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영접한 이후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되었으나 우리 신앙은 변질되었다. 세속화, 물질화, 외형 중심적이고 형식적인 경건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성령의 말씀에 순종치 않게 되었고 성령도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우리도 들을 귀를 잃게 되었고 자기 목소리만 들리게 되었다. 성령의 역사란 우리 현실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우리는 고난과 회개를 강조하는 설교는 싫어하고 축복과 은혜, 칭찬받는 설교만 좋아하게 되었다. 교회를 크게 짓고 교인 수 많은 것을 자랑하였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으며 이제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럼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첫째는 순종하는 자세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고 우리가 순종하려고 할 때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둘째는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는 자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졌다.
중국의 교회들은 자기들을 핍박하는 정부가 무너져 자기들이 자유롭게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잘 단련 받아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 앞에는 희어져 추수해야 할 곡식이 널려져 있다.
우리의 할 일은
첫째, 이 땅의 그리스도의 문화가 뿌리를 내리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 비해 교인과 교회 수는 많이 늘었지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감소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일날만 교인이 되고 평일에는 비 기독교인이 되는 현실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나 하나 잘못 살아도 아무도 모르게 살 수 있는 익명의 사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각 교회는 교인들에게 모이는 교회의 역할만 강조하지 말고 흩어져서 살 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도록 양육해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어느 목사님이 강조하신 평신도 사역자를 기르는 운동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 나라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해이와 부패, 정신적, 영적 구심점의 부재를 해결할 책임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먼저 행동하고 생활한 뒤 복음을 전하면 더욱 복음이 잘 전파되지 않을까 한다.
둘째, 주의 지상 사명인 선교에 열정을 다 쏟아야겠다.
중국의 가정 교회가 열악한 환경에서 중국 선교에만 신경 쓰지 않고 back to Jerusalem 운동을 일으키는 일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원래 중국의 한족(사실 지금의 한족은 대부분 동이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동이족인 우리 민족과 일본민족은 일찍이 수 천 년 전에 하나님이 말세에 쓰시기 위해 동북아 이 땅에 심어 놓으셨다고 한다. 오랜 역사 동안 서로를 미워하면서 싸우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화해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세 나라가 연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이런 시점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할 일은 쇠잔해 지고 있는 유럽 등 서구의 기독교를 다시 깨우고 일본을 회개시키며 북한의 우리 동포를 아우르고 다른 나라의 형제들과 함께 연합하여 복음의 서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