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세모/정동윤
눈이 온다
함박눈이 내린다
아내가 몇 번이나 버릴까
물어보던 아이젠 들고
남산에 가야겠다
머리 허연 노인들의
걷기 좋은 오솔길이 궁금하고
대숲에 눈 쌓인 풍경도
나무들마다 제 방식대로
눈 마중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우산 위에 사르르 내리더니
금방 차르르 흩뿌리다가
굵은 빗소리같이
후드드득 함박눈이 쏟아진다
올 한 해 잘 보낸 축복처럼
날카로운 아이젠에
부드럽게 밟히는 포근한 질감
뽀드득 뽀드득
눈 다지는 소리조차 정겹다
봄에 태어난 손녀의 옹알이같이
백범 광장의 김구 선생님도
하얀 눈 뒤집어쓰고
인적 없는 광장을 향해
아침부터 열변을 토하신다
눈길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눈을 어깨로 받아 내거나
배나 등으로 받고
양손과 긴 팔과
온몸으로 받으며 들뜬 나무들
백범 말씀에 귀 기울인다
메마르고 까칠한 겨울 풍경을
꽃을 기다리는 시간
녹음 짙어지는 계절
열매 익는 햇살도 없이
단숨에 뒤집는 하얀 눈의 솜씨
눈이 온다
우산을 몇 번 털어도
금방 무거워지는 걱정처럼
차들이 쩔쩔매도 아랑곳 없이
눈은 펑펑 쏟아진다
눈 오는 숲으로 들어가면
흰머리오목눈이나
노랑턱멧새나
오색딱따구리를 만나는
행운을 꿈꾸게 된다
멀리 설악은 어려워도
산새들 숨어사는 남산의 숲은
맘 내키면 언제나 만날 수 있어
눈이 펑펑 오는 날은
눈이 부신 남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