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
정현수
이젠 한 개도 의미 없는 사치스러운 검붉은 저녁노을
암묵적 복종에 의한 회한의 몸부림
그것은 본능으로 금방 느껴지는 거부할 수 없는 현상
은연중에 감추어 둔 지친 나그네의 그렇고 그런 어설픔
하나 둘, 이내 어두움의 허무로 싸아버리고
이제 하나 남은 미련에 집착할 때
박정하고 조용한 마지막 내 연인
살며시 내게로 와 같이 가자 손짓한다
난 그대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고 싶네
그대 한없이 반갑고 한편 몹시 두려운 이여
내게 잠시 겨를을 주게나
그 그저께부터 해 온 일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네
이 일은 나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라네
그동안의 바보짓을 얼마만큼은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쎄
그대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가
다음번엔 기별 없이 오면 안 되겠나
한 사날 전에 왔다가
이틀 나하고 회포 풀고 다음 날 나하고 같이
그대가 머무는 그곳 저편으로 가면 어떻겠나
내가 자연에 속해 있는데 어찌 감히 그대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난 그대가 이끌면 그것을 따라야 하고
도리 없는 일이라면 내가 해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순환의 도리가 아닌가
경이롭고 신비한 그림자여
내가 해 놓을 그 무엇 무엇들이
그저 쓸쓸히 한구석에 처박히지 않게 여지를 좀 주게나
그리하여 내게 남은 마지막 내 한 올이
세상을 이어가는 실타래가 되길 바랄 뿐이라네
난 분명 말하지만 그대가 두렵지는 않다네
그저 다음번에 저녁노을 오듯 찬란하고도 조용히 내게로 와
나에게 마지막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되겠나
침묵의 그림자여
2015.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