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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3강-2-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1 -
부처님은 비유의 귀재입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를 아주 정말 기가 막히게 갖다 대거든요. 법화경에는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딱 추려서 하는 비유가 法華七喩 라고 해요. 일곱 가지 비유를 제일로 칩니다.
비유의 강요라. 대체적인 뜻이...
3 화택의 비유
(1) 비유의 강요(綱要)
舍利弗(사리불)아 若國邑聚落(약국읍취락)에
有大長者(유대장자)하니 其年衰邁(기년쇠매)하대
財富無量(재부무량)하고 多有田宅(다유전택)과
及諸僮僕(급제동복)하며 其家廣大(기가광대)하대
唯有一門(유유일문)하고 多諸人衆(다제인중)하대
一百二百(일백이백)으로 乃至五百人(내지오백인)이
止住其中(지주기중)이러니 堂閣朽故(당각후고)하고
牆壁隤落(장벽퇴락)하며 柱根腐敗(주근부패)하고
梁棟傾危(양동경위)라 周帀俱時(주잡구시)에
欻然火起(훌연화기)하야 焚燒舍宅(분소사택)커늘
長者諸子(장자제자)도 若十二十(약십이십)으로
或至三十(혹지삼십)히 在此宅中(재차택중)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若國邑聚落(약국읍취락)에, 어느 나라 어느 마을에 有大長者(유대장자)하니, 큰 長者가 있었다.
其年衰邁(기년쇠매)하대.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衰邁했다. 그런데
財富無量(재부무량)이야. 재산은 아주 한량이 없어요.
多有田宅(다유전택)이여, 전택이 많아요. 그리고
及諸僮僕(급제동복), 僮僕도 많아요. 말하자면 종들이 아주 많다 이 말입니다. 其家廣大(기가광대)하대, 그 집은 아주 廣大해요.
唯有一門(유유일문)하고, 그런데 하나의 문뿐입니다. 그리고
多諸人衆(다제인중)이라, 다른 사람들도 아주 많아요.
一百二百(일백이백)으로 乃至五百人(내지오백인)이 止住其中(지
주기중)이야. 그 집안에, 아주 대 저택이니까 그 안에 산다. 그런데
堂閣은 朽故(당각후고)라. 집들은 전부 오래돼서 그리고
牆壁은 隤落(장벽퇴락)이여, 牆壁은 무너지고 柱根은 腐敗(주근부패)여. 기둥뿌리라든지 기타 서까래라든지 대들보라든지 이런 것이 그냥 썩어서 여기저기 떨어져요. 梁棟傾危(양동경위)라고 했지요? 기둥이과 서까래 같은 것은 기울지고 周帀俱時(주잡구시)에, 그런데 두루두루 동시에
欻然火起(훌연화기)여.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焚燒舍宅(분소사택)이라. 舍宅을 전부 태우려고 하거늘,
長者諸子(장자제자)도, 장자의 여러 아들들도
若十二十(약십이십)으로, 10명 내지 20명, 或至三十(혹지삼십), 혹 30에 이르기 까지 在此宅中(재차택중). 이 宅中에 있다. 라고 치자 그런 말입니다. 30명 되는 아들ㆍ500명 되는 사람들ㆍ僮僕들 등등ㆍ무수히 많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낱낱이 할 겨를이 없으니까 제가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2) 장자가 화택을 보다
長者(장자)가 見是大火從四面起(견시대화종사면기)하고
卽大驚怖(즉대경포)하야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我雖能於此所燒之門(아수능어차소소지문)에
安隱得出(안은득출)이나 而諸子等(이제자등)이
於火宅內(어화택내)에 樂著嬉戱(낙착희희)하야
不覺不知(불각부지)하고 不驚不怖(불경불포)하며
火來逼身(화래핍신)하야 苦痛切已(고통절이)라도
心不厭患(심불염환)하고 無求出意(무구출의)로다
長者(장자)가 見是大火從四面起(견시대화종사면기)하고, 장자가 화택을 보니까 곳곳에서 불이 일어나서, -정말 자기 자식도 30명이나 있고, 그 외에 거기 종사하는 사람들, 친척해서 500여명이 또 있고요.
그러니까 卽大驚怖(즉대경포)하야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而諸子等(이제자등)이 그런데 아이들은 於火宅內(어화택내)에
樂著嬉戱(낙착희희)하야 不覺不知(불각부지)하고 不驚不怖(불경불
포)하며 火來逼身(화래핍신)하며, 불이 몸에까지 닿아서
苦痛切已(고통절이)라도, 끊어질듯이 고통스러운데도
心不厭患(심불염환)이야,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 하지 않고
無求出意(무구출의)로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뜻이 전혀 없더라.
참 이것이 큰 문제지요. 이것이 짐작을 다 벌써 하셨겠습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만하면 살만한 곳으로 보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떤 그 종교적인 감성이 부족해서 이 세상을 그렇게 그만 살만한 곳으로, 아니면 아주 즐거운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그것이 계기가 돼서 아주 큰 성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까지 이렇게 혜택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화택과 아이들의 놀이 그랬어요.
(3) 화택과 아이들의 놀이
舍利弗(사리불)아 是長者作是思惟(시장자작시사유)하대
我身手有力(아신수유력)이라 當以衣襋(당이의극)이나
若以机案(약이궤안)으로 從舍出之(종사출지)호리라
復更思惟(부갱사유)하대 是舍唯有一門(시사유유일문)하고
而復狹小(이부협소)어늘 諸子幼稚(제자유치)하야
未有所識(미유소식)하고 戀著戱處(연저희처)라가
或當墮落(혹당타락)하야 爲火所燒(위화소소)리니
我當爲說怖畏之事(아당위설포외지사)하대
此舍已燒(차사이소)하니 宜時疾出(의시질출)하야
無令爲火之所燒害(무령위화지소소해)리라하야
作是念已(작시념이)하고 如所思惟(여소사유)하야
具告諸子(구고제자)하대 汝等速出(여등속출)하라
父雖憐愍(부수연민)하야 善言誘喩(선언유유)하나
而諸子等(이제자등)은 樂著嬉戱(낙착희희)하야
不肯信受(불긍신수)하며 不驚不畏(불경불외)하야
了無出心(요무출심)하며
亦復不知何者是火(역부부지하자시화)며 何者爲舍(하자위사)며
云何爲失(운하위실)고하고 但東西走戱(단동서주희)하야
視父而已(시부이이)러라
화택에서 아이들이 그냥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노는 것입니다.
노니까 어떻해요. 아무리 나오라, 나오라 해도 아이들은 안 나오는 겁니다.
불장난하기 너무 좋으니까요. 불장난하기 너무 좋은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불이 안 난 것보다 난 것이 더 좋은 겁니다. 장난하기가 더 좋으니까요.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는 겁니다.
안 나오니까 아버지가 생각을 한 겁니다. ‘아이들에게 그냥 나오라 하면 안 되겠다.’ 그래서 ‘무슨 수단을 써야 되겠다.’ ‘방편을 써야 되겠다.’
그래서 밑에 보면 세 가지 수레를 사용함 그랬어요.
(4) 세 가지 수레를 사용함
爾時長者(이시장자)가 卽作是念(즉작시념)하대
此舍已爲大火所燒(차사이위대화소소)하니
我及諸子(아급제자)가 若不時出(약불시출)이면
必爲所焚(필위소분)하리니 我今當設方便(아금당설방편)하야
令諸子等(영제자등)으로 得免斯害(득면사해)호리라
父知諸子(부지제자)가 先心各有所好(선심각유소호)인
種種珍玩奇異之物(종종진완기이지물)하고
情必樂著(정필낙착)이라하야 而告之言(이고지언)하대
汝等所可玩好(여등소가완호)는 希有難得(희유난득)이라
汝若不取(여약불취)하면 後必憂悔(후필우회)하리라
如此種種羊車鹿車牛車(여차종종양거녹거우거)가
今在門外(금재문외)하니 可以遊戲(가이유희)라
汝等於此火宅(여등어차화택)에 宜速出來(의속출래)니
隨汝所欲(수여소욕)하야 皆當與汝(개당여여)호리라
爾時諸子(이시제자)가 聞父所說珍玩之物(문부소설진완지물)이
適其願故(적기원고)로 心各勇銳(심각용예)하야
互相推排(호상추배)하며 競共馳走(경공치주)하야
爭出火宅(쟁출화택)하니라
‘아이들이 평소에 가만있자. 쟤들을 무얼 가지고 유혹을 할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 맞아, 아이들이 평소에 나보고 차를 사 달라고 했지, 수레를 사 달라고 했지.’수레를 사 달라고 했는데, 양이 끄는 수레ㆍ사슴이 끄는 수레ㆍ소가 끄는 수레. 이 세 가지를 달라고 아이들이 그렇게 졸랐다. 이것이 세 가지 수레입니다. 羊車ㆍ鹿車ㆍ牛車. 이것을 떠올린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내가 저 문 밖에, 저기 길 거리에 너희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그런 수레를 세 가지 장만해 놨으니까 너희들은 나가자.” 이렇게 한 겁니다.
汝若不取(여약불취)하면 後必憂悔(후필우회)하리라.
“내가 수레를 놔뒀는데 너희들이 만약에 取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후회할 꺼야. 그 때는 나 책임 안 져” 이렇게 하고는
如此種種 羊車ㆍ鹿車ㆍ牛車(여차종종양거녹거우거). 그렇게 되어있지요? 이것이 今在門外(금재문외)야. 지금 저 문 밖에 있어.
이제 가서 우리 그것 타고 마음대로 장난치고 놀자. 이렇게 해서 아이들을 그 불타는 집에서 나오게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방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불교에 온갖 방편들이 많은데, 그것이 전부 중생들을 말하자면 부처의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방편이란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여기 보면 거짓말이에요. 그것은 순전히 부처님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5) 모두에게 큰 수레를 줌 했어요.
是時長者(시시장자)가 見諸子等(견제자등)이
安隱得出(안은득출)하야 皆於四衢道中(개어사구도중)에
露地而坐(노지이좌)하야 無復障礙(무부장애)하고
其心泰然(기심태연)하야 歡喜踊躍(환희용약)이러라
時諸子等(시제자등)이 各白父言(각백부언)하대
父先所許玩好之具(부선소허완호지구)인
羊車鹿車牛車(양거녹거우거)를 願時賜與(원시사여)하소서
舍利弗(사리불)아 爾時長者(이시장자)가 各賜諸子(각사제자)에
等一大車(등일대거)하시니 其車高廣(기거고광)하야
衆寶莊校(중보장교)하며 周帀欄楯(주잡난순)에
四面懸鈴사면현령()하고 又於其上(우어기상)에
張設幰蓋(장설헌개)하대 亦以珍奇雜寶(역이진기잡보)로
而嚴飾之(이엄식지)하며 寶繩交絡(보승교락)하고
垂諸華瓔(수제화영)하며 重敷婉筵(중부완연)하고
安置丹枕(안치단침)하며 駕以白牛(가이백우)하니
膚色充潔(부색충결)하며 形體姝好(형체주호)하고
有大筋力(유대근력)하며 行步平正(행보평정)하고
其疾如風(기질여풍)하며 又多僕從(우다복종)하야
而侍衛之(이시위지)러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是大長者(시대장자)가
財富無量(재부무량)하야 種種諸藏(종종제장)이
悉皆充溢(실개충일)이라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我財物無極(아재물무극)하니
不應以下劣小車(불응이하열소거)로 與諸子等(여제자등)이로다
今此幼童(금차유동)이 皆是吾子(개시오자)라
愛無偏黨(애무편당)이니
我有如是七寶大車(아유여시칠보대거)하야
其數無量(기수무량)이라 應當等心(응당등심)으로
各各與之(각각여지)요 不宜差別(불의차별)이로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以我此物(이아차물)로
周給一國(주급일국)이라도 猶尙不匱(유상불궤)어든
何況諸子(하황제자)리오
是時諸子(시시제자)가 各乘大車(각승대거)하고
得未曾有(득미증유)하야 非本所望(비본소망)이러라
나가 보니까 羊車ㆍ鹿車ㆍ牛車.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 수준의 수레는 없어요. 없고 아주 큰 수레. 그 장식과 호화로움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호화로운 수레입니다. 그리고 그 수레를 끄는 소는 大白牛車 그랬어요. 크고 흰 소가 끄는, 다른 소, 한 3~40마리쯤 배나 되는 그런 큰 소가 끌고, 其疾如風(기질여풍). 달리기는 바람처럼 달린다고 그랬어요.
질풍노도처럼 달리는 겁니다. 수레가 크기도 말할 수가 없고, 난간이라든지 보배장식이라든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아니 하는가? 여기서 모두에게 큰 수레를 줬다고 했는데, 그 큰 수레가 그 것입니다. 大乘이거든요.
그런데 부처님은,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왜 아니 했는가?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해 놓으면 이것은 먹혀들지가 않는 겁니다. ‘에이 그런 수레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저 조그마한 양이 끄는 수레ㆍ사슴이 끄는 수레나 우리 좋아하지 그런 수레는 우리 알 바도 없고 세상에 있지도 않다.’ 그래서 아버지가 수를 쓴 것이지요. 아이들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요.
부처님도 사실은 우리들에게 별의별 그 小乘法門. 작은 법문들을 많이 했는데 그것은 전부 방편입니다. 우리 근기에 맞추어서, 이끌기 위해서, 유혹하기 위해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부처님이 정작 진실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른 겁니다. 법화경에서 그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진실로 하고 싶었던 말ㆍ진실로 가르쳐 주고자 했던 것. 그래서 법화경공부를 아니하면 불교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입장에서 보면요?
다른 모든 경전은 법화경하나를 설하기 위한 준비단계다 이 말입니다.
준비단계까지 해놓고 그 다음에 결론적인 법화경을 공부 아니 하면 하나마나, 하나마나입니다.
법화경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입니다. 그래 법화경을 모르면 불교 모르는 거라니까요. 삼승만 알아가지고는 불교 모르는 것이지요. 그런 겁니다. 그래서 법화경이 경중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고, 일본 불교는 거의 90%가 법화경불교지요. 성덕태자가 법화경을 공부하고 태자로서 법화경을 강설하고 주해를 내고 그래가지고, 일본은 거의 온 천지가 법화경불교를 했는데 나중에 선불교가 들어가서 조동종 임제종 같은 것도 생기고, 밀교 같은 것도 생기고, 진언종이 아직도 성하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러나 저러나 지금까지도 거의 법화경은 일본불교의 상식이 되다시피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이 법화경서품을, -지금은 49재 때 우리가 금강경을 독송하지만 그 전에는 법화경서품을 독송했어요.
제가 어릴 때 걸망지고 다니면서 저~기, 시골 절 다녀보면 법화경서품만 잔뜩, 수백 권씩 쌓여 있는 것을 봤어요. 제가 보니까 나들나들 하게 떨어졌더라고요. 그래 나중에 노스님한테 알아보니까 법화경을 독송했대요.
법화경서품을 독송을 한 겁니다. 우리나라에 언해본. 우리가 한글을 창제해가지고 맨 처음 시험 삼아 국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번역한 것이 능엄경 언해ㆍ법화경 언해ㆍ영가 증도가 언해. 몇 가지 언해본이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 법화경이 하나 있는 겁니다.
원각경 언해도 있고요. 그래서 한 때는 우리나라에도 법화경을 상당히 공부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 증거가 있는데요. 또 이제 선불교의 영향으로 금강경이 상당히 많이 읽히는 그런 상황이 됐지요.
그래서 이 큰 수레와 작은 세 가지 수레. 이것이 비유품에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법화경 全篇에 대해서 이것을 會三歸一 이라고 하는 이유도 羊車ㆍ鹿車ㆍ牛車. 말하자면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 이 세 가지의 가르침. 그것은 결국은 성문은 뭐냐? 四諦, 八正道의 가르침이다.
그 다음에 연각은 뭐냐? 緣起, 空, 無我. 연기, 공, 무아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 연기, 공, 무아. 공부 많이 했지요? 불교에서 입만 열었다 하면 연기, 공, 무아. 아닙니까? 그리고 사제, 팔정도고요.
그리고 六波羅密. 그것은 보살행 하는, 그러니까 보살에게는 육바라밀이고,
연각에게는 緣起, 空, 無我고요. 그 다음에 성문에게는 四諦, 八正道고요.
딱 그렇게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어요. 여기 여러 번 나옵니다.
딱 그렇게 교과서가 성문에게는四諦, 八正道고, 사제, 팔정도 공부한다면 성문인줄 알아야 돼요. 그 다음에
緣起, 空, 無我를 공부한다 하면 그것은 ‘아~ 연각이다.’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六波羅密.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 이것을 공부한다 하면 이것은 보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불 성불하면서 부처의 삶은 없는 것입니다. 부처의 길은 바로 법화경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큰 수레. “모두에게 큰 수레를 준다.” 하는 것이, 큰 수레라는 것이
一佛乘. 모든 사람은 본래로 부처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우리 인간의 표면적인 것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했다면
“너는 얼굴이 왜 그렇게 생겼느냐?” “업을 잘못 지어서 그래.”
“너는 병이 왜 그렇게 생겨 나왔느냐?” “업을 잘못 지어서 그래.”
“너는 왜 가난하냐?” “아, 복을 안 지어서 그래.” 이런 식으로만 불교를 가르친 겁니다. 표면적인 것만 가지고 가르친 겁니다.
내면을 가지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업이니 연기니 하는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불교 안에 파다합니까? 법화경은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법화경은 우리 인간의 내면ㆍ본래인ㆍ궁극적 차원ㆍ모든 인간의 궁극적 차원을 대상으로 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을 드러내게 하는 겁니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존재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제가 얼핏 언급 했지만, 지금 우리가 듣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은요? 승려다 속인이다 하는 조건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이것은 그냥 듣는 존재가 하나 있을 뿐입니다.
남자도 아니고ㆍ여자도 아니고ㆍ늙음도 아니고ㆍ젊음도 아니고ㆍ비구도 아니고ㆍ비구니도 아니고ㆍ우바새도 아니고ㆍ우바이도 아닙니다ㆍ그냥 듣는 존재가 하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다 인정하지요?
그것 인정 아니 할 사람 없는 겁니다.
따지고 보니까 사실 그렇잖아요. ‘아~ 내가 비구라고 해서 이 말을 듣는구나.’아니잖아요. 거기에는 그런 조건이 안 붙잖아요.
우리 궁극적 차원ㆍ우리 본래인의 차원ㆍ이것은 절대 평등의 경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차원은 이렇게 복이 있는 사람도 있고ㆍ없는 사람도 있고, 업장이 이런 사람도ㆍ저런 사람도, 인연이 이런 인연ㆍ저런 인연. 그런 것 가지고 따지기로 하면 답이 안 나온다니까요. 업장을 얼마나 소멸해서 어떻게 되는 데요 그 다음에는? 또 유루복을 얼마나 어떻게 지어서 어떻게 되는 데요? 진시황이 참~ 복 많고 잘 산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적어보니까 우리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서울시민은 진시황보다 천배 만 배 더 잘 살아요. 진시황보다 더 잘사는 항목을 100가지 이상 적으라면 금방 적을 수가 있어요.
우리는 이 시대가 물질적으로 이렇게 발전했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진시황보다도 천배 만 배복을 누리고 삽니다. 도대체 복이 뭐라는 겁니까? 복이 도대체 뭡니까? 50년 전, 60년 전 사람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요? 지금 보통 평민들 보다 훨씬 못삽니다. 그럼 뭐가 복입니까?
그런 외형적인 것에는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어요.
그래 부처님이 이 법화경을 통해서 바로 그런 문제들을 싹~ 정리하고 추려내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 차원ㆍ아주 지극히 고귀한 인간의 본성. 그것을 드러내게 하고, 그것에 눈 뜨라는 겁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大 白牛車입니다. 큰 소가 끄는 수레. 그것은 무량대복이고ㆍ한량없는 신통이고ㆍ생사를 초월한 경지고ㆍ그 궁극적 차원은 정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런 경지입니다. 그것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이 큰 수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 그 다음에는 다 알게 되는 것이지요.
(6) 장자는 거짓이 아님
방편으로 우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부처님도 이것을 거짓이라고, 내가 거짓말 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이 아닌가? 그것을 제자들로부터 공판을 받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것 한 번 볼까요?
舍利弗(사리불)아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오
是長者(시장자)가 等與諸子珍寶大車(등여제자진보대거)가
寧有虛妄不(영유허망부)아 舍利弗言(사리불언)하대
不也世尊(불야세존)하 是長者(시장자)가 但令諸子(단영제자)로
得免火難(득면화난)하야 全其軀命(전기구명)이라도
非爲虛妄(비위허망)이니 何以故(하이고)오
若全身命(약전신명)이라도
便爲已得玩好之具(변위이득완호지구)어든
況復方便(황부방편)으로 於彼火宅(어피화택)에
而拔濟之(이발제지)리요 世尊(세존)하 若是長者(약시장자)가
乃至不與最小一車(내지불여최소일거)라도
猶不虛妄(유불허망)이니 何以故(하이고)오 是長者(시장자)가
先作是意(선작시의)하대 我以方便(아이방편)으로
令子得出(영자득출)하리라할새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無虛妄也(무허망야)하니 何況長者(하황장자)가
自知財富無量(자지재부무량)하고 欲饒益諸子(욕요익제자)하야
等與大車(등여대거)이릿가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善哉善哉(선재선재)라 如汝所言(여여소언)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오? 그대 뜻에 어떠한가? 是長者(시장자)가 等與諸子(등여제자). 장자가 여러 아들들에게 평등하게 주었다. 珍寶大車(진보대거). 아주 보물로써 꾸민 큰 수레를 준 것이 寧有虛妄不(영유허망부)아? 어찌 그것이 거짓말인가? 이 말입니다.虛妄이라는 말은 거짓말인가? 이 말입니다.
舍利弗言(사리불언)하대, 사리불이 말하대 不也世尊(불야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펄쩍 뛰면서) 是長者(시장자)가 但令諸子(단영제자)로, 다만 여러 아들들로 하여금 得免火難(득면화난). 火難을 면하게 해서 全其軀命(전기구명). 목숨과 몸을 온전하게 했다 하더라도 非爲虛妄(비위허망)이니, 그것이 허망한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거짓이 아니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아무 것도 안 줘도 좋아요. 큰 수레는 고사하고 아무 것도, 뭐 자전거 하나 안 줘도 상관없어요. 왜냐? 죽을 놈들을 전부 살려놨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소득이냐고요. 이것이 그 말입니다. 목숨을 온전하게 한 것만으로도 非爲虛妄이니, 허망한 것이거짓이 아니니
何以故(하이고)오? 若全身命(약전신명)이라도, 만약에 몸과 목숨을 온전하게 할지라도 便爲已得玩好之具(변위이득완호지구)라. 이미 아주 훌륭한 장난감을 얻은 것이거든 況復方便(황부방편)으로, 하물며 다시 방편으로써 於彼火宅(어피화택), 저 화택에서 而拔濟之(이발제지)리요? 拔濟한 것이겠습니까?
世尊(세존)하 若是長者(약시장자)가, 세존이시여 만약에 장자가
乃至不與最小一車(내지불여최소일거)라도, 자전거 하나 주지 않더라도, 猶不虛妄(유불허망)이니, 오히려 허망한 것이 아니니, 거짓이 아니니 何以故(하이고)오? 是長者(시장자)가 先作是意(선작시의)하대,
먼저 이뜻을 짓되 我以方便(아이방편)으로 令子得出(영자득출)이라할새. 나는 방편으로 아들들로 하여금 화택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無虛妄也(무허망야). 허망함이 없는 것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이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짓이 아니라고 부처님을 위로 시키는 겁니다.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실은 솔직하게 거짓말 아닙니까? 왜냐? 말한 대로 준 것은 아니니까요. 말한 대로 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결과적으로 그런 큰 소득이 있다. 그러니까 방편은요? 그리 돼야 됩니다.
항상 방편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방편을 통해서 큰 소득을, 그 사람에게 진정 큰 소득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방편입니다. 부처님처럼 화택에서 건져내든지 아니면 애들이 생각했던 수레보다도 천 배 만 배 훌륭한 소득을, 그 사람들에게 소득을 던져 주든지, 큰 수레를 주는 것과 같이 그렇게 주든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대승과 소승. 삼승과 일승. 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해서 우리가 화택의 비유로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4 화택비유의 의미
(1) 비유의 강요에 대한 의미
舍利弗(사리불)아 如來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則爲一切世間之父(즉위일체세간지부)어든
於諸怖畏(어제포외)와 衰惱憂患(쇠뇌우환)과
無明暗蔽(무명암폐)에 永盡無餘(영진무여)하고
而悉成就無量知見力無所畏(이실성취무량지견역무소외)하며
有大神力(유대신력)과 及智慧力(급지혜력)하며
具足方便智慧婆羅蜜(구족방편지혜바라밀)하야
大慈大悲(대자대비)로 常無懈倦(상무해권)하고
恒求善事(항구선사)하야 利益一切(이익일체)하려하사
而生三界朽故火宅(이생삼계후고화택)하야
爲度衆生(위도중생)의 生老病死(생노병사)와
憂悲苦惱(우비고뇌)와 愚癡暗蔽(우치암폐)인
三毒之火(삼독지화)하야
敎化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교화영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케하
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來도 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해서
則爲一切世間之父(즉위일체세간지부)어든, 如來도 亦復如是해서, 비유 끝에는 꼭 그렇게 해요.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일체세상의 아버지가 됐다. 於諸怖畏(어제포외)와, 모든 공포와 衰惱憂患(쇠뇌우환)과 無明暗蔽(무명암폐)에 永盡無餘(영진무여), 그 사람들을 전부 그것을 없애고, 나머지 없도록 그렇게 하고 而悉成就 無量知見과 力無所畏(이실성취 무량지견 역무소외). 한량없는 지견과 힘과 무소외를 다 성취하게 하며, 또 有大神力(유대신력)과 及智慧力(급지혜력)하며, 大神力과 지혜의 힘이 있으며, 그리고 具足方便智慧婆羅蜜(구족방편지혜바라밀)하야. 방편지혜바라밀을 구족해서 大慈大悲(대자대비)로써 常無懈倦(상무해권)하고, 항상 게으름이 없고,
恒求善事(항구선사)하며, 항상 좋은 일만 구하며
利益一切(이익일체)하려하사, 일체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하사
而生三界朽故火宅(이생삼계후고화택)하야, 而三界. 아주 썩고 그 중에서도 불이 활활 타는 있는 이 삼계화택 중에 태어나서 爲度衆生(위도중생)의 生老病死(생노병사)와, 중생들의 生老病死와 憂悲苦惱(우비고뇌)와 愚癡闇蔽(우치암폐)인 三毒之火(삼독지화)하야,
三毒의 불에서 제도해서 敎化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교화영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케하니라. 그들을 교화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유의 강요에 대한 의미, 비유의 전반적인데 대한 내용을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삼계는 화택이다. 이것은 다 아는 내용이고요. 여래가 방편을 생각하다. 넘겨서 방편을 한번 생각하고, 그 다음에 삼승을 만든 까닭이 있어요. 부처님이 그동안 법화경 이전에, 숱한 그런 방편의 가르침을 왜 설 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 고충을 갖다 여기다 피력해 놓은 겁니다.
(2) 삼계(三界)는 화택
見諸衆生(견제중생)이
爲生老病死憂悲苦惱之所燒煮(위생노병사우비고뇌지소소자)하며
亦以五欲財利故(역이오욕재리고)로 受種種苦(수종종고)하며
又以貪著追求故(우이탐착추구고)로 現受衆苦(현수중고)하고
後受地獄畜生餓鬼之苦(후수지옥축생아귀지고)하며
若生天上(약생천상)커나 及在人間(급재인간)에
貧窮困苦(빈궁곤고)와 愛別離苦(애별리고)와
怨憎會苦(원증회고)인
如是等種種諸苦衆生(여시등종종제고중생)이
沒在其中(몰재기중)하야 歡喜遊戲(환희유희)하며
不覺不知(불각부지)하고 不驚不怖(불경불포)하며
亦不生厭(역불생염)하고 不求解脫(불구해탈)하며
於此三界火宅(어차삼계화택)에 東西馳走(동서치주)하야
雖遭大苦(수조대고)나 不以爲患(불이위환)이라
舍利弗(사리불)아 佛見此已(불견차이)하시고
便作是念(변작시념)하대 我爲衆生之父(아위중생지부)라
應拔其苦難(응발기고난)하고
與無量無邊佛智慧樂(여무량무변불지혜락)하야
令其遊戱(영기유희)호리라
(3) 여래가 방편을 생각함
舍利弗(사리불)아 如來復作是念(여래부작시념)하대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약아단이신력급지혜력)으로
捨於方便(사어방편)하고 爲諸衆生(위제중생)하야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찬여래지견력무소외자)면
衆生不能以是得度(중생불능이시득도)리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是諸衆生(시제중생)이
未免生老病死(미면생노병사)와 憂悲苦惱(우비고뇌)하고
而爲三界火宅所燒(이위삼계화택소소)어니
何由能解佛之智慧(하유능해불지지혜)리요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雖復身手有力(수부신수유력)이나 而不用之(이불용지)하고
但以慇懃方便(단이은근방편)으로
勉濟諸子火宅之難然後(면제제자화택지난연후)에
各與珍寶大車(각여진보대거)인달하니라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雖有力無所畏(수유력무소외)나 而不用之(이불용지)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來가 復作是念(여래부작시념)하대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약아단이신력급지혜력)으로, 내가 만약에 다만 神力과 지혜의 힘으로써 捨於方便(사어방편)하고, 방편을 버리고,
爲諸衆生(위제중생)하야,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찬여래지견력무소외자)면, 讚. 찬탄한다.
무엇을? 여래의 지견과 여래의 힘과 여래의 무소외. 여래가 갖추고 있는 그 뛰어난 것만을 자꾸 찬탄한다고 하면, 衆生이 不能以是得度(중생불능이시득도)리라. 중생들이 능히 이것으로써 得度. 제도를 얻지 못할 것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뭐냐?
是諸衆生(시제중생)이, 모든 중생이 未免生老病死(미면생노병사)와 憂悲苦惱(우비고뇌)하고, 생노병사와 우비고뇌.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쁘고, 병든 것도 참 괴롭고, 또 뭐 애들 학교 보내야 되고 무슨 사업해야 되고 취직해야 되고 온갖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될 것 아니냐 이 겁니다. 生ㆍ老ㆍ病ㆍ死ㆍ憂ㆍ悲ㆍ苦ㆍ惱. 우비고뇌라는 속에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세상의 문제투성이. -이것이 우비고뇌 속에 다 포함 됩니다. 그것을 면치 못하고,
而爲三界火宅所燒(이위삼계화택소소)어니, 삼계화택이 타고 있는바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전부 三界火宅이 타고 있는바 입니다.
삼계화택에서 전부 불타고 있는바다 이 겁니다. 그러니
何由能解佛之智慧(하유능해불지지혜)리요? 어찌 무슨 까닭으로 부처의 지혜를 공부할 겨를이 어디 있어요? 솔직하게... 먹고 살기도 바쁜데... 또 아이고 내 몸에 병도 한 짐인데 얼른 병 나아야지, 우리집 애들 학교 보내야지, 사업도해야지 뭐 지금 걸려있는 문제 해결해야지 우비고뇌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생노병사는 그것은 어차피 우리가 태어나면 겪어야할 문제니까요. 生ㆍ老ㆍ病ㆍ死. 이것도 큰일은 큰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이 憂ㆍ悲ㆍ苦ㆍ惱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아 이거 어쩌다가 토굴하나 해놨는데 도대체 신도가 아니 와가지고 말이야 운영도 못 하겠고 이것 빚도 좀 있는데 팔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때려치우고 대중 선방으로 갈까 말까?’하하 보통문제가 아닌 겁니다.
‘늘그막에 대중처소에 가려니까 이것이 참~ 꼴사납고 무슨 대중공양도 많이 내야 되다하지...’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대중처소에 방 한 칸 얻기가 쉽나요? 그것 아주 어려운 겁니다.
또 얻었다한들, 거기에 대중눈치 봐야 되고, 사중 소임자들 눈치 봐야 되고, 하~ 보통 우비고뇌가 많은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가지고 전부 그냥 토굴이 여러... 우리나라 스님들의 숫자가 한 2만 명? 조계종만 치더라도 한 만5천 ~ 2만 명 되는데, 절하고 토굴하고 다 합치면 한 3만개 됩니다. 전부 능력 조금만 있으면 토굴 토굴해가지고 그냥...
지리산에 전번에 갔었는데 저~기 하동 쪽에는 80개가 있다네요.
그 쪽만 80개. 또 요쪽으로, 일월 쪽으로 거기도 한 30개입니다.
그것 전부 개인 사찰입니다.
경주에 또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저도 한 때 토굴 구하려고 돌아다녀 봐서 알지요. 허허허. 거 줄타기 하면서 큰절에 사는 겁니다. 줄타기... 외줄타기 하면서 큰절에 사는 것은 외줄타기입니다.
보통 힘든 일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토굴, 토굴, 토굴. 우비고뇌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허허허 제 방 옆에 대성암이라고 비구니 스님들 선방이 있는데요. ?결제가 쭉~ 지나면 나이가 50 ~ 60된 구 참 들이 차 마시러 한번 씩 내려와요. 그래 이것저것 공부 잘 되느냐 어쩌냐 공부 이야기하면 시들해요. 조는지 어쩐지 별 관심 없어요.
그러다가 토굴 이야기는 하면, 노후문제. 노후문제라든지 토굴 이야기하면 그냥 눈에 불이 반짝합니다. 그만치 심각합니다.
공부에 별 관심 없어요. 나이가 많고, 대중 선방에 못가고 그럴 때 걸망이라도 하나 풀어놓고 그것도 약이라도 가서 먹을 수 있는 그런 어떤 자기 굴택 하나 있었으면 하는 그것이 그냥 오매불망 화두입니다.
그 얘기만 하면 눈이 반짝한다니까요. 제가 여러 번 경험한 겁니다.
그것이 전부 憂ㆍ悲ㆍ苦ㆍ惱입니다. 生ㆍ老ㆍ病ㆍ死는 으레 오는 것이니까요. 세속엔 더 많지 뭘... 하하하하하하
그것이 三界火宅所燒입니다. 三界火宅. 불난 집에서 타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何由, 무슨 까닭으로 能解佛之智慧(능해불지지혜)리요?
부처님의 지혜를 알려고 하겠는가? 말입니다. 성불. “너나 많이 해라” 성불, 성불하지만 사실 솔직하게 성불 크게 관심 있는 사람 없어요. 실제는 그것에 관심 있어야 되는데요. 관심 있고 나서 그 다음에 성불하려면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는가? 또 경을 보면 어떻게 무슨 경을 보는 것이 빨리 성불 하겠는가? 참선을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되겠는가? 그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바르게 하느냐? 잘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요.
관심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이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何由能解佛之智慧리요?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예컨대 저 장자가 雖復身手有力(수부신수유력)이나, 비록 자기 손에 힘이 있어. 그렇지만 而不用之(이불용지)하고, 그것을 자기가 사용하지를 않고 但以慇懃한 方便(단이은근방편)으로써 勉濟諸子火宅之難然後(면제제자화택지난연후)에, 여러 아들들이 火宅의 難에서 면하게, 힘써 스스로 건지게 한 연후에 各與珍寶大車(각여진보대거). 珍寶大車. 아주 보물로 장식한 큰 수레를 각각 준 것과 같으니라.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雖有力無所畏(수유력무
소외)나 而不用之(이불용지)하니라. 비록 力과 無所畏. 10역이라고 해서 열 가지 힘이지요. 力과 無所畏가 있기는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4) 삼승법을 만든 까닭
이것도 우리가 알기는 알아야 돼요.
但以智慧方便(단이지혜방편)으로 於三界火宅(어삼계화택)에
拔濟衆生(발제중생)하야 爲說三乘(위설삼승)인
聲聞辟支佛佛乘(성문벽지불불승)하리라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汝等(여등)은
莫得樂住三界火宅(막득낙주삼계화택)하고
勿貪麤弊(물탐추폐)인 色聲香味觸也(색성향미촉야)하라
若貪著生愛(약탐착생애)면 則爲所燒(즉위소소)리라
汝速出三界(여속출삼계)하야
當得三乘聲聞辟支佛佛乘(당득삼승성문벽지불불승)이어다
我今爲汝(아금위여)하야 保任此事(보림차사)하노니
終不虛也(종불허야)니라
汝等但當勤修精進(여등단당근수정진)이니
如來以是方便(여래이시방편)으로 誘進衆生(유진중생)호라
復作是言(부작시언)하대 汝等當知(여등당지)하라
此三乘法(차삼승법)은 皆是聖所稱歎(개시성소칭탄)이며
自在無繫(자재무계)라 無所依求(무소의구)니
乘是三乘(승시삼승)하야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이무루근력각도선정해탈삼매등)
으로 而自娛樂(이자오락)하면
便得無量安穩快樂(변득무량안온쾌락)하리라
舍利弗(사리불)아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內有智性(내유지성)하야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慇懃精進(은근정진)하며
欲速出三界(욕속출삼계)하야 自求涅槃(자구열반)하면
是名聲聞乘(시명성문승)이니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羊車(위구양거)하야 出於火宅(출어화택)하며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慇懃精進(은근정진)하야
求自然慧(구자연혜)하며 樂獨善寂(낙독선적)하야
深知諸法因緣(심지제법인연)하면
是名辟支佛乘(시명벽지불승)이니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鹿車(위구녹거)하야
出於火宅(출어화택)하며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勤修精進(근수정진)하야 求一切智(구일체지)와 佛智(불지)와
自然智(자연지)와 無師智(무사지)와 如來知見(여래지견)과
力無所畏(역무소외)하야
愍念安樂無量衆生(민념안락무량중생)하며
利益天人(이익천인)하야 度脫一切(도탈일체)하면
是名大乘菩薩(시명대승보살)이니 求此乘故(구차승고)로
名爲摩訶薩(명위마하살)이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牛車(위구우거)하야 出於火宅(출어화택)하니라
但以智慧方便(단이지혜방편)으로, 다만 방편지혜로써
於三界火宅(어삼계화택)에서 拔濟衆生(발제중생)하야, 중생을 건져서 爲說三乘(위설삼승)인 聲聞ㆍ辟支佛ㆍ佛乘(성문벽지불불승).
여기서 佛乘 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데, 보살승입니다. 두 번이나 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걸 가지고 “보살승을 언제부터인가 佛乘 이라고 이렇게 기재 됐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三乘이라고, 三乘인 했잖아요. 三乘인 聲聞ㆍ辟支佛ㆍ佛乘했는데 보살승입니다.
승을 설한다 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汝等(여등)은,
莫得樂住三界火宅(막득낙주삼계화택)하고, 너희들은 삼계화택에 즐겨 머물지 말고 勿貪麤弊(물탐추폐)인, 麤弊. 말하자면 아주 거칠고 아주 떨어진 옷과 같은 色ㆍ聲ㆍ香ㆍ味ㆍ觸也(색성향미촉야)하라. 이것을 탐하지 말아라. 若貪著生愛(약탐착생애)면, 만약에 貪著해서 애착을 낼 것 같으면 則爲所燒(즉위소소)리라. 그것이 바로 불에 타는바가 된다.
汝速出三界(여속출삼계)하야, 그대들은 속히 삼계에서 벗어나서
當得三乘ㆍ聲聞ㆍ辟支佛ㆍ佛乘(당득삼승성문벽지불불승)이어다.
여기도 佛乘이라고 나왔지요? -두 개에 동그라미 해놔야 돼요.
보살승입니다. 불승을 마땅히 얻을지어다. 그러나 경전에는 함부로 고치지 않거든요. 제가 개인적인 소견으로 이것은 보살승이라야 된다 라고 이렇게 말은 할지언정 경을 자유로 함부로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我今爲汝(아금위여)하야, 내가 지금에 그대를 위해서
保任此事(보림차사)하노니 이 일을 保任해서, 예를 들어서 맡겨서
終不虛也(종불허야)니라. 마침내 허망하지 않다.
汝等但當勤修精進(여등단당근수정진)하야, 그대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精進해서 如來가 以是方便(여래이시방편)으로써 誘進衆生(유진중생)호라. 중생들을 유혹하고 나아가게 한다. 誘進衆生. 이것 좋은 말입니다. 방편으로써 중생들을 유혹해서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復作是言(부작시언)하대 汝等當知(여등당지)하라.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라. 此三乘法(차삼승법)은, 이 삼승법은
皆是聖所稱歎(개시성소칭탄)이야. 성인들이 稱歎하는바다. 그렇지요.
성문 연각 보살, 다 稱歎하는 바입니다.
自在無繫(자재무계)라. 자재해서 어디에도 속박됨이 없어요.
無所依求(무소의구)니, 依求하는 바가 없음이니
乘是三乘(승시삼승)해서, 이 3승에 올라타서 “3승법을 배워서” 이런 말이지요. 3승법을 배워서 以無漏根ㆍ力ㆍ七覺地ㆍ八正道ㆍ禪定ㆍ解脫ㆍ三昧等(이무루근력각도선정해탈삼매등). 覺道라는 말은 무루인5근· 5력· 7각지· 8정도. 그런 말입니다. 禪定 解脫 三昧等으로서
而自娛樂(이자오락)하면, 그것을 스스로 즐길 것 같으면
便得無量安穩快樂(변득무량안온쾌락)하리라. 곧 한량없는 편안함과 쾌락을 얻으리라.
舍利弗(사리불)아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內有智性(내유지성)하야, 안으로 智性이 있어서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법을 듣고 믿고 받고
慇懃히 精進(은근정진)하며 欲速出三界(욕속출삼계)하야, 삼계에서 속히 벗어나고자 해서 自求涅槃(자구열반)하면, 스스로 열반을 구할 것 같으면 是名聲聞乘(시명성문승)이니라. 이것을 이름 해서 聲聞乘이라고한다. 如彼諸子(여피제자)가, 예컨대 저 여러 아들들이
爲求羊車(위구양거)하야, 羊車를 구하기 위해서 出於火宅(출어화택), 화택을 벗어나서, 양거를 구하기 위해서 화택을 벗어난 것과 같다.
若有衆生(약유중생)이 만약에 예컨대 어떤 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부처님으로부터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慇懃히 精進(은근정진)해서 求自然慧(구자연혜). 저절로 생기는 지혜를 구해서
樂獨善寂(낙독선적). 홀로 있고, 아주 좋은 고요함. 獨善寂을 즐겨서
深知諸法因緣(심지제법인연). (여기 있네요.) 제법 인연의 도리를 깊이 알 것 같으면 是名辟支佛乘(시명벽지불승)이니라. 이 사람은 이름이 뭐라고요? 辟支佛乘이니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예컨대 저 여러 아들들이 爲求鹿車(위구녹거)하야, 사슴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出於火宅(출어화택)하며, 화택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또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고, 부처님으로부터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勤修精進(근수정진)해서
求一切智(구일체지), 일체지혜와 佛智(불지)와 自然智(자연지)와
無師智(무사지)와 如來知見(여래지견)과 力無所畏(역무소외)를 구해서 愍念安樂無量衆生(민념안락무량중생). 한량없는 중생들을 연민히 하고 그들을 또 안락하게 하고, 그래서 利益天人(이익천인)하야,
天人들을 이익케 해서 度脫一切(도탈일체)하면, 일체중생들을 度脫 할 것 같으면 是名大乘菩薩(시명대승보살)이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살행 하는 사람이지요. 是名大乘菩薩이니 求此乘故(구차승고)로. 2승을 구하는 고로 名爲摩訶薩(명위마하살)이라. 이름이 마하살이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牛車(위구우거). 소가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出於火宅(출어화택). 화택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음이니라.
이렇게 딱 딱 정리를 해서 배대를 해놨잖아요.
양거ㆍ녹거ㆍ우거인데요. 말하자면 성문승은 뭐고, 연각승은 뭐고, 보살승은 뭐다. 여기 딱 확실하게 보살승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놨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부처가 됐다 하더라도 사실은요? 사실은 그 행위는 뭔가 하니 보살행이지요. 행위는 보살행입니다. 결국은 부처의 삶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의 그 행을 뭐라고 하는가? 佛行이라고 해도 좋지만, 그것은 菩薩行이라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왜냐? 중생을 위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一佛乘, 일불승, 법화경에서 자꾸 일불승, 일불승하는 것은 부처인줄 알고 보살행을 하라 이 말입니다. 부처인줄 알고요.
그러니까 제대로 부처인줄 알고요. 나도 부처고 남도 부처인줄을 알 것 같으면 보살행이 절로 나와요. 저절로 보살행이 나옵니다.
그래서 행은 보살행이다. 법화경에 와서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됩니다. 성문ㆍ연각ㆍ보살. 그리고 이것은 일불승을 가르치는 교재인데 결국은 敎菩薩法.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다. 이렇게 했잖아요.
그럼 보살은 결국은 바로 부처 밑에 있는 수준을 보살이라고 하고, 그러면 설사 우리가 부처인줄 알고, 부처가 됐다 합시다.
부처가 됐다 해도 그러면 세상에 회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보살행이라고 말합니다.
佛行이라는 말을 하긴 해요. 하긴 하지만 그것은 그런 일을 보살행이라고 말합니다.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든지 저기 어디 가서 급식 활동을 하든지 독거노인들을 돌보든지, 무슨 무의탁 아이들을 돌보든지 어디 무슨 단체에 가서 봉사를 하든지 등등, 사회에 기여하는 그런 일들은 전부 보살행입니다. 그런데 요는 할 때 부처인줄 알고, 부처인줄 알고 내 자신 내면에 있어서, 그리고 내 봉사를 받는 거지가 됐든지 무슨 노숙자가 됐든지 아니면, 무의탁 노인이 됐든지 소년 소녀 가장이 됐든지 그 사람들이 나와 동등한, 그리고 저 佛菩薩들과 동등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런 관념으로 말하자면 봉사활동 하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 불교인이 봉사활동 하는 정신이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정신없이 그냥 봉사활동만 한다.
급식 활동하고 무의탁 노인들 돌보고 하면, 그것은 복지부에서 하는 일이나 타 종교에서 하는 일이나 똑 같이 돼버립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항상 그 사상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회에서 하는 봉사활동과 불교에서 하는 봉사활동 내지 복지사업이 다른 점입니다. 그 다른 점을 명백히 하고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것 없이하면 그것은 사실 크게 의미 없어요. 뭐 지나가는 사람 밥 한 그릇 주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요. 여기 있네요. 여래의 마음은 대승 그렇게 했네요.
(5) 여래의 마음은 대승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見諸子等(견제자등)이
安隱得出火宅(안은득출화택)하야 到無畏處(도무외처)하고
自惟財富無量(자유재부무량)일새 等以大車(등이대거)로
而賜諸子(이사제자)하나니 如來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爲一切衆生之父(위일체중생지부)라
若見無量億千衆生(약견무량억천중생)이
以佛敎門(이불교문)으로
出三界苦怖畏險道(출삼계고포외험도)하야
得涅槃樂(득열반락)하고 如來爾時(여래이시)에
便作是念(변작시념)하대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
제불법장)하고 是諸衆生(시제중생)은 皆是我子(개시아자)라
等與大乘(등여대승)이요 不令有人(불영유인)으로
獨得滅度(독득멸도)니 皆以如來滅度(개이여래멸도)로
而滅度之(이멸도지)호리라 是諸衆生(시제중생)의
脫三界者(탈삼계자)에
悉與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실여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하나
니 皆是一相一種(개시일상일종)이라 聖所稱歎(성소칭탄)이며
能生淨妙第一之樂(능생정묘제일지락)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저 장자가
見諸子等(견제자등)이, 여러 아들들이
安穩得出火宅(안온득출화택)하야, 편안하게 화택에서 나와 가지고서
到無畏處(도무외처),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곳에 이르렀어. 그리고
自惟財富無量(자유재부무량)이라. 자기는 재산이 한량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어요. 等以大車(등이대거)로, 평등하게 큰 수레로서 而賜諸子(이사제자)하나니, 여러 아들들에게 줬나니 如來도 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爲一切衆生之父(위일체중생지부)라. 一切衆生의 아버지로서
若見無量億千衆生(약견무량억천중생)이, 만약에 無量億千衆生이 以佛敎門(이불교문)으로써 出三界苦와 怖畏險道(출삼계고포외험도). 세상의 아주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서 得涅槃樂(득열반락)하고, 涅槃樂을 얻고 또 如來가 爾時(여래이시)에 便作是念(변작시념)하대,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하고, 나에게는 무량무변 지혜력과 무외등 제불의 법장이 있다. 是諸衆生(시제중생)은 皆是我子(개시아자)라. 모든 중생들은 나의 아들이다. 等與大乘(등여대승)이요, 평등하게 大乘으로써 줄 것이고,
不令有人(불영유인)으로, 한 사람도 獨得滅度(독득멸도), 홀로 열반을 얻게 하지는 않겠다 이 말입니다. 皆以如來滅度(개이여래멸도)로,
다 如來의 滅度로써 전부 부처의 성불 滅度. 부처가 제도 된 것. 여래 제도로써, 如來의 滅度로써 而滅度之(이멸도지)라. 이것 중요한 말입니다. 전부 부처의 경지에 이른, 여래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써 제도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如來滅度로써 다 滅度를 얻게 호리라.
是諸衆生(시제중생)의 이 모든 衆生이 三界에 있는
脫三界者(탈삼계자)에, 三界를 벗어난 사람에게
悉與(실여), 다 같이 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를 다 주었나니, 皆是一相一種(개시일상일종)이라. 一相이고 一種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一佛乘이다.”하는 것입니다. 일불승이다. 聖所稱歎(성소칭탄)이며, 성인이 稱歎하는 바며
能生淨妙第一之樂(능생정묘제일지락)이라. 능히 청정하고 미묘한 제일의 樂을 내는 것이니라.
(6) 여래는 진실함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初以三車(초이삼거)로
誘引諸子然後(유인제자연후)에 但與大車(단여대거)의
寶物莊嚴(보물장엄)이 安穩第一(안온은제일)하나
然彼長者(연피장자)는 無虛妄之咎(무허망지구)인달하야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無有虛妄(무유허망)이니
初說三乘(초설삼승)하야 引導衆生然後(인도중생연후)에
但以大乘(단이대승)으로 而度脫之(이도탈지)시니
何以故(하이고)오 如來有無量智慧(여래유무량지혜)와
力無所畏諸法之藏(역무소외제법지장)하야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이언만은
但不盡能受(단부진능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當知諸佛(당지제불)의 方便力故(방편력고)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初以三車(초이삼거)로,
처음에는 三車로써, 세 가지 수레로써
誘引諸子然後(유인제자연후)에, 諸子들을 유인했잖아요. 여러 아이들을 유인한 연후에 但與大車(단여대거)의, 다만 大車로써,
대거의 寶物莊嚴(보물장엄) 安穩第一(안온제일). 그것으로써 평등하게 주었어요. 然彼長者(연피장자)는, 그러나 저 장자는
無虛妄之咎(무허망지구)인달하야, 거짓말의 허물이 없다 말입니다.
그렇게 방편으로써 유혹을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너무 큰 이득을 얻게 했으니까 거짓말한 허물이 없다 이 겁니다.
허물이 없듯이,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無有虛妄(무유허망)이니, 허망이 없음이니
初說三乘(초설삼승)하야, 처음에 3승을 설해서, 그러니까 부처님이 3승을 설한 것이 죄는 아니다 이 겁니다. 거짓이지만, 거짓이지만 부처님이 죄지은 것은 아니다. 初說三乘하야 引導衆生然後(인도중생연후)에, 중생들을 인도한 연후에, 그러니까 우리가 방편을 쓸 때요? 무슨 등불 켜 놓고 수명 길어진다 하는 것도 좋아요 그런 방편. 호롱불 하나 켜 놓고 무슨 지혜 생긴다. 그것 좋아요 그런 방편.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신도들을 인도한 연후에, 但以大乘(단이대승)으로써 而度脫之(이도탈지)니, 다만 나중에는 정말 궁극적인 불교의 큰 법으로써 그들을 교화해야 된다.
이것을 안 하고는 그냥 끊임없이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방편만 쓰는데 문제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신 차려야 됩니다. 이 법화경 공부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정신 좀 차려서... 부처님도 3승법을 설해가지고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그 다음에 但以大乘으로써 그들을 度脫했다. “그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 아닙니까? 더 좋은걸 내놓고 아니다 라고 해야 됩니다. 더 좋은걸 내놓고요. 그것은 화낼 사람 아무도 없어요. 더 좋은걸 주고 나서는...
何以故(하이고)오 如來有無量智慧(여래유무량지혜)와
力과 無所畏와 諸法之藏(역무소외제법지장)이 있어서, 그런 諸法의 창고가 있어서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이언만은,
一切衆生大乘에게 대승의 법을 능히 주건만 但不盡能受(단부진능수), 다만 우리가 그것을 다 능히 받아들이지를 못함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當知諸佛(당지제불)의,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方便力故(방편력고)로, 방편력을 아는 고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서, 중요한 말이지요.
於一佛乘에서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하나의 부처의 삶 에서 쪼개고, 쪼개고, 쪼개가지고 삼승뿐만이 아니라 천승ㆍ만승ㆍ9만승으로 우리가 방편을 만들어내지요. 그러나 그 방편을 통해서 인도한 연후에, 引導.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는 정말 바람직한 불교. 大乘佛敎. 부처의 삶이라고 하는 그 길로 인도해야 된다 하는 것이 말하자면 이 법화경의 주된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해서 비유품은 여기까지 끝내고, 그 다음은 전부 중송.
거듭 밝혀내는 것이니까 쉬었다가 하기로 하겠습니다.
5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화택의 상황
佛(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
하니라
譬如長者(비여장자)가 有一大宅(유일대택)커던
其宅久故(기택구고)하고 而復頓弊(이부돈폐)하며
堂舍高危(당사고위)하고 柱根摧朽(주근최후)하며
梁棟傾斜(양동경사)하고 基陛隤毁(기폐퇴훼)하여
牆壁圮坼(장벽비탁)하고 泥塗阤落(니도타락)하며
覆苫亂墜(복점난추)하고 椽梠差脫(연려차탈)하며
周障屈曲(주장굴곡)하고 雜穢充徧(잡예충변)하며
有五百人(유오백인)이 止住其中(지주기중)커던
鵄梟鵰鷲(치효조취)와 烏鵲鳩鴿(오작구합)과
蚖蛇蝮蠍(원사복헐갈)과 蜈蚣蚰蜒(오공유연)과
守宮百足(수궁백족)과 鼬狸鼷鼠(유리혜서)와
諸惡蟲輩(제악충배)가 交橫馳走(교횡치주)하며
屎尿臭處(시뇨취처)에 不淨流溢(부정유일)하고
蜣蜋諸蟲(강랑제충)이 而集其上(이집기상)하며
狐狼野干(호랑야간)이 咀嚼踐踏(저작천답)하고
嚌齧死屍(제설사시)하야 骨肉狼藉(골육낭자)커던
由是羣狗(유시군구)가 競來搏撮(경래박촬)하고
飢羸慞惶(기리장황)하야 處處求食(처처구식)하며
鬪諍摣掣(투쟁사체철)하고 啀喍嘷吠(애재호폐)어든
其舍恐怖(기사공포)하야 變狀如是(변상여시)라
處處皆有(처처개유) 魑魅魍魎(이리매망량)하며
夜叉惡鬼(야차악귀)가 食噉人肉(식담인육)하며
毒蟲之屬(독충지속)과 諸惡禽獸(제악금수)는
孚乳産生(부유산생)하야 各自藏護(각자장호)어든
夜叉競來(야차경래)하야 爭取食之(쟁취식지)하며
食之旣飽(식지기포)하야는 惡心轉熾(악심전치)하야
鬪諍之聲(투쟁지성)이 甚可怖畏(심가포외)하며
鳩槃茶鬼(구반다귀)가 蹲踞土埵(준거토타)하대
或時離地(혹시이지)를 一尺二尺(일척이척)하며
往返遊行(왕반유행)하야 縱逸嬉戱(종일희희)하대
捉狗兩足(착구양족)하야 撲令失聲(박령실성)하고
以脚加頸(이각가경)하야 怖狗自樂(포구자락)하며
復有諸鬼(부유제귀)는 其身長大(기신장대)하야
裸形黑瘦(나형흑수)가 常住其中(상주기중)하대
發大惡聲(발대악성)하야 叫呼求食(규호구식)하며
復有諸鬼(부유제귀)는 其咽如針(기인여침)하며
復有諸鬼(부유제귀)는 首如牛頭(수여우두)하대
或食人肉(혹식인육)하고 或復噉狗(혹부담구)하며
頭髮髼亂(두발봉란)하야 殘害兇險(잔해흉험)하며
飢渴所逼(기갈소핍)으로 叫喚馳走(규환치주)하며
夜叉餓鬼(야차아귀)와 諸惡鳥獸(제악조수)가
飢急四向(기급사향)하야 窺看窗牖(규간창유)커던
如是諸難(여시제난)이 恐畏無量(공외무량)이라
是朽故宅(시후고택)이 屬于一人(속우일인)터니
其人近出(기인근출)하야 未久之間(미구지간)에
於後宅舍(어후택사)에 忽然火起(홀연화기)하야
四面一時(사면일시)에 其燄俱熾(기염구치)하대
棟梁椽柱(동양연주)에 爆聲震裂(폭성진열)하야
摧折墮落(최절타락)하고 牆壁崩倒(장벽붕도)하며
諸鬼神等(제귀신등)은 揚聲大叫(양성대규)하고
鵰鷲諸鳥(조취제조)와 鳩槃茶等(구반다등)은
周慞惶怖(주장황포)하야 不能自出(불능자출)하며
惡獸毒蟲(악수독충)이 藏竄孔穴(장찬공혈)하며
毗舍闍鬼(비사도귀)가 亦住其中(역주기중)하니
薄福德故(박복덕고)로 爲火所逼(위화소핍)하야
共相殘害(공상잔해)하고 飮血噉肉(음혈담육)하며
野干之屬(야간지속)이 幷已前死(병이전사)어든
諸大惡獸(제대악수)가 競來食噉(경래식담)하며
臭烟蓬㶿(취연봉발)이 四面充塞(사면충색)하며
蜈蚣蚰蜒(오공유연)과 毒蛇之類(독사지류)는
爲火所燒(위화소소)하야 爭走出穴(쟁주출혈)커던
鳩槃茶鬼(구반다귀)가 隨取而食(수취이식)하며
又諸餓鬼(우제아귀)는 頭上火然(두상화연)커던
飢渴熱惱(기갈열뇌)로 周慞悶走(주장민주)하며
其宅如是(기택여시)히 甚可怖畏(심가포외)라
毒害火災(독해화재)로 衆難非一(중난비일)이러라
(2) 장자가 화택을 보다
是時宅主(시시택주)가 在門外立(재문외립)이러니
聞有人言(문유인언)하대 汝諸子等(여제자등)이
先因遊戱(선인유희)하야 來入此宅(내입차택)이나
稚小無知(치소무지)하야 歡娛樂著(환오락착)이라하야늘
長者聞已(장자문이)에 驚入火宅(경입화택)하니라
(3) 화택과 아이들의 놀이
方宜救濟(방의구제)하야 令無燒害(영무소해)호리라하고
告喩諸子(고유제자)하야 說衆患難(설중환난)하대
惡鬼毒蟲(악귀독충)과 災火蔓延(재화만연)하며
衆苦次第(중고차제)로 相續不絶(상속부절)하며
毒蛇蚖蝮(독사원복)과 及諸夜叉(급제야차)와
鳩槃茶鬼(구반다귀)와 野干狐狗(야간호구)와
鵰鷲鴟梟(조취치효)와 百足之屬(백족지속)이
飢渴惱急(기갈뇌급)으로 甚可怖畏(심가포외)어든
此苦難處(차고난처)에 況復大火(황부대화)리요
諸子無知(제자무지)하야 雖聞父誨(수문부회)나
猶故樂著(유고낙착)하야 嬉戱不已(희희불이)어늘
(4) 세 가지 수레를 사용함
是時長者(시시장자)가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諸子如此(제자여차)하니 益我愁惱(익아수뇌)로다
今此舍宅(금차사택)이 無一可樂(무일가락)이어늘
而諸子等(이제자등)이 耽湎嬉戱(탐면희희)하고
不受我敎(불수아교)하니 將爲火害(장위화해)로다
卽便思惟(즉변사유)하대 設諸方便(설제방편)호리라하고
告諸子等(고제자등)하대 我有種種(아유종종)
珍玩之具(진완지구)에 妙寶好車(묘보호거)인
羊車鹿車(양거녹거)와 大牛之車(대우지거)가
今在門外(금재문외)하니 汝等出來(여등출래)하라
吾爲汝等(오위여등)하야 造作此車(조작차거)호니
隨意所樂(수의소락)야 可以遊戱(가이유희)니라
諸子聞說(제자문설) 如此諸車(여차제거)하고
卽時奔競(즉시분경)하야 馳走而出(치주이출)일새
到於空地(도어공지)하야 離諸苦難(이제고난)하니라
(5) 모두에게 큰 수레를 줌
長者見子(장자견자) 得出火宅(득출화택)하야
住於四衢(주어사구)하고 坐師子座(좌사자좌)하야
而自慶言(이자경언)하대 我今快樂(아금쾌락)이로다
此諸子等(차제자등)이 生育甚難(생육심난)이어늘
愚小無知(우소무지)하야 而入險宅(이입험택)하니
多諸毒蟲(다제독충)하고 魑魅可畏(이매가외)며
大火猛燄(대화맹염)이 四面俱起(사면구기)어늘
而此諸子(이차제자)는 貪着嬉戱(탐착희희)일새
我已救之(아이구지)하야 令得脫難(영득탈난)케호니
是故諸人(시고제인)아 我今快樂(아금쾌락)이로다
爾時諸子(이시제자)가 知父安坐(지부안좌)하고
皆詣父所(개예부소)하야 而白父言(이백부언)하대
願賜我等(원사아등)의 三種寶車(삼종보거)를
如前所許(여전소허)하소서 諸子出來(제자출래)하면
當以三車(당이삼거)로 隨汝所欲(수여소욕)이라하시더니
今正是時(금정시시)라 惟垂給與(유수급여)하소서
長者大富(장자대부)하야 庫藏衆多(고장중다)하야
金銀琉璃(금은유리)와 硨磲瑪瑙(차거마노)어든
以衆寶物(이중보물)로 造諸大車(조제대거)하니
莊校嚴飾(장교엄식)하고 周帀欄楯(주잡난순)에
四面懸鈴(사면현령)하고 金繩交絡(금승교락)하며
眞珠羅網(진주라망)으로 張施其上(장시기상)하며
金華諸瓔(금화제영)이 處處垂下(처처수하)하며
衆綵雜飾(중채잡식)이 周帀圍繞(주잡위요)하고
柔輭繒纊(유연증광)으로 以爲茵褥(이위인욕)하며
上妙細㲲(상묘세전)이 價値千億(가치천억)이라
鮮白淨潔(선백정결)로 以覆其上(이복기상)하며
有大白牛(유대백우)하대 肥壯多力(비장다력)하며
形體姝好(형체주호)에 而駕寶車(이가보거)하며
多諸儐從(다제빈종)하야 而侍衛之(이시위지)어든
以是妙車(이시묘거)로 等賜諸子(등사제자)하신대
諸子是時(제자시시)에 歡喜踊躍(환희용약)하야
乘是寶車(승시보거)하고 遊於四方(유어사방)하며
嬉戲快樂(희희쾌락)하야 自在無礙(자재무애)하더라
6 화택비유의 의미
(1) 비유의 강요에 대한 의미
告舍利弗(고사리불)하노니 我亦如是(아역여시)하야
衆聖中尊(중성중존)이며 世間之父(세간지부)라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皆是吾子(개시오자)어늘
深著世樂(심착세락)하야 無有慧心(무유혜심)하며
三界無安(삼계무안)이 猶如火宅(유여화택)하며
衆苦充滿(중고충만)하니 甚可怖畏(심가포외)라
常有生老(상유생노) 病死憂患(병사우환)하야
如是等火(여시등화) 가 熾然不息(치연불식)하니라
(2) 삼계는 나의 소유(所有)
如來已離(여래이리) 三界火宅(삼계화택)하고
寂然閑居(적연한거)하야 安處林野(안처임야)호니
今此三界(금차삼계)가 皆是我有(개시아유)요
其中衆生(기중중생)은 悉是吾子(실시오자)어늘
而今此處(이금차처)에 多諸患難(다제환난)이라
唯我一人(유아일인)이 能爲救護(능위구호)니라
(3) 삼승법을 설한 까닭
雖復敎詔(수부교조)나 而不信受(이불신수)는
於諸欲染(어제욕염)에 貪著深故(탐착심고)일새니라
以是方便(이시방편)으로 爲說三乘(위설삼승)하야
令諸衆生(영제중생)으로 知三界苦(지삼계고)케하고
開示演說(개시연설) 出世間道(출세간도)어든
是諸子等(시제자등)이 若心決定(약심결정)하면
具足三明(구족삼명)과 及六神通(급육신통)하야
有得緣覺(유득연각)과 不退菩薩(불퇴보살)하리라
(4) 일불승을 설함
汝舍利弗(여사리불)아 我爲衆生(아위중생)하야
以此譬喩(이차비유)로 說一佛乘(설일불승)하노니
汝等若能(여등약능) 信受是語(신수시어)하면
一切皆當(일체개당) 成得佛道(성득불도)하리라
是乘微妙(시승미묘)하고 淸淨第一(청정제일)이라
於諸世間(어제세간)에 爲無有上(위무유상)일새
佛所悅可(불소열가)며 一切衆生(일체중생)의
所應稱讚(소응칭찬)하야 供養禮拜(공양예배)니
無量億千(무량억천)의 諸力解脫(제력해탈)과
禪定智慧(선정지혜)와 及佛餘法(급불여법)이니
得如是乘(득여시승)이라사 令諸子等(영제자등)으로
日夜劫數(일야겁수)에 常得遊戱(상득유희)하며
與諸菩薩(여제보살)과 及聲聞衆(급성문중)이
乘此寶乘(승차보승)하면 直至道場(직지도량)하나니라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十方諦求(시방제구)하야도
更無餘乘(갱무여승)이니 除佛方便(제불방편)이니라
(5) 오직 불지혜(佛智慧)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汝諸人等(여제인등)이
皆是吾子(개시오자)요 我則是父(아즉시부)라
汝等累劫(여등누겁)에 衆苦所燒(중고소소)어늘
我皆濟拔(아개제발)하야 令出三界(영출삼계)호라
我雖先說(아수선설) 汝等滅度(여등멸도)나
但盡生死(단진생사)요 而實不滅(이실불멸)이니
今所應作(금소응작)은 唯佛智慧(유불지혜)니라
若有菩薩(약유보살)이 於是衆中(어시중중)에
能一心聽(능일심청) 諸佛實法(제불실법)이니
諸佛世尊(제불세존)은 雖以方便(수이방편)이나
所化衆生(소화중생)은 皆是菩薩(개시보살)이니라
若人小智(약인소지)하야 深著愛欲(심착애욕)일새
爲此等故(위차등고)로 說於苦諦(설어고제)호니
衆生心喜(중생심희)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호되
佛說苦諦(불설고제)는 眞實無異(진실무이)라하며
若有衆生(약유중생)이 不知苦本(부지고본)하고
深著苦因(심착고인)하야 不能暫捨(불능잠사)어던
爲是等故(위시등고)로 方便說道(방편설도)호니
諸苦所因(제고소인)은 貪欲爲本(탐욕위본)이라
若滅貪欲(약멸탐욕)하면 無所依止(무소의지)니
滅盡諸苦(멸진제고)라사 名第三諦(명제삼제)라
爲滅諦故(위멸제고)로 修行於道(수행어도)니
離諸苦縛(이제고박)하면 名得解脫(명득해탈)이니라
是人於何(시인어하)에 而得解脫(이득해탈)이어뇨
但離虛妄(단이허망)이 名爲解脫(명위해탈)이나
其實未得(기실미득) 一切解脫(일체해탈)이니
佛說是人(불설시인)은 未實滅度(미실멸도)라호니
斯人未得(사인미득) 無上道故(무상도고)로
我意不欲(아의불욕) 令至滅度(영지멸도)호라
我爲法王(아위법왕)하야 於法自在(어법자재)일새
安穩衆生(안온중생)호려하야 故現於世(고현어세)니라
7 신중하게 전법하라
汝舍利弗(여사리불)아 我此法印(아차법인)은
爲欲利益(위욕이익) 世間故說(세간고설)이니라
在所遊方(재소유방)에 勿妄宣傳(물망선전)이니라
若有聞者(약유문자)가 隨喜頂受(수희정수)하면
當知是人(당지시인)은 阿鞞跋致(아비발치)니라
若有信受(약유신수) 此經法者(차경법자)는
是人已曾(시인이증) 見過去佛(견과거불)하야
恭敬供養(공경공양)하고 亦聞是法(역문시법)이니
若人有能(약인유능) 信汝所說(신여소설)하면
則爲見我(즉위견아)며 亦見於汝(역견어여)와
及比丘僧(급비구승)과 幷諸菩薩(병제보살)이니
斯法華經(사법화경)은 爲深智說(위심지설)이라
淺識聞之(천식문지)하면 迷惑不解(미혹불해)하나니
一切聲聞(일체성문)과 及辟支佛(급벽지불)은
於此經中(어차경중)에 力所不及(역소불급)이니라
汝舍利弗(여사리불)도 尙於此經(상어차경)에
以信得入(이신득입)이온 況餘聲聞(황여성문)이리요
其餘聲聞(기여성문)도 信佛語故(신불어고)로
隨順此經(수순차경)이나 非己智分(비기지분)이니라
8 진리를 등진 사람들
又舍利弗(우사리불)아 憍慢懈怠(교만해태)커나
計我見者(계아견자)에는 莫說此經(막설차경)하며
凡夫淺識(범부천식)하야 深著五欲(심저오욕)일새
聞不能解(문불능해)하나니 亦勿爲說(역물위설)이니라
若人不信(약인불신)하야 毁謗此經(훼방차경)하면
則斷一切(즉단일체) 世間佛種(세간불종)이며
或復顰蹙(혹부빈축)하며 而懷疑惑(이회의혹)하면
汝當聽說(여당청설) 此人罪報(차인죄보) 하라
若佛在世(약불재세)어나 若滅度後(약멸도후)에
其有誹謗(기유비방) 如斯經典(여사경전)커나
見有讀誦(견유독송) 書持經者(서지경자)하고
輕賤憎嫉(경천증질)하야 而懷結恨(이회결한)하면
此人罪報(차인죄보)를 汝今復聽(여금부청)하라
其人命終(기인명종)에 入阿鼻獄(입아비옥)하야
具足一劫(구족일겁)하고 劫盡更生(겁진갱생)하야
如是展轉(여시전전)을 至無數劫(지무수겁)하며
從地獄出(종지옥출)하야 當墮畜生(당타축생)하대
若狗野干(약구야간)하면 其形굴瘦(기형굴수)하고
鯬黮疥癩(이담개라)하야 人所觸嬈(인소촉요)며
又復爲人(우부위인) 之所惡賤(지소오천)하고
常困飢渴(상곤기갈)하야 骨肉枯竭(골육고갈)하며
生受楚毒(생수초독)하고 死被瓦石(사피와석)하나니
斷佛種故(단불종고)로 受斯罪報(수사죄보)니라
若作馲駝(약작탁타)커나 或生驢中(혹생려중)이면
身常負重(신상부중)하고 加諸杖捶(가제장추)하며
但念水草(단념수초)요 餘無所知(여무소지)니
謗斯經故(방사경고)로 獲罪如是(획죄여시)니라
有作野干(유작야간)하야 來入聚落(내입취락)에
身體疥癩(신체개라)하고 又無一目(우무일목)하며
爲諸童子(위제동자) 之所打擲(지소타척)하야
受諸苦痛(수제고통)에 或時致死(혹시치사)하며
於此死已(어차사이)에 更受蟒身(갱수망신)하대
其形長大(기형장대)가 五百由旬(오백유순)이며
聾騃無足(농애무족)하야 蜿轉腹行(완전복행)타가
爲諸小蟲(위제소충) 之所咂食(지소잡식)하야
晝夜受苦(주야수고)에 無有休息(무유휴식)하나니
謗斯經故(방사경고)로 獲罪如是(획죄여시)니라
若得爲人(약득위인)이라도 諸根暗鈍(제근암둔)하며
矬陋攣躄(좌루련벽)하고 盲聾背傴(맹롱배구)하며
有所言說(유소언설)을 人不信受(인불신수)하며
口氣常臭(구기상취)하고 鬼魅所著(귀매소착)이며
貧窮下賤(빈궁하천)하야 爲人所使(위인소사)하며
多病痟廋(다병소수)하야 無所依怙(무소의호)하야
雖親附人(수친부인)이라도 人不在意(인부재의)하며
若有所得(약유소득)이라도 尋復忘失(심부망실)하며
若修醫道(약수의도)하야 順方治病(순방치병)하야도
更增他疾(갱증타질)하고 或復致死(혹부치사)하며
若自有病(약자유병)하면 無人救療(무인구료)하고
設服良藥(설복양약)이라도 而復增劇(이부증극)하며
若他反逆(약타반역)과 抄劫竊盜(초겁절도)하난
如是等罪(여시등죄)에 橫罹其殃(횡리기앙)하나니
如斯罪人(여사죄인)은 永不見佛(영불견불)하며
衆聖之王(중성지왕)이 說法敎化(설법교화)라도
如斯罪人(여사죄인)은 常生難處(상생난처)하야
狂聾心亂(광롱심란)하야 永不聞法(영불문법)하며
於無數劫(어무수겁) 如恒河沙(여항하사)에
生輒聾啞(생첩농아)하야 諸根不具(제근불구)하며
常處地獄(상처지옥)을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在餘惡道(재여악도)를 如己舍宅(여기사택)하며
駝驢猪狗(타려저구)가 是其行處(시기행처)라
謗斯經故(방사경고)로 獲罪如是(획죄여시)니라
若得爲人(약득위인)이라도 聾盲瘖瘂(농맹음아)하고
貧窮諸衰(빈궁제쇠)로 以自莊嚴(이자장엄)하며
水腫乾痟(수종건소)와 疥癩癰疽(개라옹저)인
如是等病(여시등병)으로 以爲衣服(이위의복)하며
身常臭處(신상취처)하야 垢穢不淨(구예부정)하며
深著我見(심저아견)하야 增益瞋恚(증익진에)하며
婬欲熾盛(음욕치성)하야 不擇禽獸(불택금수)하나니
謗斯經故(방사경고)로 獲罪如是(획죄여시)니라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謗斯經者(방사경자)는
若說其罪(약설기죄)인댄 窮劫不盡(궁겁부진)이라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我故語汝(아고어여)하노니
無智人中(무지인중)에 莫說此經(막설차경)이니라
9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
若有利根(약유이근)이요 智慧明了(지혜명료)하야
多聞强識(다문강식)으로 求佛道者(구불도자)라사
如是之人(여시지인)에 乃可爲說(내가위설)이며
若人曾見(약인증견) 億百千佛(억백천불)하고
植諸善本(식제선본)하야 深心堅固(심심견고)어든
如是之人(여시지인)에 乃可爲說(내가위설)이며
若人精進(약인정진)하야 常修慈心(상수자심)하대
不惜身命(불석신명)하면 乃可爲說(내가위설)이며
若人恭敬(약인공경)하대 無有異心(무유이심)하며
離諸凡愚(이제범우)하고 獨處山澤(독처산택)하면
如是之人(여시지인)에 乃可爲說(내가위설)이니라
又舍利弗(우사리불)아 若見有人(약견유인)이
捨惡知識(사악지식)하고 親近善友(친근선우)어든
如是之人(여시지인)에 乃可爲說(내가위설)이며
若見佛子(약견불자)가 持戒淸潔(지계청결)하대
如淨明珠(여정명주)가하고 求大乘經(구대승경)가하면
如是之人(여시지인)가에 乃可爲說(내가위설)가이며
若人無瞋(약인무진)가하야 質直柔軟(질직유연)가하며
常愍一切(상민일체)가하고 恭敬諸佛(공경제불)가하면
如是之人(여시지인)가에 乃可爲說(내가위설)가이며
復有佛子(부유불자)가가 於大衆中(어대중중)가에
以淸淨心(이청정심)가으로 種種因緣(종종인연)가과
譬喩言辭(비유언사)가로 說法無礙(설법무애)가하면
如是之人(여시지인)가에 乃可爲說(내가위설)가이며
若有比丘(약유비구)가가 爲一切智(위일체지)가하야
四方求法(사방구법)가하야 合掌頂受(합장정수)가하며
但樂受持(단락수지)가 大乘經典(대승경전)가하고
乃至不受(내지불수)가 餘經一偈(여경일게)가어든
如是之人(여시지인)가에 乃可爲說(내가위설)가이며
如人至心(여인지심)가으로 求佛舍利(구불사리)가하며
如是求經(여시구경)가하야 得已頂受(득이정수)가하며
其人不復(기인불부)가 志求餘經(지구여경)가하고
亦未曾念(역미증념)가 外道典籍(외도전적)가하면
如是之人(여시지인)에 乃可爲說(내가위설)이니라
告舍利弗(고사리불)하노니 我說是相(아설시상)인
求佛道者(구불도자)도 窮劫不盡(궁겁부진)이라
如是等人(여시등인)은 則能信解(즉능신해)하리니
汝當爲說(여당위설)가 妙法華經(묘법화경)이니라
妙法蓮華經 第三 譬喩品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