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고문 후유증으로 잠을 3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계속 악몽을 꾸곤 했지만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후유증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그 두툼하던 얼굴이 몰라보게 훌쭉해졌다 (왼쪽 사진은 건강하실때 모습)◈존경하는 하지만 평생의 굴레였던 아버지홍일 씨에게 DJ는 범접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당해야 했던 심신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민주투사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두 차례에 걸친 모진 고문으로평생 불편한 몸을 감수해야 했고대통령의 아들이라는 낙인 덕분에 정치인생 또한 순탄치 못했다. 지난 1995년 전남 목포신안갑에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3선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의 행동은 정치인 김홍일이 아닌'DJ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대선에 당선되자 김 씨는 "김현철 씨와모든 것을 반대로 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황태자로 불렸지만 YS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던 현철 씨를 언급한 점에서그의 심적인 부담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평생 아들에 대한 부채의식에 시달린 DJ이런 장남의 고통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고 장남에 대한 부채의식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문 후유증으로 언변조차 어눌해진 장남 홍일의 국회의원 출마는 언제나 DJ정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몇몇 측근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김 전 대통령에게아들들에 대한 주의와 근신을 조심스럽게 조언하기도 했다.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아비로서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고,홍일이는 나 때문에 고문을 당해 장애까지 얻었소.그런데 아비가 되어서 아들이 국회의원 정도 하는 것마저 막을 수 있겠는가"라며 단호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J의 아들들에 대한 부채의식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김홍일은 3선 의원에 당선됐지만 나라종금로비 사건에 연루,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고 형제들 모두 줄줄이 비리의혹에 연루되면서 DJ 정권 또한 YS 정권 말기를 뒤쫓게 됐다◈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꽃을 바치려 안간힘을 쓰던 아들김 전 대통령의 홍일 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 누구보다 이희호 여사가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위급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홍일 씨가 두번에 걸쳐 찾아오자"홍일이도 건강이 좋아져서 이렇게 병원까지 왔어요.너무 좋은소식이 많아요. 빨리 일어나세요"라며 남편을 격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전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되고 빈소가 차려지자 이젠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게 된 아들은아버지의 영정에 꽃 한송이를 바치려 했다. 하지만 병마에 망가질대로 망가진 아들에게는 손에 들려진 꽃 한송이의 무게가 그렇게도 무거웠을까. 떨리는 손으로 영정에 제대로 헌화를 하지 못해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경환 비서관은 "홍일 씨가 김 전 대통령의 37일 투병기간 동안 세 번 방문했는데 비록 몸은 안좋지만 사람들을 보면 웃고 의식은 똑바른 것 같았다"며쾌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출처: 용인코오롱스포츠 원문보기 글쓴이: 까막돼지(친구사이)
첫댓글 슬퍼지네요비오는 날에
안타깝네요~~일장춘몽 인생무상......
있을때 잘혀구러니께 잘햐유맞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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