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한 대로 이름있는 국립공원 답게 順逆 쌍방향 많은
요산인들과 접촉했다.
변방에 해당하는 빼재 ~ 횡경재에서는 주로
북상하는 대간 종주팀들과의 해후였으며
동엽령 이후는 다시 나홀로의 여정이 되었다.
과연 덕이 많은, 넉넉한 산은 베풀기도 많이 하나 보다.
못봉(池峰)의 대간팀은 내 남은 이틀간의 보급책역을
자임하는가.
빼재에서 종료한다는 그들은 가진 먹거리들을 몽땅
내게 넘겼다.
나와의 동행을 기피할 만큼 산에서의 부실한 섭취와 불휴(不休)로
악평(?)이 난 늙은 이기에 요기거리가 미약한데 돌연 거부가
된 느낌이었다.
오순도순, 화기애애한 그들의 대간 장정을 축복하며 막연하지만
재회를 기약했다.


못봉에서 함께 식사한 그들은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조현탁님이 보내온 덕유산 진경들은 더불어사진자료실에 올린다.
못봉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팀과 교행하게 되었다.
청주의 대간 종주팀이다.
그들중 후미의 몇분과 정담을 나누고 추억만들기(사진)를 한 후
백암봉 턱 아래에 이르렀다.

청주의 유병철님이 보내온 위 사진외에 2매는 사진자료실에 올린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중이던 50대에 막 접어든
두 부부는 각별했다.
대전의 치과 원장 부부와 내과 원장 부부.
특히 치과 윤창구 원장 부인이 손수 만들었다는 쿠키는
무룡산을 넘을 때 요긴한 활력소였다.
품위있는 위트로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 준 그 부부들에게
고마움을 거듭 표한다.
윤창구의 실토대로 위 아래(부모와 자식)를 다 거느리는 일로
여념이 없는 세대지만 그럴 수록 건강을 위해 더욱 자연과
친숙하기를 당부한다.
의사인 그들이 어련히 챙기랴만 남의 건강 지키미인데 반해
자신에 대해선 소홀한 직업이 의약사(메뉴 <지혜의 샘> 21번
글 참조)이기 때문이다.


윤창구 원장이 보내온 사진
위/두 원장 부인과.
아래/ 두 원장 좌:치과 우:내과
백암봉 넘어 동엽령으로 내리 닫는 길에서 동행한 전주 방송통신
대학교의 김종규는 붙임성 있는 50대다.
그 학교 학보사 이대의의 이름 세자가 우리의 거리를 좁힌 셈이다.
왜냐면 이대의라는 공통분모가 우리의 대화를 발전시켰으니까.
그의 일행은 그 학교 교직원 학생 단합 산행중인 듯 했다.
학교의 특성상 학생과 교직원이 얼핏 구별되지 않는 그들 일행과
동엽령에서 헤어졌다.

김종규님(좌)이 보내온 다른 사진은 사진자료실에 올린다.
화사한 철쭉의 마지막 자태를 감상하러 올라온 남녀노소 요산객들로
번화가를 방불케 하던 덕유산의 심장부와 너무 대조되는 고요 자체의
무룡산에서 삿갈골재 대피소에 이르기 전에 하루를 정리했다.
덕이 많아 덕유산, 덕이 많은 산에 들면 사람도 덕스러워 지는가 보다.
아니다.
본디 산은 인(仁)이다.
덕(德)은 인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산은 덕이다.
요산인들이 덕스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