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본 조비Bon Jovi의 출현으로 헤비메탈의 양상이 확실히 대중적으로 변모한 것은 사실이다. 한층 얌전하고 단순해면서 많은 여성 팬들이 늘어난 것도 유사한 특징이다. 물론 한편에선 스래시 메탈을 구사하는 메탈리카Metallica나 앤스랙스Anthrax, 메가데스Megadeth처럼 또다른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밴드도 있었다. 이 와중에 찢어질 듯 격한 보컬과 질주하는 기타, 수려한 외모로 1990년대를 열어젖힌 그룹들이 등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팀이 1988년 그래미상을 수상한 LA 출신의 건스앤 로지스Guns'n Roses와 1989년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빠르게 성장한 스키드 로우Skid Row다. 메탈계의 춘추전국시대로 불리는 당시에는 하루밤 사이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명멸했다. 하지만 스키드 로우의 등장은 메탈 팬들에게 흥분에 가까운 신선함을 선사했다. 스키드 로우라는 이름은 '사회의 밑바닥'이라는 뜻으로 반항적인 정서를 그대로 품고 있다.
존 본 조비Jon Bon jovi와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가 설립한 뉴저지 언더그라운드New Jersey Underground는 타 레코드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저작권과 인세 관리는 물론 모든 음악계의 업무를 관리하는 회사인데, 신데렐라Cinderella를 뉴저지의 작은 클럽에서 세계 무대로 끌어내 준 본 조비가 발굴한 또 하나의 야심작이 바로 스키드 로우였다. 이미 본 조비의 연주 투어 때 신데렐라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고 그들의 뉴저지 투어에서도 오프닝을 맡아 레코드사와 계약하는 행운을 손에 넣은 스키드 로우는 애틀랜틱 레코드가 1989년 화이트 라이온White Lion과 함께 가장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였다.
밴드의 리더격인 기타리스트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Dave "The Snake" Sabo는 존 본 조비의 어릴 적 친구였다. 그룹 본 조비 결성 이전에 얼마간 같이 활동한 뒤 조니 디Johnny D 등과 자신의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스키드 로우가 결성된 건 1987년 당시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던 데이브 세이보가 작사와 작곡 파트너인 베이스의 레이첼 볼란Rachel Bolan과 만나면서부터. 레이첼이 소속된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스코티 힐Scotti Hill과 데이브의 친구인 드러머 로브 아푸소Rob Affuso가 합세해 밴드의 형태를 갖췄으나 막상 보컬리스트가 없었다. 그들은 곳곳에 광고를 내고 약 300여 명의 오디션을 보던 중 메탈 그룹 전문사진가인 마이클 와이스Michael Weiss의 결혼식을 통해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세바스찬 바하Sebastian Bach를 알게 되었다. 그는 록시 페트루치Roxy Petrucci와 함께 그룹 마담 엑스Madam X에서 보컬을 맡고 있었다.
결성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오랜동안 찾던 보컬리스트 세바스찬을 얻은 그들은 아무 연습도 없이 곧바로 클럽 무대에 올랐고, 술에 만취된 뒤 다음날 일어나 어젯밤 무대의 비디오를 보고는 세바스찬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모습에 경악, 그를 당장 해고해 버렸다. "이런 사람을 맞아들이다니 단단히 술에 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함께 무대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중 존과 리치에게 발굴된 것이다.
신인들에 대한 본 조비의 지원은 실로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리허설과 오프닝은 물론 작곡과 편곡의 여러 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타리스트인 데이브는 본 조비의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과연 저렇게 최선을 다했는지를 항상 자문했다고 한다.
스키드 로우가 1989년 발표한 데뷔 앨범 <Skid Row>는 대박을 쳤다. 데뷔 이전부터 도움을 주었던 마이클 와그너Michael Wagener가 제작을 맡았는데 그는 이미 화이트 라이온과 도켄Dokken 메탈리카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인물. 본 조비의 리치 샘보라는 그들을 "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로큰롤과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메탈을 함께 갖춘 밴드"라고 표현했는데 이 앨범에서 그런 부분을 곳곳에 찾아 볼 수 있다. 격렬한 리듬과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사운드에서 전통의 록과 메탈에 젊음의 열기를 가미한 그들의 사운드는 비교할만 한 밴드를 찾기 어려운 개성을 가득 담고 있다. 이들은 곧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스키드 로우는 1989년 8월 소련에서 열린 모스크바 음악평화축제The Moscow Music Peace Festival에서 본 조비, 모틀리 크루Motley Crue,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스콜피온스Scorpions 등 선배 그룹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했고, 일본 등지에서 독자적인 콘서트를 가지면서 세계 정상의 대열에 발돋움했다. 이들은 어쿠스틱 인트로가 멋진 메탈 발라드 '열 여덟의 인생18 and life'로 빌보드 5위권 진입과 몇 주간의 MTV 신청 1위를 차지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LA 메탈에 대해 본 조비가 등장한 것처럼 스키드 로우는 건스앤 로지스에 응수해 동부에서 강력하게 부상한 팀이었다.
(참고로 북아일랜드 출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개리 무어가 1970년대 데뷔해 활동했던 록밴드 스키드 로우Skid Row와는 이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