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제천의 모노레일을 탄 후 제천시를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모노레일을 사전예약하지 못하여 방향을 예산으로 틀었다.
우리는몇 주전 영화 '명당'을 본 기억이있어서
영화에서 2대천자지지에 자리한 천년사찰 '가야사'를 불태우고 남연군의 묘를 썼다는 곳을 방문했다.
10시쯤 대전을 출발하여 11시쯤 헌종태실을 돌아본 후 11시50분쯤 남연군묘에 도착했다.
가야산도립공원이 있는 가야9곡길에는 볼거리가 참 많았다.
옥계저수지 둘레길에는 헌종태실, 덕산향교, 광덕사 등이 있고
가야산 도립공원 주차장 위쪽으로도 5곡, 6곡, 7곡, 8곡, 9곡 및 남연군묘, 상가리 미륵불 등이 있다.
또한 남연군묘 위쪽으로는 상가저수지가 있고 가야산 등산로의 풍광은 너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남연군묘 아래쪽의 화장실과 남은들 상가 사이에서 상가저수지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이곳에 앞으로도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량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쪽이며 남연군묘 바로 앞쪽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남연군묘 아래쪽 터에 놓여진 석물이다.
옛 가야사 건물의 주축돌과 석탑 기단 등 건축물의 부재인듯 하다.
가야사지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위치하며
고려시대부터 존속하여 있다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묘를 이장하면서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유적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여 가야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150호),
남연군묘(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80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예산군에서는 가야사지의 보수 및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부터 2014년까지총 3차례의 문화재 발굴조사결과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8동의 건물지를확인할 수 있었고, 석조불상 8점, 청동불두 1점, '가량갑(사)'명 명문기와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사지에 대한 건물배치 및 사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3차 발굴조사를 통해 남연균묘의 제각시설이 확인되었다.
제각은 가야사지를 일부 파괴하고 조성되어 남연군묘 이장에 대한 기록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http://blog.daum.net/e-chungnam/2537
http://blog.daum.net/dendise/11002044
가야사지 석물들이 있는 느티나무쪽에서 남연군묘를 바라본 모습이다.
안내판은 소나무 사이에 가려서 잘 보이질 않는다.
다음에 안내판을 새로 세운다면 다른곳으로 옮겨 세워야할 듯 하다.
남연군묘를 짓는데 이렇게 신라의 황남대총 처럼 크게 쌓아올리진 않았을텐데?
위에 있는 큰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주변하고 비교해보면 쌓아 올린 듯도 하다.
나는 모르니 궁금하다. 안내판에도 설명이 없다. ㅠㅠ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찍는 사진인데 멋진 장면이다.^^
남연군묘에 있는 석물들인데 예술성은 조선왕릉의 석물에 뒤지지 않았다.
곡장이 없고 묘의 크기가 조금 작아도 주변 산세와 풍광이 너무 좋아서 왕릉에 못지 않았다.
남연군묘라 그렇지 왕릉이라면 벌써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을 듯 하다.
남연군묘를 정면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영화 '명당에서 바위로 된 화기를 누르기 위해 사찰을 지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정말 이곳에는 바위 암석이 참 많았다.
남연군묘 앞쪽에도 이렇게 엄청 큰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어떻게 이렇게 웅장하게 조성했는지 궁금해지면서 흥선대원군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망주석 뒤쪽으로 있는 전신주들이 없으면 망주석이 더 멋지게 보일 듯 하다.
망주석의 작품성이 정말 뛰어낳다.
다음기회에 다시 방문한다면 망주석의 문양을 자세히 찍어 올려야겠다.
남연군묘에서 우측(서쪽)으로 내려오기 전 남은들상여 건물을 찍은 모습이다.
남연군묘 앞에서 앞의 모습을 찍은 모습이다.
좌우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묘 앞 100여미터 앞에서 합수되어 옥계저수지로 흘러들어간다
저 멀리 산들이 겹겹이 파도물결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남연군묘 뒤쪽의 모습이다.
가야산자락에서 한줄기가 남연군묘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내가 볼때도 꼭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ㅋㅋ
남연군묘 뒤쪽에서 앞을 바라본 모습이다.
도 기념물인데도 어느 사적지 보다도 잘 괸리되고 있었다.
영화 때문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석상 앞에 있는 석등의 모습이다.
문양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석공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석등 몸체에 있는 꽃과 난은 혹시 흥선대원군이 친 것일까? ㅎㅎ
남은들상여를 보관하는 건물이다
대원군이 부친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덕산면 광천리 마을에 하사했다고 전하는 궁중식 상여이다.
장강 위에 구름 차일을 친 용봉상여로 4귀에는 용모양의 금박이 있고,
중앙 부위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동자상이 있으며, 휘장은 검정, 노랑, 흰색 천으로 되어 근엄하면서도 호화롭다.
대원군은 종실 중흥이라는 큰 뜻을 품고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덕산 가야산으로 옮겼다.
시신을 넣은 관을 운반하는데에는 500리 길을 따라 한 지방을 통과할 때마다 그 지역 주민이 동원되어
각 구간을 연결하여 모셔가는 방법을 택하였다.
마지막구간을 담당한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 주민들이 매우 극진히 모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상여를 광천리 마을에 주었고, 이후로 마을 이름을 따서 '남은들 상여'라고 불러졌다고 한다.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보관중에 있으며, 이곳 상여 보호각에 전시된 복제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국립고궁박물관 진품 실측과 정밀 실측 보고서를 근거로 상여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이, 유소는 무형문화재 32호 배순화 매듭장이 제작하여 보호각에
전시하고 있다.
남연군묘를 들어가는 산줄기 위쪽으로 석축을 쌓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무엇일까??(여기를 보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상가저수지와 가야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어느정도까지는 차를 가지고 올라갈수 있으니,
도에서 저수지 주변에도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을 조성해 주면 더욱 좋을 듯 하다.
조그마한 상가저수지의 모습이다.
주변경관을 참 아름다웠다.쉼터가 있으면 앉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어진다.
상가저수지 옆 암자 건물의 모습이다.
절을 새로운 형태로 지었다.(처음에는 가정집인줄 알았음)
상가저수지 옆에 있는 암자의 느티나무이다.
상가리 미륵불로 가는 길에 있는 교량이다.
교량의 바닥이 박석으로 깔려있어서 특이했고 다리 난간도 신경써서 꾸몄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 앞쪽이 상가리 미룩불공원이다.
백제의 미소길은 6.54km에 이르는데 상가리 미륵불공원에서 백제의 미소공원까지 3km쯤 되어
걸어갔다가 돌와와도 괜챦을 만한 거리이다.
최근에 조성되어서인지 안내판도 깔끔하다.
미륵불공원은 잘 관리되고 있으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곳에 주택이 들어서지 않아서 다행이고 아침과 저녁에 산보를 다니면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미륵불공원 옆쪽으로 들어서면 상가리미룩불의 등쪽을 볼 수 있다.
미륵불이 돌아서 있어서 남쪽에서는 등만 볼 수 있다. 참 이상한 부처님이시다.
미륵불에 가기위해서는 아주 조그마한 계곡을 건너야 한다.
목교로 되어있는 다리는 운치가 있다.(잘 만들어 놓은 듯 하다)
미륵불 옆 조그마한 계곡으로는 정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고기들도 행복하게 자유형을 하고 있었다.
미륵불의 등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본래 이자리에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ㅠㅠ
미륵불 등쪽에서 앞쪽을 바라다 본 모습이다.
예전에는 앞쪽 길로도 이곳에 올라다녔는지 공간이 꽤 있었다.
상가리 미륵불의 앞모습이다.
계속 보고 있노라면 친근감이 들기도 하면서 신령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륵불에서 미륵공원과 남연군묘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미륵불이 바라보는 앞쪽으로 어느 정도 터가 자리하고 있었다.