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제6대황제
정통제
주기진의
서후
庶后이다
성화제의
생모
生母이자
홍치제의
할머니이다
증조부는
주득청
조부는
주복산
아버지는
영국
영정공
주능이다
주씨는
창평현의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다
죄유록에
따르면
영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창평에
이르렀을때
그녀의
집에잘못
들어
갔다고한다
가족모두가
놀라
피신했으나
주씨만
나와서
대응하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로인해
영종이
그녀를
궁에
들였다고
한다
명영종
정11년
1446년
주씨는
황제의
둘째딸
중경
공주를
낳았다
정통12년
1447년
황장자
주견심을
낳았다
1449년
토목의
변으로
영종이
에센에게
포로로
잡혔고
손태후가
그녀의아들
주견심
후일의
성화제를
황태자로
삼았다
경태
원년에
영종이
북경으로
돌아왔고
남궁에
거주했다
경태 3년
태자
주견심이
폐위되었다
경태6년
1455년
주씨는
영종의
여섯째아들
주견택을
낳았다
이사이에
주씨의
비빈
지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천순원년
1457년
영종이
복위하면서
주씨를
귀비로
봉했다
당시
전황후가
영종이
토목보의
변으로인
포로
생활을할때
슬퍼하다
눈이멀고
질병을얻어
더이상
출산능력이
없다고하며
주씨는
손태후의
전례에따라
황태자의
생모인
자신이
황후가
되어야
한다고
이를위해
손태후를
설득하였고
태후는
이것을
옳다고
생각해서
장면이라는
태감환관을
통해
관철시키려
하였으나
영종이
크게화를
내며
물리쳤다.
그이후에도
주귀비가
전황후에게
여러차례
불손한
행동을했다
어느날
태자앞에서
황후에게
매우
무례하게
행동하자
영종이
화를내며
그녀를
꾸짖었고
전황후는
태자를위해
용서해
주세요
라고
청하였다
명헌종이
즉위한후
그는적모인
전황후와
생모인
주귀비를
모두
황태후로
존칭하고
호칭을
정하려했다
당시환관
하시가
주귀비에게
아첨하기
위해
주귀비만을
황태후로
존칭하려
하였으나
대학사
이현과
팽시가
강력히
반대하여
두황태후를
함께
존칭하게
되었으나
주태후
에게는
호칭을
주지않아
적서의
구별을
나타냈다.
성화
23년4월,
존호를
성자인수
황태후로
하였다
헌종이
재위하는
동안
태후를매우
효성스럽게
모셨으며
사서에
다섯날에
한번
조회하고
잔치를
베풀때마다
반드시
참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후의
요구를
헌종은
두려워하며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홍치제가
서궁에서
태어났고
생모인
기비가
사망한후
주태후가
궁중에서
만귀비의
탄압
으로부터
홍치제를
양육하며
보살폈다
효종이
즉위한후
주씨를
태황태후로
존칭하였고
태황태후를
매우
효성스럽게
모셨다
심지어
할머니를
위해
예외적으로
숭왕견택
주태후의
아들을
소환하여
축하를
받게하려
했다
홍치 11년
겨울
청녕궁이
화재로
피해를입어
태황태후는
인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음해
청녕궁이
재건되자
다시
청녕궁으로
돌아왔다
방사
이광의
죽음은
태황태후와
관련이있다.
이전에는
적후와순장
비빈만
황제와함께
합장될수
있었으며
영종이
생전에
주태후가
아들로인해
전황후의
지위를
격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전황후의
지위는
고정되어
변경할수
없다고
명하였다
전황후가
사망한 후
주씨는
전황후의
합장을
막으려했다
헌종이
타협하여
결국 합장
될수있었다
그러나
주태후는
은밀히
영종의능침
설계를
변경하여
자신도장차
영종과
합장될수
있도록
하였으며
전태후는
영종과같은
능묘에
있지만
다른터널에
묻혀있었고
두능사이의
통로는
채워져
있었다
오른쪽
주태후의
터널은
비어있었다
명나라
제도에따라
적후만이
황제의
시호와함께
태묘에
배향
될수있으며
계후와
황제의
생모는
황제의
시호와
더하지않고
별도로
묘를세워
제사를
받았다
홍치17년3월
주태황태후가
붕어하자
대신들이
논의하여
주태황태후를
효숙정순
강의광렬
보천승성
예황후로
시호를
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사유건
사천
이동양은
주태황태후가
적후가
아니라며
반대하였고
효종이
이를따랐다
주태황태후의
시호는
효숙정순
강의광렬
보천승성
태황태후로
정하고
합장하되
별도로
봉사하고
태묘에는
배향하지
않았다
주씨가
사망한후
효종은
전황후의
능묘통로가
막혀
있는것을
발견하고
이를열려고
했으나
흠천감의
반대에따라
실행하지
않았다
이로써
주씨
이후로는
황제의
생모도
황제와
합장
될수있게
되었다.
가정15년
명세종이
명하여
기태후와
소태후두
사람을함께
능묘에
배향하고
주태후를
황후로
칭하되
황제의
시호를함께
하지않아
적서의
구별을
두었다
이후
목종의생모
효각황태후
신종의생모
효정황태후
광종의생모
효정황태후
희종의생모
효화황태후,
사종의생모
효순
황태후도
이제도를
따랐다
주귀비의
최종시호는
효숙정순
강의광렬
보천승성
황후였다.
여러동생이
귀하게
되었으나
막내동생
길상만이
그의
당숙에대해
외방에
나가
오랫동안
승려
생활을하다
돌아왔다
누이는
태자의
생모로
영종이
그녀를
환속시키려
했으나
거절하고
서산에
거주하며
조용히
살다가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