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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낯설게 하기 개념과 전경화 . 후경화 지배소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낯설게 하기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러시아의 빅토르 쉬클로프스키이다. 그는 문학을 문학답게 하는 문학성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된다고 생각했고 이때 낯설게 하기의 방식에 의해 문학적 특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시와 소설 등 그 장르적 특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시에서는 일상 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의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 언어와 다른 결합 규칙을 드러내고, 소설에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통해 낯설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
전경화 문학 언어를 비일상적으로 사용하여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는 일. 상투적인 표현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느낌이나 지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프라하학파가 언어학과 시학에서 쓴 용어이다.
4. 동화와 투사의 시학
시인이 의식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두 갖디가 있는데, 하나는 동화(同化, assimilation)이며 다른 하나는 투사(投射, projection)이다.
여기에서 '동화(同化)'는 시인이 외부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 들여서 그것을 인격화하는 작업이다. 시인이 처한 자아와의 갈등, 대립의 관계에 있는 세계를 자아의 욕망, 가치관, 주체의 감정에 맞도록 변용, '세계를 끌어들여 자아화'하는, '세계의 자아화'이다.
冬至ㅅ달 기나긴 바믈 한 버리를 버혀내어
春風 나블아래 서리서리 너혔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븨구븨 펴리라
황진이
위 시조에서 화자는 님과 보내는 동짓달 봄밤의 짧은 상황에 처해 있다. 곧 자아와 자연세계와의 대립, 갈등의 생태에 있다. 하지만 동짓달 긴 밤을 둘로 잘라내어 "어른님 오신날 밤"에 굽이굽이 펼쳐낸 경지는 자연 세계와 일체감을 이룬 동일성의 세계이다. 이렇듯 세계가 자의 의지, 욕망에 의해 자아화된 것이다. 여기에서 일체감은 대상이 화자의 마음에 동화가 된 것이다. 또 한 예로, 화자 이별, 슬픔 상태에 젖어 있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끼어있을 경우, 하늘도 슬퍼 곧 눈물을 흘릴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시를 썼다면 세계를 주관대로 해석, 변용한 일체감의 동화라 할 수 있다.
아래 이향아의 시 <달팽이>는 자아와 갈등 관계에 있는 '달팽이'를 시인의 내부로 끌어들여 시인의 감정, 가치관에 맞게 동화ㅏ시킨, 외부셰계를 자아화 한 도오하에 해당한다.
아침 풀밭을 걷다가
달팽이를 밟았습니다.
크레카 부서지는 소리
흙발로 밟아 죄짓는 소리
우주의 천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벗겨진 하늘
드러난 맨몸둥이
쏟아지는 빛이며 아우성이며
나는 춥고 어지러워
몸을 움츠리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로 갈까
그 자리에 눈 감고
주저앉았습니다
이항아<달팽이> 전문
노천명의 <사슴>에서 화자는 세속에 영합하지 못하는 고고한 삶의 자세와 비애를 사슴에 투사, 곧 감정이입하여 일체감을 이룬다. 이는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화자는 사슴이라는 대상을 놓고"冠이 향기로운 너는 / 무척 높은 족속"으로서, "물속에서" "선설을 생각해 내고는", "슬픈 모가지를 하고 / 먼 데 산을 쳐다본다"는 자아의 심리적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화니 투사니 하는 분류는 편의상 동일화의 성격을 논의할 때에 필요한 것이고, 동일화의 작업으로 동화와 투사는 완전히 분화되지 안하은 상태로 실제 시에서 교차되어 일체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는 어디까ㅣㅈ나 '단일한 목소리', '단일한 시적 비전, '단일한 의미자'로 이루어지는 한 목소리의 독백시가 된다. 그래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 속에서 동화에 의한 것이든 혹은 투사에 의한 것이든 간에 자아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세계를 초월하지 않고 연속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서정시의 원초적 모습이다.
이처럼 시작품에서 자아와 세계가 서로 투사되거나 도오하되어 자아와 세계는 하나가 된다. 이른바 주객일체의 경지, 몽사의 경지로, 이러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 곧 서정시의 원래의 모습이자. 시인이 갈망하고 몽상하는 고향이다.
근원적 아름다움의 미학과 전통적 서정시 계보의 한 줄기를 확인하는 유용한 지표를 제공
박재삼의 시에 나타난 ‘상상력’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을 서정시의 근본원리와 관련지어 평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박재삼의 시학’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박재삼을 통해서 계승되고 있다고 평가되는 전통 서정시의 시학적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필수적인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가 내용과 형식면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해 온 시적 상상력의 구조가 서정시의 원리 속에 보다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서 친숙하면서도 편안한 서정시, 하지만 다양한 변주를 선사했던 박재삼의 서정시적 상상력의 규모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박재삼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아름다움의 미학에 근접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전통적 서정시 계보의 한 줄기를 확인하는 유용한 지표를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초반에는 이은상을 비롯한 여러 시조 시인이 양장 시조를 창작했으나, 일본의 정통 정형시인 와카의 5.7.5조와 7.7조의 2행 구조를 시조 3장에서 한 장을 뺀 형태로 접합시켜 본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형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반일적인 민족 감정도 작용하여 작가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잊히며, 이은상 역시 후속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 실험작으로 그치고 말았다.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 이은상, 소경 되어지이다
청산별곡, 가시리 등의 고려가요는 특히 후렴구가 특징인데, 현대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알아듣기도 힘든 내용인데 뭔가 있는 듯해 보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등이 유명하다.
2연부터는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주도적인 견해는 악기의 소리를 본 뜬 음차로 보는 견해다.
현대적으로 보자면 아카펠라? 현대에서도 여기서 따온 곡 제목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시조의 정형성을 규정하려는 논의를 살펴보자. 첫 논의는 구수율(句數律)로서 초기 연구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이광수(李光洙) · 이은상(李殷相)은 3행을 인정하고 각 음보를 구로 파악하여 시조의 형식을 3장 12구체라 하였고, 이병기(李秉岐)는 초장과 중장을 각각 2구로 보고 종장의 특이성을 살리기 위하여 종장만을 4구로 보아 8구체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확(安廓) · 조윤제(趙潤濟) 등은 6구체를 주장하여 시조의 형식을 3장 6구체라 정의하였다.
자수율의 경우는 각 음보의 기준 음수를 결정하여 규칙성을 발견하고자 한 것인데 두 음보를 단위로 3 · 4조 또는 4 · 4조를 기본 운율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본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기본운율에 1음절 또는 2음절 정도를 더 보태거나 빼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종장은 음수율의 규제를 받아 제1구는 3음절로 고정되며, 제2구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한다. 이 같은 종장의 제약은 시조형태의 정형(整型)과 아울러 평면성을 탈피하며 고유의 시적 종결형식을 형성한다.
다음은 음보율로 1행이 4음보로 구성되며 세 번째 행인 종장의 경우 둘째 음보가 음수가 늘어남에 따라 두 음보 이상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시조의 정형성을 규명하기 위하여 음보의 성격을 구성하는 기저자질을 밝히려 하였다. 음보의 성격으로 정병욱과 이능우는 강약율, 황희영과 김석연은 고저율, 정광은 장단율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운율 자질의 대립이 정형성으로 규정하기에는 미흡하여 1행 4음보의 구성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뚜렷한 형식적 정의가 된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기본 형식 가운데 현대시의 행(行)에 해당하는 장(章)은 한결같이 3장이라고 하니 시조가 3장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시조의 기본 형식은 초장(初章) · 중장(中章) · 종장(終章)의 3행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엇시조에서나 사설시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이 장을 현대시의 개념인 행으로 보아 시조의 형식은 3행으로써 1연을 이루며, 각 행은 4음보격(四音步格)으로 되어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4보격은 다시 두 개의 숨묶음으로 나뉘어 그 중간에 사이쉼이 있으며, 각 음보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본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상적인 기준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절대 불변하는 고정적인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 자체의 성질에서 오는 신축성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기준이다.
위에서 제시한 기준형을 중심으로 시조를 분류해 보자. 기준형에 해당하는 시조를 단형시조(短型時調) 또는 평시조(平時調)라고 부르는데, 그 보기는 다음과 같다.
병치은유/치환은유
[ 竝置隱喩/置換隱喩 , Diaphor/Epiphor ]
병치은유와 치환은유는 은유를 명칭의 전이 양식으로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그 어원 'metaphor'를 병치와 치환의 방식으로 구분하여 P. 휠라이트가 만들어 낸 말이다.
먼저 병치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됨으로써 빚어지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이다. 전이가 아닌 병치가 은유의 한 형태로 성립되는 근거는 휠라이트가 은유를 어디까지나 의미론적 변용 작용으로 본 데 있다. 자연계의 요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자질을 생성하듯이 시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병치은유의 예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지하철 정거장에서」)이란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인용했다. 이 시에서 병치되어 있는 것은 '얼굴들'과 '꽃잎들'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같은 것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 판단이 유보된다는 점에서 병치은유는 해체주의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킨다. 한국 현대시에서는 김춘수의 무의미시, 이승훈의 비대상시 등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휠라이트는 순수한 병치은유가 비모방적 음악이나 추상화에서 발현된다고 했다. 곧 병치은유는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하는 원리이며, 예술을 독자적이게 만드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치환은유는 'A는 B다' 식의 은유로서, 보다 가치 있고 중요하지만 아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원관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구체적인 것(보조관념)으로 옮겨지는 의미론적 전이를 특징으로 한다. 치환은유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단순 은유, 둘째는 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확장 은유, 셋째는 은유 속에 또 은유가 들어 있어 이중 삼중의 현상을 나타내는 액자식 은유가 그것이다. 자연과 현실의 모방이든 관념의 묘사이든 또는 선행 예술의 모방이든, 모든 모방의 요소가 있을 때에는 치환은유가 발현될 수 있다.
치환은유가 전통 은유라면 병치은유는 새로운 은유 형태이다. 치환은유가 '의미의 시'를 지향한다면 병치은유는 '무의미의 시' 또는 '존재의 시'가 되게 한다. 결론적으로 치환은유가 시 속에서 맡는 역할은 의미를 암시하는 데 있고, 병치은유의 역할은 존재를 창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은유는 치환과 병치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이성우)
[네이버 지식백과] 병치은유/치환은유 [竝置隱喩/置換隱喩, Diaphor/Epiphor]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2. 몰개성론과 객관적 상관물
개성론의 성실성을 부정하여 반동적으로 나타난 것이 문학의 몰개성론이다. 몰개성론은 경험적 자아와 시적 자아가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인생으로부터 예술을 독립시키는 자기 충족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성보다 인위성에 가치를 두는 반성실성의 입장이 현대 시관이다. 엘리어트는 실제의 정서(emotion)와 객관적 상관물이 환기하는 정서(feeling)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이 시의 이미지들은 결코 실재 대상의 재현이 아니며 이미지와 장면의 연결에도 논리성이 없다. 시인의 상상세계 속에서만, 시적 세계 속에서만 존재한는 이미지들이다. 이처럼 현대시의 이미지는 관념표출이 수단이나 대상의 재현적 수단이 아닌, 자립성의 절대적 심상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개성론의 핵심인 작품이 시인 자신의 감정과 일치해야 한다는 성실성에 반하는 것으로 이 시는 몰개성론에 입각하고 있다.
3.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과 몰개성론에 관한 심화 내용과 구체적인 예시
영국의 유명한 시인 엘리엇은 자신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1919)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시란 시인의 개성을 떠난 독자적인 생명체라는 ‘몰개성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시인의 개성을 표현한다는 낭만주의 사상을 공격하였다. 엘리엇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시인에게 중요한 경험이 그의 시에는 아무런 위치를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하면 그의 시에 중요한 경험이 그의 개성과 거의 또는 조금도 관련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시인이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놀랄 만 하다거나 흥미 있는 것이라고 보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여겼다. 엘리엇에게 시를 창작하는 것은 낭만주의자 워즈워드가 시 창작에 있어서 중요시 여긴 감정이나 회상이 아니라 아주 많은 수의 감정들을 응축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이처럼 낭만주의 사상을 공격하면서 주장하려 했던 ‘몰개성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것이 갖는 의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의 이러한 ‘몰개성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엘리엇의 구체적인 언급을 인용하여 그것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상징은 매우 다의적인 개념인데, 극히 일반적으로는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든지, 왕관은 왕위의 상징인 것처럼,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무언가(의미나 가치 등)를 어떤 유사성에 의해서 구상화하는 것(물건이나 동물이나 형상 등)을 말한다. <상징>을 의미하는 서구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동사 symballein에서 온 명사 심벌론(symbolon)으로, 어떤 것을 두 가지로 나누었을 때, 각각의 소유자가 그것을 합쳐서 상호 신원을 확인하는 것=할부를 의미했다....
종교학대사전
알레고리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other speaking)'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를 어원으로 한다. 우유(愚喩), 우의(寓意), 풍유(諷諭)로 불리기도 하는 알레고리는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표면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이다.
반어(反語). 수사학에서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은연중 나타내는 표현법을 말한다.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끔 사건이나 그것의 연속이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전개될 때 이를 아이러니컬(ironical)하다고 한다.
아라리오갤러리의 2023년 첫 전시이자 서울 지점의 이전 재개관 첫 그룹전인 <낭만적 아이러니 Romantic Irony>는 갤러리와 오랫동안 함께 성장해온 작가 5인,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참여하는 그룹전으로 준비되었다. 전시는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라는 양극에 위치한 사유들을 오가면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사유의 한 방법론 속에서 기획되었다. 이 과정은 결과를 쉽게 유추해낼 수 있는 일반적인 반전 제시나 아이러니 효과를 넘어선 그 이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견지하며 그 과정에 따른 긴장감 넘치고 정답과 결과가 없는 무한한 사유를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이들일 것이다. 본 전시는 참여 작가 5인들의 작품들 속에서 이런 낭만적 아이러니적 태도들과 그 반성적 성질들을 포착해보고자 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작지만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있는 건물의 특성을 이용해서 본 전시는 전시 공간으로 할애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의 각 층을 한 명씩의 작가가 맡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향후에는 일반 관람객 공개가 안 될 사적 공간인 5층 공간도 개관전을 위해 전시 공간으로 제공해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들 너머 보이는 아름다운 창경궁과 원서 공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 권오상 작가는 자신의 대표 매체인 사진 조각에서 최근 집중적으로 시도해온 다양한 형태적 실험들을 소개한다. 과거 구상 조각에 가까웠던 형태들이 근작들에서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극도의 조형미 추구와 공간성 탐구에 있는 듯 하다. 총 7점 출품된 작품들 중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은 헨리 무어(Henry Moore) 조각을 오마주하고 그대로 형상화해가면서 추상적 형체와 유기적 구성에 기반한 독특한 인체 조각 연구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형상화된 표면에 권오상 작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 채집과 유희적 콜라주가 더해져 구조와 표면의 아름다움을 모두 쫓는 권오상 식 조형 미학을 완성한다. 그 결과 출품된 각각의 작품들은 권오상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에서 발현되는 공간미와 분절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이 서로 융합되는 매력을 표출한다. 헨리 무어 조각에서 파생된 작품들과 별도로 인물 흉상도 2점 출품된다. 작가는 최근 몇 년 특유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넘어가는 반추상적인 인물 연작들에 집중해오고 있다. 이들 흉상에서는 조각의 자율성과 확장된 표현에 대한 작가적 시도를 느낄 수 있고, 대상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접근법이 아닌 공간과 표현의 중점이 되는 조형 요소와 원리로의 고민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이동욱 작가는 5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신작들에서 작가는 최근 관심사인 인간을 둘러싼 공간이나 건축, 그리고 기하학적 구조물들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구조적으로는 이동욱 작가를 대표하는 15센티 내외의 작은 벌거벗은 인물상의 전신 혹은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상황들로 표현된다. 전시는 5개의 작품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작품 간 형성된 묘한 긴장감으로 인해 전시장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인 것 같은 인상을 전달한다. 우선 전시장 중앙에는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거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알루미늄의 차갑고 반짝거리는 느낌과 피부를 연상케 하는 분홍색 물질들의 공존이 매력인 이 작품은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인공적 구조물 간 분리할 수 없는 태생적 밀접성과 끈적한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주변부에 배치된 각각의 작품들에서의 인물들은 건축 자재인 알루미늄 허니콤 패널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붙들려 있다. 한 작품에서는 잡혀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인물상도 표현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인공적 구조물과 인간의 차갑고 끈적한 공존이 두드러진 설치 작품과 그 주변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인물 군상들이 끌어내는 긴장감을 통해 이동욱 작가의 강점인 시각이 주는 일차적인 미적 쾌감과 함께 내밀하게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전시장 한 벽에 꽤 작게 작가가 적어 둔 ‘3개의 안개’라는 제시어와 함께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개의 안개로 시작하는 전시의 작품 수는 총 4개다. 3개와 4개라는 개수에서의 어긋남, 셀 수 없는 명사인 안개에 지정된 3개라는 셀 수 있는 숫자, 눈 앞에 있지만 언제나 명확히 잡히지 않은 안개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하는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의도된 혼동을 강요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접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야기하는 접촉들은 못 보거나 만나지 못 하는 지점들에 대한, 즉 접촉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룬다. 합판으로 만든 얇은 파주 지도가 켜켜이 쌓여 5.6미터에 이르는 작품 “안개”, 하나의 평면을 중심으로 앞면과 뒷면, 바깥과 안이 마주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작품 “거울”, 각각 정형, 비정형적으로 만들어진 2개의 프로펠러가 등장하는 작품 “변신”, 그리고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든 작품 “칠판과 분필”, 이 4점의 작품들이 모두 접촉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작품들은 기존 방식이나 특정 관계에 간섭해서 감상자들의 인지 체계를 교란시키는 데 능한 김인배 작가만의 표현 방식을 통해서 언제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맹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여러 지점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께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질문 등의 문제의식을 던진다.
안지산 작가의 작품들은 그가 최근까지 집중해온 비 폭풍 속 돌산의 풍경에서 조금 더 나아가 눈 폭풍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사냥과 채집을 다룬다. 스스로 부여한 상황 속에서 잠식된 인간의 불안을 시각화하는 안지산 작가가 그려낸 눈 폭풍 속 풍경은 적막감이 감돌고 극적이다. 사냥과 채집은 자연 속에서 항상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이자 삶의 일상이면서 동시에 그 순간은 최고의 긴장과 공포가 축약된 극적인 순간이다. 이러한 안지산 작가의 풍경은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식 낭만주의적 정신의 숭고함과 충만함이 내재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의 풍경처럼 언제나 내 눈앞에 존재하는 풍경의 묘사와 인상의 표현에 기초를 두지만 훨씬 더 나아가 불안과 불길함, 그리고 경외감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결국 안지산 작가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를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경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삶의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부분들, 즉 이번 시리즈에서는 서로 사냥하고 채집할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자연 간 먹고 먹히는 순환 관계나 숨겨진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노상호 작가는 이번에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신작 시리즈 “Holy”를 소개한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 작가는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의 가상 이미지들 간 혼종교배와 그로 인한 결과물을 노출시키고 그 현상에 대해 고민한다. 디지털 가상 이미지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주 사용자들도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이나 반응은 두 세계 내에서 각각 다르게 풀어진다.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모두 공존하지만 각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혼종교배의 여러 단면들을 가장 고전 매체인 회화로 풀어낸다. 기존 시리즈들처럼 작가는 제작 방식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현 시점에서 매우 진일보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인 AI 기술을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회화에 접목시켰다. 작가는 우선 3D 이미지 중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들로 화면을 구성한 후, AI 생성 이미지 도구를 통해 특정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AI 기술로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를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현실 세계로 회화의 형태로 끌어내는 매체 방법론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주제와도 의도적으로 맞닿아있다. 더불어 이번 신작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에어브러쉬를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화면에는 재료의 물질성을 가시적으로 부각시켰다. 한없이 얇고 평평하게 표현되는 에어브러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특수 안료 혹은 석고 등 직간접적 두께감을 더할 수 있는 재료를 더해서 극도로 아날로그적인 캔버스 면에 디지털 이미지의 특수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언어적 아이러니[편집]
I
단어가 갖는 원래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어의 "반어"(반어법, 반어적 표현)에 해당.
가령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날씨 한번 화창하구만"이라고 하는 상황이나,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유머러스하게 비하하며 "제가 워낙 잘생겨서요"라 말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빈정거림, 즉 반어법을 이용해 경멸을 나타내는 어법인 사르카즘(sarcasm)은 일상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언어적 아이러니 중 하나다(예를 들어 뭔가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참 잘 한다"하고 빈정거리는 등).
언어에서는 아이러니는 오로지 반어만을 가리킨다. 예컨대 오랜만에 휴가를 냈는데 내내 비가 온다거나, 체중 감량에 성공해 멋진 몸매를 갖게 되었지만 그 바람에 갖고 있던 옷들이 모두 몸에 맞지 않게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은 언어적 아이러니에 해당하지 않는다.
의도했던 것과 상반적인 결과가 나온 상황을 일컫는다.
위 항목에서 언어적 아이러니에 해당하지 않는 예를 둘 들었는데, 바로 상황적 아이러니다. 전자는 즐겁게 놀기 위해 휴가를 내도 비가 와서 놀지 못한 상황, 후자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체중을 줄이고도 옷을 입지 못하게 되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21세기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아이러니가 이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라고 운을 떼는 경우 십중팔구 상황적 아이러니를 의미하는 것이다.
극중 인물들보다 청중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때 발생한다. 도둑을 찾으려고 집을 뒤지면서 방문을 열어보고는 "여기는 없네" 하고 지나갔는데 사실은 문 뒤에 숨어있다든지.
학 아이러니의 속성인 이중적 의미가 지속적으로 작품의 구조에 반영되는 아이러니. 표면적 의미와 다른 암시적 의미가 있는 진술 따위를 이르는 언어적 아이러니와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